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50화 (50/384)

EP.50 긴급상황

『긴급상황입니다. 속히 기상하십시오.』

그것은 기습처럼 찾아왔다.

야음을 틈타 다가온 그것은 어찌나 은밀했는지 발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호흡도, 체온도, 심지어 생명마저도 없는 그것은 눈치채고 보니 벌써 나의 곁에 도달해 있었다.

『긴급상황입니다. 속히 기상…. 3회 시도, 실패. 귀납적인 논리에 따라 이 이상 반복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거라고 판단합니다.』

잠든 나의 곁으로 무언가가 다가와 재잘거렸다. 작은 크기만큼 희미한 목소리. 잠들었을 때 몰래 왔다 간다는 요정일까.

하지만 이 요정은 하늘을 날지 못하는 모양이다. 고작 무릎 높이밖에 안 되는 침대에 올라오지 못하고, 아래쪽에서 깡충깡충 이쪽을 넘보는 것을 보면.

나는 희미하게 느껴지는 기척을 무시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이빨 요정이 아니라 산타 할아버지가 와도 나의 잠을 방해하지 못한다. 볼 일이 있다면 내가 자는 사이에 빨리 해결하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긴급 시 대처 매뉴얼에 의거, 강제 기상 프로토콜을 발동하겠습니다.』

흡, 하고 바람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리고.

『왜애애애애애애애앵!』

“끼이아아아아아아아악!”

귓가를 뒤흔드는 굉음에 나는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어슴푸레 반짝이는 수정구가 나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골렘?”

『군국 통신병 에이비 대위입니다. 긴급한 상황이 있어 부득이….』

“감히 나의 잠을 깨우다니. 오늘 그 오래된 연식에 종지부를 지어주지. 폐기처리장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셰이 교육생! 여기 골렘이 탈출…!”

그러자 골렘이 온 힘을 다해 내 정강이를 깠다. 눈높이 한참 아래쪽에서 벌어진 공격. 골렘의 생각을 읽지 못했던 나는 피하지도, 저항하지도 못했다.

심지어 골렘의 재질은 강철. 강도는 내 몸뚱아리의 몇 배. 거기다 정강이와 다른 물체의 충돌 승부는 오직 강도와 경도로만 승패가 나뉘는 정직한 전투.

나는 격심한 고통에 눈을 부릅떴다.

“끄, 끄극.”

입을 크게 벌리고는 정강이를 부여잡으며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찔끔 흐른다. 분노와 원망, 그리고 고통으로 범벅된 눈으로 골렘을 노려보았다. 골렘도 삐걱이는 팔로 비틀린 다리 프레임을 끼워 맞추며 나를 보았다.

『시간이 없습니다. 경고합니다. 즉각 대응하십시오.』

“끄윽, 뭘요. 도대체 뭔데 이 밤중에 사람을 깨우고 난리입니까?”

『침입자입니다. 누군가 침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뭐? 침입자?”

골렘의 말을 잠시 곱씹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지금 이 탄탈로스에 침입을 하고 있다 이거지? 그리고 골렘은 이걸 감지하고는 나보고 막으라는 거고.

거처에 쳐들어온 침입자. 평범한 상황이라면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응당 찾아와야 할 긴장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아픈 다리를 부여잡으며 나는 다시 침대 위에 누웠다.

“혹시 조난자랑 착각한 거 아니에요? 누가 발을 헛디뎌 떨어진 모양인데?”

탄탈로스에 침입? 그건 하늘에서 헤엄치거나 물속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거랑 다를 바가 없다. 주어랑 서술어가 매칭되지 않는 조합인 것이다.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갈 수 없는 이곳에, 뭐 훔쳐 갈 것도 없는 장소에 왜 침입한다는 말인가.

“뭐, 또 레지스탕스라거나 그런 건 아니죠? 또 레지스탕스가 쳐들어온 거면 군국이 무능한 거야. 진짜로.”

물론 폭탄을 들고 있다면 예외다. 폭탄과 함께라면 인간이 하늘을 유영할 수도, 물속에서 고기가 익을 수도 있으니.

폭탄은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것 대부분을 해결해준다. 그러니 무언가 막히는 일이 있을 때, 곁에 폭탄이 있으면 사용해보도록 하자.

『상대의 의도를 알 수는 없습니다. 그는 맨몸이니까요. 다만, 의도를 알 수 없는 만큼 더욱 한시가 시급합니다.』

“맨몸? 흠. 지금 야간등 켜진 걸 보면 바깥도 밤이겠고. 에이, 뭐야. 어떤 유명한 철학자의 고사처럼, 하늘의 별을 올려보다가 발밑을 살피지 못하고 빠진 모양이네요. 같이 명복이나 빌어주죠.”

『…고작 떨어지는 것 가지고는 이곳에 침입할 수 없습니다. 그는 분명, 이곳에 들어올 의지를 가지고 무저갱 안으로 몸을 던진 겁니다.』

“아니, 글쎄. 그게 말이 안 된다니까. 도대체 누가 볼일이 있어서 여기 들어와? 거, 들어오면 밥이나 먹이고 있을 테니까 데리러 오던가요.”

대수롭지 않다는 나의 태도에 골렘은 말을 멈추고는 찬찬히 나를 보기 시작했다. 나 역시 눈을 가늘게 뜨며 골렘을 캐물었다.

잠시간 이루어진 눈싸움. 승자는 나였다.

『…이러한 협상에 능하시군요. 해당하는 정보를 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응? 뭘요?”

『허가합니다. 귀하의 경계 레벨을 한 단계 올리는 것으로, 귀하의 정보 열람 권한을 일시 상승시키겠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뭘.”

뭘 멋대로 경계 레벨까지 상승시키고 있어? 도대체 무슨 말이야? 나는 그냥 일어나기 귀찮았을 뿐이라고.

『탄탈로스는 무저갱입니다. 지상과는 완전히 분리된 땅. 이곳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방법?”

『낙하입니다. 평범한 낙하로는 무저갱의 미아가 될 뿐, 이 탄탈로스의 좌표를 특정할 수 없습니다.』

“낙하가 언제부터 일반적이고 평범한 이동수단이 된 겁니까? 역사적으로 추락은 쉽고 빠른 천국행 편도티켓이었는데요?”

내가 아는 상식과는 좀 다르구나. 역시 군국. 상식조차 악용하는 미친 나라.

어, 잠깐.

“하지만 나는 평범하게 구속된 채로 무저갱에 내던져졌는데…? 아아, 알겠다. ‘그게’ 평범하지 않았던 거구나?”

『…이해하셨으면,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다급하게 내 말을 끊은 골렘은 이어 보고했다.

『본디 탄탈로스는 군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사람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장소입니다. 그렇기에 레벨 5의 시설임에도 감옥 입구에도 별다른 보안장치를 해두지 않았습니다.』

“거, 군국이 잘못했구만. 주요 시설이라면서 그리 안일해서야. 쯧쯧.”

『…어쨌건.』

방금 빠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골렘 회로가 끊어진 게 아니면 좋겠다.

『본관은 탄탈로스 내외부를 감시하는 도중, 무저갱을 망라하는 환술이 깨졌다는 사실을 약 7분 전에 포착했습니다. 그 즉시 현 가용할 수 있는 유일한 인원인 귀하를 찾아온 겁니다. 침입자는 곧장 이곳으로 향하고 있으며, 약 3분 뒤에 도착할 거라 예상됩니다.』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죠?”

『가능하다면, 배제를.』

“아니, 이 사람들 자꾸 막 왜 죽이려고 그래. 하루라도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좀이 쑤셔요?”

불사자도 그렇고 이번에 떨어지는 사람도 그렇고 뭐 일만 있으면 죽이라고 하네. 적극적인 부정의 뜻을 담아 손을 내저었다.

“저처럼 개 한 마리 못 잡는 선량한 시민이 누구를 죽여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세요.”

『의문. 그렇다면, 레지스탕스는 어떻게 처리하신 겁니까?』

“칼날은 가만히 있었는데 자기들이 목을 들이밀더라고요. 셰이 교육생이랑 싸우려고 들고, 티르칸쟈카 교육생 앞에서 로자리오를 자랑하고. 한번 꼰 고품격 자살이죠? 뭐, 애초에 살아갈 생각이 있었다면 폭탄 들고 여기 떨어지지는 않았겠지만.”

어쨌건, 누가 찾아왔다면 마중을 나가야 한다. 상대가 어떤 의도로 이곳을 찾아왔는지 미리 읽어놓고, 이용할 수 있을지 없을지 가늠해놔야 편하기 때문이다. 정 못 쓸 거 같으면 회귀자랑 흡혈귀 이용해서 죽여버려야 하고.

어차피 나갈 거, 그 와중에 골렘에게 한 줄 이야기 듣는 것도 소소한 이득. 나는 의복패킷을 착용하고는 나갈 채비를 했다.

“자자. 일단 가볼게요. 기다리고 있어봐요.”

그러자 골렘이 다급히 내 바짓자락을 붙들었다.

『본 기체를 대동하여 주십시오. 본관은 탄탈로스의 이상사태를 관찰할 의무가 있습니다.』

“무거워서 싫은데.”

『귀하는 탄탈로스에 배속된 노역자이며, 해당 소재지의 주무관인 본관의 지시에 따를 의무가 있습니다. 명령불이행으로 불이익을 받고 싶지 않다면 본관의 지시를 이행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딱딱하게 말하면 제가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아, 마음 아파서 골렘 들어 올릴 힘도 없다.”

내가 연극 투로 엄살을 부리자, 골렘은 더 이상 협박이 듣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말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미리 경고합니다만, 공무중인 군인에게 무언가 물질적인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중범죄입니다.』

“골렘에게 뭐 받아낼 생각은 없고. 거, 애교 좀 부려보세요. 귀엽게. 가능하면 아이처럼 유치하고 혀짧은 소리를 내줬으면 하는데.”

『……시간이…….』

“시간 없으니까 서둘러야 안 늦겠네. 자아, 어떻게 데려다 달라고요? 목말? 어부바?”

『….』

골렘에게서 으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프레임 어디가 부서진 게 아닐까 걱정된다. 나는 여유롭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휘휘, 세 번 정도 불었을까. 골렘에게서 이를 악문 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부바…를…. 부탁드립니다.』

“에이. 끝말도 조금 딱딱하다. 골렘 몸은 딱딱해도 마음은 부드러워야죠.”

딱, 하고 마이크 너머에서 수수깡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어라 형용하지 못할 잡음이 들린 뒤, 마이크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부, 바… 해줘요…. 오빠….』

“오빠라고 부르는 건 시킨 적 없는데. 그래도 말을 부드럽게 하니까 한결 편하네요. 서로 화목하니 얼마나 좋아.”

어쨌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여동생의 부탁이니 들어줘야지.

나는 골렘을 들어 목말을 태웠다. 어부바를 해달라고는 했지만, 그랬다간 시야가 가려질까 봐 걱정한 내 나름의 소소한 배려였다.

골렘의 양다리를 내 어깨에 늘인 채 복도를 내디뎠다.

“아, 참고로 군국의 지시는 이행한 겁니다? 내가 뇌물을 건넨 것도 아니고, 이거 가지고 불이익주면 당신이야말로 개인적인 감정을 평가에 반영한 거야. 설마 군국 통신병이 사적감정으로 위증하지는 않겠지?”

『---!!!』

“고장 났나? 뭔가 통신에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요. 왜 사람 소리가 안 들리지.”

휘적휘적. 나는 골렘에게 스릴을 알려주려고 일부러 상체를 크게 흔들며 걸었다. 그러자 골렘이 딱딱한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뜯었다. 모근에서 투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케이. 약점을 잡혔구만. 이건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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