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8 되찾은 것
개의 왕을 간신히 진정시킨 티르칸쟈카는, 쓰러진 그를 추스르고는 식당으로 향했다.
그는 땅을 구르면서도 비명을 지르기는커녕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그저 초점 없는 눈으로 느릿하게 티르칸쟈카를 따라왔을 뿐이다.
“괜찮으냐?”
끄덕.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뿐, 달리 대답하거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티르칸쟈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디.
“소리는 들리고, 말뜻도 이해하는 것 같은데…. 백치라도 된 듯하구나.”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티르칸쟈카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언제나 유쾌한 언행을 유지하며 쓰잘데기없는 내용도 청산유수처럼 말했던 그가 이리되다니. 그야말로 모든 것을 앗아간 게 아닌가.
“일단 식당으로 가보자꾸나. 무언가가 있다면 금방 나오겠지.”
만일 나오지 않더라도. 평생을 백치로 보내더라도 괜찮다. 티르칸쟈카는 그를 책임질 생각이었으니까.
그는 티르칸쟈카의 은인이었으며, 심장이 다시 뛴다고 영겁을 지낸 인내심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식당이… 4층의 교육실 근처에 있었으렷다.”
혈조술로 관을 이끌던 티르칸쟈카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라면 의지를 가진 순간 관이 제 몸처럼 매끄럽게 움직였을 텐데, 심장이 뛰고 나서부터는 몸 밖의 것을 다룰 때 미묘한 저항감이 생겼다.
조종이 어려워진 건 아니었다. 단지, 사소하나마 무게감이 느껴졌을 뿐이다.
비유하자면 손을 움직이는 것과 손에 들고 있는 가방을 움직이는 것의 차이일까.
“심장을 되찾은 탓일까. 혈조술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는구나.”
천 년 가까이 함께한 제향나무 관이다.
티르칸쟈카의 침대였고, 보금자리였으며, 수족이나 다름없던 것이 이제는 독립한 자식처럼 뻣뻣하게 구니 조금 섭섭한 감도 있었다.
그러나 콩닥콩닥 뛰는 가슴과 함께 옆자리에 앉은 이의 온기를 상기하자, 그러한 섭섭함도 잠시 흐려졌다.
“그래. 무언가를 얻는다면 잃는 것도 있어야겠지.”
세상 모든 것을 손에 넣으려다, 절대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사소하고 소중한 것이 밀려나다 떨어질 수도 있으니. 티르칸쟈카는 감정을 얻은 대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둘을 나란히 태운 관이 매끄럽게 떠올랐다. 순식간에 4층에 도달한 그들은 곧 식당에 도착했다.
의무적으로 마련한 듯한 단출한 식탁 하나와 의자 넷이 한구석에 놓여있었고, 커다란 들통 하나과 그보다는 작은 냄비 다섯 정도가 선반에 크기 순서로 늘어져있었다. 좁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것이 누군가 신경 써서 관리한 듯한 생활감이 느껴졌다.
티르칸쟈카가 식당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식당에 오는 것은 처음이구나…. 하긴, 내가 여기 올 필요는 없었으니.”
흡혈귀가 취하는 것은 오직 피. 그렇기에 티르칸쟈카는 지금껏 식당에 방문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의 실혈이 곧 흡혈귀의 양식이었으니.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티르칸쟈카에게는 신경 써야 할 입이 하나 더 생겼다.
티르칸쟈카는 그를 부축하여 의자에 앉힌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꽃구경도 식후경이라 하였다. 사흘간 굶주려 배가 많이 고플 터이니, 일단 무어라도 먹고 하자꾸나.”
그렇게 요리를 하려던 티르칸쟈카는, 새삼 그녀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식 자체를 필요치 않던 몸이다. 1200년도 전에 했던 요리의 기억 따위 날 리 없었다. 물에 재료를 넣고 끓이면 대강 스튜가 된다는 상식 정도만 남아있을 뿐.
“…일단 재료부터 찾는 편이 낫겠구나.”
티르칸쟈카가 주변을 기웃거리다 높이 있는 찬장을 발견했다. 까치발로 찬장을 여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티르칸쟈카의 키로는 가장 낮은 칸만 간신히 눈에 들어올 따름이었다.
낮은 칸에는 컵과 접시 같은 물품만 있었다. 티르칸쟈카는 자신의 몸을 띄워 보다 높은 칸으로 향했다.
중간 칸에는 남겨둔 기름이나 쓰다 만 재료 등이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티르칸쟈카는 그것을 기억에 넣어두며 그 위쪽에도 시선을 던졌다.
가장 높은 칸에 이른 티르칸쟈카가 본 건.
묶인 채 꿈틀거리는 소형 골렘이었다.
“응?”
골렘의 자세는 기묘했다. 아니, 단순히 기묘하다고 하기에는 악의와 장난기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골렘은 유기체의 꿈이라도 꾸는지, 양다리를 180도로 벌린 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었다. 마치 요가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게 자의가 아님을 알 수 있었는데, 발목이 철사에 단단히 매여 오므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탓이다.
골렘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을 위치엔 그 입에서 떼어낸 스피커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다리가 묶인 골렘은 스피커를 회수하고 싶어 필사적으로 팔을 내밀었으나 영 닿지를 않았다.
설계한 이가 거리 계산을 기가 막히게 한 것이다.
고문이라고 하기엔 좀 가벼우나 장난이라 하기엔 무거운, 정신이 나가게 하기 딱 좋은 동작.
티르칸쟈카는 골렘이 낑낑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번에 보았던 장난감 골렘이 아니더냐?”
티르칸쟈카의 시선을 알아차린 골렘은 필사적으로 자기 양팔을 흔들었다. 스피커가 없는 탓에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으나, 누가 봐도 구조요청이었다.
“풀어달라는 말이냐?”
끄덕끄덕.
스피커 없는 골렘은 대신 그만큼 열렬한 동작으로 동의했다.
티르칸쟈카는 골렘을 묶고 있는 철사를 풀어주었다. 골렘이 벌어진 다리를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오므린 뒤, 양팔로 허벅지를 부여잡고는 잠시 땅을 뒹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일어낸 골렘이 스피커를 입가에 이어붙였다. 다시 이어붙인 스피커에서 고장 난 것처럼 드문드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빌어… XX가 기어코 월권을…! 이건 반역…!』
파지직거리며 언어와 욕 사이의 무언가가 흐르고, 간신히 진정한 골렘은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티르칸쟈카를 마주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시조 티르칸쟈카. 이러한 상황에서 외람되나, 본관은 귀하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마침 나도 물을 것이 있었다. 먼저 너의 요청을 듣겠다. 서로 하나씩 교환하자꾸나.”
티르칸쟈카는 느긋하게 제안했다.
『본관이 말할 수 있는 내용일 경우에 한해 답변하겠습니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나도 답하기 어려운 물음에는 침묵할 것이다. 비밀스러운 내용을 어찌 입 밖으로 꺼내며, 설사 말한다고 한들 거짓인지 아닌지 어찌 구별하겠느냐?”
『우문이었군요. 수용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본관부터 질문하겠습니다.』
골렘이 주먹을 쥐고 고개를 들었다. 딱딱한 몸체에서 감정이 느껴질 리 없건만, 티르칸쟈카는 왠지 골렘이 이를 데 없는 분노를 삭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윽고 골렘이 말을 토해냈다.
『그자는 어디 있습니까?』
“그자?”
골렘이 지칭할 만한 사람이라면 분명 그밖에 없다. 티르칸쟈카는 금방 알아들었고, 그 탓에 곤란한 듯 말을 흐렸다.
“너희들이 보낸 그 교관이라면, 으음. 그것이, 내가…. 약간, 문제가 생겼다.”
『대답할 수 없는 내용입니까?』
“꼭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일단 이곳에 있으니. 허나….”
티르칸쟈카의 잃어버린 심장을 되돌려주려다 기억을 잃어버렸다, 라고 전후관계를 생략한 채 말할 수야 있다.
그러나 그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교관이라고 했다. 그 끝도 없는 능력을 생각하면 필시 군국이라는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훌륭한 재목이었을 터. 그런 존재를 망가뜨렸으니, 티르칸쟈카는 군국에게도 커다란 손해를 입힌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 여럿에게 폐를 끼쳤구나. 티르칸쟈카는 새삼스레 죄책감을 느꼈다.
“이야기할 것이 많다. 너의 군국의 대표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겠느냐?”
그를 다치게 한 것에 대해 보상을 치르고, 그의 신병을 인도받기 위해서라도 군국과 교섭해야 할 것이다. 티르칸쟈카는 그럴 생각으로 말했으나.
『그 반동분자가 무슨 일이라도 벌였습니까?』
돌아온 대답은 너무 의외의 것이라, 티르칸쟈카는 눈을 끔벅였다.
“반동… 분자라고?”
『긍정! 본 기체를 구속한 그 반동분자 말입니다!』
골렘이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된 탓일까. 티르칸쟈카는 자신이 예전보다 목소리에 실린 감정을 잘 짚어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감정을 되찾은 시조는 생소한 감각에 흥미를 느끼며 골렘의 말에 집중했다.
『본관은 탄탈로스 내부를 관찰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개 노역자에 불과한 그가, 본관의 임무에 장애를 초래한 겁니다! 이것은 5레벨 보안시설의 공무집행을 방해한 것이며, 그 정도에 따라 최소 4레벨 범죄로 인정됩니다! 심지어 그자는 이미 한 번 죄를 저질러 노역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최소한의 유예도 없습니다!!』
골렘을 구속했다, 그리고 달아났다. 공무를 방해하여 죄를 저질렀다.
이미 한 번 죄를 저질렀다고? 군국에게 밉보였다는 뜻일까?
티르칸쟈카는 자기도 모르게 그를 변호했다.
“너무 화내지 말 거라. 본디 군주는 장수의 판단을 존중해야 하는 법이다. 필시 무언가 깊은 뜻이 있었겠지.”
『그딴 것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이곳은 격전지도 아닐뿐더러, 그는 장수조차 아닙니다!』
“너희 나라가 그를 이곳에 보내지 않았느냐. 이 영지의 영주로. 한 영지를 책임지는 기사라면 장수라 부를 수 있는 것을..”
『부정! 그는 기사는커녕 집사조차 되지 못합니다! 따지고 보면, 노예 그 이하의 존재!』
아무리 그래도 나라에 충성하는 사람을 노예로 취급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거기다 감히, 그보고 노예라니.
티르칸쟈카는 반쯤은 훈계로, 반쯤은 이유 모를 분노를 담아 호통치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는! 귀하를 비롯한 다른 이들에겐 숨기고 있었지만! 실은 범죄를 저질러 탄탈로스 노역형을 받은 범죄자이기 때문입니다!』
골렘이 의외의 사실을 전하지 않았다면, 분명 입 밖으로 꺼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