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91화 (91/384)

EP.91 왕따 놀이

칼리스 중령은 군국의 장교다.

그녀는 그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중등군사학교에서부터 두각을 드러낸 그녀는 당연한 듯이 고등사관학교에 들어갔고, 우수한 성적을 거둔 끝에 군국의 명예로운 장교가 되었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순간 3레벨 시민 자격을 부여받는다. 생체 단말에 3레벨 시민권을 새겨넣으며 칼리스는 가슴 북받치는 설움에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3레벨 시민이 가진 여러 가지 특혜가 있지만, 그중 가장 압권인 것은 상속권의 획득이다.

3레벨 시민부터,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

장교가 된 칼리스는 가장 먼저 보훈처를 향했고, 아버지의 유산이 소각되기 전 그것을 상속받았다.

마당 딸린 집, 낡았지만 고급스러운 자동마차, 금박이 붙은 칼과 특수한 군장.

만일 칼리스가 손에 넣지 않았다면, 그대로 국고에 환수되었을 것들. 공병들의 삽 아래 파헤쳐졌을 어린 날의 추억들.

칼리스는 그것을 온전히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콘크리트 아래 파묻혔을지도 모르는 추억을 그녀의 손으로, 그녀의 능력으로 지켜낸 것이다.

‘거기서 멈출 수 없어.’

아득바득 노력하여 이곳까지 왔다면, 당연히 그 위를 노려야 하지 않겠는가.

4레벨은 군국에 존재하는 모든 시설을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다. 토지마저 소유할 수 있으며, 사적으로 사용인을 부릴 수 있고, 결혼 시 배우자에게 한시적으로 3레벨의 시민 레벨을 부여한다.

무엇보다, 3레벨은 일방적으로 상속받을 권리만을 가지나… 4레벨부터는 재산을 상속할 수 있다.

아버지에게서부터 온 유산을, 이 위에 그녀가 쌓아갈 모든 재산을 손실 없이 그대로 후대에 전할 수 있다.

남긴다.

4레벨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도전할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4레벨이 되기 위해선 재능만으로 부족하다. 적절한 기회, 충분한 행운, 그리고 그것을 움켜잡을 실력이 있어야만 간신히 도달할 수 있는 것이 4레벨.

훌륭한 장교였던 그녀의 아버지조차도… 죽을 자리를 제대로 잡은 덕분에 2계급 특진을 했고, 덕분에 4레벨이 되었으니.

아버지가 마침 위기에 빠진 사령부 가까이에 있지 않았다면, 그 죽음에 장렬함이 조금만 부족했다면, 칼리스는 레벨과 관계없이 유산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도 기회가 왔어.’

마침 장교가 된 그녀에게 ‘그들’이 다가왔다. 야망은 넘쳤으나 위험 속으로 자기 자신을 들이밀 용기가 부족했던 그녀는, 자신을 지옥에 빠뜨리기 위해 그들의 손을 잡았다.

무리한 사건에 투입되었지만, 칼리스 중령은 그녀의 능력을 십분 활용하여 공훈을 세웠다. 신년 연설회에서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한 일이 몇 번 더 반복되자, 그녀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중령을 달게 되었다.

그 뒤 ‘그들’이 맡긴 새로운 임무.

무저갱 탄탈로스에 침입하여,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

정확히는.

‘개의 왕을 확보할 때, 그것을 방해할 요소를 알아보기 위해.’

탄탈로스는 결코 들어가선 안 될 마경이었지만…. 최근에 일어난 탈옥 사건 때문에 위험도가 크게 줄었다. 심지어 먼저 내려보낸 노역자, 군국에선 ‘리트머스’라 불리는 정찰용 잡범도 여전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고 했다.

어차피 따라야 할 명령이긴 했으나, 칼리스 중령이 흔쾌히 수락한 건 그러한 계산도 깔려 있었다. 이곳에서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그들’도 자신을 버리지 못하리라.

이것을 기회로 여긴 칼리스는 보급감시관에 자원했고, 실수인 척 꾸며 탄탈로스로 떨어졌다.

그러나 계획은 언제나 나쁜 쪽으로 틀어지고 만다.

마치 그렇게 되리라 정해진 듯이.

장교가 떨어진 직후, 나는 매일 시간을 내어 아지랑 놀아주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묵직한 원반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옛날에는 대충 놀아줘도 됐었는데. 경쟁자가 생기니까 이제 쉴 수가 없네.”

3개월 동안 쌓인 호감도는 여전하지만, 요요 꼬리 가벼운 강아지는 인간을 보면 일단 달려들고 보니까 눈을 뗄 수가 있어야지.

원반을 던졌다. 아지가 뛰었다.

뛰어올라 하나 물고, 벽을 박차 뛰며 하나를 낚아채고, 동시에 여력을 남겨두었던 몸을 쭉 뻗는다. 아지의 몸이 허공에서 퉁 튕겨올랐다. 마치 공중을 밟아 방향을 바꾼 것만 같았다.

그렇게 다른 하나의 원반까지 무는 데 성공한 아지는, 땅에 내려앉고는 기쁨에 눈을 빛냈다.

“멍멍멍멍멍멍멍!”

“3원반, 성공!”

“머어어엉!”

어려운 도전과 반복된 시도, 그리고 짜릿한 성공은 어마어마한 보상 심리를 주는 법. 아지는 제 자리에서 몇 번 폴짝이며 기쁨을 만끽했다.

내가 입에서 원반을 빼내자, 아지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외쳤다.

“멍! 경쟁, 좋아!”

“뭔 경쟁이야. 네가 아는 경쟁이래 봐야 먹이 경쟁밖에 없잖아.”

어려운 말 따라한다고 사람 말이 되는 줄 아나. 뜻을 알고 써야 사람 말이지.

내가 코웃음을 칠 때, 아지가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다.

“독점, 싫어! 게을러져! 너처럼!”

“…독점? 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니?”

“멍멍! 공! 더!”

“이건 원반이라고…. 그나저나 3원반까지 했으면 이제 뭘 하지. 흠.”

턱을 긁적이며 고민하던 나는, 문득 든 생각에 손가락을 튕겼다.

어, 잠깐만. 혹시 그 각인가? 드디어 그걸 시도할 때인가?

“야, 아지야. 너 혹시 4원반 생각은 있니?”

“멍? 나, 좋아! 그래도 안 돼!”

던지면 아지야 좋다. 어차피 노는 거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각이 안 나온다는 뜻.

아지가 공중을 밟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객관적인 자기평가라고 할 수 있다. 디딜 곳 없는 허공에서는 방향을 바꿀 수 없는 탓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발판이 되어준다면?”

“멍?”

“그래. 뛰어서 하나, 나 밟고 하나, 벽 차고 하나, 마지막 여력으로 하나. 이렇게 하는 거야!”

“멍! 나, 좋아! 너는?”

“한 번 해보는 거지, 뭐.”

지금까지는 아지가 나의 동작을 읽기만 했다면, 4원반부터는 호흡을 맞추어야 한다. 내 위치를 잘 살핀 뒤, 준비가 되었을 때 타이밍에 맞게 나를 밟고 뛰어올라야만 닿을 수 있다.

자, 어디.

나는 한쪽 무릎을 꿇은 뒤, 다른 쪽 무릎에 팔을 단단히 받쳤다. 아지가 밟아도 몸이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씩 던진다. 가까운 것부터 노리는 거야.”

“멍!”

“자, 시작!”

휙, 휙, 휙, 휙.

나는 짧은 간격을 두고 네 개의 원반을 연달아 던졌다. 가까운 것부터 멀어지는 것까지 차례대로. 그 뒤, 아지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는 몸을 단단히 고정했다.

…그런데 잠깐만. 아지는 개의 왕이지만 지금은 사람 모습이잖아. 그러면 몸무게가 어림잡아.

어라.

“잠깐, 타….”

다 말하기 직전, 아지가 나를 겨냥하며 펄쩍 뛰었고.

마차에 치인 것과 비슷한 충격이 나를 덮쳤다.

내가 콘크리트 위를 나뒹구는 모습을 본 티르는 나를 보자마자 타박했다.

“그러니 몸조심을 하였어야지!”

“괜찮아요. 다 나았잖아요?”

나는 팔과 다리를 내보였다. 아까 콘크리트에 쓸리면서 난 상처는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짐승의 왕이 가진 힘 중 하나, 핥아서 낫기. 관념의 존재인 짐승의 왕에게는 핥아서 치료하는 능력이 있었고, 아지는 나에게 그 능력을 십분 활용했다.

티르는 어느새 다 아문 상처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에는 안 드나, 그래도 짐승의 왕이 있어서 다행이로구나. 핥는 것으로…. 상처가 나을 수는 있으니.”

“왜 마음에 안 드는데요?”

“어찌 내가 개의 왕이랑 가까이 지낸다는 말이냐. 한때 숙적이었거늘.”

“아지는 이번 대의 개의 왕이잖아요. 한창 싸웠을 때와 비교하면 한 몇십 대 차이는 날 텐데.”

“그러하더라도, 본질은 같지 않더냐. 꺼림칙함은 어디 가지 않는다. 그리고.”

툭. 티르가 두 손가락으로 내 어깨를 쿡 찔렀다. 새초롬한 시선이 불만스럽게 나를 향했다.

“몇십 대라니. 짓궂구나. 고작 몇백 년 전이거늘.”

“몇백에 왜 고작이라는 말이 붙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럴걸요? 개의 왕은 수명이 짧은 편이라.”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과 같이 늙어가지 않느냐. 그러할진대 저토록 팔자 좋은 개의 왕이 어찌 수명이 짧다는 말이냐.”

“늑대의 왕이랑 허구한 날 싸우잖아요.”

“늑대의 왕?”

“어, 그 이야기 모르세요? 동화책에 자주 나오는 이야기인데.”

그러자 티르는 걱정도 잠시 잊고는 한껏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핏빛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이야기가 고픈 시조를 위해, 나는 기억 속에 있는 동화를 그대로 읊었다.

개의 왕과 늑대의 왕.

둘은 본래 사이좋은 짐승 형제였다. 무리 짓기를 좋아하는 두 짐승은 협력하여 사냥감을 몰아넣고는 목덜미를 물어 숨을 끊고는 했다.

사냥감을 몰아넣는 쪽은 주로 작고 날랜 개였고, 사냥감의 목숨을 끊는 건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늑대의 몫이었다. 똑똑하고 날랬으며 호흡이 잘 맞는 둘은 서로를 도와가며 목가적인 사냥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이 사는 곳에 양치기가 찾아왔다. 구름 같은 양 떼를 몰고서.

양치기는 양 먹일 풀을 찾고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양치기는, 마침 정찰을 나온 개를 발견하고는 말을 걸었다.

‘거기, 작은 이리야. 들풀이 가득 자란 땅으로 나를 안내해주겠니? 그러면 맛있는 것을 주도록 할게.’

들풀은 개에게 있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개는 양치기를 들풀 가득한 중턱으로 안내했다. 널찍한 구릉에 푸른 풀이 가득한 자란 모습을 보자, 양치기는 크게 기뻐했다.

‘너는 참 착한 이리구나! 고맙다! 자, 여기 고기 붙은 뼈를 줄게!’

먹지도 못하는 풀숲을 일러주었을 뿐인데 맛있는 뼈를 얻게 된 개. 신이 난 개는 뼈를 물고는, 곧장 늑대에게로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양 떼를 모는 인간이 이토록 맛있는 고기를 준다고. 자기가 얻어낸 것을 자랑하며 전리품을 나누었다.

늑대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신이 나서 달려가, 가장 바깥쪽에서 풀을 뜯던 어린 양의 목에 이빨을 박아넣었다. 만일 분노한 양치기가 지팡이로 늑대를 때리지 않았다면 하나로 끝나지 않았을 터였다.

등허리를 얻어맞은 늑대는 축 늘어진 양을 입에 물고 냉큼 달아났다.

사냥엔 성공했지만, 개와 늑대는 둘 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둘이 먹기에 어린 양 하나는 너무 작은 탓이다.

개는 고기 붙은 뼈를 그리워했고, 늑대는 묵직한 나무 지팡이를 두려워했다.

늑대는 다음 사냥 때 개가 자신을 돕기를 바랐다. 양 중 가장 커다란 것을 사냥하는 동안, 개보고 양치기의 시선을 끌어달라고 명령했다.

그리고는 상처가 나아야 한다며, 잡은 어린 양 한 마리를 단숨에 삼켰다.

개는 고기라고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뼈 한 대만 얻었을 뿐이었다.

다음날. 계획대로 둘은 갈라져서 양 떼를 향해 접근했다. 먼저 시선을 끌어야 할 개의 왕이 양치기의 앞에 나타났을 때였다.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개를 발견한 양치기는, 딱딱한 나무 지팡이를 짚고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을 휘두르는 대신 손을 크게 흔들며 말했다.

‘착한 이리야. 저번에 내 양을 물어간 큰 녀석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렴. 그러면 너에게 고기가 가득 붙은 뼈를 줄게.’

양치기가 주는 건 고기가 가득 붙은 뼈. 늑대가 주는 건 살 한 점 없는 뼈.

잠시 고민하던 개는 양치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개는 양치기를 늑대가 오는 쪽으로 이끌었고, 숨어있던 늑대는 흠씬 두들겨 맞고는 초지에서 쫓겨났다.

그날 이후, 개는 사람과 함께 지내게 되었고, 늑대는 보름달만 뜨면 그날의 고통과 배신감을 되새기고는 울부짖게 되었다….

“…그것 때문에 개의 왕과 늑대의 왕은 서로 다투게 되었다는 이야기, 모르세요? 늑대의 왕은 그때도 있었을 텐데.”

내 이야기를 전해 들은 티르는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한층 이야기에 취해 있다가 빠져나온 티르가 시선을 살짝 올리며 옛 기억을 되새겼다.

“늑대…. 아아. 그러하구나. 깜빡하였다. 들개를 이끌고 달려들던 그것.”

“그럴 만하죠. 흡혈귀들에게는 개의 왕이나 늑대의 왕이나 똑같았을 테니까요. 인간의 친구인 개든,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늑대든.”

“어찌하였든 흥미로운 이야기로구나. 내 오늘 처음 들었다.”

“이거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나에게는 그러한 동화를 이야기해 줄 이가 곁에 없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티르가 손가락을 튕겼다. 내 옆에 그림자가 솟아나더니 고풍스러운 의자의 형태를 만들었다. 티르는 그곳에 앉으며 걱정스러운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찌 되었든, 다치지 말거라. 네가 다치면 누가 나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며, 나의 심장을 뛰게 해준단 말이냐.”

“피 조금 난 것 가지고 뭘. 흘린 건 티르 줬다고 생각할게요.”

“쓸데없는 소리.”

작은 손이 오른팔을 찰싹 때렸다.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 뒤, 티르는 그 손으로 내 오른팔을 붙잡고는, 다시 없을 간절함을 담아 나에게 속삭였다.

“너의 피는 맛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몸 안에 고이 간직하고 있어라. 단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걱정을 한껏 담아 말하는 티르에게, 나는 알았다며 몇 번이고 안심을 시켜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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