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65화 (65/384)

EP.65 꼭두각시 시조와 불쾌한 인형극 - 2

글쎄. 내가 어떻게 할 거냐고?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아니, 설명하기 이전에. 이 참담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모르겠다.

나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저는 분명히 경고했어요, 티르칸쟈카. 낯선 이가 달콤한 말을 하고 다가올 때,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가려는 것일지도 모르니 주의하라고.”

가르치고, 보여주고, 연기하고, 한껏 놀리기까지 했는데. 씨알도 먹히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으면 핀레이에게 심장을 보여주었을 리 없으니.

“자기 심장을 함부로 내주지 말라고, 마법으로는 절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강조했어요. 그런데 이 꼴이라니.”

혼잣말을 반복하는 나에게 의문에 가득 찬 목소리가 향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이래서 교육자를 자처하면 안 된다니까요. 하아. 힘이 빠지네요. 내가 지금껏 무엇을 위해 고생했는데, 교육생이 이렇게 멋대로 엇나가 버리면 제 노력은 뭐가 될까요?”

“누가 들으면 제대로 된 교육자인 줄 알겠어. 그래서 도대체 뭔데?”

무례하게 일축하고는 연달아 캐묻는 회귀자.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핀레이로부터 읽어낸 사실을 담담히 전했다.

“티르칸쟈카 교육생이, 호문클루스의 딜레마에 빠졌네요.”

호문클루스의 딜레마에 빠졌다.

그 문구는 마법을 아는 자들에 있어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마법의 힘을 빌려 자기 자신을 바꾸려고 하다가, 한낱 호문클루스에 준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는 뜻.

즉,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가 되었다는 말과 똑같았다.

단번에 내 말을 이해한 회귀자가 경악했다.

“뭐어? 누구한테? 설마?”

“핀레이. 그가 티르칸쟈카 교육생을 지배했어요. 그 탓에 핀레이는 티르칸쟈카 교육생의 힘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고요.”

“불가능해!”

회귀자가 말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 낮은 서열의 흡혈귀는 그보다 높은 서열의 흡혈귀를 이길 수 없어. 혈조술로 피를 지배하는 능력에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으니까! 하물며 시조는? 손가락만 튕겨도 사지를 찢을 수 있을걸!”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졌는걸요. 아무래도 티르칸쟈카 교육생이 방심한 것 같아요.”

“고작 방심 따위로 좁혀질 격차가 아니란 말이야!”

“글쎄요? 저의 앞에서는 심장을 드러내고, 셰이 교육생 보고 벼락을 쏘아달라고 부탁할 정도인데요? 그 정도 방심이라면 차고 넘치지 않아요?”

실제로도 그걸 못해서 지금 지배당한 상태이고.

내 말에 흠잡을 곳을 찾지 못한 회귀자는, 한결 객관적인 시선으로 지금 상황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거면 모든 게 설명이 돼. 만일 티르칸쟈카가 정말 떠날 생각이었다면 최소한 우리에게 언질은 남겼을 테니까. 하지만, 어째서? 그깟 잔챙이에게…?”

혼란스러운 얼굴로 고민하던 회귀자는 어제 일을 차근차근 떠올렸다.

제멋대로 뛰는 심장을 갖고 싶다고 말한 것. 자신에게 벼락을 내려달라 부탁했던 것. 그리고 호문클루스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물어보라 말했던 것.

그것까지 떠올린 회귀자는 앙칼진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너, 어제 티르칸쟈카에게 호문클루스의 딜레마를 알려줬지.”

나도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네. 누군가가 부추겨서 말이죠. 알면 자기가 설명하면 될 텐데, 귀찮은 일을 자꾸 떠맡기지 뭐예요.”

“치잇.”

반박할 말이 없던 회귀자는 혀를 차고는 말을 돌렸다.

“제대로 알려준 거 맞아? 만일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 티르칸쟈카가 섣불리 그럴 생각을 했을 리 없어.”

“제대로 알려준 건 맞아요. 다만, 우리의 예상이 조금 어긋난 모양이에요.”

당연히, 호문클루스의 딜레마는 경고이다.

몸 부분부분을 해체하여 재료로 사용되는 끔찍한 몰골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마법으로 몸을 뒤바꾸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

“평범한 인간에겐 몸이 해체되어 재료로 쓰였다는 건 공포를 느낄 법한 사건이잖아요?”

하지만 흡혈귀는 몇 번 상식에 어긋난 태도를 보여왔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알지 못했다.

사람이라면 생각부터 기억까지 전부 읽어버리는 나조차, 1200년의 세월을 관통하여 살아온 흡혈귀는 완전히 읽어낼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인가. 깨닫는 게 좀 늦었다.

“그런데 과연 티르칸쟈카 교육생도 그 괴담을 듣고는 공포나 막연한 거부감을 느꼈을까요? 아니면, 그런 방법도 있겠구나, 하고 넘어갔을까요?”

왠지 어제 호문클루스의 딜레마를 알려줄 때, 그 내용을 들으면서도 별다른 감흥을 안 느끼더라고.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어쩌면 티르칸쟈카 교육생은, 그것을 금기가 아니라…. 심장이 다시 뛰게 할 하나의 방법처럼 받아들였을지도 몰라요.”

회귀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전기 충격을 받겠다며 자기 가슴을 열어젖히는 흡혈귀에게는, 전기 충격으론 부족하니 벼락을 맞겠답시고 마법을 써달라 부탁하는 흡혈귀에겐.

호문클루스의 딜레마 따위, 꺼림칙한 금기가 아니라… 그저 완곡한 거절과 다를 바 없었다.

“전혀… 알지 못했어.”

회귀자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럼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티르칸쟈카는, 핀레이에게 자기 심장을 허락한 거야?”

너 때문이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그걸 말했다고 네 책임이면 나는 뭐가 돼? 실시간으로 생각을 읽으면서도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는데.

“아니요. 셰이 교육생 탓이 아니에요.”

나는 책임이 없다. 고로, 너도 책임이 없다. 서로서로 면피하자고.

“그리고 제 탓도 아니고요. 펄떡펄떡 뛰는 자기 심장을 갖고 싶다는 티르칸쟈카 교육생의 소망이 저렇게 큰 걸 어떻게 알겠어요? 솔직히 이건 하나부터 열까지 티르칸쟈카 교육생 탓이죠. 나 참, 치매 걸린 노인네도 아니고. 위험이란 위험에는 다 머리를 들이밀고 보는 거야? 불사자만 아니었으면 진즉 죽었을 거야.”

한없이 가벼운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회귀자는 잠깐, 내 위로를 받고는 조금 감동했다. 따뜻한 위로는 그녀에게 있어서도 드물었던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마음을 놓으려던 차.

‘잠깐.’

둥글게 내려가는 눈가에 다시 힘이 들어왔다. 회귀자는 달콤한 위로를 억지로 밀어내며, 나약해지려는 마음에 날카로운 가시를 세웠다.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어?”

아하하. 예리하네.

기억을 읽었거든.

어제 핀레이가 했던 거짓말부터, 그 뻔한 거짓말을 듣고도 결국 자기 심장을 꺼내버린 흡혈귀의 모습까지. 핀레이의 그 기억을 선명하게 말이야.

하지만 그걸 알려줄 수는 없으니, 나는 검지를 입가에 갖다 대며.

“비밀이에요.”

라고, 티 없이 맑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러자 회귀자의 시선이 한층 어두워졌다. 그녀는 적을 만난 짐승처럼 온갖 촉각을 곤두세운 채 나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말았다.

아니, 이토록 우호적인 미소를 지었는데 대체 왜? 내가 뭘 했다고.

“…좋아. 그 비밀은 넘어가고. 그러면.”

회귀자는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것 같은 모양새로 나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작정인데? 방관? 협조? 아니면, 적대?”

글쎄다.

만일 흡혈귀의 힘을 이용해서 바깥으로 탈출할 수 있다면, 나는 핀레이와 협력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전에 흡혈귀를 꼬드겨서 같이 지상으로 올라갔을 터다.

그러나 나는 그런 단순한 방식으로는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핀레이의 팔찌를 분해해서 단서를 얻었고, 골렘을 추궁한 끝에 확신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하늘을 나는 능력 이외의 다른 것이 필요하다.

이 말뜻은.

“핀레이는 탈출에 실패할 거예요. 그런 방식으로 무저갱을 탈출할 수는 없으니까요.”

불로불사인 흡혈귀인 만큼, 그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올라가다 보면, 이런 방식으로는 결코 지상에 닿지 못한다는 걸 언젠가는 알아차릴 것이다.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 다시 우리를 찾아오겠죠. 그러면 서로서로 참 머쓱하겠죠? 안녕! 잘 가! 하고 인사했는데, 사실 나가는 길을 몰라 돌아온다면. 저희나 저들이나 어색해져서, 안 그래도 무거운 무저갱의 공기가 한층 더 무거워질 거예요.”

“그래서, 결론은?”

나에게는 핀레이를 내보낼 능력이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을 말한다고 한들 핀레이는 믿지 않을 것이며, 여러 가지 수단으로 확인한 결과 믿게 되더라도 그들을 기만한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즉, 언젠가 반드시 부딪힐 운명.

내가 살기 위해서라면. 핀레이를 죽여야겠지.

“저는 태생이 활발한 편이라, 어색한 분위기는 죽여도 싫거든요. 핀레이를 잡아 죽여서라도 잡아둬야겠는데요.”

나는 씩 웃으며 회귀자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셰이 교육생, 협력합시다. 핀레이를 잡아 죽이기 위해.”

“흥. 너처럼 속내 모를 녀석이랑 협력 따위 할 것 같아?”

아니, 이렇게 호의적인 미소를 짓고 협력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왜 이리 까칠한 거야? 너 사실 고슴도치의 왕이지?

머쓱하게 내민 나의 손을 무시한 채로 회귀자는 자기 옷을 탁탁 털었다.

“우연히 같은 목표만 가졌을 뿐이야. 내 앞길만 방해하지만 말라고.”

“어쨌든 좋습니다. 든든하군요.”

“나는 하나도 안 든든해.”

‘적으로 두는 것보다는 낫지만, 완벽하게 신뢰할 수는 없어. 일단 혼자 싸운다고 생각하자.’

오. 좋은 결심이다.

왜냐면 너는 정말 혼자 싸워야 하거든. 나에겐 흡혈귀와 싸울 능력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너 혼자 이겨줘야 해. 나 혼자 남으면 큰일 난다.

홀로 싸울 각오를 다지는 회귀자를 보며 은근슬쩍 물었다.

“계획은 있습니까?”

“…후우. 숨길 이유는 없겠지.”

회귀자는 자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녀가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주자, 손가락 틈으로 배어나온 새빨간 핏물이 구슬처럼 뭉치더니 회귀자의 손가락 위를 굴러다녔다.

“혈조술은 흡혈귀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능력이야. 하지만 아무리 그의 능력이 좋다고 한들, 그는 예일링밖에 안 돼. 엘더도 아니고 아인조차 아니지. 분명 능력의 연결고리가 느슨할 거야. 그렇다면.”

툭. 회귀자가 손가락을 흔들자, 허공에서 핏물이 펑하고 터졌다. 작은 폭탄과 비견될 정도의 충격이었다.

흩날리는 핏물 사이에서 회귀자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내 혈조술로 티르칸쟈카에게 충격을 줄 거야. 나의 힘은 원초적인 혈조술. 티르칸쟈카의 힘에 속한 게 아니야. 이질적인 힘으로 자극하면 그에 반발하기 위해서라도 티르칸쟈카의 본능이 튀어나올 거야.”

머리가 좀 상했어도 회귀자는 회귀자, 대책은 확실하네. 충분히 합격점이다.

이럴 때 칭찬을 아낄 필요 없지.

“좋네요. 훌륭한 작전이에요.”

회귀자가 코웃음치며 말을 받았다.

“흥. 빈말만 내뱉지 말고, 너는 원거리 지원이나 해줘.”

“저한테는 딱히 원거리 지원수단이 없습니다만.”

회귀자가 차게 식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왜, 뭐. 원거리 지원수단만 없는 줄 아니?

사실 근거리 지원수단도 없습니다! 짜잔!

“그러면 뒤에서 마법이나 쓰던가.”

“제가 쓸 수 있는 마법이라고는 0레벨 마도가 한계인데요?”

너 저번에 내가 마법 쓰는 거 보았잖아. 그 보잘것없는 마력량도.

마침 그것을 떠올린 회귀자가 얼굴을 콱 구겼다.

“칫, 뭐야. 그냥 칼잡이였어? 아무 능력 없는 칼잡이는 티르칸쟈카와 상성이 최악이잖아!”

아니, 나는 카드쟁이인데. 칼조차 써본 적 거의 없다. 요리할 때 쓰는 식칼이 내 칼잡이 역사의 전부.

“그러면 티르칸쟈카의 사역마나 처리해 봐! 다른 건 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진짜 하나도 안 든든하잖아! 흥, 하지만 괜찮아. 나 혼자 할 수 있어. 전회차에서도 했던 일이니까!’

회귀자는 잠깐, 이전 회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과거 대전쟁에서 성황청과 맞서던 불사의 군대, 그 사령부를 습격했을 때.

그때, 회귀자는 시조 티르칸쟈카와 마주쳤다. 붉게 물든 눈으로 피의 복수를 천명하던 복수귀를.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약하고 쓸 수 있는 수단도 별로 없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야. 아니, 오히려 더하지. 티르칸쟈카를 지키고 있을 안개공국의 엘더나 아인이 없잖아? 랄리온, 그것만 어떻게 조심하면 충분히 티르칸쟈카를 깨울 수 있어.’

짧은 회상이 끝났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마친 회귀자는 각오를 굳히고는 말했다.

“준비가 필요해.”

“기막힌 우연이네요. 저도 준비가 좀 필요했어요.”

“1분 뒤, 이곳에서 만나. 핀레이를 처치하고 티르칸쟈카를 구하는 거야.”

대답도 듣지 않았다. 회귀자는 성큼성큼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저 안에서 흡혈귀를 상대할 도구를 꺼내기 위해.

흐음.

사실 나는 준비할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도 챙기는 시늉은 해야겠지?

머리를 긁적이며 위층으로 향했다. 몇 없는 장비를 챙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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