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5 맛만 좋으면 그만
이전 회차.
무저갱이 무너졌다.
군정 사상 최악의 사건이라는 탄탈로스 탈옥 사건. 그보다도 훨씬 치명적이고 끔찍한 일이었다. 탄탈로스를 탈옥한 범죄자들의 면면 역시도 흉악하기 그지없었으나…. 무저갱이 무너지고 그 아래에서 기어 나온 건,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의 끔찍한 것들.
그 거대한 위험성에 비해 당장 눈에 띄지 않아, 더욱 치명적이었던 재앙이었다.
무저갱에 종말의 조각이 있다는 건 회귀자도 몇 번의 회귀 끝에 간신히 도달한 진실이었다. 회귀자는 이전 회차에서 캐낸 단서를 모아 무너진 무저갱에 도착했고.
거기서 마주한 건, 수만 명의 살덩이로 빚은 끔찍한 괴물이었다.
“거, 나도 피해자니까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오. 낸들 어찌 알았겠소?”
늘어진 노을빛이 젖은 땅을 비춘다. 노을에 닿아 붉게 질척이는 빛깔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고, 역겨우며, 끔찍하다.
대지를 적신 그 액체는, 전부 사람의 몸에서 나온 핏물이었으니까.
과거 제국으로 향했던 불사의 시체 골렘. 그 발원지조차 무저갱이었다. 회귀자는 만 하루 동안의 전투 끝에 가까스로 골렘을 처치하고는 그 핵이던 불사자를 끄집어냈다.
정작 그 핵이었던 불사자는, 그 처절했던 전투도 무색하게 태평하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쩝. 너무 오래 눈을 감고 있었어. 우리는 불사이나, 불멸은 아니오. 생명이 다하면 잠시 세상으로 돌아갔다가, 대지에서 생명을 부여받고는 다시 움직이지. 헌데, 어떤 빌어먹을 것이 나를 모독했소. 내 살점을 저주하고는 사방으로 뿌렸지. 하필 대지모신의 저주를 받은 땅이라, 나는 나를 지킬 수 없었소….”
살덩이 괴물은 총탄을 맞아도 재생하고 불에 그을려도 멀쩡했으며, 집어삼킨 시체를 곧장 무기 삼아 휘둘렀다. 가시 돋친 척추뼈가 사방에 난무하고, 고름 종기가 터져 땅에 흩뿌려졌다. 치익, 싯누런 고름이 땅 위로 떨어질 때면 독액이라도 맞은 듯 땅이 녹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내장은 풍선보다는 폭탄에 가까웠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정강이 뼈가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악취와 오물 속에서 회귀자는 검을 휘둘렀다.
해묵은 시체와 그 원념을 빨아들이고 무차별적으로 재생한 몸뚱아리. 다른 인간의 육신을 탐하는 그건 기어 다니는 역병이었으며, 그 자체로 인속(人屬)에 대한 끔찍한 모독이었다. 다음 고기를 찾아 땅 위를 헤매는 그것을 회귀자는 온 힘을 다해 저지했다.
그 결과.
“뭐! 죽은 사람에게는 조금 미안하군! 하지만 어쩌겠소! 내 의지로 한 일도 아닌데!”
불사자는 호쾌하게 외쳤다. 이 정도야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으면서.
그럴 리 없다. 회귀자는 악취를 막기 위해 두른 천으로 땀방울을 훔쳤다. 지친 한숨이 틈으로 새어나왔다.
“네가 부순 마을이 셋, 죽은 사람이 백아흔에 이르러.”
“만일 아가씨가 막지 않았다면 그의 열 곱절은 더 죽어 나갔겠지! 잘했소! 아가씨야말로 영웅이구려!”
“…칭찬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야. 너는 처단당해야만 해. 이번에는, 어쩔 수 없어.”
냉혹한 발언에도 불사자는 태연했다.
“나도 살기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오만! 거, 우리는 불사지 불로가 아니오. 나이를 먹으면 천천히 기력이 쇠하다가 어느 순간 흙으로 돌아가지. 물론, 나는 죽기엔 아직 젊은 편이오만.”
불사자는 왼쪽 어깻죽지를 들었다. 녹아내린 핏물이 길게 늘어진 그의 몸은, 아무리 보아도 인간의 형상과는 몇백 년 떨어져 있었다. 구더기 수만 마리가 몇 년 동안 갉아먹고 토해내면 그런 모습일까. 육신의 윤곽이 테두리를 뭉갠 그림처럼 희미해서, 어디부터가 그의 몸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몸이 실시간으로 녹아 없어지는 와중에도 불사자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몸을 너무 험하게 썼단 말이지! 수명이 너무 빨리 닳아, 머지않아 죽을 것이오! 거, 최소한 무저갱 안에서 죽지는 않았으니 어머니 대지모의 품에 묻힐 수는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또, 그 무저갱이었다. 도대체 그 무저갱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다는 말인가.
허탕이다. 이번 회차의 회귀자는 늦고 말았다. 이 사건 자체가 회귀 초에 일어나는 바람에 시간이 너무 촉박했던 탓이다.
하지만 만일, 그 무저갱 속에 엄청난 해답이 있다면. 다음 회차야말로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짙은 피로감 속에서 약간의 기대가 반짝거렸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누가 무엇을 했길래 당신 같은 괴물이 탄생한 거지?”
“사람을 괴물로 표현하면 좀 섭하오만. 부정할 수는 없겠군! 지금 내 꼴은 분명 괴물이니!”
“잡담할 시간 없어. 빨리.”
“아, 그렇지.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굴었군! 바쁘신 몸일 텐데!”
죽음은 노을처럼 느릿하면서도 확실하게 찾아왔다. 불사자의 말투는 아까와 다를 게 없건만, 그의 얼굴에는 죽음의 기색이 파리하게 내려앉았다. 그늘진 얼굴에서 간신히 만든 말이 새어나왔다.
“혹, 그 무저갱에서 누군가 탈옥했다는 것을 아시오?”
“알아.”
“그렇다면 이야기가 쉽겠구만! 탈옥하려던 놈 중 하나와 싸웠소. 거기가 지상이었다면 단숨에 재생하여 그 모가지를 찢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맥이 없는 무저갱에서는 재생이 안 되더구려! 영문 모를 마술에 사지가 찢기고, 생명력이 다해 잠들었지. 그런데….”
그는 흐릿한 기억을 짜내려는 사람처럼 인상을 찡그렸다.
“처음 눈을 떴을 때, 몇몇 사람이 있었소. 가장 먼저 교관이라는 자가 다가와, 자기가 나를 깨웠다고 말했지. 그는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본 뒤, '관리'하기 귀찮으니 다시 잠들어 있으라고 했소. 그때는 생명력이 얼마 회복되지 않았기에 나도 다시 잠들었지.”
이야기를 듣던 회귀자는 콱하고 인상을 썼다.
“…그게 끝이야? 다른 이야기는?”
“또 뭐라 했던 것 같은데. 기억 안 나오.”
“조금만 더 열심히 떠올려 봐!”
“미안하오만, 나는 남자가 중얼거리는 말 하나하나 기억하는 취미 없소. 그게 요술쟁이의 허영뿐인 말이라면 더더욱.”
“아무거나 단서가 될 만한 게 있을 거 아니야! 사람 숫자라든지, 거기 누가 있었는지!”
“단서라. 으음. 내가 보았을 때. 여자가 둘 있었다, 정도? 둘 다 매력적이었소.”
“…그게 다야?”
“그게 얼마나 중요한 정보인데 그러시오? 사내놈 숫자보다 열 배는 중요하지 않소?”
죽음에 익숙한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죽음이 너무 생소해서 미쳐버린 것일까. 회귀자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다잡으며 다시 캐물었다.
“다른 건?”
“그 다음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난리가 난 상태였소. 건물이 불길하게 흔들리며 저 멀리서 짐승의 울부짖음이 들리고 있었지. 나를 깨운 사람들은, 교관이 자신들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며, 나보고 그와 맞서 싸워달라고 했소.”
“그 사람들이 누군데? 뭐라고 했는데?”
“글쎄? 나도 모르오. 확실한 건, 여자는 아니었소.”
“….”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하지만 간헐적으로 눈을 뜨고 잠들었던 불사자에게 무언가를 더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회귀자는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회귀자는 다음 회차에는 꼭 그 무저갱 속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건 그저 정보를 알아내기 위한 실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싸웠고, 패배했지. 그곳이 지상이 아니었다면…. 아니, 내 손발만 멀쩡했다면 그리 허무하게 당할 리는 없었겠지만, 사실 그를 이겼어도 별 차이 없었을 것이오. 그는 짐승의 왕과 함께하고 있었거든.”
“짐승의 왕이라고?”
“그렇소만. 뭐더라…. 인류의 위대한 비원인가 뭔가, 그분을 찾기 위해선 처절한 투쟁이 필요하다 했던가…. 거참, 너무 얼토당토않은 말이라, 남자놈의 지껄임도 기억해버렸지 뭐요. 큭큭….”
건조한 웃음소리가 땅에 떨어져 흐른다. 그릇이 깨져 그곳으로 목숨이 새어 나온다. 불사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무한한 생명도, 결국 언젠가 끝날 수밖에 없는 찰나의 촛불일 테니.
“마지막으로 눈을 떴을 때는, 나는 내가 아니었지. 고통과 원념만이 남아, 해묵은 한을 갚기 위해 날뛰고 있었소. 몸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허기가 졌고, 몸은 누군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지. 굶주림에 이것저것… 먹어선 안 될 것을 먹은 것 같아.”
“그래. 좀 징그러웠어.”
“거. 마지막만 아니었다면, 괜찮을… 뻔한, 삶이었군. 큭. 할 수만 있다면, 내 삶의 마지막을, 도려내고 싶구려….”
그의 일생을 상징하는 듯한 짧은 실소와 함께, 그는 죽었다. 그것을 확인한 회귀자는 천천히 일어섰다.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안심해. 어차피 다음 회차에는 다시 살아날 테니까.”
미안하게도, 그의 최후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회귀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되돌아가면, 그때는 지금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회귀자는 담담히 몸을 일으켰다.
“…인류의 위대한 비원, 그분, 짐승의 왕…. 그놈들 계획은, 거기부터 시작되었던 거야? 참, 뿌리를 아무리 들추어도 끝나지를 않네.”
어쨌건 중요한 단서가 무저갱 속에 잠들어있다는 건 확실하다. 이번 회차는 이미 늦었으니, 이 기억이 남아있을 때 당장 회귀를 할까, 아니면 조금 더 조사해볼까.
고민하던 회귀자는 천앵을 꺼내 들었다.
“이왕 회귀할 거면, 스스로 죽는 것보다는 못 다한 깽판을 치고 죽는 게 낫겠지. 좋아, 이번 회차는 버리자.”
그때, 그 회차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회상이 끝났다.
회귀자는 바로 이전 회차의 기억을 되살리고는 불사자를 빤히 보았다.
‘첫 번째 눈을 떴을 때. 분명 교관이 자신을 깨우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고 했어. 그게 이 시점임을 확신하려면…. 분명, 여자가 둘이라고 했지. 매력적이라고도 했고.’
회귀자의 상념이 길어지자 불사자가 재촉했다.
“거, 할 말이라는 게 뭐기에 그리 짱구를 굴리고 있는 건가, 소년? 할 말이 있으면 빨리 하도록. 사내놈 말은 오래 기다리고 싶지 않으니.”
“아, 알았어. 질문할게.”
생각을 끝마친 회귀자는,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불사자를 향해 물었다.
“이곳에. 여자가 몇 명인 걸로 보여?”
아주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다. 회귀자는 이 시점이 그가 처음 눈을 뜬 시점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 과거의 증언과 현재의 증언을 비교해 볼 생각이었다. 만일 이번에도 여자가 둘이라고 말하면 과거 불사자가 말한 때가 바로 지금인 것이다….
‘셰이? 그게 무슨 질문이냐? 도대체 어떠한 의도로 그런 의문을?’
아니. 잠깐만. 흡혈귀의 생각 덕분에 이성을 되찾았다.
이거, 독심술 없이는 뭔가 대화의 흐름이 이상하지 않냐?
기묘한 질문을 받은 불사자는 일단 묻는 대로 여자의 수를 셌다. 앞에 앉은 흡혈귀 하나, 그리고 저 뒤에 배를 깔고 앉아있는 아지까지 둘.
회귀자는 왜 안 세는 거지? 아, 남장 중이지. 셈을 끝마친 불사자는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이며 대꾸했다.
“하나, 둘. 둘이지 않나? 바보가 아닌 이상 여자의 숫자는 딱 보면 당연히 알 터인데.”
“두 여자가 다 매력적이야? 다른 사람은 아니고?”
“당연하지. 애초에, 세상에 매력적이지 않은 여자는 없소. 모두 각기 다른 자기만의 매력을 품고 있을 뿐. 남자야 뭐, 내 신경 쓸 일 아니고…. 그런데 그건 왜?”
불사자조차 그 질문의 저의를 의심했다.
당연한 의심이다. 대화의 흐름이 미묘하게, 아니, 대놓고 엇나가 있다. 그야 회귀자에게는 이전 회차에서 이어진 정보가 있어서 그리 말한 거지만, 가만히 보는 사람들은 대화의 간극을 잠시 따라가지 못한 채 그 안을 자기 상상력 안으로 채웠다.
특히 흡혈귀가 그랬다. 양손을 모아 입을 가린 채, 회귀자와 불사자를 보고는 탄식했다.
‘어째서? 어째서 저놈에게 여자의 수나 매력을 묻는 것이냐? 도대체 무엇이 궁금하기에? 설마 저 토인의 취향이 궁금하더냐?’
대단하게도, 불사자는 이 묘한 분위기 속에서 무언가를 잡아챘다. 그는 혹시나 하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잠깐. 선생. 혹 저 소년이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게…. 그런 관심이오?”
“와. 그건 또 기억하네요. 선택적 기억력 무엇?”
에라, 모르겠다.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긍정해주었다.
“맞습니다. 셰이 교육생은 어느 날 큰 목소리로 나는 남자가 좋다며 외친 경력이 있습니다.”
“뭐? 그게 여기서 왜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거든?”
반사적으로 내 말에 반박하고 나서려던 회귀자는, 그제야 자신을 둘러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눈치챘다. 흡혈귀는 심장에 대한 일도 잠시 잊고 손으로 자기 입을 막고 있었으며, 나 역시도 흡혈귀의 생각에 공감하여 고개를 끄덕였고.
무엇보다, 불사자는 턱을 쓰다듬으며 진지하게 회귀자의 외모를 품평하고 있었다.
응? 야, 너는 왜 진지하게 품평하는 중이냐.
“흠! 본디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이몸이나!”
-나? 어미가 이상한데. 그건 앞 주장과 상반된 의견이 나올 것을 내포하잖아?
설마, 내가 읽은 그 생각대로 아니지?
“저 정도로 곱상한 얼굴이라면 어찌저찌 가능할지도 모르겠소!”
미친놈인가.
“미친놈아!”
회귀자가 냅다 소리쳤다.
아. 마음이 통했다. 드디어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회귀자가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아니야! 전혀 아니야! 너 따위에게, 전혀 관심이 있지 않으니까!”
“앙칼진 건 웬만한 소녀 저리가라로군. 아무래도 성별을 잘못 태어난 듯 싶어.”
“아니… 라고…. 했지…!”
앗. 큰일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회귀자가 폭발하겠다. 회귀자가 이성을 잃고 칼을 휘두르면 불사자는 몰라도 나는 분명 죽는다.
그리고 나 역시 불사자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나도 불사자를 향해 호통쳤다.
“무슨 말이에요? 라쉬 교육생! 분명 셰이 교육생은 신경질적이고 비위를 맞추기도 힘들며 난폭한 데다 남자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당신도 그러면 안 되죠! 남자 따위는 관심이 없다면서요?”
“허허. 선생. 수놈이고 암놈이고 상관없이 맛만 좋으면 그만 아니겠소?”
“응? 뭐래.”
“오히려 다행이지. 나는 불사자. 부족회의에서 허가를 받지 않고는 아이를 만들 수 없소. 혼혈을 만드는 건 더더욱 금기시되었지. 그 탓에 애석하게도, 나는 수많은 여자의 구애를 거절하며 독수공방으로 살아왔소. 차라리 남자가 나을지도 모르지…. 오, 이건 또 새로운 시각이로군! 나는 세기의 대발견을 한 게 틀림없소!”
안 되겠다. 벌써 회귀자가 검에 손을 올렸다. 그 전에 이 불사자를 어떻게 해야 한다.
나는 문득 손에 든 꼬챙이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불사자를 보았다.
불사자의 가슴팍은 여전히 열려있었다.
흠.
“라쉬 교육생. 잠깐만요.”
“음? 무슨 일이오, 선생?”
나는 손안에 꼬챙이를 숨긴 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그는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허어. 남자에게 인기가 많아도 곤란하거늘.”
뭐?
갑작스럽게 불쾌해졌다. 회귀자에게는 어떤 오해를 해도 알 바는 아니었지만, 나한테까지 그 지랄은 용서할 수 없지. 지랄은 거기까지다. 나는 그의 가슴 속으로 꼬챙이를 깊숙이 찔러넣었다.
불사자는 몸 안까지 쑥 들어온 꼬챙이를 보고는 의아해했다.
“응? 선생? 이건 뭐.”
“볼트.”
“크허어어억!”
그리고 전기충격. 심장에 다이렉트로 꽂아버린 전격이 전신으로 퍼졌다. 불사자의 전신이 파들파들 떨렸다.
“내가… 당하는… 입장이… 될 줄이야….”
거구가 경련하며 허물어진다. 불사자는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씨익 웃어보이며 최후의 한 마디를 남겼다.
“이것도… 나름 독특한 맛이구려.”
미친놈.
마지막까지 그는 강아지소리를 지껄이며 눈을 감았다. 곧 그의 의식이 완전히 끊기고, 오른팔이 툭하고 떨어졌다.
휴. 간신히 정리했다.
“자아. 잠시 소란이 있었어요.”
씩씩거리던 회귀자는 반쯤 꺼냈던 천앵을 다시 돌려놓고는, 기절한 불사자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거, 절대 다시 깨우지 마. 별 괴상한 오해나 해대선. 으으. 이래선 내가 아가르타의 가면을 쓴 의미가….”
아니, 그런데 너무 책임을 불사자에게 미루는 거 아니야? 꼭 자기 문제는 없는 것처럼.
“그런데 솔직히 거의 다 셰이 교육생 업보인 거 알죠?”
“뭐가!”
“뭐긴. 자기가 오해할만한 언동을 다 하고 다녔잖아요. 잘 모르겠으면 티르칸쟈카 교육생을 좀 보세요.”
회귀자가 흡혈귀를 쳐다 본 순간, 흡혈귀가 고개를 휙 돌리며 회귀자의 시선을 피했다. 땀도 안 나는 흡혈귀가 손부채질까지 하고 있었다.
무슨 오해를 하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은 회귀자는 양손을 내밀며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아니, 오해야. 티르칸쟈카.”
“괜찮다. 나는 다 이해한단다….”
“전혀 이해한 얼굴이 아니잖아!”
“그, 그렇지만 나에게는 조금 이른 것 같구나. 세상은 정녕 나조차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는 말인가…. 그, 가능하면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해다오.”
“그러니까 오해래도!”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혹시 라쉬 교육생의 몸만 필요했던 거라면 말하세요. 원하는 부위를 빌려드릴 테니까. 그도 그리 싫어하지는 않을 겁니다….”
격분한 회귀자가 다시 천앵을 붙잡기 직전. 나는 다급히 손뼉을 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여러분. 군국이 어떻게 전기충격으로 심장 소생 현상을 발견했는지 아시겠죠? 다 전기 고문, 아니, 전기와 함께하는 사이좋은 심문 과정에서 충격을 받은 용의자의 심정지가 선행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다시 전격을 가해줬더니 심장이 멈춘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교훈. 남한테 함부로 심장을 보이지 맙시다. 이상!”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냉큼 문을 열고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