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132화 (132/384)

EP.132 비스듬한 천장과 웃는 시체들의 산 - 4

보이지 않는 검이 지선을 습격했다. 차라랑. 다섯 고리가 차례로 검날을 긁으며 검로를 튕겨낸다. 회귀자는 천앵의 속도를 이용하여 곧장 지선의 목을 노렸으나.

지선은 막거나 피하는 대신, 고개만 살짝 기울이며 마주 주먹을 뻗었다.

칼과 주먹의 대결. 본래 한 수씩 교환하면 칼이 우세해야 정상이나, 정상적인 셈법은 상식을 벗어난 결투에서 통하지 않는다. 전제부터 다른 것이다.

검로에 귀걸이를 끼워둔 채 기공을 내뿜는 지선. 바람이 밀려날 정도의 반탄기공이다. 이러면 불안정한 자세로 휘두른 천앵은 기껏 해봐야 목에 생채기를 내는 게 전부다.

대신, 회귀자가 보호기공을 두른다고 한들, 저 주먹에 맞았다간 충격을 고스란히 받는다.

검을 든 건 이쪽인데, 손해를 보는 것도 이쪽이다.

“칫!”

회귀자는 목 대신 천앵을 잡아당겨 지선의 팔을 그었다. 고리 없는 왼팔을 길게 그으며 생채기가 일어난다. 한순간 그곳으로 비치는 피.

“흡!”

그러나, 지선이 간단히 힘을 주는 것으로 상처가 아문다.

아니, 아문다기보다는 전신의 근육과 기공으로 단숨에 압박한 것에 불과하지만.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지선의 주먹은 팔에 생채기가 난 대가를 자비 없이 수금했다. 굳은 손이 회귀자를 꿰뚫었다. 급히 회수한 천앵으로 막기는 했으나, 지선의 강맹한 주먹은 천앵 하나만으로는 막기 힘든 것이었다.

“크윽…!”

아껴둔 천앵의 공간을 풀어헤쳤음에도 충격이 가시지가 않아, 회귀자의 몸이 뒤로 부웅 떠올랐다.

날아가는 회귀자를 본 지선은 다시 손아귀를 펼쳤다. 만일 학습능력도 없이 다시 천장에 발을 디딘다면 이번에야말로 짓이기려는 의도였다. 그대로 땅에 떨어진다면 진동으로 공격하고.

그러나 회귀자의 판단은 천장도, 바닥도 아니었다.

천검기, 먹구름.

손잡이부터 천천히, 천앵이 하얗게 물든다. 하늘은 열망과 바람을 담는 광활한 공간. 뜨거운 열기는 자유로운 공기와 얽히고설켜 하늘로 이른다.

창공을 고고히 유영하는 구름은 그렇게 생겨났다.

천검기, 디딤구름.

하얗게 물든 검을 흩뿌렸다. 나비처럼 팔랑거리는 검끝이 허공에 형상을 이루었다. 희고 단단해 보이는 구름이었다. 마치 구름을 한 조각 떼어내어 통째로 압축한 듯, 벽돌처럼 보이는 새하얀 뭉치가 떠올랐다.

회귀자가 공중에서 몸을 빙글 뒤집고는 두 다리로 디딤구름을 디뎠다. 질감을 보면 다리가 폭 빠져야 할 것 같았으나, 디딤구름은 마치 대지를 대신하듯 회귀자의 단단히 몸을 받쳤다.

“하아….”

구름을 딛고, 무릎을 굽혔다.

건과 곤이 뒤집힌다.

회귀자는 거꾸로 선 채 몸을 웅크리고 자세를 잡았다. 천앵이 번쩍거렸다.

몸을 감는다.

힘을 담는다.

새하얀 디딤구름이 힘을 축적하면서 점점 어두워진다. 신선이 먹 묻은 붓을 들고 구름에 일필휘지 그림을 그리니. 새카맣게 새카맣게 점점 짙어진다.

하늘을 노니는 구름이 언제나 하얀 모습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폭풍우치는 날, 하늘이 분노한 때. 구름은 가끔 짓궂은 표정을 하고는 땅을 향해 노호를 토해낸다. 흰 구름이 새카맣게 물든 건, 하늘에 힘이 가득하다는 전조.

발판을 '만들어' 서자 지선은 대응할 타이밍을 놓쳤다. 지선이 다급히 대지술을 펼쳐서 콘크리트 벽을 잡아끌었으나.

조금 늦었다.

천검기, 천둥매.

벼락이 번쩍였다. 천둥이 울린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뒷북이 무저갱을 메웠다.

벼락이란 천지를 잇는 길. 그 힘이 강림한 뒤, 화들짝 놀란 나팔수가 반 박자 늦게 천둥으로 힘의 행진을 알린다. 그러나 천둥이 들렸을 때, 이미 천벌은 죄인에게 지엄한 심판을 내린 이후다.

그렇기에 천둥은 하늘에 울리는 뒷북이다. 들린 순간 늦었다.

흐릿하게 사라졌던 회귀자의 신형이 지선의 뒤쪽에서 나타났다. 벼락의 잔재가 이어졌다.

파츳, 파츳. 공기가 박자를 타고 들썩거린다. 그녀가 어떻게 이동했는지는 허공을 튀어오르는 전류의 길이 희미하게 보여주었다.

위협적으로 파짓거리는 소리, 몸을 둘러싼 정전기에 머리카락이 들썩거리고, 회귀자는 짧게 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콰가강!!

먹구름과 회귀자 사이에 벼락이 일었다. 참격은 뒤늦게 벼락의 형태로 번쩍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지선을 보호하던 콘크리트가 바싹 마르며 쩌적 갈라진다. 그 균열은 꼭 벼락을 닮아 있었다.

신속, 쾌속한 격검. 동시에 뇌격을 담은 불가피한 일격.

그러나.

“짜릿…하구…려!”

지선이 기운을 발아래로 흘려보내며 입가를 끌어올렸다.

대지는 태초 이래 수많은 벼락을 지냈다. 버티었다, 라고 표현할 수조차 없이. 벼락마저도 몸 안에 품었으니.

회귀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강한 공격이었으나, 심장에 닿기에는 부족했다.

뇌격의 여파로 지선의 입가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리지만 그뿐. 고리 하나가 부서지고 팔과 어깨에 검흔이 새겨졌으나 그뿐.

검에 서린 뇌기는 흘려보내고 흡기공으로 근육으로 다잡으면, 상처는 언제 생겼냐는 듯 다물어진다.

그래, 수도 없이 갈라져도 언젠가 아무는 대지모의 육신처럼.

“칫.”

회귀자는 시큰거리는 손목이 전하는 경고를 무시하고는 천앵을 들었다.

이미 길은 이어졌다. 천앵은 이곳에 있고 구름은 반대편에 있으니, 다시 잇기만 하면 된다. 벼락이 회귀자의 몸을 타고 흐르며 허공에 뜬 먹구림이 불길하게 쿠르릉거렸다.

벼락을 담은 발걸음이 땅을 딛기 직전.

“지룡.”

극에 이른 곤(坤)이 땅을 다스렸다.

지선이 손을 치켜들자 콘크리트에서 흙먼지가 인다. 불가능한 일이다. 딱딱한 콘크리트가 어디 갈린 것도 아니고 어떻게 흙먼지를 일으킨다는 말인가.

하나, 지선(地仙)은 가능하다.

천장, 기울어진 탄탈로스를 이루는 콘크리트가 제 홀로 소용돌이친다. 아드득, 까드득. 서로 부딪히고 마찰한 콘크리트는 단숨에 흙과 먼지로 화했다. 태초의 모습으로 변한 콘크리트를 지선은 단숨에 끌어당겼다.

비틀린 콘크리트가 똬리를 튼 뱀처럼 솟아났다, 흙과 먼지로 된 구름이 그 주변을 뒤덮었다.

그렇게 나타난 대지의 권능은 꼭 땅에서 피어난 용처럼 보였다. 흙먼지로 이루어진 지룡은 단숨에 먹구름을 집어삼켰다.

땅에 너무 가까이 붙어있던 먹구름은 그렇게 사라졌다.

‘치잇. 지룡. 다행히… 지금은 좀 크기가 작네.’

회귀 전, 지잔을 가진 채 땅 위를 거닐었던 지선은 두 마리의 지룡으로 커다란 신전을 감쌌다. 그 상태에서 안에 든 사람을 하나하나 물어서 빼내기도 했을 정도였다.

두 지룡을 이끈 채 진군하는 지선은 그야말로 역천을 꿈꾸는 땅뱀. 성황청에게 죄를 물으며 다가오는 저지할 수 없는 악몽.

그에 비하면 지금 지룡은 고작 한 마리에, 사람 하나 간신히 조일 정도로 작았지만.

‘물론… 내가 버틸 수 있냐는 또 다르지.’

어쩌면 크기가 작아진 만큼 더 골치 아플 수도.

지룡이 지선을 감쌌다. 모래가 그녀를 수호하듯 소용돌이쳤다.

그에 맞서 회귀자는 천앵을 휘저었다. 벼락을 두른 구름이 그녀의 주위를 감쌌다.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뻗친다.

“간다.”

“오라.”

대화라고 하기 모호한 짧은 문답.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회귀자가 앞으로 뛰며 검을 휘둘렀다. 그에 맞서 지선은 양손을 들어 올렸다.

지룡이 아가리를 벌렸다.

평범한 대지술이 아니다. 지선의 권각과 연동하여 움직이는, 뱀처럼 흐르는 땅. 지선이 가볍게 주먹을 내뻗자, 콘크리트 용이 파도치며 회귀자를 덮쳤다.

그에 맞서, 회귀자는 가벼운 몸을 통통 튕기며… 지룡을 타고 달렸다.

가벼운 육체와 뛰어난 경신술, 더불어 경지에 이른 기공이 있어야만 가능한 묘기였다. 파도를 거스르지 않고 비스듬히 타듯, 천앵으로 비스듬히 긁으며 앞으로 미끄러졌다.

지선은 내심 감탄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검과 권각이 충돌했다.

보이지 않는 칼날이 허공을 베어냈다. 궤적을 쫓을 수 없는 검이 고리를 베고, 권각을 비껴 흘리며 살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그러나 지룡을 두른 지선은 이전처럼 쉽게 맞아주지 않았다. 지룡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어서 공격이 영 닿지 않는다. 회귀자가 혀를 찰 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지룡이 아가리를 벌리고 뛰쳐나왔다. 그 속도는 똬리를 튼 뱀과 비슷했다. 똬리가 움찔하는 순간 이미 지룡의 머리는 쏘아졌다.

회귀자는 천반경으로 간신히 그것을 피했다.

‘진짜, 천반경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내심 안도하며 회귀자는 드러난 지룡의 목을 베었다. 머리를 잃은 지룡은 다시 머리가 솟아날 때까지 방어에 전념했다.

체력과 집중력을 갉아먹는 지루한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단연 불리한 쪽은 회귀자였다.

‘차라리 빠른 상대라면 천반경을 이용한 속도 싸움을 하겠지만…!’

상대는 대지처럼 굳건하다. 지선이라는 호칭이 헛되지 않다. 거기다 수십 년 단련한 바위처럼 단단한 육체는 가끔 베어도 껍데기만 긁은 것처럼 영 손맛이 없다.

그러나 회귀자는 한 대만 맞아도 치명상. 특히, 회귀 초창기인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연약할 때.

사선으로 크게 휘젓는 손. 공격답지 않은 공격이나, 이마저도 맞으면 곤란했다. 칼날을 대고 흘려내며 회귀자는 내심 불만을 토했다.

‘회귀해서 단련해봤자 뭐해! 육체는 그대로인데! 칫, 그걸 써야 하나…?’

“뛰었구려.”

라고 말하며, 지선이 주먹을 쥐었다. 회귀자는 대응하려고 했으나 공교롭게도 그 타이밍 두 발이 살짝 떠 있던 상태였다.

‘아차!’

아직 거리가 벌어지지 않았는데, 공격을 받아내다가 그 반동에 몸이 떠버렸다. 방심한 것이다.

그리고 발을 단단히 붙이고 있던 지선은, 시체를 타고 흐르는 진동으로 그 사실을 알아내고는 공격을 준비했다.

“공간진(空間塵).”

쨍그랑.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기이하게 일그러진 기공이 세상을 공간째 붙잡는다.

‘공간진?! 몸으로도… 할 수 있는 거였어?!’

이전 회차에서, 날아드는 화살과 총탄을 비껴내고 도망치는 적을 붙잡기 위해 세상을 어그러뜨렸던 오의.

‘그게 대인전에서 쓸 수 있는 것이었다니!’

닿지 않았을 텐데, 회귀자의 몸이 딸려갔다.

극에 이른 건과 곤. 지선의 오른팔에 어마어마한 기력이 모여들었다. 성한 고리, 망가진 고리가 서로 공명하며 부르르 진동하기 시작했다. 고리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꼭 매미가 우는 것 같았다.

그저 전신으로 내뻗는 흡착기공. 그것뿐인데, 몸이 뜬 회귀자는 저항하지 못하고 끌려 들어갔다.

떨쳐내려면 떨쳐낼 수야 있지만, 그래서야 늦다. 이미 기술에 걸린 상황, 회귀자가 할 수 있는 건 이를 악무는 것밖에 없었고.

그 위로 꽈배기처럼 몸을 한껏 비튼 지룡이 그 모든 힘을 쏘아냈다.

“튼튼하다면.”

지선은 허공을 향해 짧게 주먹을 뻗었다. 몸을 단번에 풀어헤치며 뛰쳐나간 지룡이 회귀자를 물어뜯었다.

“캬…학!”

폐부를 쥐어짜이는 듯한 소리.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회귀자는 지룡에 휩쓸려 그대로 저 멀리에 처박혔다.

시체들 틈으로 시체 비슷한 모양의 형체가 뒹굴었다.

“살아남을 것이외다.”

지선이 볼에 난 핏자국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 화답하듯 그 아래에서 회귀자가 고통 섞인 비명을 질렀다.

“끄, 끄으으으…!”

“…튼튼하구려. 그래도 이미 만신창이. 이제 더 싸우지는 못할 터.”

한마디로 평가를 마친 지선이, 몸을 돌려 정상으로 향하려는 때였다.

회귀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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