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7 약속과 고집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불사자와 장교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둘은 약간의 탐색 끝에 1층 한구석에서 배를 깔고 졸고 있는 아지를 발견했다. 그것까지는 수월했다.
문제는, 딱 그것만 수월했다는 점이다.
“오오! 개 아가씨!”
귀가 쫑긋거리고, 꼬리가 살랑인다. 인기척을 느낀 아지가 실눈을 뜨며 자기를 부르는 인간의 면면을 살폈다.
그러고는 곧장 으르렁거렸다.
“으르르.”
보이는 태도가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낯섦조차 아니다. 장교와 처음 만났을 때도 저것에 비하면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정겨웠다.
이 으르렁거림은 오직 불사자를 향한 것. 근원적인 거부감으로 내뱉는 경계의 기색이었다.
불길함을 느낀 장교가 불사자를 바라보았다.
“교육생. 설마.”
“하하! 생각해보니, 내가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도 이러했소! 아무래도 짐승의 왕은 우리 종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오!”
“으르릉.”
토인.
부족 전체를 대지모신께 공양하여, 대지모신과 가장 가까운 몸이 된 불사종족.
그 이름답게, 토인의 살과 피는 흙과 용암을 닮았다. 살갗은 단단하나 뭉친 진흙처럼 뻣뻣하고, 피는 뜨겁게 흐르나 식으면 몸속에서 굳는다. 온누리를 제 육신으로 삼는 대지모신처럼.
그렇기에, 피 냄새를 풀풀 풍기는 흡혈귀보다는 덜하겠지만… 아지는 그들에게 친근함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괜찮소! 본디 처음 길들이는 짐승은 다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기 마련! 이것을 뛰어넘고 교감하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짐승을 길들인 지혜 아니겠소!”
불사자는 자신만만하게 외치며 성큼성큼 아지를 향해 다가갔다.
“개 아가씨! 자, 우리 친분을 다져봅시다!”
“컹.”
콰아앙.
아지가 신경질적으로 불사자의 오른팔을 후려쳤다. 흙더미가 터지는 소리가 나며 그의 오른팔이 기이한 각도로 뚜둑 꺾였다.
순식간에 역관절의 사나이가 된 불사자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다, 남은 왼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가 물러서고 나서야 아지는 으르렁거림을 그만두었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귀환한 그를, 장교는 더없이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이봐.”
“하하하하! 이번 짐승은 대단히 까탈스럽군! 유감이오만, 친구!”
불사자가 덜렁이는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나는 안 될 것 같소!”
“그러면 어떻게 하냐는 말이다!!”
결국 폭발한 중령이 성난 기색으로 불사자에게 다가갔다. 불사자는 어긋난 오른팔을 다시 맞추며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하하. 이 부분은 명실상부한 인간인 중령에게 맡기도록 하겠소! 그래도 개 아가씨는 개니까 중령을 더 잘 따를 것…. 어억!”
딱딱한 군홧발이 그의 정강이를 가격했다. 불사자는 정강이에서 올라오는 고통에 말을 더 잇지 못하고는 허리를 굽혔다.
무능한 이를 질타한 장교는 신음하는 불사자에게서 시선을 뗐다.
“믿을 수가 없군. 이 무능한 자를 위해 세계수의 잎사귀까지 썼다니.”
“하하! 할 말이 없소! 그래도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 부족은 최소한 먹고 튀지는 않으니!”
“차라리 지금이라도 본관의 눈앞에서 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국, 이 무능한 이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 조력자의 조력이라고는 곁에서 시끄럽게 재잘거리는 것이 전부.
언제나 그랬듯이, 이제 임무의 성패는 순전히 장교의 능력에 달렸다.
장교는 그를 지나쳐 아지에게로 향했다.
“비켜라. 내가 하겠다.”
“부탁하오! 내가 못다 한 일을 꼭 이루시오!”
응원인지 조롱인지 모를 소리를 뒤로한 채 장교는 아지의 앞까지 다가갔다. 불사자는 냉정하게 쳐낸 아지도 장교에게는 꼬리를 흔들며 반가움을 표했다.
장교는 아지의 앞에서 소리쳤다.
“개의 왕 강아지. 일어나라!”
“멍!”
아지가 벌떡 일어났다. 장교는 그보다 조금 아래에서 생글거리는 아지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잘 들어라, 개의 왕. 본관은 군국의 명령에 따라 탄탈로스의 총책임자로 부임한 군국의 칼리스 크리츠 중령이다.”
“멍? 본관? 먹는 거야?”
“…나는 칼리스 크리츠 중령이다.”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나서야 아지는 장교의 말이 자기소개라는 것을 이해했다. 아지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즐겁게 화답했다.
“멍! 반가워! 나, 강아지야!”
“…도대체 이번 대 개의 왕을 명명한 녀석은 무슨 생각으로 이름 지은 거지? 골라도 하필 이딴 이름이라니.”
불만스레 중얼거린 장교는 다시 자세를 꼿꼿하게 하고는 말했다.
“강아지.”
“멍! 내 이름! 나 불렀어?”
“나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너에게 요구한다.”
“멍….”
요구라는 단어를 듣자 아지는 순식간에 귀와 꼬리를 늘어뜨렸다.
“요구, 싫어. 귀찮아.”
“들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인간이고, 너는 개의 왕. 너는 나의 말을 따라야 한다.”
“멍….”
아지는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삐딱하게 섰다. 장교는 이 불량스러운 태도를 탓해야 할지, 아니면 그러면서도 들어주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할지 알지 못했다.
어쨌든 장교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장교가 명령조로 말했다.
“강아지. 본관은, 아니, 나는 너에게 요구한다. 앞으로 내가 너를 부를 시, 너는 나를 곧장 따라와야 할 것이다.”
“멍. 알았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으나 장교는 만족하지 못했다. 아지의 대답이 너무 시원스러운 나머지 너무 가볍게 느껴졌던 탓이다.
장교는 확인차 말을 덧붙였다.
“…만일, 다른 인간이 너를 부른다고 하여도, 그것을 무시하고 나의 말을 따르도록.”
“멍? 그건 안 돼.”
그리고 거절의 뜻 역시도 그만큼 빠르고, 동시에 단호했다.
장교는 이를 악물었다. 이 말인즉슨, 만일 그 노역자가 장교를 방해하고자 마음먹고 방해한다면…. 개의 왕을 결코 탄탈로스 바깥으로 빼낼 수 없다는 뜻이다.
마음이 조급해진 장교가 말했다.
“어째서지? 너는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할 터! 그러니, 지금 내가 하는 명령에 따라야 할 것이다! 내가 그의 말을 듣지 말라고 명령했으니, 맹약에 따라 너는 그들의 말을 무시해야 한다!”
“머엉….”
“똑바로 대답하라. 약속을 지켜!”
“약속, 그런 거 아냐….”
“아니, 너는 따라야 해!”
사람은 마주한 상대의 반응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기 마련이다.
아지는 떼를 쓰는 어린아이를 보듯 장교를 바라보았고, 그 차분한 눈동자와 마주한 장교는 자기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교에겐 지금 힘도 없고, 명분도 없다. 가진 건 아주 오래 전, 인간이 개와 나누었던 약속 하나뿐. 정작 정체도 모르는 그것에 기대어 개의 왕보고 명령에 따라달라고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장교가 처음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그녀가 입을 꾹 다문 사이, 아지는 떼를 쓰는 장교를 달래듯이, 혹은 타이르듯이 말했다.
“나, 인간의 말 따라. 그건 복종이 아니야. 믿음이야. 오래전 나누었던 약속처럼, 내가 인간을 따르면, 믿고 몸을 맡기면, 그만큼 기대어주리라 했던 소망이야.”
“그래! 그러니 너는 나의 말을…!”
“너, 인간. 하지만, 너만 인간은 아니야. 멍.”
수없이 많은 인간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누구나 알지만 떠올리기 꺼려하는 진실을 담담하게 전한 아지는 조심스레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멍. 너는 내 친구지만, 나, 네 친구 아니야. 너… 나, 싫어하잖아.”
장교의 몸이 덜컥였다.
고작 개 따위에게 본심을 들켰다. 심지어, 개의 왕은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고는 배려해주기까지 했다.
힘으로도, 성품으로도 패배한 것이다.
그 사실은 장교의 자존심을 갉아먹었다.
만물의 영장은 인간 우월주의자. 수인조차도 인간보다 한 수 아래로 보는 이들의 모임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증오를 가지고 짐승을 대한다.
그 감정의 원동력은,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더불어 그날 겪었던 짐승의 흉성.
특히,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를 짐승에게 잃은 칼리스에겐, 이러한 패배는 용납할 수 없는 종류였다.
“닥치고 내 말에 따라!”
장교가 이성을 잃고 소리쳐도 아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큼직한 눈망울에 걱정과 염려를 가득 담고는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것이 영 거슬렸던 장교가 발작적으로 반응했다.
“그딴 눈으로 나를 보지 마! 짐승 따위가!”
장교가 눈을 돌렸다. 탄탈로스의 수감실, 죄수를 구속하기 위한 도구가 가득한 이곳에는 그 잔재가 남아있었다.
그중 장교의 눈에 뜨인 것은 중간이 끊어진 채 바닥에 늘어진 쇠사슬이었다. 냉큼 쇠사슬을 집어 든 장교는, 그것을 위협적으로 당기며 아지에게로 걸어갔다.
장교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짐작한 불사자가 그녀를 만류했다.
“어, 중령. 잠시. 그건 좀 심하지 않소? 다시 생각해보는 게….”
“닥쳐, 무능한 게! 네가 제대로만 했어도 내가 이러지는 않았어!”
불사자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영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 동안 장교는 쇠사슬로 고리를 만들고는, 여전히 무저항으로 서 있는 아지에게 던졌다.
차라랑.
아지의 목에 쇠사슬로 급조한 고리가 걸쳐졌다. 쇠사슬이 목을 조이는데도 아지는 눈살만 찌푸릴 뿐 반항하지 않았다. 사슬이 아지의 목을 두 바퀴 감을 때까지, 아지는 말없이 장교를 쳐다보기만 했다.
‘마음에 안 들어. 인간에게 반항조차 못하는 개 따위가 다 이해한다는 듯이…!’
욕을 퍼붓고, 목에 사슬까지 감아놨음에도 장교의 분은 풀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녀를 따랐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 아닌가. 임무에 협조적이었으면, 그녀를 순순히 따랐으면, 그녀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게끔 도왔다면.
고작 개 따위가 그녀의 뜻에 반한 게 문제다.
“너 같은 짐승은 목줄을 채우고 끌고 다니는 것으로 족해! 왕이랍시고 인간의 몸뚱어리를 입어봤자, 결국은 짐승에 불과하지! 말로 해결하려는 게 잘못이었어. 처음부터 이랬어야…!”
그렇게 응어리진 기분을 개의 왕에게 쏟아내려던 차.
…천검기.
복도 끝 공간이 일렁거리며, 무저갱에서는 존재할 리 없는 바람이 불었다.
그 뒤를 이은 건, 칼날과도 같은 날카로운 살기.
곧이어 바람의 칼날이 1층 복도를 질주했다. 널찍한 공간을 가득 메운 채, 사방을 갈아엎으며 장교를 향했다.
정확히는, 사슬을 움켜쥔 장교의 오른팔을 향해.
그 살의를 장교가 알아차렸을 땐, 검기가 지척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아직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장교가 멍하니 있던 사이.
“중령!”
다급히 뛰어 온 불사자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바람의 칼날이 그를 난자했다.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옆구리까지 커다란 상흔이 그어지고, 뒤따른 충격파가 그의 살가죽을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예기를 잃은 바람이 그의 몸을 거세게 후려치고는 고삐 풀린 말처럼 사방팔방으로 날뛰었다.
1초도 지나지 않아, 불사자는 작은 칼날로 전신을 난도질당한 모습이 되었다.
아무리 그가 불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한들, 눈앞에서 사람이 찢겨나가는 모습을 보고 평정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장교는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라쉬…!”
그러나 불사자 라쉬는, 끗발이 조금 떨어진다고 하나 팔이 잘려나가도 멀쩡했던 괴물.
퉁, 하고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불사자의 몸이 잠깐 휘청거렸으나, 불사자는 곧이어 오른발을 내려찍으며 기합을 내질렀다.
“흡!”
아직 정기가 넘쳐나는 상황이었다. 불사자가 힘을 끌어올리자 그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찢어진 근육이 제 모습을 되찾고 너덜너덜해진 살가죽이 다시 매끈해졌다.
단숨에 몸을 재생시킨 불사자는, 주먹을 꽉 쥐고는 저 너머에서 다가오는 존재에게 말을 걸었다.
“거, 다짜고짜 칼질은 좀 너무하지 않나, 소년?”
회귀자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불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두 눈으로 오로지 아지와 그 목에 걸린 사슬만 바라보았을 뿐이다.
“사슬.”
얼음으로 조각한 것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전해졌다.
목소리가 큰 것도 아니고, 거리가 가까운 것도 아니었으나. 그 미성이 귓가에서 말하는 듯 똑똑히 들려왔다.
“내려놔.”
회귀자가 절제된 살기를 풍기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