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118화 (118/384)

EP.118 탄탈로스에서 식후경

“야, 아지!”

“멍….”

“내가 몰래 음식 훔쳐먹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짐짓 화난 기색으로 아지를 나무랐다. 이번에는 변명할 말이 없는 아지는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저번에는 증거도 없이 몰았다가 역풍을 맞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밥때도 아닌데 식당에 어슬렁거리다 냄비를 들추는 모습을 딱 들켰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검거된 현행범인 셈.

“요새 밤 중에 음식이 사라지는 것 같더니, 네 짓이었냐!”

“멍? 나, 도둑 아냐!”

“말대꾸하지 마!”

일갈을 내지른 나는 아지를 내버려 둔 채로 화구로 향했다.

“배가 고프면 차라리 나에게 말해! 그러면 내가!”

촤라락.

황금빛으로 빛나는 쌀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 톨만 먹어도 한 끼 먹은 것처럼 든든하다는 신선미. 과장이 섞이기는 했지만 그만큼 훌륭한 재료다.

신선미에 으깬 콩을 섞고, 허브와 고기로 우려낸 육수를 천천히 부어가며 졸여낸 리조또. 겉보기에는 개죽과 비슷했지만.

나는 그것을 새로 담아낸 뒤, 프라이팬 위에서 살짝 볶았다.

기름은 많이 쓰지 않는다. 아지는 기름진 걸 별로 안 좋아하니까. 대신 들통에 있는 콩 통조림 스프를 섞어 진득하게 만든 뒤 접시에 담았다.

겸상이 익숙해진 아지는 곧장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그 앞에 접시를 내려놓으며 종을 흔들었다.

딸랑.

“그래야 따뜻하게 데워서 줄 거 아니야!”

“멍멍!”

이제는 신호가 되어버린 종소리와 함께, 아지는 눈을 반짝이며 곧장 접시에 얼굴을 처박았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했던가. 회귀자의 출자로 그 어느 때보다 호화로운 식자재를 얻은 우리는 졸부처럼 흥청망청 쓰기 시작했다.

소문으로만 들어온 재료를 앞두고 조심스러웠던 것도 잠시. 벌써 이에 익숙해진 우리는 이전의 보수적인 태도를 버리고 진보로 나아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참신한 시도에 환호를 보냈으며, 절약은 내다 버렸다.

아지 챙겨준 김에 나도 리조또를 접시에 담아 한 숟갈 퍼먹었다. 정돈된 맛은 아니었으나, 고급 재료를 아낌없이 쓴 덕분에 야성적으로 날뛰는 풍미가 인상적이었다.

“재료가 좋으니 개밥을 만들어도 맛있구만.”

이번에는 낭비를 좀 했으니, 다음에는 조금 안정적인 음식을 만들어볼까.

어차피 못 먹어도 아지나 나비 주면 되니까.

“냐. 그래 봤자 멍멍이 밥이다냐.”

그때였다. 어느새 식당에 나타난 나비가 제 앞발을 핥았다. 나비는 냄비와 프라이팬에 든 음식을 보고는 인상을 썼다.

“냐아아.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드는 음식 뿐이다냐. 멍청한 멍멍이나 좋다고 먹지, 냐의 입에 들어가기에는 질이 낮다냐.”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셰이 씨가 약 안 챙겨줬니? 왜 여기까지 와서 신경질이야?”

“냐는 음식에 대해 불평하는 거다냐, 시종! 억지로 먹는 것도 한 번이다냐!”

“나보고 시종이라고? 짐승이?”

“음식을 마련하고 잡일을 하는 게 시종이 아니면 무엇이냐!”

나비는 앞발을 불만스럽게 휘적였다.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나비는 육식동물. 고기 아니면 영 먹지 않는 것이다. 고기보단 곡식이 많아 그것을 주로 썼는데, 곡물 위주 식단에 불만을 품고 온 거겠지.

물론, 그렇다고 내가 약쟁이 고양이 따위를 봐줘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아지에게 손짓했고, 아지는 입에 있던 음식을 꿀꺽 삼킨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비는 뒤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도 모른 채 밥투정했다.

“냐아아! 참고 봐주는 것도 여기까지다냐! 다음 메뉴는, 조금 더 냐를 위한 것을….”

“냠.”

“냐하악?!”

뒤에서 은밀하게 다가온 아지가 나비의 목을 깨물었다. 한순간 목숨줄을 잡힌 나비는 전신의 털을 쭈뼛 세우고는 박제라도 된 듯 그대로 멈췄다. 불안하게 데굴데굴 구르는 눈만 유일하게 움직이는 부분이었다.

아지를 이용하여 단숨에 나비를 제압한 나는 목을 좌우로 흔들며 걸어갔다.

“너는, 이 자식아. 우리 투자자님께서 음식 재료를 넉넉히 주지만 않았어도 가장 먼저 퇴출이었어.”

“냐하아. 냐하아. 냐하아….”

애처롭게 우는 나비를 향해 위협적으로 걸어가던 나는, 품 안으로 손을 뻗었다. 나비의 눈이 한층 더 커졌다.

“하지만 내 생일은 안 챙겨도, 정승 댁 개 생일을 챙겨야 하는 법. 우리 투자자 님의 애완동물을 함부로 할 수는 없지.”

그렇게 내가 품 안에서 꺼낸 건 통조림 캔이었다. 하지만 이 안에 든 것은 조리한 키메라 콩이 아니었다.

군국 특제 압축 통조림. 그 캔은 연금술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재활용 할 수 있다. 나는 어제 밤새 만든 통조림 뚜껑을 따서 나비에게 내밀었다.

그 안에 든 건, 고양이를 위한 특별 간식. 염장고기를 콩 통조림과 섞어서 묽게 만든 습식 고기사료.

“냐하아?”

“고작 동물을 위해서 따로 수고를 들여 요리하다니, 인간의 수치나 다를 바 없는 일이지만…. 내가 원래 이런 짓은 절대 안 하는데 물주님 때문에 특별히 해주는 거로 알아. 알았어?”

“냐하….”

내가 통조림 캔을 내밀자, 나비는 뒷목이 물린 상태에서도 혀를 내밀어 맛을 보았다. 그리고는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할짝거렸다.

나비가 간식 먹기에 여념이 없자, 붕 뜨게 된 아지도 나비의 목에서 천천히 입을 뗐다. 그리고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원망스럽게 짖었다.

“멍….”

“어? 야, 왜.”

“나, 말 잘 들어…. 착해…. 멍…. 그런데….”

세상에 배신당한 것처럼 서운하게 나비와 통조림을 바라보는 아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너는 식탁에 앉아서 우리 먹는 밥 먹잖아. 겸상까지 하면서.”

“멍! 그건 밥! 이건 간식! 멍멍!”

“아니, 개가 밥이랑 간식을 가리네. 주는 대로 처먹을 것이지.”

이래서 짐승에게는 애초에 잘해주면 안 돼. 아예 초장부터 잡아놨어야 했는데.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든 통조림을 서서히 움직였다. 나비의 얼굴은 통조림에 달라붙기라도 한 듯 따라왔다. 그대로 식탁 위에 내려놓자 나비도 얼굴을 식탁에 박은 꼴이 되었다.

그 뒤, 나는 품 안에서 다른 통조림을 하나 더 꺼내서 건넸다.

“…그래. 너도 먹어라. 돼지. 대신 밥 다 먹으면 까줄게.”

“응! 멍!”

짖을 시간도 아까운지, 아지는 곧장 챱챱거리며 접시에 담긴 밥을 먹었다. 통조림 캔 위에 앞발을 소중히 올려놓은 채.

이 축생들을 어찌해야 할지. 내가 한숨을 내쉬던 때였다.

마침 식당으로 불사자와 칼리스가 들어왔다.

돌아다녀도 괜찮을 정도로는 회복되었으나, 아직 스스로 걷는 건 무리였던 칼리스는 여전히 불사자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라쉬는 말만 야만인. 접촉에 거부감은 없으나 배려심이 과해. 체조는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지만, 완치하기 전까지는 낫지 않은 척 붙어 다니자. 3개월,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히….’

어쨌든 그랬다.

칼리스의 생각도 눈치채지 못한 채, 불사자는 식당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뭐요! 다 드시고 계셨군! 벌써 밥때가 된 것이오?”

“짐승에게 밥때가 어디 있겠어요? 눈앞에 음식이 있으면 먹는 거지.”

식탁에 사이좋게 앉아서 간식을 처먹는 두 짐승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불사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잘도 먹는군. 선생, 선생은 복 받으실 거요! 예로부터 짐승 아가씨에게 은혜를 베풀면 배로 돌아온다고 했소!”

“나 자신에게 베풀 은혜도 없는데 뭔 짐승에게 베풀어요. 남으면 주는 거지.”

“구분이 칼 같으시구만! 선생처럼 짐승 아가씨들을 짐승으로 보는 사람도 없을 거요!”

“짐승의 왕이잖아요. 짐승 맞다니까요.”

대화를 나누며 칼리스를 조심스레 의자에 앉힌 라쉬는 이제 냄비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는 접시에 음식을 담으며 말했다.

“그래도 인간과 대화를 위해 인간의 모습을 취한 아가씨들 아니겠소! 말도 통하고 뜻도 이해하는데 어찌 짐승과 똑같이 대하오?”

“라쉬 씨는 편지가 일어서서 말하면 어떻게 대할 거예요?”

“편지처럼 대하지는 못할 것 같소만!”

“인간으로 대하지도 않겠죠. 비슷한 거예요.”

불사자는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그리 말하면 할 말이 없군! 그런데 군국 사람은 다 선생처럼 말을 잘하오?”

“네. 제가 군국 평균이에요.”

‘거짓말…!’

칼리스에게서 무례한 생각이 들려왔다.

왜 그래, 네 거짓말보다는 낫지. 너는 그 군국 제식 체조를 할 정도로 회복되었으면서도 아픈 척하잖아.

“칼리스! 오늘은 딱딱한 것을 먹을 수 있겠소?”

불사자의 물음에, 칼리스는 의도된 지연을 일으키며 힘겨운 척 대답했다.

“라쉬, 저는… 윽, 스프를, 부탁드립니다.”

“아직도 다 낫지 않으셨소? 허허. 이래서 쉽게 죽는 이들은 조심해야 한다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불사자는 커다란 들통에 든 콩 수프를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는 숟갈과 함께 칼리스의 앞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어때, 혼자 드실 수는 있겠소?”

칼리스는 손을 들어보였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았는지, 그녀의 손은 힘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런 것치고는 떨림이 미묘하게 인위적이었지만, 불사자는 손떨림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수저를 잡으려다 포기한 칼리스는, 테이블 한쪽에서 통조림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는 아지와 나비를 보고는 중얼거렸다.

“…괜찮습니다. 짐승의 왕들처럼 허리를 숙이고 먹으면…. 윽.”

“허허. 배를 찔린 사람이 어떻게 허리를 숙이고 먹는다는 말이오?”

혀를 찬 불사자는 숟갈을 들었다. 스프를 가득 뜬 그는, 우락부락한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 섬세함으로 매끄럽게 칼리스의 입에 갖다 댔다. 찰랑거리는 스프는 입술에 닿기 직전 멈추면서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드시오. 아, 혹 뜨거울지도 모르니, 먼저 식힌 다음 드시오. 본인은 뜨거운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모르니.”

“팔 아플 텐데….”

불사자가 홱홱 고개를 저었다. 고개가 격렬하게 움직이는 데도 여전히 숟갈은 미동도 않았다.

“나는 불사자요. 다치지 않으며, 지치지도 않지. 팔이 아프거나 저리는 것을 겪어본 적 없소. 가끔은 내 오른팔이 붙어있는지 아닌지도 모른다오.”

“…그건.”

“그러니까, 숟갈을 계속 들고 있어도 멀쩡하다는 말씀! 원할 때까지 식혀 드시오!”

따뜻한 마음이 물씬 느껴지는 사소한 배려에 칼리스는 순간적으로 표정을 흐렸다.

‘…나에게는 너무 큰 사람. 하지만, 분에 넘치는 꿈을 꾸는 건 익숙해. 그러기 위해서라도.’

결심을 마친 칼리스는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어, 천천히 숟가락 아래쪽부터 쓸었다.

불사자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조금은 그 동작을 의식했다.

‘…군국 장교들은 다 이렇게 먹나? 장교들이 더하구만. 다른 사람들은 평범하게 먹던 것 같은데!’

‘역시, 스프만으로는 부족해…. 빨리 회복해서 기정사실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오늘 밤에 몰래 다시 찾아와 음식을 먹어야겠어.’

너였냐. 밤에 훔쳐먹었던 게.

에휴. 그래도 저건 먹을 사람이 먹는 거니까, 뭐. 어차피 식수인원은 똑같으니, 식당의 수호자로서 용납할 수 있는 범위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다 먹은 접시를 수돗가에 갖다 둘 때였다.

새카맣게 칠한 관을 대동한 티르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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