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2 타인의 심장
무언가를 해냈다면 그에 마땅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이 명제는 비단 학교나, 사회나, 나라와 같은 커다란 시스템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개체나 개인 간의 관계처럼 더욱 좁은 개념에서 보상은 더 큰 의미가 있다.
운동하고 난 뒤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해주어야 하며, 탈진한 몸에는 영양소를 공급해주어야 한다. 오랜 노동으로 피로를 느끼면 당분을 요구한다. 한쪽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반드시 긍정적인 반응으로 만족감을 주어야 한다.
그러한 보상체계가 신체를, 정신을, 인간관계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법.
따라서 나는 아지에게 보상을 주어야 했다.
딸랑딸랑.
“자아. 바비큐 파티다.”
“멍!”
아지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꼬리를 흔들었다. 꼬리 힘이 얼마나 강한지, 일어난 바람 때문에 불꽃과 연기가 다 나에게 향할 정도였다. 조금만 더 빠르게 흔들면 하늘로 날아갈 수도 있겠다.
꼬챙이로 고기를 푹 찔렀다. 저항 없이 들어가는 걸 보니 속까지 다 익은 듯하다. 부피를 키우기 위해 물에 오래 불리는 바람에 반쯤 삶은 것처럼 되기는 했지만, 어차피 내가 먹을 게 아니니 신경을 껐다.
꼬챙이로 넓적한 고기를 집어 든 뒤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아지가 잔뜩 기대하는 눈으로 자세를 낮췄다. 헤 벌어진 입가에서 침이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팔을 힘껏 당기고는, 팔을 크게 휘둘러 넓적한 고기를 저 멀리 날려보냈다.
“받아라! 특제 고기 원반!”
“멍! 머머멍! 멍!”
압도적인 풍미와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날아가는 고기 원반. 눈이 돌아간 아지가 부리나케 고기를 쫓았다. 날아가는 고깃덩이를 허공에서 낚아챈 아지는 행복하게 웃으며 고기를 뜯었다.
이게 놀이와 식사를 동시에 하는 놀이식사. 아지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훌륭한 보상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지 않지만, 나를 위해 흡혈귀와 싸워준 개라면 고기를 먹을 자격이 있지.
다음 고깃덩이를 석쇠 위에 올리며 소리쳤다.
“앞으로도 말 잘 들어야 한다!”
“멍멍! 응!”
단순하지만 충분한 보상을 받은 아지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퍼진다. 역시 개는 참 좋은 친구라니까. 혈마와 사투를 벌이고도 고깃덩이 몇 개면 행복해하니.
피식 웃던 나는 문득 무언가 잘못된 점을 깨달았다.
“이상하다. 나도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냈는데. 왜 나에게는 보상이 없을까?”
어라?
나는 분명 성과에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데, 왜 나만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지? 보상의 필요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자가 정작 남 보상을 챙겨주는 꼴이라니?
이건 뭔가 불공평해. 뭔가, 뭔가가….
“멍멍멍! 맛있어! 멍멍멍!”
어느새 고기를 다 처먹은 아지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나는 아지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아지야. 나 좀 칭찬해줘.”
“너, 착해! 고기 줘!”
“칭찬으로 밥 벌어먹을 생각 말고, 가슴으로 우러나오는 칭찬 말이야. 진심이 보이는.”
그러자 아지가 팔을 허리에 얹고는, 가슴을 쭉 펴며 외쳤다.
“너, 착해!”
“그래. 너에게 비유나 관용구, 혹은 형이상학적인 무언가를 기대한 게 잘못이지. 고맙다, 야.”
“고기 줘!”
“밥 벌어먹을 생각은 여전하구나.”
다시 고기에 꼬챙이를 꽂고 날려 보내자 아지는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곧장 달려갔다. 그래,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짐승이니 자기 몫만 챙기면 된다 이거지?
새삼 아무런 걱정이 없는 아지의 모습이 아니꼬워지려고 할 때였다.
“무언가 문제라도 있느냐?”
보상이 필요한 것은 음의 방향으로도 마찬가지이며, 우리는 그것을 벌이라고 부른다.
고작 핀레이 따위에게 지배되어 그 난리를 피운 흡혈귀는 나의 지엄한 분노에 마주했고, 벌로 일단 자기가 저지른 파괴를 수습하라는 벌을 받았다.
그 탓에 흡혈귀는 망가진 콘크리트 땅을 다지며, 처참하게 파괴된 불사자의 오른팔 살점들을 회수했다. 흡혈귀의 권능은 불사자와 닿아선 안 되었기에 흡혈귀는 오랜만에 자기 손을 움직여 하나하나 주워야 했다.
흡혈귀가 불사자의 팔, 정확히는 팔을 이루었던 살점이 가득 담긴 상자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토인의 팔은 사실 네가 파괴한 게 아니더냐?”
“어허! 손뼉이 맞부딪혀야 소리가 나지. 거기에 티르칸쟈카 교육생의 흑기사들이 없었다면 불사자의 팔이 과연 그토록 상했을까요? 그러니 책임은 양쪽에 있고, 특히 제멋대로 일을 저지른 티르칸쟈카 교육생의 책임이 크죠!”
어딜 감히 나한테 책임을 떠넘기려고. 어림도 없지. 나는 눈을 부릅뜨며 흡혈귀를 추궁했다.
그리 말하니 흡혈귀가 시선을 내리며 작게 말을 흐렸다.
“면피하려는 건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 살점을 꼬챙이로 긁어내어 사방에 흩뿌린 이 끔찍한 몰골마저 내가 저지른 일이라 하면, 그건 조금 억울하니 말이다.”
조금 찔리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으나, 세상에는 나보다 더 찔려야 할 사람이 많다. 그 앞에서 나는 한없이 당당해졌다.
“그거 조금 억울한 거 가지고 그래요? 지금 저는 얼마나 억울한지 아세요? 몸이 부서져라 일했는데 남은 건 전후처리에요! 내가 요리했는데 음식도 다 못 먹고 설거지까지 다 떠맡겨진 꼴이야!”
“그것이 그토록 분하느냐?”
“당연하죠! 이번 상황에서 제가 잘못한 게 어디있어요? 아무 잘못도 없이 일만 했는데 제게는 아무런 보상도 없어요! 하다못해 누가 잘했다고 칭찬해주지도 않는데!”
“잘했다.”
엥? 뭐라고?
느닷없이 들려온 말에 입을 딱 벌리고 있는 동안, 흡혈귀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고맙구나. 너희는 정말 잘해주었다. 덕분에 나도 더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어. 전부 너희들 덕분이다.”
느닷없이 칭찬을 들었으나, 사람 마음이 이런 칭찬으로 기분이 좋아졌다면 ‘엎드려 절 받기’라는 속담이 따로 생기지는 않았을 거다.
나는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개는 밥 달라고 칭찬하더니, 티르칸쟈카 교육생은 또 뭘 뜯어내려고 이럽니까?”
“나를 그런 속물로 보는 게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이다. 고맙다고 했는데 무엇이 불만이냐?”
“당연히 고마워해야죠. 웬 듣도 보도 못한 멍청이에게 조종당할 뻔한 걸 구해줬는데. 그건 상수고요.”
“칭찬이 고픈 것 같아 해주었더니 불만만 듣는구나. 그러면 나보고 어찌하라는 말이냐?”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교육생 말대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면, 전기 마사지는 필요 없겠네요? 그렇죠?”
내가 몸을 돌리려고 하자 흡혈귀가 다급히 내 팔을 잡았다. 잠시 머뭇거린 흡혈귀는, 내 싸늘한 시선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
“…필요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와. 진짜 중독이네.”
“중독이라니. 그 어떠한 독도 내 몸에는 듣지 않는다. 나는 그저, 잠시라도 뛰는 심장을 바랄 뿐이다. 그러니 조금만.”
“몸이 망가지는데도 계속 원하는 걸 중독이라고 하거든요? 자기가 중독된 걸 모르니까 부끄럽게 권속에게 조종당하는 거 아니에요. 잘 살고 계시는 분이 왜 그리 심장을 못 뛰게 만들어서 안달이세요?”
계속 퉁명스러운 태도로 대꾸하자, 결국 몸이 안달 난 흡혈귀는 원망에 찬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너 때문이잖느냐.”
“네에?”
이건 또 무슨?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왔다. 철 지난 만우절 농담이지?
장난삼아 노인네에게 자극적인 놀이를 알려준 내 잘못이라고 한탄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피해를 본 나니까 할 수 있는 말이지! 그걸 댁이 말하면 배은망덕이야!
흡혈귀는 아직도 할 말이 남았는지, 내 팔을 꼭 붙잡고는 말했다.
“나의 심장은 뛰지 않는다. 어떤 감정을 느끼더라도 금방 사라지고야 만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욕구도, 감정도, 추억도 무채색으로 덧칠한 것처럼 희미하다. 심지어 너희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고기를 입에 한가득 문 아지가 살랑살랑 걸어오다가, 흡혈귀를 보고는 그냥 제 자리에 앉아서 남은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흡혈귀는 먼 추억을 회상하는 것처럼 아련하게 아지를 보았다.
“배를 곯지 않으니 음식을 필요치 아니하며, 그렇기에 향을 느끼고 맛을 보더라도 행복하지 않다. 산해진미가 눈앞에 있어도 개의 왕처럼 기뻐할 수 없다.”
“피 맛은 보잖아요.”
“그게 진정 맛보는 거라고 여겼느냐? 맛은 비유일 뿐, 어디까지나 나와 가장 가까운 피를 찾아 취하는 것이다. 피의 성질이 내 것과 비슷할수록 나를 충족시키니.”
나를 가볍게 나무란 흡혈귀는 다시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기에, 나의 감정에는 온기가 없다. 머릿속에서 별빛처럼 반짝일 뿐. 어둑한 밤하늘의 별빛은 아련히 아름다우나 차가운 대지를 데우지 못하니, 나의 감정은 온기 없이 그저 한순간 명멸하다 사라질 뿐이었다.”
그토록 악명 높은 흡혈귀가 세간의 소문과 다르게 인자하였던 것은, 그녀의 성격이 그러한 탓도 분명히 있겠지만, 다른 이유 역시도 무시할 수 없다.
본디 인간은 자기를 해칠 수 없는 것에는 관대해진다.
정확히는, 무감각해진다.
흡혈귀는 몸의 상처는 물론, 마음의 상처 역시 받지 않는다. 누군가 그녀를 향해 칼과 창을 찔러넣는다고 한들, 저주하고 원망하며 죽어간다고 한들, 어젯밤 지저귀던 새의 노랫소리와 비슷하게 흘려들을 수 있다.
잔인하다? 아니, 인간은 그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만일 시조 티르칸쟈카가 매일 같은 일상에서조차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감수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잔잔히 흐르는 별빛을 보며 감상에 젖을 수 있는 소녀가 아니었더라면.
인류는 지금보다 몇 배나 냉정하고 잔혹한 흡혈귀의 여왕을 상대해야 했을 테니.
“핀레이가 나를 원망하여도 괘념치 않았다. 그를 죽이면서도 나의 마음은 낡은 서랍장을 정리하는 것과 비슷하였다. 그건 예전에도 마찬가지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내 너를 꽤 좋아하는 편이나, 만일 네가 돌연히 죽어버린다고 하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겠지. 이러한 사내가 있었지, 하며 잠시 아쉬워하고는 발걸음을 돌릴 것이다.”
아니, 잠깐만.
아무리 비유라고 해도 그렇지, 왜 나를 죽이고 그래, 무섭잖아. 눈은 안 깜빡여도 좋으니까 살려주면 안 될까?
무심코 한 비유에 내가 겁을 집어먹은 것도 모른 채, 흡혈귀는 양산을 쥔 손을 가슴께로 다소곳이 모았다.
“허나, 심장에 손가락이 닿은 그 짧은 순간에만은. 나는 몸을 흐르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때 나의 몸은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니다. 심장은 제멋대로 튀어오르고, 그러할 필요도 없는데 허파가 멋대로 공기를 빨아들인다. 한평생 차가웠던 가슴이 따뜻해진다.”
지금 가슴을 양손으로 품어도 만져지는 건 싸늘함뿐. 흡혈귀는 쓸쓸하게 손을 펴 내려다보았다.
“아예 몰랐으면 모르되, 아는 이상 돌이킬 수 없다. 오랜 밤이었어. 동이 트고 희미한 온기가 비추었는데, 다시 시계를 돌려 캄캄하고 추운 밤으로 돌아가라니. 너무 잔혹하지 않느냐.”
그리고는 다시 나와 눈이 마주쳤다. 피처럼 붉은 눈이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히 나를 찌른다.
오래된 생각을 담담히 풀어놓으며, 마음속으로, 그리고 입 밖으로 흡혈귀는 하나의 바람을 들려주었다.
“부탁이다, 나의 심장이 되어다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 땅조차 저버린 무저갱에서 오랜 소망이 흘러나왔고.
나는 공포에 질렸다.
말은 참으로 로맨틱하다. 그 안에 담은 감정은 심장이 멈춘 흡혈귀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절절하여, 나조차 순간 혹 넘어갈 뻔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독심술이 있지.
독심술로 말이 의미하는 바를 읽고는 그 잔인한 속내에 혀를 내둘렀다.
심장이 되라고?
그건 말 그대로, 원하는 때에 자기 가슴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전기를 흘려주는 외부 부착형 심장이 되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 나는 네 이름도….”
“됐어요.”
더 뭔가 나타나기 전에 나는 냉큼 말을 잘랐다. 칼에 찔리기라도 한 듯 말이 끊긴다. 한순간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원망이 가득 담겼다.
“그렇게 데여 놓고도 아직 정신 못 차리셨어요? 남한테 심장 함부로 내주고 다니다가 또 큰일 난다니까요.”
“그러니 네가 하면 되지 않느냐.”
“아니, 글쎄. 나는 어떻게 믿고? 제가 냉큼 조종해버리면 어쩌려고 그래요?”
완곡한 거절을 할 겸 한껏 으름장을 놓았으나 흡혈귀의 반응은 내 예상과 사뭇 달랐다.
“너라면, 상관없다.”
담담히 전하는 그 말은, 독심술을 가진 나조차도 잠시 넋을 잃고 생각을 다시 읽어보게 만들 정도로 의아했다.
설마 흡혈귀가 그새 농담이라도 배운 걸까 싶어서 다시금 똑바로 생각을 읽었으나.
‘어차피 누군가를 믿어야 한다면, 천칭 위에 나를 반드시 올려놓아야 한다면. 차라리 내 마음에 드는 쪽에 나를 맡기겠다.’
아니. 제정신인가. 호구여도 이런 호구같은 마음가짐이 또 있을 줄이야.
세상에는 정도가 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도박쟁이들도 구태여 코흘리개 돈을 빼앗아가지는 않듯, 호구도 이 정도면 털어먹기도 미안할 정도다.
그렇기에 나는 흡혈귀의 애원을 단호하게 쳐냈다.
“제가 상관있어요. 저는 누군가의 심장이 되고 싶진 않으니까요. 그게 교육생이더라도.”
여지를 주지 않는 거절에, 흡혈귀는 크게 아쉬워했다.
그러나, 그토록 처참한 심정 역시도 찰나.
실망감도 금방 사라지고, 곧이어 다가온 건 체념. 포기가 아닌, 그저 강처럼 모든 걸 흘려보내는 흐름이 그녀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럴 때는 독심술이 참 안 좋아.
쳐내야 하는데, 그냥 보내면 되는데.
빤히 보고 있으면 정작 나도 미련이 남는다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심장을 포기하지 않으실 거죠?”
내 말에 흡혈귀는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반드시 긍정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나, 저울에 올려둔다면 분명 긍정으로 기운다.
핀레이 같은 종자에게 심장을 맡기는 바보짓은 하지 않겠지. 하지만 예상하건대 그에 살짝 못 미치는 바보짓을 저지르고 다닐 거다.
후우. 진짜.
나는 이마를 쓸어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겠네.”
“하겠다, 고 하였느냐? 그 말은.”
잠시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화색이 도는 얼굴.
확신했다. 이토록 알기 쉬워서야 또 어떤 사기꾼에게 간이고 쓸개고 빼줄지도 모른다…. 물리적으로 말이지.
어쩔 수 없다. 나는 손을 내밀어 흡혈귀의 손을 붙잡았다.
“희망이 자꾸 손아귀 틈으로 사라지는 건, 티르칸쟈카 교육생의 손이 터무니없이 커서도, 희망이 그토록 작고 고와서도 아니에요.”
이제는 대놓고 손을 잡으려고 들어도 무어라 나무라지 않는다. 위기감은 무슨. 정이 조금 들었다고 간단한 무례도 무시하는 거다.
나는 작고 차가운 손가락을 하나하나 잡아 가지런히 붙였다.
소지와 약지를, 약지와 중지를, 중지와 검지를, 그리고 검지와 엄지까지.
“그냥, 손가락 사이에 힘을 덜 주었을 뿐이죠.”
필요한 건 절실한 바람.
꾹. 다섯 손가락을 꽉 붙인 뒤, 그걸 흡혈귀의 가슴팍으로 밀었다. 가슴께에 양손을 모으게 된 흡혈귀는 잔뜩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후우. 진짜, 진짜 안 하려고 했는데.
“저는 교육생의 심장이 아니에요. 되고 싶지도 않고요. 왜냐면 저는 매 순간 열심히 뛰고 싶지도 않고, 내키지 않으면 안 뛰어줄 거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교육생이랑 떨어져 있을 테니까요.”
누군가의 소망을 이리 가까이서 맞아버리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미래를 보는 이가 거기에 얽매이다 파멸하는 것처럼.
마음속을 보는 이 역시, 타인의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
“대신, 그 심장이 다시 뛰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