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0 기공파!
시작은 아주 우연한 의문이었다.
“티르. 저번에 혈조술이 약해졌다고 했는데, 대신 육체 능력이 올라갔잖아요. 나비를 주먹 한 방에 잠재워버리고.”
“연유가 어찌 된 건지는 모르나, 그렇게 되었다.”
“대신 몸 밖의 피를 다루는 능력이 약해지고. 흠… 이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신체능력이 강해졌다고는 해도, 어차피 안 죽으니까 별 소용 없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나는 아직 어둠을 다룰 수 있다. 어둠은 생명이 빛에 그을린 뒤 남은 재. 그것만 있다면 흑기사를….”
“흑기사 그거 다 쓸모없잖아요. 그냥 손만 휘저으면 사라지는 수준이던데.”
“…보, 본디. 흑기사는 혈기를 둘러야 강해지는 것. 혈기를 몸에 두른 흑기사는 기사와도 자웅을 겨루었지.”
“혈기를 몸 바깥에 두르는 거 이제 못 쓴다면서요. 랄리온이 그나마 유일하게 사역마다운 사역마잖아요.”
“…우으.”
무능함을 질책당한 티르는 기가 죽어서 고개를 숙였다.
말 한마디로 시조를 수그리게 하는 나. 성황청은 나에게 성자의 칭호를 내려라.
“만일 밖에서 군국의 군대와 마주쳤다고 생각해봐요. 그 흑기사들로 막을 수 있겠어요? 랄리온 혼자서 뻔질나게 돌아다니겠죠.”
“나, 나도 힘이 조금 생겼다.”
“글쎄. 개인의 힘이 강한 거야 좋지만. 존재만으로도 나라를 뒤흔들거나 전황을 뒤바꿀 수는 없죠. 거기다 새로 얻은 지 얼마 안 됐잖아요. 힘이 얼마나 되는지 객관적으로 모르니까.”
나는 손가락으로 감옥 한구석에 쌓여있는 잔해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거대한 철골이 반쯤 땅에 틀어박혀 있었다.
“어디, 힘이나 봅시다. 혹시 저 철골을 들 수 있겠어요?”
한때 감옥을 지탱했던 거대한 철골. 콘크리트 내부에서 뼈대를 잡아주고 부스러지지 않게 지탱해주는 거대한 연금강 철골을 들 수 있을지….
…뭐야. 그게 왜 저깄어요. 돌려줘요.
“오냐. 물론이다.”
“어? 잠깐….”
자기 힘을 증명하고 싶었던 티르는 팔을 휘두르며 철골로 향했다. 작은 손으로 철골을 힘차게 붙잡았다.
‘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내 힘을 보여야겠구나. 네 뒤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 확실히 깨닫도록 하거라…. 헌데, 내가 이 커다란 것을 혈조술의 힘으로 들 수 있을까.’
철골의 크기에 자신이 없어진 티르는, 온 힘을 다해서 철골을 쥐었다.
끼기기긱. 강철이 우그러들고 비틀어진다. 군국이 자랑하는 연금강은 소녀의 손 앞에서 찰흙처럼 모습을 바꾸었다.
애초에 성인 남성도 한 손에 쥐지도 못할 두꺼운 철골이, 소녀의 손모양으로 맞추어진다. 그녀가 잡는 부분이 곧 손잡이가 된다.
그리고.
“우왓!”
드드드드득.
땅이 거세게 흔들렸다.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다잡으며 경악에 찬 시선을 보냈다.
아니, 잠깐만. 여기는 땅도 아닌데 왜 지진이.
“멍! 멍! 멍!”
“냐아-! 냐아-!”
재난의 전조를 느낀 짐승이 가장 먼저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무슨? 무슨 일이야?”
진동이 어찌나 컸는지 수련에 매진하던 회귀자도 맨발로 뛰쳐나올 정도. 저 위쪽에서는 불사자가 칼리스를 데리고 옥상으로 대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모든 일의 장본인인 티르는, 바닥에 묻혀있는 철골을 당겨서 빼내고 있었다. 콘크리트 땅 안으로 뿌리내린 철골을, 손으로 당겨서.
티르의 발밑이 힘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그럴 때마다 철골이 비틀리며 점점 그 뿌리를 드러낸다. 모습만 보면 잡초를 뽑아내는 농부를 닮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뚝. 당겨지다 한계에 봉착한 철골이 중간에서 뚝 끊어졌다. 그 순간 진동이 멎으며 지반째로 들어올려졌던 탄탈로스가 2cm 정도 아래로 가라앉았다. 쿵, 하고 감옥 건물이 짧지만 격렬하게 ‘착지’했다.
인간은커녕 중장비조차 이루지 못할 위업을 이룬 티르는, 중간에 끊어진 철골을 들어 올리며 힘없이 말했다.
“…확실히, 힘이 약해진 모양이다. 고작 이 정도 무게는 내가 만든 어둠으로도 들 수 있거늘…. 어려웠구나.”
나와 회귀자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티르를 쳐다보았다.
티르를 데리고 교육실로 향한 나는 칠판을 탕탕 두들겼다.
“오늘은 기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혈조술은 기공의 일종이다.
기공이란 몸을 다루는 기공사들의 기술.
기력을 검에 불어넣어 칼날을 더 날카롭고 단단하게 하거나, 땅으로 충격을 흘려내거나, 몸을 단단하게 만드는 기공사들은 평범한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전투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지켜본 바에 의하면.
“티르의 혈조술은 기공이에요.”
나는 한 번 더 설명했다.
“혈조술을 통한 신체의 강화. 생명의 연장, 재생력…. 이 모든 건, 티르의 힘이 기공이어서 가능했던 거예요. 다만 티르가 겪은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티르의 힘은 내부가 아니라 세상 바깥으로 뻗어 나가 잠식하는 종류가 되어버렸던 거죠. 그게 심장을 되찾으면서 돌아온 거고요.”
회귀자는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기에 놀라지 않았다.
그것이 이해를 기반으로 한 기공의 일종이라는 것을 깨닫고, 익힐 겸 무저갱에 미리 내려와 있던 것이기에.
“다만 티르가 너무 갑작스럽게 힘을 찾아서인지, 넘치는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잘 모르는 것 같네요. 저는 기공에 아무런 소질이 없으니, 오늘은 셰이 씨를 일일 강사로 초빙하겠습니다. 자, 박수!”
짝짝짝.
나는 회귀자를 부리며 열렬히 손뼉을 쳤다.
정작 내 부름을 받은 회귀자는 멀뚱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내가 일일 강사라고?”
“네!”
“이상하네.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지금 처음 말했으니까요.”
‘…이상하단 말이야. 마력초를 피우는 건 나비인데, 가끔 저 녀석은 나비보다도 미친 것처럼 보이니….’
회귀자가 난색을 표하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익힌 건 제식기공이 아니야.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네가 해.”
“제가요? 으음, 제가 아무리 중등군사학교 수석이었다고 해도, 사관학교는 안 들어갔던지라 기공은 못 배웠는데….”
“또 자연스럽게 거짓말한다. 너, 기공 쓸 수 있잖아.”
회귀자는 이제 익숙한지 별다른 감정 소모 없이 대응했다.
“천앵의 칼날은 기공이 없으면 건드릴 수조차 없어.”
“그런데요?”
“내가 휘두른 천앵을 튕겨낸 ‘최소한’ 기공을 익히고 있다는 뜻이지. 자연스럽게 네가 기공을 쓸 수 있다는 의미가 되고.”
‘그래서 내가 최소 장교라고 착각…? 아니, 보통 노역자는 아니니 착각은 아니었지. 어쨌든, 그렇게 생각했던 거고.’
그때부터였지. 나를 과대평가한 게.
맞다. 회귀자의 생각대로 나는 기공을 다룰 수 있다.
다만, 어디까지나 할 수 있을 뿐이지, 힘의 총량과 출력이 형편없어서 카드 한 장에 기운을 불어넣으면 골골대는 약골이다. 0과 1 사이에서 당당하게 0.1에 위치하는 존재는 하나 미미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솔직히, 천앵 튕겨내는 건 두 번 하라면 다시는 못 할 우연이었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제가 알려드리는 게 인지상정이겠죠.”
칠판으로 되돌아간 나는 분필을 집어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 기공은 보통 세 가지로 나뉩니다.”
그린 것은 땅과, 사람과, 하늘.
나는 그 사람의 몸에서 뻗어나가는 화살표를 그리며 말했다.
“건(乾). 세상 만물에 기운을 흩뿌리는 것.”
그 다음, 사람의 발에서부터 땅으로 스며드는 선을 그었다.
“곤(坤). 땅에 기운을 내뿜어, 나의 몸을 단단히 떠받치는 것.”
마지막으로 사람의 몸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기운을 표현했다.
“감(坎). 기운을 자기 자신에게 집중시켜, 육신을 바꾸는 것.”
탁탁. 분필로 두어 번 칠판을 두드린 나는 몸을 빙글 돌렸다.
“이게 기본적인 기공의 분류입니다. 참고로, 군국 제식 기공에서는 건, 곤, 감 순서대로 익히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편이 가장 익히기 쉽다네요.”
익숙한 단어가 언급되자 티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르침 자체는 예전 지모신의 도사들이 설명했던 것과 비슷해 보이는구나.”
“거기서 따온 거니까요. 단, 세상과 자연의 이치를 두루뭉술하게 표현했던 도사들과는 달리, 기공의 분류는 실용적이고 분석적으로 접근한 거예요.”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여주는 게 훨씬 이해하기 쉽겠지.
한 줌밖에 없는 내 기공으로 잘 될까 모르지만, 일단 시도만 해보자.
“기공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이제 그 예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는 카드 한 장을 꺼내어 교탁 한복판에 뒤집어놓았다. 오늘은 마술하려던 게 아니었기에 다른 카드는 준비하지 않았다.
대신, 검지손가락을 펼쳐 카드 뒷면과 약간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다.
“빨아들이는 기운. 흡착기공.”
교탁에 가만히 놓여있던 카드가 들썩거렸다. 그러다 내가 힘을 주자, 카드는 자석처럼 내 손가락 끝에 착 달라붙었다.
나는 그렇게 달라붙은 카드를 위로 향했다.
“튕겨내는 기운. 반탄기공.”
손가락을 튕기지도 않았는데, 카드가 제 홀로 통 튕겨 올랐다. 그렇게 카드는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떨어졌다.
“이 두 가지가 모든 활용의 기본이 됩니다. 다른 활용법도 결국 밀고 당기는 것의 파생에 불과하죠. 또한, 이 기운은 몸뿐만 아니라 물건에도 두를 수 있습니다.”
나는 기공을 카드에 둘렀다. 그리고 옷자락을 들어 올려, 날카로워진 카드의 끝으로 한번 그었다.
핏, 하고 예리한 카드 끄트머리가 옷자락을 베어냈다.
내 솜씨를 본 티르가 놀라워했다.
“검기? 휴, 너는 익스퍼트였느냐? 세상에. 왠지 범상치 않더만….”
“아뇨아뇨. 이건 고등사관학교 문턱이라도 밟은 사람이라면 다 할 줄 아는 기공이에요. 기사들이 옛날에 쓰던 검기라고 불리는 것도, 사실은 칼날에 얇게 두른 반탄기공에 불과하죠.”
무언가를 베려는 칼날은 필연적으로 베려던 것에 들러붙기 마련이다. 무기를 휘두르는 자는 언제나 죽은 자를 두려워했다. 힘차게 내지른 무기를 죽은 자가 붙잡고 놔주지 않으면, 다음 시체는 자신이 되었으므로.
그러나 검기를 쓰는 자들은 이런 제약에서 벗어난다. 뼈와 근육을 헤집은 칼날은 반탄기공으로 들러붙는 것들을 떨쳐내고 빠져나오기 때문에, 그들의 무기에 죽을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은 살인의 전문가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르기를 익스퍼트.
물론, 이제는 좀 낡은 개념이다.
“그렇다면, 요즘에는 아무나 다 검기를 휘두르고 다닌다는 말이냐? 왠지, 일개 병사의 강함이 상궤를 벗어난 수준이었거늘….”
“그래요. 제가 뒷골목을 주름잡았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조금 유명한 수준. 진짜들은 저 이상의 수준급 기공을 익히고 있다고요. 이제 왜 힘의 사용법을 익혀야 하는지 아시겠죠?”
“알겠다. 지금이라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너는커녕 나 자신조차 지키지 못할 것 같구나. 집중하겠다.”
티르가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정작, 회귀자는 어이없어할 뿐이었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 지금까지 내려온 건 병사가 아니라 장교였다고. 한 명은 마도장교고, 다른 한 명은 장성의 부관에다 마지막은 장성인데…. 아무리 봐도 지금 티르칸쟈카는 장성조차 아득히 넘은 수준이잖아!’
회귀자는 입이 근질근질한 모양이었으나, 이글거리는 눈으로 집중하는 티르를 보고는 마음을 바꾸었다.
‘그래도 티르칸쟈카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으니, 일단 입을 다물까.’
어째 선생이나 학생이나 생각하는 게 비슷하다. 닮아가는 건가.
“제가 보건대, 티르의 힘은 극도의 감(坎) 기공이에요. 힘은 넘치는 데 몸 바깥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있는 거죠.”
힘은 충분한데 활용하지 못하는 것. 군국이 제일 싫어하는 경우다.
다만 해결법도 단순하다.
“힘을 쏘아내는 법을 연습하면 돼요.”
“힘을 쏘아내지 못하여 수련하려는 것인데, 어떻게 연습을 한다는 말이냐?”
“이런 식으로요.”
오른손 중지를 말아 엄지에 걸었다. 이른바 딱밤 준비 자세다.
왼손으로 카드를 들어 손가락이 닿지 않을 거리까지 옮겼다. 아무리 봐도 내 손가락보다 멀리 있어서, 딱밤을 튕겨도 전혀 맞지 않을 것이다.
“얍.”
그러나 내가 손가락을 휘두르자,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카드가 뒤로 홱 젖혀졌다.
내 손끝에서 흩뿌린 기공이 카드를 쳐낸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닿지 않을 거리에서 딱밤을 날리다 보면 조금씩 감이 잡혀요.”
이것이 바로 뒷골목에서 카드 튕기던 솜씨다. 어떠냐.
주의 깊게 카드를 바라보던 티르가 신기해했다.
“분명 닿지 않았거늘…. 멀리 있는 것을 때리다니. 꼭 장풍 같구나.”
“예전에는 그렇게 말하기도 했죠. 자. 카드를 드릴 테니 한번 해보세요.”
티르는 내가 했던 대로 카드를 닿지 않을 거리에 둔 채, 반대쪽 손가락을 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힘차게 튕겼다.
단지 그랬을 뿐인데.
펑.
공기가 폭탄처럼 터졌다. 바람이 요동치며, 폭풍에 휘말린 카드가 뒤로 젖혀졌다. 흘러나온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성공했다!”
티르는 뿌듯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아니, 그건.
“그건 진짜 풍압이잖아요. 티르의 힘이 너무 강한 거예요.”
카드로는 안 되겠네. 잘 휘어지는 카드 대신 나무토막을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불만스러워하던 티르는 이내 연습에 몰두했다.
자습을 시키니 몸도, 마음도 이리 편할 수가 없다. 하염없이 손가락을 튕기는 티르만 가만히 지켜볼 때였다.
“이론은 정말 충실하네.”
아는 이야기가 나와서일까. 회귀자가 친근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중등군사학교 수석이었다니까요.”
“중퇴라며. 그러면 나랑 같은 초졸이잖아?”
“어허. 문턱도 못 밟은 사람과, 수석을 밥 먹듯이 하다가 자퇴한 사람과 똑같습니까? 어이가 없네요.”
언제나 사방에 기운을 흩뿌리고 있는 회귀자는 오늘도 천앵을 머리 위에 띄워둔 채였다.
무게 없는 검, 천앵은 기공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반탄기공으로 밀어내면 그대로 튕겨나가고, 흡착기공으로 당기면 그대로 달라붙는다.
회귀자가 천앵을 머리 위에 띄워두는 건 그 자체로 일종의 수련이었다. 밀지도, 당기지도 않게 균형을 잡는 건 세심한 제어 없이는 불가능했으니.
내가 손가락으로 천앵을 튕겨낼 수 있었던 것도 기공 덕분. 비록 내 기운이 한 줌밖에 안 된다지만, 천앵은 너무나 가벼워서 한순간 기운을 뿜어낸 것으로도 밀쳐낼 수 있었다.
만일 저게 강철이었다면…. 어후, 상상도 하기 싫다. 외팔이 마술사라니.
“잘났다, 수석. 그런데 남은 하나는 왜 안 가르쳐 줘?”
“남은 하나요?”
“알잖아. 건(乾), 곤(坤), 감(坎). 그 다음에 있는 것.”
기공, 그 모든 것의 이상향. 마법조차 초월하여 신에 이른다는 극의.
입에 담는 것으로도 조심스러운 그 경지를, 회귀자는 담담하게 꺼냈다.
“리(離).”
‘나도 아직 닿지 못한… 그리고 내로라하는 강자들도 닿기만 하고 움켜쥐지는 못한, 전설의 경지.’
자기도 전설이라 생각하면서 이걸 초보에게 알려준다고? 이제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 자동마차 운전법을 가르치는 꼴이다.
“기공이 이치에 닿아서 세상을 뒤틀어버리는 경지요? 그걸 지금 굳이 알려줄 필요 없잖아요. 알려준다고 해도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다 달라서 기준이 있지도 않고.”
“그렇지만, 몇몇은 쓸 수도 있잖아.”
“살면서 이치에 닿은 기공사를 만날 일이 있을까요? 그리고 이치에 닿아봤자 무적도 아니잖아요. 나는 티르가 이길 수 있다고 봐요.”
세상을 뒤틀어봤자 뭐하냐. 티르가 몸으로 버티고 다가가 주먹을 휘두르면 죽을 텐데.
신의 경지라고 한들 약골이면 티르의 주먹 그대로 머리가 날아가버릴 것이다. 요즘은 신도 약하면 살아남지 못해.
내 정석적인 대답에 회귀자는 아쉬운 티를 숨기지 않았다.
“너도 별다른 단서는 없는 모양이네.”
“단서가 있어요? 있다면 제가 보고 싶네요. 나도 잡아서 대단한 힘 좀 부려보게.”
“…그건 그렇지.”
회귀자가 씁쓸하게 중얼거릴 무렵이었다.
홀로 손가락을 튕기던 티르가 무언가를 알아낸 듯 나를 불렀다.
“휴. 방법을 알아냈다.”
“네? 벌써요?”
혈조술이 이미 전신에 가득한 상태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짧은 순간에?
“어디, 해보세요.”
“잘 보거라. 내 원래 혈조술을 쓰던 방법을 조금 응용해보았다….”
티르는 자기 손가락 끝을 손톱으로 꾹 눌렀다. 살이 살짝 뭉개지며 끄트머리에서 피가 배어 나온다.
그 상태로, 티르는 힘차게 손가락을 튕겼다.
세상이 반으로 갈라졌다.
분명, 한순간 내 망막에는 부채꼴로 펼쳐지는 선혈의 파도가 맺혔다. 티르의 손가락에서 뻗어 나간 핏물이 교육실 절반 정도를 삼켰다.
그러나 내가 눈을 깜빡였을 때, 그 혈기는 다시 티르의 몸속으로 되돌아온 이후였다.
생각을 읽은 나조차도 환각인가 싶었던 광경.
그러나, 완전히 터져나간 나무토막만이 조금 전 일어난 일이 현실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만일 내 쪽을 보고 손가락을 튕겼다면… 와. 티르와 하나가 되었겠다. 물리적인 의미로.
“혈기가 내 몸에서 멀어지려고 하지 않는구나. 그래도 이만하면 쓸만하지 않느냐.”
이건 그냥…. 자기 피와 살점을 튕겨서 쏘아 보낸 거잖아.
내가 아는 기공은 이게 아닌데.
두려움에 덜덜 떠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내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