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73화 (73/384)

EP.73 호문클루스의 딜레마 - 속

탄탈로스 4층의 교육실. 그곳에서 회귀자는 불사자의 소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자라고 한들, 대지모신과 연결이 끊긴 이곳에서 신체를 좀먹는 저주는 치명적이다. 어쩌면 과거 수십 개의 마을을 집어삼킨 불사의 시체 골렘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었다.

아직도 그만한 양의 시체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렇다고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불사자를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따라서 회귀자는 가지고 있는 회복 아이템을 털어서 불사자의 팔을 잠식한 저주를 해주하고 몸을 회복시키기로 했다.

‘내가 개입해서 불사자가 지금 눈을 뜬다면 원래 역사에서 멀어지는 셈이지만…. 이미 충분히 꼬였어. 불사자가 어떻게 저주받았는지 아는 것으로 충분해.’

불사자와 흡혈귀가 이런 식으로 엮인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 자체가 커다란 수확.

더 캐내려면 캐낼 수야 있지만…. 현 상황에서, 회귀자는 다른 의문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지난 회차 의선에게 배운 레시피를 참고하여, 세계수의 이파리까지 넣은 귀중한 회복약을 만들면서도 회귀자의 머릿속에선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어. 천앵을 튕겨낸 것, 내 위장을 간파한 것, 핀레이의 공격을 묘기처럼 피해낸 것. 다 보통 실력은 아니야. 하지만.’

그녀의 직감이 고하기로, 그에게는 무언가가 있었다. 열세 번의 회귀 동안 온갖 것을 봐온 그녀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

하지만.

‘뭐라고 할까…. 왜, 압박감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거야? 얼핏 보면 그냥 약골처럼 보인다고!’

잠깐, 타임.

약골이라니. 사실이어도 그렇지. 그렇게 말하기야?

‘달음박질도 느려. 반응은 가끔 나조차 섬뜩할 정도로 빠른데, 그런 것치고도 동작이 하품이 나오도록 둔해! 힘이 강하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아. 검술을 보여준 적도 없어. 불사자의 오른팔도, 레이피어처럼 톡톡 건드리기만 했지 제대로 휘두른 적도 없잖아!’

어어? 마지막에 핀레이 후려갈길 때, 나 정말 온 힘을 다해서 쳤는데? 핀레이 이빨도 하나 나갔는데?

내 인생 최고의 스윙을 봤으면서 제대로 휘두른 게 아니라고?

‘으으으으으. 너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야. 한 번, 딱 한 번만 대련해보면 알 거 같은데! 아니면 벗은 몸을 살펴볼 기회만 있어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다니는 거야.

더 이상한 생각으로 빠지기 전, 나는 참지 못하고 복도를 달려가 문을 열어젖혔다.

“셰이 교육생. 준비는 끝났습니까?”

“어? 응, 대충.”

회귀자는 성의 없이 대답하며 나를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눈이 게슴츠레해지는 것이, 그렇게 보면 옷이라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보급형 셔츠…. 으음. 역시 셔츠 위쪽으로는 몸이 전혀 보이지 않아…. 망할 군국. 의복 패킷은 쓸데없이 잘 만들었어.’

정말, 세상 사람들이 독심술 못 쓰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아니었으면 너는 가장 먼저 어디 갇히거나 했다. 자비로운 나니까 그냥 읽고도 넘어가는 거지….

‘꿰뚫어 보는 눈은 사람한테 써봤자 뼈밖에 안 보이고…. 내려다보는 눈도 가린 곳은 못 보고…. 그러면 역시 갈아입을 때나 목욕할 때 멀리 보는 눈으로 훔쳐보는 수밖에 없나….’

취소. 나도 못 넘어가겠다.

안 되겠다. 이 관음 회귀자의 생각이 우주까지 날아가기 전에 충격 요법을 좀 시행해야지.

아직도 뚫어지게 나를 보는 회귀자를 향해 크게 호통쳤다.

“셰이 교육생!”

“어? 왜? 갑자기.”

회귀자를 부른 나는, 곧장 양팔을 X자로 포갠 뒤 수줍게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 저. 부끄러우니까 그런 시선으로 저를 보는 건 삼가주실래요? 보는 것만으로도 더럽혀지는 기분이라.”

회귀자의 고개가 삐그덕거렸다. 순간적으로 과한 정보량이 들어온 탓에 이성이 잠시 마비된 탓이다.

‘…저건 무슨 개소리야? 왜 얼굴을 붉혀? 저 소름끼치는 자세는 뭐야? 뭐? 부끄러워? 내 시선에 더럽혀진다고? 나는 단순히 육체를 엿보려고. 어? 잠깐만. 혹시 내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었나….’

파편화된 정보를 짜 맞추고, 자기 상황과 내 언행을 연결하고는.

드디어 내 말의 진의를 깨달은 회귀자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뭔 얼토당토않은 헛소리야!!”

“방금 제 몸을 봤잖아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할 수만 있다면 벗기고 싶다는 음탕한 눈으로!”

“음탕한 눈으로 안 봤거든!”

“벗기고 싶다는 건 진짜야? 세상 사람들! 여기 좀 보세요! 셰이 교육생이 제 옷을 벗기려고 해요!”

“야!”

내가 냅다 달아나며 외치자, 회귀자는 상황도 잘 파악하지 못했으면서도 쥐를 사냥하는 고양이처럼 본능적으로 나를 쫓아왔다.

“잠깐! 멈춰!”

“싫어요! 오지 마세요! 도와주세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리는 그만둬!”

“우와아아아악!”

내가 소리치는 걸 멈추지 않자, 이를 악문 회귀자는 가까이 따라붙으며 천앵을 쥐었다.

‘안 되겠어! 일단 공기를 베어서 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한 뒤에 손을 쓰자!’

아니, 비겁한! 정정당당한 여론선동 도중 치사하게 힘을 쓰려고 하다니.

칼을 들면 내가 질 거 아니야? 달아나는 와중 우뚝 멈추고는 그 자리에서 반 바퀴 돌았다. 공기를 베려고 하다가 내 가슴에 거의 부딪힐 뻔한 회귀자가 급히 발걸음을 멈췄다.

“에이. 장난에 너무 크게 반응하지 말아요, 셰이 교육생. 진심인 줄 안다고요.”

“…뭐? 갑자기?”

“설마, 저처럼 볼품없는 몸을 진짜 훔쳐보려는 건 아니죠? 셰이 교육생도 최소한의 도덕은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 그렇지.”

“아무리 남자를 좋아한다고 한들.”

“그건 아니야!!”

빽 소리 지르는 회귀자.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어? 저번에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아지 씻겼잖아요.”

자기도 모르게 기묘한 컨셉이 잡혀버린 회귀자는 차마 부정하지 못하고는 둘러댔다.

“아니, 아닌 게 아니라! 너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나에게 있어서 너는…! 그래! 화장실 변기나 다름없어!”

“…아니, 그건 좀 여러모로 선정적인데.”

“그런 뜻이 아니고! 그만큼 불결하다는 뜻이야! 아씨, 뭐라고 말해야 해?!”

‘지나가던 사람? 오히려 신경 쓰는 것 같잖아! 길가의 돌멩이? 무저갱에는 돌멩이가 없는데!’

“그, 저를 뭐에 비유할지는 하나도 안 중요하지 않을까요.”

“어쨌든 보잘것없는 무언가라고!”

“네에네에. 일단 교육실로 돌아가죠? 우리가 팔을 빌려쓰느라 신세를 진 라쉬 씨를 되살려야 할 거 아니에요?”

“우리라니? 네가 썼겠지!”

나는 씩씩거리는 회귀자를 다독여 다시 교육실까지 돌아갔다.

그제야 커다란 솥단지에서 보글보글 끓는 회복약에 생각이 미친 회귀자는 이제야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기억해냈다.

“아, 맞아! 불사자의 오른팔은?”

“여기요.”

상자 안에 한가득 모아 든 살점을 건넸다. 회귀자는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으으. 끔찍해. 세상에서 이런 꼴을 당한 불사자는 이 사람이 처음일 거야.”

“재생할 수 있겠죠?”

“가능해. 저주만 해주하면 나머지는 대지의 정수만 공급해줘도 알아서 붙을 테니…. 그게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상자를 챙겨 솥단지 옆에 내려놓은 회귀자는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티르칸쟈카는? 이걸 줍겠다고 하지 않았어?”

“티르칸쟈카 교육생은 지금 지하 무기고로 돌아가 있어요.”

“그래? 피곤한가? 하긴, 그럴 수도.”

“그리고 셰이 교육생, 부탁이 있는데요.”

부탁이라는 말에 회귀자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네가? 뭔데?”

“이것 좀.”

나는 준비해두었던 쪽지를 회귀자에게 건넸다.

“제가 잠시 어디 갔다가 올 예정이니까, 제가 없을 때 읽어보세.”

그렇게 말을 끝마쳤을 때 회귀자는 이미 쪽지를 펴고 첫문장을 읽어내려가던 상태였다. 약간 미안한 듯 나와 편지를 번갈아 보던 회귀자는 볼멘소리로 말했다.

“네 말이 너무 느려서 그래. 경고는 내가 읽기 전에 했어야지.”

“댁 성격이 너무 급한 거 아닐까요? 뭐, 별 내용은 없으니 펼친 김에 읽어보세요.”

‘뭐야. 나는 또 쪽지를 주기에 엄청 중요한 내용인 줄 알았잖아.’

퉁명스럽게 나를 노려본 회귀자는 남은 반절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아지에게 세끼 밥을 차려주기. 불사자를 재생시키기. 그리고 중요, 안에서 누군가 나오기 전까지, 절대 지하 무기고의 문을 열지 않기…?’

쪽지의 내용이 끝났다. 회귀자는 쪽지를 팔락팔락 흔들며 나에게 물었다.

“마지막 문장은 무슨 뜻이야?”

“아아. 말 그대로예요. 저 안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의식을 치를 테니까, 절대 문을 열거나 의식을 방해해서는 안 돼요.”

“…거기에는 지금 티르칸쟈카가 있다며.”

“네.”

“무슨 의식인데?”

“심장 소생의 의식이요.”

“그건 누가 하고?”

“바로 저.”

음음. 작게 고개를 끄덕인 회귀자가 즉각 날을 세우며 나를 추궁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역시 그냥 넘어가지는 않는구나. 예상했다.

어차피 회귀자의 참견은 예상한 바다. 회귀자가 나와 흡혈귀 단둘이 고립된 장소에 있는 걸 가만히 보지는 않겠지.

그것 말고도 의식 동안 방해받지 않아야 하기에, 다른 이들의 접근으로부터 지켜줄 사람도 필요하다.

회귀자를 설득하는 건 필수불가결.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나는 목소리를 깔고 말을 시작했다.

“셰이 교육생. 만일 제가 티르칸쟈카 교육생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겠다고 말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사기꾼, 이라고 단언할 거야, 이 사기꾼아.”

예상대로 회귀자는 즉각 지적하고 나섰다.

“그 딜레마 때문에?”

“…알면서 왜 물어? 너도 알 거 아니야. 모든 흡혈귀는 호문클루스야. 죽었음에도 멈춘 심장 대신 시조의 피를 받아서 몸을 아득바득 굴리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종류의 호문클루스.”

“그래서 그들은 여러 가지 제약에 묶이죠. 혈주를 거스를 수 없다든지, 혈마법을 제외한 마법을 쓸 수 없다든지.”

나의 입에서도 술술 나오는 대답. 회귀자는 아리송한 얼굴로 나를 캐물었다.

“그걸 알면서도 티르칸쟈카에게 그런 제안을 한 거야? 진심이야, 아니면 장난이야? 나는 이제 네가 진짜 뭘 노리는지 잘 모르겠어.”

“진심으로 티르칸쟈카 교육생의 소생을 바라고 있습니다만.”

“네 그런 태도가 영 모르겠다는 거야. 도저히 믿을 수가 있어야지.”

‘…하지만, 지금껏 주기적으로 티르칸쟈카의 심장을 건드리면서도 아무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어. 도리어 그 위험을 경고하고, 핀레이로부터 보호하기도 했지…. 아마 나쁜 의도는 없을 거야. 만일 있었다면, 핀레이보다도 먼저 움직였을 테니까.’

천성인지 여전히 날을 세우고 있었으나, 그러는 와중에도 나를 향한 경계심은 옅었다. 핀레이와 함께 싸운 것이 나름 긍정적으로 작용한 모양이다.

적의를 거둔 회귀자는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나에게 전했다.

설득인지 아니면 정보를 알려주는 건지 자기도 모르는, 애매한 태도로.

“마법으로 죽음을 극복한 순간… 끝이야. 그건 절대 돌이킬 수 없어. 목숨을 이어붙이는 신비가 끝나는 순간, 그 육체는 지연된 죽음을 맞이하게 돼…. 치료고 소생이고 할 틈 없이 먼지가 되어 사라질 거야. 타인의 마법으로는, 결코 자기 자신을 구할 수 없으니까….”

“네. 바로 그거예요.”

불가능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으나, 회귀자. 좋은 지적이다.

바로 거기에 단서가 있으니까.

“호문클루스의 딜레마, 타인의 마법으로는 절대 자기 자신을 구할 수 없다는 진리를 담았죠.”

“…? 다 아는 말은 왜?”

“옛말이 다 그렇듯, 경고 속에는 충고가 숨어있습니다.”

“마법을 조심하라는 거 아니야?”

“하하.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셰이 교육생만큼 단순하게 생각하면 딜레마나 속담 같은 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지금 싸우자는 거야?”

당연히 아니지. 내가 질 테니.

나는 손가락을 들어올리며 강조했다.

“타인의 마법으로는 자신을 구하지 못한다. 달리 말하면, 자기를 구할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것.”

“그거야 당연한 말이잖아.”

“이제 하나 더 알려드릴게요.”

나는 손가락을 하나 더 들어올리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많고 많은 흡혈귀 중 단 한 명, 호문클루스가 아닌 존재가 있습니다. 타인의 권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권능으로, 죽어가는 몸을 되살린 존재가 있죠. 누굴까요?”

모든 걸 알지는 못하겠지만, 회귀자는 낯선 지식이라도 녹여내는 법을 안다.

13번의 회귀 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정보를 접한 회귀자는, 아무리 믿기 힘든 정보라도 말만 된다면 일단 받아들이고 보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첫 번째 흡혈귀, 시조 티르칸쟈카?”

정답, 보상이다. 훌륭하게 정답을 맞춘 회귀자에게 박수를 쳐줬다.

“참 잘했어요. 정답이에요.”

“죽음이 찾아왔을 때 스스로 몸을 움직였으니, 다시 소생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확실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자신의 힘은 되돌려도 자신의 것이니….”

그러나 회귀자의 중얼거림도 잠시였다. 어두운 표정으로 한참 계산하던 회귀자는 결국 눈을 꾹 감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만 않을 뿐, 불가능에 근접할 정도로 어려워. 힘을 되돌린다고 하더라도, 돌아갈 목표는 1200년 전에 사라졌잖아. 거기다 티르칸쟈카의 힘은 혈조술이야. 그것으로 수도 없이 많은 것을 손에 넣고, 지배하고, 다스려왔어. 심장을 밖에 꺼내도 아무런 문제 없을 정도로 자기와 세계의 경계가 흐려진 티르칸쟈카는….”

죽음이란 자신과 세상의 경계가 엷어지는 것.

시조 티르칸쟈카는 아직 죽지 않은 것 중 죽음과 가장 가까운 존재이다.

전 세계에 자신의 피를 뿌려 권속을 늘려가며, 그에 닿은 온갖 것을 지배하는 피의 여왕. 그녀보다 개념적인 죽음에 다가간 생명은 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조가 삶을 되찾기 위해… 되돌아가야 할 거리는,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도 멀다.

“안 될 거야.”

굳이 종말을 보고 되돌아온 회귀자가 아니더라도 절로 비관주의자가 될 법한 상황이다. 사실상 불가능, 그게 모두가 보는 이 계획의 전망이다.

하지만 나라면?

“해보려고요. 그러니까 그동안 문을 지켜주세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보던가.”

수긍하려던 회귀자는, 문득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그나저나, 너는 이런 걸 어떻게 안 거야?”

‘나도 생각지 못했던 건데, 한낱 군국 교관이 마법사도 아니면서 이걸…?’

아니, 왜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냐고. 네가 모른다고 다 모르는 게 아니잖아.

우매함의 골짜기에 갇힌 영혼 같으니. 교정해주마.

옛날을 떠올리며, 최대한 재수 없는 표정을 하나 골라 따라한다. 그러면서 피식 비웃음을 던지며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그, 중등군사학교 전교 1등만 알 수 있는 거예요. 초졸은 죽었다 깨어난 다음 때려 죽어도 알 수 없답니다.”

“야!”

예상대로 회귀자가 냅다 화를 내는 바람에 후다닥 도망쳤다. 솥단지를 붙잡고 있던 회귀자는 으르렁대기만 할 뿐 따라오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전해졌겠지. 나는 뒤편 문을 통해 교육실을 나서며 손을 흔들었다.

“일단 하루나 이틀 정도 걸릴 거예요. 그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아, 쪽지는 너무 뚫어지게 보지는 마시고요!”

“칫. 빨리 끝내!”

교육실의 문을 닫고는, 나는 흡혈귀가 기다리고 있을 지하 무기고로 향했다.

*****

‘핀레이가 만일 저번 회차에 왔다면, 그가 성공했을까, 아니면 실패했을까? 여기부터는 완전히 미지의 영역…. 하지만 핀레이와 교관이 서로 대립했지. 이후에 결국 전쟁까지 일어난 걸 보면, 교관은 실패했던 것 같아. 흥, 왠지 못 미덥더니만.’

‘그렇다면 티르칸쟈카를 소생시키겠다는 시도는 핀레이의 등장 이후 위기감을 느껴서 강구한 해결책일까? 아마 불가능하겠지만…. 확실히, 0%는 아니니까. 가능성은 있어.’

‘만약, 그럴 리 없겠지만 아주 만약에…. 혹시 그게 가능하다면, 다음 회차부터는 티르칸쟈카를 조금 더 빨리 회유할 수 있을 거야. 믿고 지켜보자.’

‘…그나저나 쪽지를 너무 뚫어지게 보지 말라는 건 무슨 뜻이야? 또 의미 모를 말을. 어? 눌린 자국?’

‘…설마, 이 자식!’

‘깊이를 보는 눈. 이걸로 눌린 자국을 보니 숨겨진 글씨가 떠올라. 뭔 쓸데없는 짓에 이리 공을 들이고 다녀…? 에잇. 일단 읽어보자.’

‘식당에 가지 말 것, 끝나고 내 상태가 이상해져도 함부로 건드리지 말 것, 그리고 혹여나 보급품이 도착하면, 그것을 자신에게 사용할 것…?’

‘뭐야? 도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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