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5 진짜 노역자, 가짜 교관
“휴즈. 그 남자는 탄탈로스에 배치된 노역자다. 아미텐그라드 13-3구역에서 내기 도박을 하다가 긴급체포된 이후 탄탈로스 노역형을 선고받았지.”
그가 노역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티르는 덜컥 놀라 셰이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셰이가 당장 눈을 까뒤집으며 달려가거나 하진 않았다.
단지 셰이는 눈을 가늘게 뜨며 흐음, 하고 콧소리를 흘렸을 따름이었다.
“…그랬구나. 그러면 이제 설명이 돼.”
그렇지 않아도 셰이는 여러모로 의구심을 품고 있는 중이었다.
도저히 출처를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능력들. 군국의 장교라고 하기엔 너무 가볍고 친근한 태도. 사생활에는 냉큼 발을 들이밀면서, 공적인 일은 나 몰라라 하는 기이한 언행.
관등성명도 신고도 없이 말만 번지르르 늘어놓았던 그는, 아무래도 평범한 교관과는 몇십 년 떨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티르칸쟈카를 구하는 건 둘째 치더라도… 그녀의 심장을 되살리는 행동이 가장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군국이 시조의 심장을 되살릴 방법을 알았다면, 되살리기보단 그것을 인질로 삼고 조종하려 들었을 테니까. 그게 군국의 합리성이다.
그렇기에 그의 행동은 전혀 군국답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속내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고.
‘확인하려고 할 때마다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서 확신을 못 가졌지만!’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규격화를 이룩하려는 군국에 있어, 그와 같은 혼란스러운 인물이 교관일 리가 없다. 군국의 이념에 반하는 것이다.
차라리 탄탈로스에 가둬야만 하는, 기이하고 괴상한 능력을 지닌 범죄자라는 게 더 설득력이….
“잠깐. 노역자? 탄탈로스에 수감되어야 할 범죄자가 아니라?”
노역자와 죄수는 완전히 다르다. 죄수는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한 채 구금된 이들이지만, 노역자는 해당 시설에 복무하며 온갖 잡일을 하는 것으로 죗값을 치르는 이들. 따라서 상대적으로 죄질이 가벼운 이들이 노역형을 받고 준 노동자 취급을 받으며 생활한다.
교관도 아니고.
탄탈로스에 갇힐 중범죄자도 아니고.
고작 잡범이라니?
심지어.
“고작… 내기 도박하다가 잡혀 와?”
“그렇다. 되먹지 못한 0레벨 시민답게, 성실하게 노동할 생각은 안 하고 일확천금만 노리는 기생충 같은 녀석이지.”
칼리스는 얼굴에 맴도는 경멸을 숨기지 않고 표현했다.
조심스레 눈치만 살피고 있던 티르는 그 태도에 발끈해서는 그를 변호하고 나섰다.
“고작 카드 놀음을 하는 것 가지고 기생충? 말이 험하구나!”
이에 칼리스는 대답을 미리 준비한 것처럼 즉각 화답했다.
“물론 그뿐이었으면 탄탈로스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도박에 참여한 다섯을 따로 심문해본 결과, 그자는 평소에도 도박을 즐기는 인물이었으며, 선량한 사람들을 꼬드겨 도박판에 끌어들이곤 했다.”
“놀음이란 어디까지나 놀이일 터. 논 것 가지고 어찌 죄를 논하느냐?”
“심지어 나머지 넷은 입을 모아 그가 속임수를 쓴 것이 분명하다고 고발했다. 그날만 하더라도 혼자 9할의 승률을 기록했다지.”
멈칫.
아무리 뛰어난 승부사라도 9할의 승률은 비정상적이다. 그건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티르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티르는 한결 자신 없어진 목소리로 반박했다.
“…그건 그냥, 그 넷이 무능한 것 아니겠느냐.”
“연달아 패배한 게 분한 나머지, 마지막엔 넷이 짜고 쳤음에도 그를 이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들이 확신을 가졌던 시점이지.”
“……짜고 치는, 것도, 자랑은 아니렷다…….”
그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이 가득한 티르도 결국 변호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말을 흐렸다.
완벽하게 논파한 칼리스는 한결 당당하게 소리쳤다.
“더 내려갈 곳 없는 이들은 자기 처지를 범죄를 저지른 핑계로 삼으려고 하지. 군국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이 온정으로 군법을 시험하는 것을 막기 위해, 0레벨 시민의 범죄는 사소한 것으로도 일벌백계하여야 한다!”
칼리스가 고개를 들고는,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0레벨 시민 휴즈! 지금까지는 방만한 생활을 즐겼겠지만, 오늘로 끝이다. 감독관이 왔다. 당장 나와서 현 상태를 보고하라! 그러지 않으면 근무태만으로 처벌하겠다!”
커다란 목소리가 탄탈로스를 울렸으나, 안에서는 어떤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티르가 나서서 말했다.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지금 기억을 잃어, 반쯤 백치가 되었으니.”
“기억을 잃어?”
칼리스가 조소하면서 대꾸했다.
“기억을 잃은 것이 의무에 소홀히 할 이유가 되나? 그럴 수 없다. 만일 그게 된다면, 사람을 죽이고도 기억을 잃은 척하면 무죄가 되겠군.”
“일어난 일에서 눈을 돌리는 게 아니라, 있을 일을 못 하는 것이잖느냐. 둘은 완전히 다르지. 과거와 미래가 다른 것만큼이나.”
조곤조곤한 말투였으나, 동시에 듣는 이를 꾸짖는 듯한 고풍스러운 지적이었다. 칼리스가 대꾸할 말을 잃고 침묵하자, 티르는 마력초를 소중히 챙겨 들고는 움직였다.
“이 보급품은 그를 위한 것이다. 혹 그의 정신이 돌아오면, 마저 이야기를 들어보마.”
마력초를 소중히 챙겨 든 티르가 탄탈로스로 가기 전, 문득 걸음을 멈추고는 물었다.
“잠깐. 그의 이름이 휴즈라고 하였느냐?”
“그렇다. 무슨 문제라도?”
“…잘못 안 것은 아니고?”
“본관은 탄탈로스에 부임하기 전, 탄탈로스에 머무는 이들의 인적사항이 적힌 서류를 전부 읽어보고 왔다. 의심할 여지가 없어.”
티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셰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것 봐. 내가 대답이 이상하다고 말했지. 애초에 콩부터가 말이 안 된다니까.”
“…직접 물어보면 되는 일. 지금 우선할 것은 휴를 깨우는 일이다.”
“같이 가자. 나도 그 녀석에게 물어볼 게 있으니까.”
그리 말하는 셰이의 눈은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드디어 단서를 잡았어…! 이제는 도망갈 수 없을 거야…!”
티르는 그것을 탓하지 못했다. 어찌 되었건, 이 부분은 그가 감내할 문제였다. 티르가 보장할 수 있는 건 일신의 안전뿐이다.
티르와 셰이는 나란히 걸어갔다. 다시 이름 모를 그의 방을 향해.
칼리스는 군국 장교의 표본 같은 인물이었으나, 동시에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기 목숨 아까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명령에 따라 탄탈로스에 오기는 했지만, 죽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지만… 개죽음은 결코 그녀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 셰이가 살기를 내뿜었을 때, 숨이 멎을 듯한 두려움을 느꼈다.
“시조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는 준 장성 급 위험인물…. 처음 보자마자 살기를 흘리다니.”
시조는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자연재해와 비슷한 존재.
태풍을 상대로 싸워 이길 필요가 있는가? 벼락이 내리칠 때 꿋꿋이 버텨야 할 필요가 있는가?
그저 몸을 숙이고 태풍이 지나가길, 낮은 곳에서 벼락이 멎길 기다리면 된다.
시조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흡혈귀답게 만사에 무심하며, 자신 주변의 상황이 얼마나 변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군국이 관 속에서 잠든 그녀를 무저갱으로 옮길 때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던 그녀였다.
단지 '어디로 가느냐'고 딱 한 번 묻고는, 옮기던 병사가 저도 모르게 무저갱이라고 대답하자 '그곳이라면 하늘이 보이지 않겠구나.' 라고 중얼거린 뒤 그대로 침묵했다는 건 군국에서도 꽤 유명한 일화였다.
시조의 역린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그녀의 앞에서 천신에게 기도만 하지 않는다면 딱히 위험할 일은 없다. 어쩌면 동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문제는 이레귤러.”
일단 레벨 3이라고 랭크되어 있지만… 신분이나 연원 자체가 불분명한 정체불명의 강자, 셰이.
군국 육장성, 절창(絶槍) 파트락시온이 직접 나서서 제압해야만 했던 위험인물이다.
언제든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괴물이 곁에 있다는 것은 절대로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안심이 되는 건, 먼저 내려보낸 노역자… 리트머스가 아직까지 피로 붉게 물들지 않았다는 점.
잡범조차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군국의 엘리트인 칼리스라고 못할 것은 없다.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기에 백치가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칼리스는 깊게 숨을 내쉬고는 정모를 벗었다. 나름 강심장이라 자부한 그녀였지만 몸은 솔직했는지, 단발 아래 드러난 목덜미에는 땀 한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나의 임무는 생존, 그리고 보고.”
셰이가 모든 골렘을 때려 부순 탓에, 탄탈로스 내부의 정보가 충분히 모이지 않았다. 따라서 원래 올 예정이었던 그녀의 상관은 대신 그녀를 내려보냈다. 먼저 가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라고, 혹 위험한 일이 있다면 먼저 그 몸으로 겪으라고.
그녀의 처지가 리트머스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때 쓰이기 위해, 다른 숱한 장교를 제치고 중령이 된 것이니까.
“다시 인간을 위대하게.”
그들의 비원을 되새기며, 그녀는 굳게 다짐했다.
***
탄탈로스의 4층은 노역자의 공간이다. 식당과 세탁실처럼 그들이 일해야 할 공간이 있으며, 일을 끝낼 그들이 몸을 뉠 숙소가 바로 같은 층에 있다.
셰이는 그중 하나의 방으로 향하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이 녀석, 노역자 방에서 지내고 있었네? 이런 곳에서 살다니.”
“너는 지금껏 휴가 어디서 지내는지도 몰랐던 것이냐?”
“이름도 몰랐는데 어디서 지냈는지를 어떻게 알아.”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는 셰이를 티르가 나무랐다.
“참 무관심하구나. 같이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
“어? 솔직히 너도 심장을 되찾기 전까지는 모르지 않았어?”
“…으음.”
티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서는 그가 지내는 방의 문을 열었다.
그는 여전히 침대에 걸터앉아 멀뚱히 앉아있었다. 문이 열리자 잠시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그건 자극에 대한 반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묻는 말에는 대답하고 누군가의 행동에는 반응하지만, 자기 자신이 먼저 나서지 않는 수동적인 상태. 아직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한 그를 향해, 티르는 언제나처럼 반갑게 말을 걸었다.
“휴, 별일 없었느냐?”
노역자 숙소의 비좁은 방은 사람 둘만 더해졌는데도 가득 찬 것 같았다. 티르는 좁은 방을 가로질러 그의 곁에 앉았다.
셰이는 문 쪽에 기대어 서서는 중얼거렸다.
“생각하니 소름이 끼치네. 자아가 없는 와중에도 가명을 댔다는 거 아니야.”
“그만한 사정이 있지 않겠느냐. 자, 휴. 이것 보아라. 네가 필요로 했던 그 보급품이다….”
티르는 종이 갑에서 마력초를 돌돌 말아 만든 엽궐련을 꺼냈다. 그러다 문득, 티르는 자신이 사용법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태생적으로 병에 걸리지 않으며 독과 약물에 면역인 흡혈귀에겐, 손가락 크기로 돌돌 말린 담배란 너무 난해한 물건이었다. 티르는 곤란한 듯 담배를 들고 우물쭈물거렸다.
“사용이라…. 이 막대기를 어떤 식으로 사용을…. 먹을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기다란 막대기를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티르의 경험상으론 하나뿐이었다.
마력초 담배를 치켜든 티르는, 그것으로 그의 어깨를 찰싹찰싹 때렸다.
“에잇. 정신 차리거라!”
그 와중에 때리는 곳이 머리도 아니고 어깨. 그마저도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 있다. 만일 그가 기억을 잃지 않았어도 이 타격에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으리라.
어린애 장난 같은 광경에 셰이는 기막혀서 몇 초간 입만 뻐끔거렸다.
“…그렇게 쓰는 거 아니야. 그리고 설사 그렇게 쓰는 거라고 해도, 어깨를 그렇게 살살 때려서야 뭐 바뀌겠어?”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이것 말고는 방도가 없지 않느냐?”
“이건 피우는 용도인데…. 에이, 말로 해서 뭐해. 일단 그의 손에 쥐여 줘 봐.”
티르가 반신반의하며 그의 손에 마력초를 조심스레 가져다 댈 때였다.
반응이 있었다.
손바닥에 마력초가 닿은 순간 그의 손이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오므려 마력초 담배를 말아쥐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담배를 코까지 당기더니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마치 품질을 확인하는 것처럼.
“시작됐다.”
굳이 셰이의 말이 없더라도, 티르 역시 그정도는 알아차렸다. 입을 다물고 가만히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기만 했다.
담배를 손에 쥔 그의 움직임은 몸에 익은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손가락을 들고, 제식 마법으로 불을 당긴다. 불꽃을 머금은 손톱으로 마력초 끄트머리를 툭 긁으면 그 틈으로 시뻘건 불꽃이 스며들었다.
안쪽 깊숙이 숨어든 불꽃은 어둠 속에서 힘을 키우다, 곧 넘치는 힘을 자랑하며 세상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셰이? 휴가 그것에 불을 붙였는데,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
“아니, 마력초는 원래 저렇게 쓰는 거야. 따지고 보면 향초랑 비슷한 거라서.”
죽은 풀잎을 위한 뒤늦은 화장이 시작되었다. 인간의 영혼을 봤다고 하는 이들은 제각기 다른 묘사를 하나, 담뱃잎의 영혼은 오직 하나의 모습만을 가지고 있다. 구불구불 피어오르는, 세로줄무늬를 가진 회색 뱀.
애연가는 자못 경건한 자세로 그 영혼을 맞이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휘감으며 올라간 뱀이 세상을 자신의 색으로, 자신의 향으로 가득 채웠다.
연기가 충분히 피어오르자, 그는 오래된 예법에 따라 두 손가락으로 담배를 잡고는 가볍게 입을 맞췄다.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움직임.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뇌리에 선명하게 그림이 그려진다.
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제 알겠다. 이걸 노렸구나?”
셰이는 천반경이라는 기공을 익히고 있었기에 그의 행동을 단번에 이해했다.
천반경의 기본 원리는 자신의 몸에 동작을 새기는 것. 머리보다 몸이 먼저 대응하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심신의 안정을 유지한다.
그런 천반경에서 정신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강조하는 것이, 지금 그가 하는 것과 유사한 소매틱이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향 같구나. 이 향이 정신을 돌리기 위한 의식이더냐?”
“마력초를 태운 연기도 분명 영향이 있겠지만, 그건 일부일 뿐이야. 지금 그가 하는 건 일종의 자기 암시야. 몸의 기억으로 마음의 기억을 재점화시키려고 한 거지.”
마법으로 불을 당기는 것부터, 입가에 끌어당겨 빨아들이는 동작까지.
일련의 흐름은 기억을 잃은 자의 것이라고 보기 너무 부드러웠다. 수천, 수만 번의 시도 끝에 그에 이르는 최적의 경로를 찾아낸 뒤, 그 몸에 새긴 것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수천 수백 번 마력초를 피우면서 몸에 익은 동작이야. 그의 무의식 깊숙이에 남아있었기에 자신을 잃어버린 와중에도 몸이 멋대로 재현하는 거지. 이 동작으로 잠들어 있던 자아를 자극하는 거야.”
“그럼, 이것으로 휴가 정말 깨어나는 것이냐?”
“그래. 자기가 쪽지에 강조했을 정도니까, 확실해.”
시간이 흐를 때마다 담배는 점점 짧아졌다. 이즈음, 시가는 타오름으로써 시간을 알리는 시계였다. 매캐한 연기가 방을 가득 메우고, 담배를 반 이상 갉아먹은 불씨가 그의 손가락을 톡톡 건드릴 즈음.
그가 책상 위에 시가를 놓았다.
“드디어!”
티르의 기대감 어린 시선과 함께, 그는.
“콜록! 콜록!”
크게 기침을 하고는, 여전히 몽롱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티르가 배신감에 휩싸여 외쳤다.
“아니잖느냐!”
“어? 이상한데. 이게 아니야? 다른 마력초인가? 아니, 피우는 거 보면 맞는 것 같은데….”
셰이가 마력초를 살피는 동안, 티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티르의 눈에 책상 위에 놓여있던 조그만 차임벨이 보였다.
“애초에, 나는 그가 향을 입에 문 것을 본 적이 없다! 내 기억에도 없는데 어찌 몸이 기억하겠느냐!”
“그야 무저갱에서는 담배를 구할 수 없으니까…. 아마 지상에서는 되었을 걸….”
“혹 다른 계기가 필요한 게 아니더냐? 어디, 향을 피웠으니 이번엔 이 종을 흔들어보마.”
“앗? 그 종은 아지를 부르는 종….”
셰이의 만류도 무색하게, 티르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종을 흔들었다. 딸랑딸랑, 작은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리고 몇 초 뒤.
“멍멍!”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종소리에 반응한 아지가 복도를 내달리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짐승의 울부짖음이 네발짐승의 발소리를 반주 삼아 들려온다.
밥 먹을 때도 아닌데 반응하는 건 정말… 조련이 잘 되어있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식충이인지.
한숨을 내쉬며,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아지 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지야. 밥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