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42화 (42/384)

EP.42 시체를 숨기는 법

주간등이 꺼진 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오직 희미한 야간등만이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감옥의 복도는, 세상에다가 먹지를 대고 연필로 덧칠한 듯 새카만 윤곽만이 돋보였다.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당장 눈앞에 다가온 벽도 눈치채지 못할 암흑 한가운데.

그 속에서 한 사내가 발소리를 죽이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 커다란 보따리를 두르고 있었는데, 매듭 틈으로 기괴하게 꺾인 팔과 다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정상적인 인체구조 상 절대로 나타날 수 없는, 팔과 다리가 척추동물의 골격과 다른 곳에 달라붙어 있어야만 가능한 각도였다.

아니면, 팔과 다리가 아예 떨어져있던가.

조각 난 몸뚱아리를 옮기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시체를 은닉하려는 자의 움직임이었다. 당장 붙잡아 죄를 캐물어야 하건만, 어둠의 장막은 그의 모습은 물론 죄까지 가려주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죄가 아니다. 야음을 틈탄 덕분에 그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

“멍? 뭐야?”

“쉿. 아지야. 좀 가 봐. 서프라이즈 선물이니까.”

“멍? 선물? 내 거?”

“그럴 리가.”

어떤 ‘사람’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 조각 난 몸뚱아리를 은밀한 장소에 숨겼.

“멍!”

“파헤치려고 하지 마! 어허! 먹는 거 아니야! 지지!”

숨겼다. 어쨌든 그랬다.

오늘도 평화로운 하루. 나는 교육생들을 불러모은 채 칠판 앞에 섰다. 분필을 집어들려던 나는 분필 상자가 텅 빈 것을 보고는 회귀자를 지목했다.

“분필이 다 떨어졌네. 셰이 교육생. 뒤에 있는 캐비닛에서 분필 좀 꺼내줄래요?”

“그걸 날 시켜야 해?”

“가깝잖아요. 부탁해요.”

“칫. 그래, 뭐. 부탁이라면야.”

회귀자는 불량스럽게 캐비닛을 향해 다가갔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걸음을 셌다.

자, 하나. 둘. 셋. 짠.

나의 설계대로, 회귀자는 홱 캐비닛 문을 열어젖혔고.

그 순간, 기괴하게 꺾여있는 팔다리와 선홍빛 근육이 꿈틀거리는 몸뚱아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죽은 듯 혀를 까뒤집고 있는 얼굴이 딱 회귀자와 눈이 마주치더니, 곧 회귀자를 향해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조각 난 팔다리와 함께.

아무런 전조도, 맥락도 없이 툭 나타난 기괴한 시체. 평범한 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놀라 자빠질만한 광경이다.

하지만 회귀자는 무덤덤하게 그것을 마주했다.

“천반경.”

이런 일로는 놀라지도 않는다는 듯. 무표정을 고수하며 넘어지는 시체를 손으로 밀어냈다….

‘꺄아아아--!’

표정만 무표정으로.

태연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회귀자는 놀라서 정신적인 비명을 질렀다. 시체에서 떨어져나온 오른팔이 꼼지락거리자 진저리를 내며 그것을 다급히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깜짝이야…! 뭐야, 이건?! 이딴 게 왜 캐비닛 안에 있는 거야?!’

마음속으로는 놀라서 온갖 호들갑을 떨고 있었건만. 그러나 이 감정이 회귀자의 몸 밖으로 드러나는 일은 없었다.

회귀자의 기공인 천반경, 특정한 동작을 몸에 새겨서 어떤 상황에도 반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그 기술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기겁한 때에도 발동했다. 심장이 펄떡펄떡 뛸 정도로 놀랐으면서도 수많은 단련을 겪은 몸은 부동심, 아니, 부동신(不動身)을 유지했다.

회귀자는 나를 슬쩍 돌아보며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안에 시체가 있는데? 이봐. 뭐 아는 바 있어?”

‘…시, 시체가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설마 처음 여기 왔을 때부터 계속? 그…건 좀 소름 끼치는데.’

뭐야. 금방 마음을 다잡네. 쳇. 조금 더 놀랄 줄 알았는데. 내 회심의 깜짝상자였는데 준비한 보람이 없다.

아쉬움을 삼키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어라. 언제부터 저게 저기 있었지?”

그러자 아지가 귀를 쫑긋 세우며 일어섰다.

“멍! 나, 알아! 어제….”

“갈(喝)! 인간님이 말씀하시는데 어딜 축생이 끼어드느냐?!”

목격견의 입을 틀어막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손짓했다.

“누군가 이 시체를 캐비닛 속에 숨겨둔 모양이네요. 조사를 해봐야겠어요. 셰이 교육생. 잠깐 그것을 가지고 나와주시겠어요?”

“이걸?”

“가깝잖아요. 부탁해요. 시체 무서워하지도 않으시잖아요?”

“그건 그래.”

회귀자는 태평하게 시체를 짊어졌다. 겉모습만 보면 전혀 놀라지 않은 사람 같았다. 속마음도 뭐, 거의 동요하지 않고 있었고.

마음은 몸을 따라간다고 하던가. 저 천반경이라는 거 없었으면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을 텐데. 아쉽기 그지없다.

“자.”

회귀자는 불사자의 조각 난 몸뚱아리를 늘어놓았다. 나는 몸을 숙여 회귀자의 눈앞에서 팔다리를 맞췄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어젯밤에 살짝 빼놨던 혀도 도로 집어넣고, 혹여나 반항할까 봐 손가락 하나하나 묶어놓은 오른팔도 원래대로 돌려놨다.

조각모음이 완료되어 점점 사람의 형체를 갖출수록, 회귀자의 시선이 가라앉았다.

‘시체가 아니었어. 근육질의 거한, 까무잡잡한 피부… 분명 그 불사자다.’

오. 드디어.

내가 불사자를 캐비닛에 숨겨두었던 건, 꼭 회귀자를 놀라게 만들려는 의도만은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목표였을 뿐.

회귀자의 기억에 따르면, 지난 모든 회차에서 이 불사자는 아마도 끝까지 살아남는 모양이다…. 불사자니까 당연하겠지만.

저번 회차. 정보를 찾아다니던 회귀자는 불사자를 만나 탄탈로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강 전해 듣고는, 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직접 이곳에 침투했다.

일단 내가 읽어낼 수 있었던 건 여기까지. 회귀자의 회상이 끝난 탓에 불사자로부터 무슨 정보를 전해 들었는지, 이전 회차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저번 회차의 기억까지 다 읽을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왜인지는 몰라도 나는 오직 회귀자의 회상으로만 이전 회차를 읽어낼 수 있으니.

그러니, 나는 내가 왜 죽었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불사자를 회귀자의 눈앞에 대령해야 했다. 그래야 회귀자의 머리에서 조그만 단서라도 기어나올 테니까.

회귀자는 한층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불사자, 계속 여기에 있었어?”

“글쎄요?”

“그럴 리 없어. 이 정도 상처라면 출혈이 있었을 거야. 그렇다면 티르칸쟈카가 모를 리 없는데.”

회귀자의 의문에는 흡혈귀가 직접 대답했다.

“아니다. 만일 저것이 내가 생각한 그들이라면, 나 역시 알아차리지 못한다.”

여전히 오늘도 관을 의자 대신하여 앉아있던 흡혈귀는 팔다리 떨어져나간 몸뚱이를 무심하게 보았다.

“초원 어딘가의 토인들이로구나.”

“토인?”

“같은 불사이기에, 구분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을 토인이라 부른다. 그들은 우리를 혈귀라 부르지. 서로 간의 사이는 데면데면한 편이다. 그들은 우리를 저주받았다 여기고, 우리 역시 그들의 피를 취할 수 없으니.”

흡혈귀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관 틈이 살짝 열리며, 그곳에서 시뻘건 핏물이 스멀거리며 흘러나와 불사자를 향해 다가갔다. 당장이라도 집어삼키려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핏물은 불사자의 몸에 닿자마자 급격하게 힘을 잃었다. 붉은 핏물이 새카맣게 물들더니 모래처럼 부스러져 땅으로 떨어졌다.

“그들의 피륙은 대지모를 닮았다. 종족을 인신공양한 끝에 불사성을 얻었지. 살은 모래이며, 피는 진흙일지니. 극도로 불순하고 더러운 육체라 오직 그들만이 품을 수 있다. 따라서 피가 몸 밖에 있어도 나의 혈조술에 영향을 받지 않지.”

흡혈귀는 얼굴을 살포시 찡그리며 손을 털었다. 모래처럼 부스러진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핏물이 다시 흡혈귀의 곁으로 돌아왔다. 흡혈귀는 흡사 오물이라도 만진 듯 그것을 떨쳐냈다.

회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다면, 이 불사자가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거네.”

회귀자의 중얼거림을 들은 아지가 몸을 꼿꼿이 세우고는 말했다.

“멍, 나, 알아! 어제…!”

“꾸짖을 갈(喝)! 어딜 아이큐 두 자릿수가 세 자리 클럽에서 말을 꺼내느냐! 서당개도 3년 동안은 점잖게 경청하거늘 감옥 경비견 따위가 감히 입을 열어?! 십 년은 이르다!”

“…으르르.”

아지의 호감도가 조금 떨어진 것 같다. 이따가 한 시간 정도는 털을 빗겨줘야 간신히 회복하겠다.

그래도 지금은 입을 다물게 하는 게 우선이다. 회귀자는 나와 아지에게서 금방 관심을 껐다.

‘아지한테 또 뭔 헛짓거리를…. 뭐, 됐어. 저 남자의 기행이 하루이틀도 아니고.’

이래서 사람은 평소 행실이 중요한 법이다. 미친 짓을 해도 별다른 의심 없이 그냥 넘어가주잖아. 역시 지금껏 기행을 벌여온 나의 노력은 성과가 있었어.

‘그보다 지금은 불사자가 먼저야. 아무래도 중태 같은데, 이게 눈을 뜰 수나 있을까? 여기가 지상이라면 모르겠지만, 맥이 끊긴 무저갱이라 스스로 회복하기는 어려울 텐데.’

회귀자의 의문스러운 시선이 불사자를 향했다. 죽음에 이르는 상처를 입어도 쉽게 재생하는 불사자이지만, 무저갱에서는 그들을 회복시킬 수단이 없다.

‘그나마 대지모신의 은혜… 농작물을 한가득 섭취한다면 모르겠지만. 얼마나 걸릴지 모르고. 포션을 써? 그랬다가 과거랑 달라지면 오히려 내 정보가 무의미해지는데.’

왠지, 보통 인간이라면 절대 못 삼킬 콩죽을 냄비 째로 먹는다 했다. 상처를 재생하기 위함이었구나.

원래는 그냥 보여만 주고 끝내려고 했는데. 흠. 이런 상황이면 그냥 한 번 깨워볼까?

좋아, 결심했다. 나는 회귀자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남자를 좋아하는 셰이 교육생, 음탕한 눈으로 남자 몸 그만 내려다 보고 자리로 돌아가지 그래요?”

깊은 상념에 빠져있던 회귀자가 급작스럽게 휘청거렸다. 그대로 넘어질 뻔한 것을 간신히 균형을 잡은 회귀자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가, 갑자기 뭔 소리야!”

“이 분이 비록 의식이 없다고는 하지만,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의 뜨거운 시선을 계속 방치하는 건, 음, 좀 아닌 것 같아서.”

“뭔 뜨거운 시선이야?! 나는 노멀이거든!”

“네? 뭐야. 여자를 좋아한다고요? 그러면 저번에 직접 아지를 씻긴 건 어떻게 된 거예요? 혹시 아지를 씻기면서 벗겨낸 게 새카만 때가 아니라 새카만 번뇌였어요?”

“아니야! 그럴 리 없잖아!”

“하긴, 그럴 리 없죠? 왜냐면 남자를 좋아하니까.”

“그…!”

자가당착에 빠진 회귀자가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얼굴만 붉히고 있을 때.

흡혈귀가 앙산으로 책상을 톡톡 두들겼다.

“그만.”

그리고는 양산을 작게 펼쳐 얼굴을 가렸다. 양산 뒤쪽에서 조금 부끄러운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보증하마. 네놈이 시킨대로 저번에 지켜보건대, 셰이는 개의 왕을 씻기면서도 곤란해할 뿐 별달리 의식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아마, 남자를 좋아한다는 말 역시 참일 테지…. 에그머니나.”

“잠깐, 티르칸쟈카!”

“괜찮다, 셰이.”

차마 시선까지 마주하기는 힘들었는지 입가만 드러낸 채, 흡혈귀는 뭔지 모를 따스한 미소로 회귀자를 변호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너의 성향 역시 너의 일부 아니겠느냐. 네가 비록 음양의 조화라는 천륜을 저버렸다고 하나 역천의 괴물인 건 나 역시 마찬가지. 똑같이 성황청에서 용납하지 못하는 존재이거늘, 내 너를 탓할 게 못 되더구나.”

“나는 그런 게…!”

“나는 괜찮다. 이해한다.”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흡혈귀의 미소는 참으로 다정하여, 입이 험한 회귀자도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빼도박도 못하게 된 상황. 회귀자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입을 꾹 다물었다.

‘차라리 지금 여자라고 밝히면…! 싫어! 그럴 순 없어. 이 타이밍에 여자라고 말하면 꼭 내가 진 것 같잖아!’

자존심도 참 이상한 방향으로 형성되었네. 도망치듯 몰려서 어떤 진실을 밝히는 걸 패배라고 여기고 있다.

생각을 다 읽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퍽 우스운 노릇이다.

뭐, 상대는 내가 독심술을 쓴다는 것을 모를 테니. 나는 이렇게 생각이나 읽고 계속 놀려대면 된다.

‘거기다 나는 보물전에서 얻은 아가르타의 가면으로, 내 첫인상이 무조건 남자로 느껴지도록 해놨어. 이 암시를 깨뜨리려면 옷을 벗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러기는 죽여도 싫어!’

저따위 허술한 남장으로 왜 안 들키나 했더니 또 영문 모를 보물 때문이었구나. 세상에는 별의별 신기한 게 많네.

잠깐. 뭐라고? 죽여도 싫어? 죽어도가 아니라? 누구를?

나는 급히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자자. 그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제 이 불행한 사고를 겪은 불사자를 되살려보죠!”

…좋아. 그만 놀리자. 자비롭게도 회귀자가 도망칠 수 있도록 구멍을 마련해준 나는, 팔다리 다 뜯긴 채 누워있는 불사자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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