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124화 (124/384)

EP.124 탄탈로스의 역사

나를 조용히 시킨 지선은 모두를 바라보며 물었다.

“탄탈로스가 어찌 생겼는지 아시오이까?”

앗, 기출문제다. 나는 냉큼 나섰다.

“마침 예습한 내용이네요! 티르, 말해줘요!”

“알다마다. 패왕의 학살 때문이 아니더냐? 생긴 이유는, 그 설이 몇 개로 갈리기는 하지만. 지모신이 분노하였다는 이유가 주된 것일 터.”

답해놓고 칭찬을 바라듯 나를 바라보는 티르.

그러나 지선이 고개를 젓는 바람에 칭찬은 나중 일이 되었다.

“아니! 무저갱 말고, 탄탈로스 말이외다.”

“탄탈로스? 혹 우리가 딛고 있는 이 건물을 말하는 것이냐?”

“그렇소이다.”

“…그건 모른다. 모시겠다기에 내버려 두었더니, 눈을 떴더니 이곳이었다.”

당연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탄탈로스는 무저갱에 만들어졌긴 했지만, 그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았다. 또 이곳에 있는 이들은 거짓말로도 상식이 풍부하다고 말할 수 없던 탓이다.

이 공간에서 답을 아는 유일한 존재였던 지선이 입을 열었다.

“대지가 무저갱으로 인하여 황량해진 뒤, 지모신께서도 지엄한 신이며 분노할 수 있다는 것을 안 백성들은 그녀를 두려워하기 시작하였소이다. 더불어 매장자를 사칭하는 이들이 사방에 나다닌 탓에 사람들은 점차 지모신교를 꺼리게 되었지.

교세를 다시 세우기 위해선 지모신의 분노를 잠재우고 무저갱을 되돌려야 했소이다. 하여, 소인은 군국과 교섭을 맺었소이다.”

군국이 쿠데타를 성공시킨 뒤.

그들은 죄인을 처벌하는 동시에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기획했다.

다만, 군국에겐 그만한 공사를 일으킬 노하우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공사라는 이름의 생매장이 자행될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만한 인명을 죽일 수는 없었다. 패왕의 예도 있고, 그 자체로 인력자원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충성 대신 효율성을 숭상하는 군국은, 가장 손쉬우면서도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흩어져 지내던 지모신도를 한데 불러모은 것이다.

“군국의 공사에 도움을 준다면, 무저갱을 뒤덮을 ‘뚜껑’을 만들어주기로 한 게 그 약조이외다.”

인구 대다수가 천신과 성녀를 믿는 현재, 지모신교와의 결탁은 민의는 물론 타국에도 반하는 행위였다.

물론 군국은 그딴 사소한 것을 신경 쓰는 나라가 아니었다.

다만, 그렇다고 박해당했던 지모신도들이 군국을 냅다 따랐을 리는 없다. 충분한 미끼가 없다면 말이다.

“무저갱을 없애는 건 모두의 숙원. 매장자의 업보를 매장하기 위해 전 세계에 흩어진 신도들이 모였소이다. 그들은 소인을 믿고 따랐지.”

그리고 지금, 군국이 무엇을 미끼로 지모신도를 불러모았는지. 그 진실이 밝혀졌다.

“그러니까, 원래 탄탈로스는 무저갱을 뚜껑처럼 뒤덮을 예정이었다는 거죠?”

“그렇소이다. 본디 탄탈로스는 무저갱을 뒤덮어 대지모신의 분노를 덮어둘 뚜껑으로 만들어진 것이외다. 끓어오르는 냄비의 뚜껑을 덮듯, 그렇게 가린다면 분노도 잠잠해질 것이라… 우습게도, 소인은 그렇게 여겼소이다.”

하긴, 메우기 힘든 구멍이 있으면 위를 덮을 생각부터 하기 마련이지. 누구나 할 법한 평범한 발상이다.

단, 그 구멍이 어마어마하게 커서 감히 시도할 생각을 못했을 뿐이다.

같은 발상도 규모에 따라서 실현 가능성이 달라진다. 무저갱은 너무 크고 깊었으며, 따라서 지금껏 그 누구도 무저갱 위를 뒤엎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만한 규모의 뚜껑을 만들 여력도, 기술도 없었으니.

…눈앞에 지선을 빼고 말이다.

지선은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5년에 걸친 군국의 대공사 동안 우리 모두 뼈가 가루가 되도록 일했고, 형제자매들도 여럿 쓰러졌소이다. 그럼에도 평생의 숙원을 위하여 모두 힘을 합쳤지. 형제, 자매, 아들딸. 모두 단결하여 고된 노동을 이어나갔소이다. 그렇게 약조한 일을 끝낸 뒤 우리는 군국에 요구하였고, 군국은 약조를 지켰소이다.”

그렇게 축복을 받은 콘크리트로 무저갱의 지름보다도 더 큰 구조물을 만들어냈다고.

어마어마한 위업을 이룩한 장본인이면서도 지선은 책을 읽듯 무미건조하게 설명했다.

“그렇게 뚜껑을 완성한 뒤, 육장성 중 일인인 마장(魔將)이 친히 무저갱에 옮겨 그 위를 뒤덮었소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것 같은 아득한 공허. 그것이 당장 뚜껑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자, 평생의 숙원을 이룬 줄 알았던 우리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소이다. 드디어 먼 옛날 저지른 과오를 바로잡고,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은 것만 같았는데….”

같았는데, 거기서 잠깐 목이 메 끝난 말.

그 이후 일어난 일을 나는 알고 있다.

어떤 레지스탕스 기술자에게서 읽어냈거든.

“그 위에 발을 디딘 순간, 땅이 무저갱 아래로 가라앉았군요. 무저갱의 저주는 고작 뚜껑 따위로 가려질 것이 아니라서.”

“…누군가에게 들은 모양이구려. 하긴, 그 당시에는 비밀도 아니었으니.”

삶에 몇 없던 처참한 실패를 되새기며, 지선은 힘없이 긍정했다.

“…정확하외다. 소인이 첫발을 내디디자, 그만큼 주저앉았지. 그때, 발밑이 꺼지는 듯한 절망감이란.”

어려운 부분을 넘겨주자 지선의 입에서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그 실망이, 절망이 얼마나 컸을지. 5년간의 노고에도 보상 하나 없었던 게 어찌나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는지. 소인을 믿고 따라와 준 동료에게 할 말이 없었지….”

침잠한 감정, 핍박받던 이들을 이끈 이는 그 실패에 커다란 책임을 느꼈다.

말라비틀어진 목소리는 흙먼지가 가라앉은 듯 낮고 어두웠다.

“모두 크게 실망하여 방방곳곳으로 흩어지고, 소인 홀로 남아 끔찍한 실패를 되뇌고 있었소이다. 그러나, 다음 경치는 가파른 절벽에 이르러서야 보이는 법이니. 한참 무저갱을 바라보던 소인은 깨달았소이다. 우리가 뒤덮은 것은 뚜껑이 아니라 땅이었으며, 그 땅이, 무저갱의 근원에 도달할 열쇠라는 것을.”

본래 무저갱 아래로 떨어져, 허수공간 속에서 무한히 낙하해야 할 콘크리트 구조물.

신기하게도 그건 발을 디디지 않으면 가라앉지 않았다. 다른 평범한 물건과는 달리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발을 디디지 못하는 땅은 의미가 없기에 그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의 실패에 미련을 가진 지선을 제외하고는.

“무저갱의 밑바닥에 도달하기 위해선, 인간이 이 대지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야 했소이다.”

무한하기에 무의미한 공간.

그 속에서 의미를 갖추기 위해선 인간이 발을 디디고 역사를 쌓아가야 했다. 나고 자라고 죽으며 그 땅에서 살아갈수록 탄탈로스는 무저갱의 근원에 가까워졌다.

그렇기에 지선에겐 탄탈로스에서 지낼 사람이 필요로 했다.

“소인은,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무저갱의 근원에 닿기 위하여 홀로 무저갱에서 지내려고 하였소이다. 이 땅이 저 아래 도달할 때까지, 혹은 이 육신이 잠들어서 묻힐 때까지 계속.”

“하지만 그건 너무 기약 없지 않나요?”

나는 질문을 조금썩 던지며 지선의 대답을 이끌어냈다.

“군국도 그리 말했지. 너무 기약 없는 일이라며, 그토록 귀중한 능력을 낭비하는 대신 군국에서 이곳을 감옥으로 삼겠다고 제안하였소이다. 죽어 마땅한 죄수가 많으니 그들을 가두는 지옥으로 만들겠다고. 그렇다면, 그들의 목숨도 보탬이 되는 셈일 테니.”

“아, 그래서 군국이 자꾸 이곳으로 사람을 몰아넣었던 것이군요.”

지선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모신의 지옥에 군국의 죄수를 넣다니. 어찌 보면 참… 불경한 짓이나. 소인은 그 제안을 따랐소이다. 순전히 소인의 욕심 때문에, 죄수들을 인간의 감옥이 아닌 지모신의 감옥으로 밀어 넣은 것이외다….”

무저갱은 대지모신이 만들었다. 그곳은 말 그대로의 지옥이 되어 지모신께 불경한 이들을 벌하였다.

그리하여 지금껏, 사람들은 탄탈로스를 단순한 감옥으로만 여겨왔다. 지옥과 감옥, 마침 어감도 비슷하지 않은가.

여기서 놀라운 사실.

인간이 만든 탄탈로스는, 사실 감옥이 아니었다.

무저갱의 근원에 닿기 위해, 땅이라 속이려고 만든 구조물이 바로 탄탈로스.

신을 향한 인간의 기만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탄탈로스를 만든 이가 바로 지선 님인거죠?”

“정확히는, 군국이 이 땅을 이용하기 위하여 설계하였던 것이지. 소인은 군국에게 제안하였을 뿐이외다.”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저는 군국이 미친 나라라서 무저갱에다 감옥을 지은 줄.”

테크트리가 이상하다 했더니, 약속에 대한 대가였구나. 하긴 아무리 할 일이 없어도 감옥을 땅 밑에다 짓지는 않지, 암.

“그 내용은 대외비였으니, 오해하는 것도 무리도 아니외다.”

후우. 목이 타는지 물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켠 지선이 말했다.

“군국은 이 땅을 끌어올린 뒤 감옥을 만들었고, 소인은 그 값을 치르기 위해 군국에 투신해 일했소이다. 홀로 10여 년 간 크고 작은 공사에 참여했지. 그 뒤에는 무저갱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방법을 찾기 위해 세상을 떠돌았소이다.”

그리고 점차 들뜨는 목소리. 이야기가 점차 지금에 가까워질수록 지선의 얼굴이 밝아졌다.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나은 이의, 미래가 더 나을 것이라 기대하는 이의 모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인의 귀에 탈옥 소식이 들려왔고, 소인은 탄탈로스를 다시 살필 요량으로 찾아왔소이다. 그리고 확신하였소이다.”

숙원 달성을 목전에 둔 지선은, 마른 몸에서도 활화산 같은 열망을 보였다.

“근원에 충분히 닿았다고, 이제는 무저갱을 없앨 수 있다고.”

감정을 담은 이야기엔 힘이 있다. 이제 그 누구도 지선의 말을 감히 의심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만한 힘이 있고, 노력을 해왔으며, 방법을 찾았다는 것을 모두 이해했기에.

이제 무저갱이 없어지는 건 기정사실이 되었다.

“잠깐만! 무저갱을 없애면 우리는 어찌 되오? 우리도 같이 사라지는 것 아니오?”

그 점에 대해선 지선이 확언했다.

“아니외다. 사라지는 것은 오로지 무저갱뿐. 따라서 이 땅은 본래의 모습, 그러니까 무저갱이 생겨나기 전, 패왕이 30만의 인명을 묻으려고 했던 커다란 구덩이로 돌아올 것이외다.”

“흠! 그렇다면야! 나쁠 것 없군!”

만족한 불사자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칼리스가 급히 물었다.

“군국은, 준장님의 방문에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반응? 그것은 모르겠소이다. 소인은 이곳에 통보하고 들어왔을 따름이니.”

잘 모르겠다는 말에 도리어 칼리스는 안심했다. 지선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통보하고 들어왔다면, 최소한 군국이 대응하기 전까지는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까. 지선의 행동이 돌발적일수록 칼리스의 탈출가능성도 올라가는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그러면 무저갱은 언제 없애실 건가요?”

“소인의 기력 문제도 있고, 이 땅도 조금 살펴보아야 하니. 모레 결행하고자 하외다.”

내일모레면 이 지긋지긋한 무저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선언.

그 이야기를 듣자, 나도 모르게 기쁜 마음이 샘솟았다.

살면서 이 빌어먹을 세상이 마음에 든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으나, 올라가서 햇빛을 쐴 생각을 하니 갑자기 지상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귓가를 스치는 시원한 바람, 게으른 몸을 질책하는 햇빛, 저 멀리 보이는 풍경까지.

스스로 풍광을 보고 즐거움을 느끼는 타입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한평생 함께한 그것들이 사실 간절했던 걸까.

“와아아! 탈출이다!”

나는 들뜬 기분을 여실히 드러냈다.

“어차피 밖에 나갈 거! 이제 다 의미 없다! 지선 님! 여기 있는 거 다 드세요!”

지선이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리 주셔도, 소인은 작은 사람인지라 안에 품을 자리에 한계가 있소이다. 소인은 배가 부르오니, 나머지는 천천히 드시도록 하는 게 어떤가 하외다.”

“어허! 내일모레 이곳을 탈출하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남은 음식을 먹을 수는 없죠! 내일 먹을 음식은 내일 새로 하기로 하고! 오늘 남은 음식은 탄탈로스 공식 짬통에 버리겠습니다!”

‘지모신의 신도 앞에서, 대지의 과실을 버린다니…? 그게 무례인지 모르는 건가.’

지선이 살짝 인상을 찌푸릴 때 내가 탄탈로스 공식 짬통을 불렀다.

예로부터 먹다 남은 밥은 개의 차지였으니, 정승 댁 개는 때깔도 고왔지.

“아지야!”

“멍? 나?”

고개를 갸웃하며 다가온 아지.

나는 식탁 빈 곳에 고기가 가득 든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올인을 외치는 도박사처럼 호쾌하게 밀어젖히며 말했다.

“그래! 오늘 이거 다 먹어!”

“멍! 무슨 일이람!”

아지는 즉각 의자에 앉아서 머리를 처박고는 찹찹거렸다. 갓 조리된 담백한 고기 맛을 본 아지는 기쁘게 외쳤다.

“내일! 멍! 해가 서쪽에서 떠!”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이 음식은 해가 아니라 이분께서 주시는 거야! 고맙게 여기도록!”

“멍도자! 고마워!”

“…많이 드시길. 개의 왕이여.”

지선은 차마 개를 나무라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