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0 바른 생활
회귀자에게서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진다. 진정해라, 좀. 그냥 시뮬레이션이라니까.
그러나 저러나, 아지는 아무런 위기감도 느끼지 못하고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멍? 놀아줄 거야? 공놀이! 놀자!”
앗, 안 돼. 그건 결국 내가 힘을 쓰는 거잖아. 나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아니아니. 나는 착하고 힘없고 선량한 꼭두저씨란다. 너는 참 귀엽구나?”
“멍! 고마워! 너는, 음, 맛없어 보여!”
“맛있는 게 좋니?”
“응! 나, 맛있는 거 좋아!”
“그래? 귀여운 아이에겐 사탕을 줘야지. 아저씨가 사탕 줄까?”
“사탕? 멍? 먹을 거야?”
“그러엄. 먹는 거야. 상쾌한 향기가 풍기며 과일 맛이 나고, 먹으면 먹을수록 달콤해지는 마법의 구슬이지. 혀로 핥을 때마다 새로이 덧칠되는 황홀한 감각이 네 입을 가득 채울 거야.”
아지의 침샘에서 침이 터졌다. 단지 상상한 것만으로도 신이 난 아지가 그 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며 외쳤다.
“멍! 먹을래! 먹을래!”
“자, 그러면 아저씨랑 저기,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으슥한 곳으로 갈까? 따라오면 사탕 줄게.”
“멍! 가자!”
“크헬헬헬. 따라오렴. 아저씨가 기분 좋은 것을 알려줄게….”
“멍멍! 좋은 거! 좋아!”
내가 꼭두저씨를 움직이자 아지는 신이 나서 꼭두저씨 주위를 빙글빙글 보며 따라왔다. 의심 하나 없이, 꼭두저씨가 어디를 가든 함께 갈 기세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회귀자가 천앵을 움켜쥐었다.
“천검기, 각풍.”
바람이 불었다. 얇게 응축된 바람이 칼날처럼 꼭두저씨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회귀자의 생각을 읽고 다급히 손을 움직였지만 줄에 매달려있던 꼭두저씨는 한 박자 느릴 수밖에 없었다.
검기가 골렘을 강타하고, 아지를 데려가려던 꼭두저씨는 회귀자의 잔인한 손속에 관절 마디마디가 부러져서 산산이 흩어졌다. 가닥가닥 끊어진 팔다리가 실에 매달려 애처롭게 흔들렸다.
“아앗! 꼭두저씨이이이!”
“머멍! 사탕!”
부러진 골렘이랑 실을 묶어서 간신히 만든 마리오네트가! 저걸 한 땀 한 땀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사탕….”
아지는 세상을 잃은 얼굴로 꼭두저씨를 내려다 보았다.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톡톡 건드리는 모습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나는 흉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무슨 짓입니까!”
기물파손에 공무집행방해라는 죄를 저지르고도 회귀자는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뭐하긴. 사탕으로 아이를 꾀어내려는 범죄자를 처단했지.”
“과몰입하지 마세요! 이건 단순한 시뮬레이션이지 않습니까! 저는 어디까지나 아지를 반면교사로 삼으려고 했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적당히 기분 나쁘게 하던가! 그딴 웃음을 지으면 절로 손이 나갈 수밖에 없잖아!”
“꼭두저씨의 웃음이 어때서요? 이토록 선량한 웃음이 또 어딨다고!”
격분한 나는 꼭두저씨를 내던지며 소리쳤다.
“꼭두저씨는 단순하게 어릴 적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나머지,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낙으로 살아가는 착한 심성의 소유자였다는 말입니다! 아지에게 사탕을 준 것도 딸이 생각나서 무의식적으로 행한 행동이었다고요!”
“시뮬레이션이라며! 시뮬레이션에 이상한 설정을 넣지 마!”
”이 살인마! 자식에 이어서 아버지까지 보내버리다니, 피도 눈물도 없구나! 정녕 흡혈귀가 네 피를 다 빨아가 버린 거냐!”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흡혈귀가 작게 한 마디 덧붙였다.
“나는 셰이의 피를 마신 적 없다. 수련 도중 흘린 것을 조금 취한 적은 있어도.”
“그러면 이 난폭함은 태생인가! 고작 시뮬레이션도 용납 못하는 야만성! 볼 필요도 없습니다!”
분필을 치켜든 나는 칠판에 셰이라는 이름을 쓰고는, 크게 X표를 쳤다. 사유에는 넘치는 야만성과 과격성, 부족한 인내심이라고 써 내려갔다.
“너….”
“어? 화났어요? 혹시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겠나요? 법이 지엄하고 도덕이 여전한데도 폭력을 행사하고 싶어지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불합격입니다!”
양방치기를 걸어버린 뒤 산산이 부서진 꼭두각시를 대충 치웠다. 아직 사탕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아지에게 꼭두저씨의 갈비뼈 하나를 던져주었다.
그 뒤, 나는 몸을 돌려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와는 반대로, 상대에게 나쁜 뜻이 없더라도 이런 일이 있으면 뒤따라가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독심술사가 아니니까 상대방의 의도를 알 수 없잖아요? 혹여나 뒤를 따라갔다가 신체의 위협이 있을 수 있으니, 절대 이러한 요청에 응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셰이 교육생처럼 냅다 베어버리는 건 좀 그렇지만요.”
콰직.
말하는 도중 저쪽에서 철골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아지가 꼭두저씨의 강철 철골을 앙 깨문 것이다. 가볍게 물었는데 왜 콰직 소리가 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지 쪽을 보니, 마침 아지는 깨닫고는 실망한 얼굴로 우그러진 철골을 뱉고 있었다.
나는 다시 몸을 돌렸다.
“물론, 강철도 씹어먹을 피지컬이 있다면 따라가도 무방합니다. 제가 아지에게 뭐라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죠.”
회귀자는 팔짱을 끼고 불량스럽게 앉았다.
‘이제 바보 같은 꼭두각시도 망가졌으니 대강 끝내겠지?’
어림도 없지. 곧장 복도로 나와 챙겨온 준비물을 들고 다시 들어갔다. 저번에 회귀자가 부수어버린 군장, 그 골격을 가지고 만든 마네킹이었다.
얼굴 대신 자리한 바이저에는 내가 그린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선으로 된 눈과 두꺼운 입술을 가진 마네킹을 탕탕 두들기며 말했다.
“어쨌든 꼭두저씨를 못 쓰게 되었으니, 이럴 때를 대비해서 가져온 마네킹 마네 씨를 쓰죠. 마네 씨는 양 볼의 보조개가 매력적인 청년입니다.”
‘진짜 또라이인가….’
“자, 이번에는 셰이 교육생이 해보겠습니다! 과연 마네 씨는 셰이 교육생을 상대로 오른팔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누구를 진짜 정신병자로 아나! 그래, 보여줄게!’
회귀자가 씩씩거리며 내 앞까지 걸어왔다. 긍정적인 자세다.
나는 마네킹의 손을 흔들어 회귀자를 반겨주었다.
“좋은 기운을 가지고 계시네요. 도를 아십니까?”
“도? 무슨 헛소리야?”
“이런, 헛소리라니! 도를 정녕 모르신다는 말입니까!”
‘더 지껄여 봐.’
회귀자가 팔짱을 끼고 마네킹 너머의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싸구려 인형극처럼 과장되게 마네킹의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만물에는 각각의 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기도 하며, 이르러야 할 지향점을 가리키는 표지이기도 합니다. 비단 인간만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천지인(天地人)이 조화를 이룬다 하였습니다. 어머니 대지모신께서는 인간에게 한없이 자비로워, 제 살을 깎아 온갖 선물을 안겨주시죠. 우리는 대지모신의 젖을 마시고 과실을 취하며, 그분의 살을 깎아 온갖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번영으로 이끌었죠. 다만 아버지 천신께서는 감히 신을 넘본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며, 비와 바람, 홍수와 번개로 그러한 것들을 거두어 가십니다.”
본래 말이 길어지면 청자의 집중력은 약해지기 마련. 그런데 회귀자는 갑자기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야, 대충 아무거나 주워 붙인 말인데 왜 이리 집중하고 그러냐.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거지? 혹시 말 속에 뭐 숨겨둔 뜻이라도 있나? 혹시 모르니 일단 들어나 보자.’
얘도 묘하게 나사가 풀려있다. 조금 전까지는 뭐라 했으면서 지금은 일단 들어나 봐?
변덕스러운 게 여름철 날씨보다 더하다. 독심술사인 나조차도 감히 예측할 수가 없어.
내심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어머니를 우습게 여기고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할 수 있지요. 이것이 천지인의 도. 하늘과 땅. 그 사이에 낀 인간의 길입니다.”
“그런데?”
“열린 귀를 가진 이여, 물처럼 모든 것을 녹여내는 이여. 제가 당신을 만난 것이야말로 하늘의 뜻일 겁니다. 하나 이 세상에는 거짓과 기만이 가득하고, 서로가 서로를 먹잇감으로 보니, 당신을 시험하지 않고는 신뢰하지 못하는 저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일단 신뢰를 위해 금화 한 장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회귀자가 포켓에서 연금화 한 장을 꺼내고는 흔쾌히 건넸다. 나는 그걸 마네킹의 오른손을 움직여 잡아채고는, 곧장 마네킹의 몸을 뒤집었다.
“큭큭! 멍청이! 그딴 번지르르한 말에 속다니! 이 금화는 내가 잘 쓰도록 하지! 이건 인생 수업료라고 생각해라!”
뒤뚱뒤뚱 멀어지는 강철 마네킹.
회귀자가 천앵을 무미건조하게 휘둘렀다. 그 순간, 다섯 걸음 정도 떨어져 있는 마네킹의 팔 부분이 뎅강 잘리며 금화가 흘러나왔다. 나는 다급히 떨어지는 금화를 잡아챈 다음 회귀자를 나무랐다.
“아니, 셰이 교육생. 다짜고짜 팔을 자르면 어떡합니까.”
“뭐 어때. 가짜인데.”
“요즘 들어 셰이 교육생은 진짜 사람이었어도 그냥 팔을 베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요. 그리고 왜 하필 오른팔입니까? 전생에 오른팔한테 원수졌어요?”
“됐고. 손 원위치. 금화 돌려놔.”
“쳇.”
슬쩍 금화를 주머니에 넣으려다가 제지당한 뒤, 어쩔 수 없이 회귀자에게 금화를 반납했다. 내 심장을 떼어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회귀자가 금화를 포켓에 집어넣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뭐, 말은 이렇게 했지만 셰이 교육생의 대처가 틀린 건 아닙니다. 팔을 자르는 대응은 좀 심하지만요.”
“모형이라 자른 거지, 실제였으면 안 자르지.”
“저건 하늘이 알고 땅도 아는 거짓말이고요. 반박하고 싶으면 잘릴 뻔한 저와 잘렸던 핀레이 앞에서 말하세요.”
실증적인 증거로 반박한 뒤, 흡혈귀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쨌건, 꼭두저씨의 경우처럼 선의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고, 마네 씨처럼 등쳐먹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짜 선의와 선의로 자신을 포장한 사기꾼은 교묘하게 섞여서 다가오니 사람들은 언제나 이 둘을 구별하기 어려워했죠.”
“그래. 경험이 부족한 이들은 언제나 타인을 두려워하기 마련이지.”
흡혈귀의 여유로운 대답. 그 아래 깔린 우월감을 읽은 나는, 말을 하다 말고 차게 식은 눈으로 흡혈귀를 보았다.
“그 말은, 티르칸쟈카 교육생이라면 경험이 충분하니까 선의와 선의로 포장한 악의를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이죠?”
“전부는 아니겠지만, 충분히.”
“…네?”
“오랜 세월을 보내며 수많은 사람을 보아왔고, 그보다 더한 경험을 해왔다. 사람 보는 눈마저 없으면 그 경험은 다 어디로 갔겠느냐.”
아니, 잠깐만. 자기 평가가 이상한데.
내 침묵을 긍정으로 해석한 흡혈귀는 조금 으스대며 말했다.
“꼭두각시는 동행을 요구했고, 마네킹은 금품을 요구했다. 의도를 모른다 하여도, 만일 상대가 악인이라면 나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가려 할 터. 그 요지를 파악한다면,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가끔은 메신저가 메시지의 신뢰성을 깎아먹기도 한다.
아무래 생각해도 흡혈귀는 운 좋은 호구에 불과한데, 이런 자기 평가라니? 오늘 내가 이 수업을 누구 때문에 했는데?
안 되겠다.
“그러면 한 번 시험해보시겠어요?”
“시험이라. 내가 누군가에게 시험받을 위치는 아니나, 궁금하구나. 어떻게 시험하겠다는 말이냐?”
“아까 아지나 셰이 교육생이 하던 걸 이어 할게요. 어디, 잘 대처하나 봅시다.”
“이제 인형도 없어 보이는데 뭐로 할 셈이냐?”
“제가 가장 잘 다루는 인형이 하나 남았거든요. 조종하는 데 실도 필요하지 않은.”
나는 천천히 흡혈귀 앞으로 걸어갔다. 흡혈귀는 내가 무슨 짓을 하나 궁금해하며 그저 빤히 보고만 있었다. 자연스럽게 흡혈귀 곁에 접근한 나는, 고개를 숙이며 양산 끝을 살짝 잡고 올렸다. 양산 아래로 새하얀 피부와 대비되는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순수한 경의를 담아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이럴 수가. 신이시여.”
흡혈귀는 면전에서 신을 찾는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불쾌한 생각이 몸을 휘돌기 직전, 나는 곧장 흡혈귀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세상에 보석이 드문 이유를 오늘 당신을 보고야 알았습니다. 신이 당신이라는 인형을 만드는데 다 써버렸으니 남은 것이 없을 수밖에요.”
“…무어?”
“피부는 백옥으로 빚었고 머리카락은 전부 백금으로 짜냈으니, 세상의 흰 보석을 전부 모은 것만 같습니다. 아아,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황홀함이여. 그러나 빛에 홀려 스스로 불꽃에 들어가는 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존재의 본성일까요. 감히 청하건대, 그대의 곁에서 미의 잔향을 맡는 것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회귀자의 입이 떡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