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38화 (38/384)

EP.38 보급은 또 다른 전쟁

딸랑딸랑.

“자, 아지야. 아침은 삶은 콩 통조림이야!”

“멍멍!”

딸랑딸랑.

“자, 아지야. 점심은 늘 먹던 콩 스튜!”

“멍!”

딸랑딸랑.

“자! 아지야. 저녁은 내가 만든 콩고기 패티야! 다만 이번에는 고기가 없어서 콩으로만 만들었어!”

“멍! …멍?”

딸랑딸랑.

“자아, 어제 남은 콩 잔해물을 뭉쳐 만든 비지. 너 먹으라고 남겨뒀어!”

“멍…?”

딸랑딸랑.

“짜잔! 콩 찜! 우와, 세상에. 콩도 찔 수 있지 뭐니! 이러면 맛이 농축되어서 조금 더 강렬한 맛이 난단다!”

“멍.”

딸랑딸랑.

“자아아아. 오늘은 특별히! 특제 곱빼기 콩 스튜! 이야, 양이 평소의 두 배야, 두 배!”

“….”

딸랑딸랑.

“이제 슬슬 로테이션 한 바퀴 돌았지? 그러면 오늘은 잊었던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콩….”

“왈! 왈왈!”

“끄아아아악!”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기도 했고, 어찌 보면 배은망덕한 일이기도 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님조차도 매일매일 반복되는 콩 통조림의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개 따위가 감히 밥을 가려!

…라고 하기에는, 나도 슬슬 콩 통조림에 질리고 있었으므로 다른 재료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지난 며칠 간 모종의 문제가 겹치고 겹쳐, 남은 식자재라고는 쌓아서 성을 만들 수도 있을 만큼의 콩 통조림 뿐. 이걸 다 먹으면 나와 아지의 몸이 콩조림을 욱여넣은 순대가 되어버리고 말 거다.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은 하나.

“어이! 에이비 대위! 듣고 있습니까!”

식당의 찬장을 열어보면, 세워둔 철제 냄비 사이에 짜리몽땅한 골렘이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앉아있다. 회귀자의 검에 꿰인 어깨부분에는 흉측한 구멍이 나 있고, 몸체에는 생채기가 가득하다. 태어난 순간부터 계속 불과 기름에 시달린 철제 냄비조차도 골렘에 비하면 깨끗했다.

흥미가 떨어져서 방치된 인형, 혹은 집을 잃고 다리 밑에서 신세를 지는 노숙자처럼 안쓰러운 몰골이었다. 군국이 자랑하는 마도 골렘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그렇다고 동정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저 골렘은 어디까지나 싱크로 타입 마도 골렘이며 조종자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인 장교. 조종자는 어딘가 편하고 안락한 곳에서 얼음 동동 띄운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이쪽을 감시하는 중이겠지.

골렘의 몸뚱아리는 고난을 겪고 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벽 너머에 있는 비극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비극이 문학계의 주류를 휩쓰는 것처럼 이 골렘 역시도 현생에서 느낄 수 없는 암울함을 골렘으로 충족시키고 있겠지?

생각해보니까 억울하네. 이 골렘 변기 물에 넣어버릴까? 어차피 지금 접속도 하지 않은 거 유사 물고문하는 기분이라도 내면 이 비참함을 해소할 수 있….

『무슨 용건으로 찾아오셨습니까?』

“아잇, 깜짝이야!”

갑자기 움직이는 골렘 때문에 화들짝 놀라서 놓쳤다가 간신히 붙잡았다. 땅에 떨어질 뻔한 골렘이 지그시 나를 올려다보았다.

『주의해주십시오. 본 기체가 상당 부분 파손되어 있어 이 이상의 충격은 버티기 어렵습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조심스럽게 식탁 위에 내려놓자, 골렘은 삐걱거리는 몸체로 엉거주춤 섰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접속해있었네요.”

『탄탈로스는 5레벨 보안시설입니다. 탄탈로스의 내부를 관찰하는 것은 본관의 업무이자 의무.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었구나.

괜히 미안해졌다. 공무원들 욕한 직후 그들이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목격한 기분이라 조금 죄책감이 든다. 지금 끼니 때도 아닌데 여기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수시로 확인하는 모양이다.

“그래봤자 식당에 있을 뿐이잖아요? 감시할 게 뭐가 있다고 식당에서 주구장창 있어요?”

『어찌할 수 없습니다. 만일 이곳에서 벗어난다면 다른 교육생이 본 기체를 파괴하려 들 테니. 다만, 식당에 있어서 그나마 귀하와 개의 왕이 매끼 식사하는 모습은 지켜볼 수 있으니 다행이지요.』

“저랑 아지요? 사람이 개와 겸상하는 걸 봐서 뭐하려고.”

『최소한 귀하가 생존해있다는 사실은 알지 않습니까. 생존여부를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내 생사를?”

『긍정. 군국은 귀하의 생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들으니 조금 쑥스럽다. 군국에서 그리 내 안부에 큰 신경을 쓰고 있을 줄이야.

복지나 안전을 사치로 생각하는 군국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니까 왠지 묘한 감동이 찾아….

『귀하는 리트머스이기 때문입니다.』

리트머스. 용액이 산성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한 시험지이자, 군국이 가끔 쓰곤 하는 은어.

저게 무슨 뜻이냐. 군국에게 있어 나란 존재는 리트머스 종이랑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집어넣었을 때 새빨개지면 안쪽이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다시 말해, 무저갱이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은지 확인하기 위해 먼저 내려보낸 희생양이라는 의미이다.

이제야 알겠다. 왜 살아남으라고 명령했는지. 애초에 딱 그 정도만 기대했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한층 염세적인 시민이 되어가는데 골렘은 거기다 한마디를 더 보탰다.

『혹 누군가의 공격으로 사망에 이르는 상처를 입은 경우, 죽기 전 단말마로 가해자의 정체를 크게 외쳐주기를 요청합니다. 그러면 본국은 귀하의 증언을 바탕으로 교육생에 대한 더욱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것입니다.』

“앙? 이 골렘, 말을 못 가리네. 너부터 끝내줄까? 내 이름 단말마로 외치면서 작동 정지할래?”

『귀하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귀하를 죽인 진범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더할 수 있으니까요. 죽어서라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사람이 할 말이냐? 나는 편히 눈 감고 싶지 않거든! 평생 눈 안 감다가 백내장이 걸려도 좋으니까 살고 싶어!”

화가 솟구친 나는 골렘 다리를 붙잡고 거꾸로 들었다. 골렘은 관절에서 녹슨 쇳소리를 내며 힘없이 흔들렸다. 거꾸로 매달리자 정신이 좀 들었는지 골렘의 마이크에서 한층 다급해진 말이 튀어나왔다.

『당장 멈추십시오. 이유 없는 폭력을 그만두고 본 기체를 해방하기를 강력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이걸 이유 없는 폭력이라고 말하는 게 네가 맞는 이유다, 이 고철덩어리야!”

손으로 한 대 후려칠까 했지만 딱딱해보이는 몸체가 눈에 들어왔다. 저걸 때리면 내 손가락이 아프겠지?

이럴 때를 위해 필요한 게 도구. 다이아몬드 1 카드를 꺼내며 연금술로 카드를 꼬챙이로 바꾸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꼬챙이를 골렘의 몸통에 들이댔다.

날붙이를 앞에 둔 골렘이 급히 외쳤다.

『당장 멈추십시오. 엄중히 경고합니다. 귀하가 본 기체를 파손시킨다면 귀하의 평가에 커다란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접속 안 끊었네? 그러면.”

접속 끊기 전, 아직 통각 공유가 되어있을 때 때려야지.

얇고 가느다란 철 꼬챙이는 그 자체로 회초리도 된다. 나는 꼬챙이를 휘둘러 골렘의 볼기짝을 가격했다. 깡, 하고 쇳소리가 났다.

『아윽!』

“엄살은. 어차피 통각 공유 끊으면 고통도 못 느끼면서.”

『긍…정. 본 기체는 골렘. 이러한 행위는 무의미한 짓입니다. 당장 멈추기를 강력히 요청, 윽!』

말하는 틈에 한 대 더 때렸다. 아직도 통각 공유가 끊기지 않았는지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회초리를 치켜들고는 엄숙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징벌은 고통보다 가하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는 법. 비록 골렘이라지만, 그 볼기짝을 때리는 나도 마음이 도려내지는 것 같구나.”

이 얼마나 불공평한가? 나는 벌을 주겠다며 골렘의 볼기짝을 때리지만, 정작 저 안의 사람은 접속을 잠깐 끊고 나갔다 오면 그만이다. 현실에서는 차가운 잔에 따른 음료를 마시며 내 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윽, 생각하니 울분이 쌓이는군.

좋아. 이 증오를 다 회초리질로 풀어내자.

나는 거꾸로 매달린 골렘의 볼기짝을 매우 쳤다. 챙, 챙, 하고 금속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한 열 대쯤 때렸을까. 진짜 고장 날까 봐 멈추고는 다시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골렘은 진짜 아프기라도 한 것처럼 엉덩이를 치켜들고 네 발로 엎드려 있었다. 마이크에서 드문드문 끊기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평가에, 반영을….』

“아니, 진짜 엄살 좀 그만 부리세요. 감각 공유 끊었잖아요. 누가 보면 골렘과 완전히 싱크로라도 한 줄 알겠습니다.”

골렘이 나를 노려보았다. 무기질로 만들어진 육체에서 왠지 나를 원망하는 것 같은 감정이 느껴진다. 양철 인형도 감정을 담을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여기 있었다.

아니, 왜. 내가 틀렸어? 설마 그걸 다 맞고 있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마조히스트도 아니고.

『…본 기체는 몇 남지 않은 통신형 마도 골렘입니다. 통신의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본 기체는 결코 파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지 않아도 어깨 부분에 생긴 결함으로 싱크로 기능에 장애가 발생했는데, 이 이상의 충격은 본 기체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찌르는 대신 옆면으로 때렸잖아요.”

『그게 더 통각 싱크로를 자극….』

끙, 하고 말을 멈춘 골렘이 아까보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는 말했다.

『…그래서. 며칠간 식당에 식사하러만 왔던 귀하가 본관을 찾았다는 건 무언가 요구사항이 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아. 맞아. 보급 좀 해줘요. 신선식품이 부족해.”

『보급, 말씀하시는 겁니까?』

골렘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지금 본관에게 보급을 요청하러 찾아왔으면서 본 기체를 공격한 겁니까?』

“에이. 공격이라니. 우리 사이에. 가벼운 스킨십이라고 해두죠.”

『철로 된 막대기로 후려치는 것을 가벼운 스킨십으로 부르나 봅니다.』

“그래도 저는 골렘만 후려쳤지, 군국은 인간을 후려치잖아요. 솔직히 나랑 군국이랑 비교하면 군국은 할 말 없지.”

『…다시금 묻습니다. 지금 본관에게 보급을 요청하러 찾아왔으면서 본 기체를 공격하고 본국을 비판한 겁니까?』

골렘이 나를 뚫어지게 노려보다가 말했다.

『요청을 기각합니다.』

“아니, 왜요?”

『귀하의 조금 전 발언만 고려해도 충분히 이유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만.』

“진짜 치사하게 이러기에요? 권력을 남용하여 사적으로 보복하려는 거죠?”

『사적 보복은 일부일 뿐입니다. 보급요청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도 있습니다.』

사적인 보복이 있긴 있다는 거잖아, 그러면. 군국 군인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대놓고 말해도 돼?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었으나, 지금은 보급이 필요한 내가 아쉬운 쪽이다. 일단 숙이고 들어가자.

“어디, 이유나 들어봅시다. 뭔데요?”

『이틀 전, 탄탈로스에 보급품이 투하되었습니다. 분명 귀하는 보급품을 수령하였을 터. 충분히 많은 식량이 남아있는데 추가적으로 보급을 요청하는 것은 자원의 낭비이며 임무의 방기입니다. 보급계에서 수리하지 않을 것이며, 본관도 보급이 필요한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겠습니다.』

“쉽게 말해서 그저께 보급받은 주제에 왜 또 달라고 하냐 돼지새끼들아, 라는 말이죠?”

『이해하셨으면 굳이 복창하실 필요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추가적인 보급은 불가능합니다.』

골렘이 딱 잘라 말했다. 자기가 진짜 강철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차갑고 딱딱한 태도였다.

억울해진 내가 항변했다.

“보급상자에는 콩 통조림밖에 없었잖습니까! 지난 며칠간 콩 통조림만 먹고 살았는데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요? 우리를 살아있는 메주로 만들 생각입니까?”

『부정. 보급 품목에는 빵과 우유 역시 포함되었을 터. 귀하는 거짓을 발언하고 있습니다.』

“뭔 소리야. 그거 숨어든 레지스탕스가 다 처먹었잖아요. 걔네 뱃속에 있는 걸 왜 나한테 찾아.”

내가 짜증스럽게 말하자, 골렘이 불의의 일격이라도 맞은 듯 고개를 홱 들었다.

『…잘 못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보급 상자에 숨어든 레지스탕스가 통조림이 아닌 음식들을 다 처먹으면서 버텼잖습니까. 그래서 우리 먹을 거라고는 지긋지긋한 콩 통조림 말고는 없습니다. 댁도 보셨잖아요. 지난 며칠 간 우리가 콩만 먹는 거. 나랑 아지가 콩만 먹고 살기 힘드니 다른 음식 좀 달라고요.”

『레지스탕스가, 탄탈로스에 숨어들었다고요?』

골렘은 한참 동안 말없이 가만히 있더니 갑자기 나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왜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까?』

“왜냐니요? 보급품 받아야 하잖아요.”

『보급품보다 침입 사실을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중요한가요?”

『긍정.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침입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걔네가 폭탄을 터뜨리려고 해서 전투가 벌어졌고, 침입자들은 전투가 벌어진 후 흡혈귀가 맛있게 먹었어요.”

골렘은 움직이는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 자세는 너무나도 현실감이 있어서, 골렘을 조종하는 본체도 똑같은 자세를 하고 있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허위보고는 아니겠지요?』

“제가 고작 보급 더 받으려고 며칠 동안 콩 통조림만 먹겠어요? 혹 다른 증거가 필요하다면 카니센 리버우드라는 이름을 찾아보세요. 분명 수배 명단에 있을걸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골렘의 눈에서 빛이 잠시 사라졌다. 확인하기 위해 잠시 연결을 끊은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골렘이 다시 움직였다.

『…확인, 했습니다. 귀하의 발언에는 충분한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최근에 갱신된 수배 명단을 귀하가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직접 만났으리라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겠지요.』

“아자. 그러면 보급품은 주는 거죠?”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당연히 중요하죠. 콩에 질린 아지가 슬슬 저를 잡아먹으려고 든다고요. 이미 죽어서 흡혈귀 보양식이 된 레지스탕스보다 콩 통조림 뚜껑만 따도 으르렁거리는 아지가 훨씬 무섭단 말이에요.”

다시 한번, 골렘은 머리를 짚고는 앓는 소리를 내었다. 마이크에서 짙은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추가보급을 요청하겠습니다. 다만 이번 사안에는 사정 청취와 상부의 판단이 필요하니 협조해주시길.』

“보급품을 준다면 사정 청취야 뭐 얼마든지 해드리죠. 어떻게 들려드릴까요? 동화 풍? 아니면 연극 풍?”

『진술서 풍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알았어요. 자, 옛날 옛적, 물레방아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물을 퍼 올리면, 느티나무처럼 늘어진 무지개가 맺히곤 하는 아름다운 마을이 있었어요. 강물을 따라 산에서 흘러온 맑은 물과, 바다로 향하는 이정표를 찾는 상인과, 그들이 담고 온 이야기와, 그것을 듣고 자란 소년의 꿈이 나란히 흘러가는 강가. 거기서 카니센 리버우드라는 한 소년이….”

『진술서.』

“에잉. 낭만이 없네. 진술은 재미없는데.”

손이 입과 따로 떨어져 있는 건, 손이 하는 일을 입이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골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손이 비었고, 나의 손은 자연스럽게 일을 찾았다.

내가 찾은 일은 콩 통조림 따기였다. 이 지긋지긋한 콩 통조림으로 할 묘기는 다 부렸으니, 이제 좀 치울 시간이다.

산더미처럼 있는 콩 통조림을 하나하나 까며 골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려주었다.

“그래서. 저놈들이 폭탄으로 탄탈로스를 박살내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천지건곤의 술, 축지법의 신공으로 그들의 뒤를 점했죠. 은밀하고 갑작스러운 접근에 그들은 겁에 질린 토끼처럼 화들짝 놀라 달려들더군요. 그때 손에 있던 콩 통조림을 던지니, 콩 통조림이 수류탄처럼 폭발해서 적들을 쓸었…. 아, 미안해요. 어디까지 들으셨죠?”

『폭탄으로 탄탈로스를 무너뜨리려는 계획을 세웠다, 까지 확인했습니다.』

“아, 네. 그래서….”

한창 설명하며 깐 콩 통조림을 커다란 냄비에 털어 넣을 때였다.

투다다다. 복도를 뛰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존재감이 여실히 드러나는 이 시끄럽고 쿵쿵 울리는 발소리의 정체는 생각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멍, 싫어!”

식당 문을 박차고 들어온 아지가 곧장 나에게 다가와 매달렸다. 양팔로 내 허리를 부여잡고는, 이빨로 팔소매를 꽉꽉 물어 당기며 도리질을 쳤다. 자못 필사적인 태도였다. 꼭 내가 무슨 마녀의 끔찍한 연금술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싫어! 콩, 싫어! 멍! 멈춰!”

“아지야. 옷 찢어지기 이전에 내 몸이 찢어질 거 같으니 좀 놔줄래?”

“멍! 멍멍!”

콩이 얼마나 싫었으면 통조림 뚜껑 따는 소리를 듣고 겁에 질려 찾아왔을까.

그 와중 군국 교관복은 쓸데없이 튼튼해서 잘 찢어지지가 않는다. 그런 만큼 아지의 도리질을 따라 내 손도 좌우로 흔들렸다. 그것만으로도 손목이 탈구될 위기다.

간신히 아지를 진정시킨 나는 마지막 통조림을 냄비에 털어 넣고는 말했다.

“이 콩 통조림 우리가 먹을 거 아니야.”

“멍? 정말?”

“그래. 어떻게 이 많은 양을 다 먹니. 이건 비료로 줄 거야.”

나는 냄비 속 콩 통조림에다가 물을 부어 콩죽 비슷한 것을 완성시켰다. 아지는 꼬리를 빳빳이 세우며 콩이 가득 든 냄비를 생사대적처럼 노려보았다. 흥분한 아지를 다독인 뒤, 통조림 20개분의 콩이 담긴 묵직한 냄비를 끙끙거리며 들고선 창고 안쪽으로 향했다.

거기 있는 건 팔다리가 다 떨어져나간 큼직한 시체…처럼 보이는 몸. 나는 눈을 까뒤집은 머리 부근에 냄비를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그러자 불사자의 오른팔이 펄쩍 뛰어내리며, 질척이는 콩죽을 퍼서 입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인간이 먹을만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게 영양분이기만 하다면 오른팔은 형태나 맛에 구애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뭐, 혀도 없는 오른팔이 맛을 알겠냐만.

“처음에는 좀 징그러웠는데, 식물 키운다는 느낌으로 대하니까 괜찮네.”

아마 다 처먹는 데 하루는 걸릴 거다. 창고 문을 닫고 나왔다. 그동안 아지는 문앞에서 꼬리를 빳빳이 세운 채 자세를 낮추고 있다가, 내 손에 냄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반갑게 짖었다.

나는 아지와 함께 골렘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보셨죠? 아지에게 콩 더 먹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사정은 이해했습니다만, 사정 청취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단 설명을 마쳐주십시오.』

“아, 맞다. 제가 어디까지 얘기했죠?”

『레지스탕스 잔당들이 폭탄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뭐야. 할 거 다 했네. 그게 끝이에요. 우리들이 힘을 합쳐서 그들을 막았고, 시체는 흡혈귀 줬어요. 끝.”

골렘이 갑자기 일어나서 주먹을 들어 올렸다. 뭐지? 생각을 못 읽어서 잠시 반응이 느렸다. 혹시 나와 싸우려는 건가? 안타깝지만, 내가 아무리 약하다고 한들 이런 짜리몽땅한 모델로는 나를 해칠 수 없다.

왼손 손가락을 부드럽게 움직여 시선을 빼앗는다. 그동안 슬쩍 돌아간 오른손이 골렘의 뒤쪽으로 돌아갔다.

“얍.”

오금을 톡 치자 금방 허물어지는 골렘. 재빨리 왼손을 움직여 들어올린 팔을 뒤로 꺾어 제압했다. 골렘이 바둥거렸지만 오른팔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채로는 벗어날 수 없다.

손가락으로 골렘의 등을 쓰다듬으며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클레임 다운, 클레임 다운. 진정하세요, 진정. 불만이 있어도 잠깐 가라앉히시고. 흥분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일부러 본관을 조롱하는 거라면, 귀하에게 성공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조롱이라니요? 전혀 아니에요. 뭔가 오해가 있으시네요.”

그렇게 말하는 나의 얼굴에는, 나 자신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한 미소가 크게 걸려있었다.

아아. 내가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있어서 너무 행복해. 이런 존재가 조금만 더 많았으면.

“멍! 내 밥은?”

제발. 하나만 더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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