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134화 (134/384)

EP.134 비스듬한 천장과 웃는 시체들의 산 - 6

펑퍼짐한 옷을 입은 시체는 인간 형상을 어깨에 메는 데 익숙해 보였다. 비록 시체가 되었어도 여전히.

그렇게 나를 들고 산을 오른 지모신도의 시체는 나를 대종사의 유해 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그 시체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주며 대종사의 유해 앞에 섰다.

가방을 끌러 술을 꺼냈다.

한 잔을 마셔도 얼굴이 붉은 꽃처럼 빨개진다는 백화홍주, 회귀자가 가져온 술 중 가장 비싼 술이며, 동시에 내가 가장 먼저 꿍쳐둔 술.

아깝지만, 대종사의 유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급이 맞지.

나는 백화홍주를 잔에 담아서 유해 곁에 뿌렸다.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뒤쪽으로 한 번.

그렇게 술을 뿌린 나는, 빈 잔을 쥔 채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발치에 잔을 내려놓고 술병을 살짝 기울였다.

첫 번째에 소리를.

두 번째에 향기를.

세 번째에 맛을.

그렇게 세 번 나눠서 잔을 따른 뒤, 그녀의 앞에 놔두고, 양손을 모은 채 일어나 대종사의 앞에 절했다.

살아있을 적을 기원하여 한 번.

돌아가신 것을 애도하여 한 번.

그리고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들이켰다.

거나하게 취하는 술이 내 목구멍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나의 의식도 흐릿해졌다.

오만하기 그지없소이다.

강이 대지모신의 핏줄이고, 흙과 바위가 대지모신의 살점이라?

어림도 없는 소리.

지모신을 어머니로 모신다고 하여, 그들은 떼쓰는 막내아이처럼 고집을 부리고 있나니.

강은 피부 위를 흐르는 땀방울에 지나지 않으매, 흙과 바위는 부르튼 살갗에 불과하외다.

산은 몸에 난 자그마한 종기일 뿐이며, 지모신의 혈액은 그 흉진 상처 가장 깊이 난 것에서 가끔 모습을 드러낼 뿐이외다.

우리가 강물을 마시고 땅을 경작하기에, 그것이 너무나도 필요하고 중요하기에. 그것이 지모신께도 중요하리라 착각하는 것이라.

사실, 우리는 어머니 지모신에 비하면 개미조차도 안 되는 사소한 존재거늘.

지모신의 피는 화산 아래 흐르는 용암이며. 지모신의 살점은 그 뜨거운 용암을 품은 강철의 바다이외다.

본 적이 없다? 하, 당연하지 않은가.

피부 위를 기어가는 진딧물이 손가락 끝을 지평선으로 여기듯, 우리 역시 지모신의 살점을 감히 목도하지 못하리라.

아마 저 아래. 중심에는 지모신의 심장이 있겠지. 단, 그 모습은 모두가 상상한 것과 또 다를 것이니.

지모신의 신도들이여, 기억하라. 어머니 지모신은 자비로우나 우리는 그녀의 기대보다 훨씬 보잘것없으매.

인간은 지모신의 부르튼 껍질을 파헤쳐 먹을 것을 찾고, 몸에 흐르는 땀방울을 들이키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니.

지모신을 모시는 이들은 겸허함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하찮음을 깨달아야 한다.

위대하고 거대하신 지모신께서 우리를 굽어살피고 계실지, 아니면 무심하게 여길지는 모르나.

그 위에 기생하는 우리는.

천부당만부당.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한 존재는 아닐 터이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불락산(不落山).

구름마저도 발아래에 둔 채, 세상의 십분지 일을 눈에 담을 수 있는, 대지의 최극단.

대종사는 그 정상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오만한 것은 소인이었사옵니다.”

너무 멀리 있으면 보이지 않듯, 너무 가까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지모신교는 고행이랍시고 산을 오르게 하였다. 높은 산을 오를수록 그 고행에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불락산을 정복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도전했고, 그에 비례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공기가 희박한 산 정상은 힘만으로 도달할 수 없다. 가벼운 몸, 작은 체구, 동시에 수준 높은 기공을 가진 이들일수록 유리하였으니.

이 모든 조건을 만족했던, 갓 가르침을 깨우친 소녀가 불락산 정상을 정복하였다.

그렇게 모든 지모신도의 염원을 달성하였으나.

소녀의 마음을 뒤흔든 건 그들의 칭찬이 아닌, 이 세상에 대한 놀라움이었을 뿐이다.

세상의 위대함을 목도하고, 자신의 겸허함을 깨달은 소녀는 도사의 지위도 마다하고 세상을 떠돌았다. 어머니 지모신에 대해 더 알기 위해 교류하고, 여행하고, 자기 자신을 시련에 빠뜨렸다.

용암 속에 몸을 담그기도, 그것을 퍼와서 용광로에 넣어보기도 하였다.

몇몇 도사는 그녀를 규탄했다. 지모신의 비밀을 파헤치는 그 행위는 교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며, 당장 멈추고 돌아오라고 압력을 넣었다.

그렇게 부름을 받고 도사들의 앞에 선 소녀.

그녀는 도사들의 눈앞에서 땅을 갈라, 그녀가 옳았음을 증명했다.

그날부로 소녀는 대종사라 불렸다. 지모신도 모두를 가르치는.

“…소인 따위가, 누군가를 가르칠 위치에 있지 않았던 것을.”

그렇게 말을 거는 심상을 보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요즘엔 시체들이 자꾸 기대받지 않는 행동을 해서 큰일이라니까, 정말. 죽은 사람인데 심상으로 말도 걸어요.”

고유마도는 개인의 심상을 발현시킨 것.

그런 고유마도를 발현시킨 사람 중, 한이 사무친 이들은 죽기 직전에 그들의 심상을 벼려 유품으로 남긴다. 그리고 유품을 쥐는 자를 시험한다.

일종의, 집착이 대단한 원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뭐, 세월에 부스러지지 않고 이토록 선명하게 남은 심상은 몇 없지만.

아마도 무저갱 밑바닥에 있어서 보존이 잘 되었나 보지.

“됐고. 시험을 치를 거면 빨리 치르든가.”

내 말에 대꾸하듯, 대종사는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다만, 소인은 이곳에 찾아오신 손에게 한 가지만 묻고자 하옵니다.”

투명하고 슬픈 눈동자가 나를 마주한다.

지금 읽는 건 생각이 아니다. 이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책과 가깝다. 저자가 자신의 의도를 가진 채로 써 내려간 심상.

내가 다른 사람보다야 더 잘 읽겠지만, 그래도 별 차이 없을 것이다.

“소인의 미련에 대하여.”

직후. 장면이 바뀌었다.

지옥이 눈앞에 있었다.

가장 멀리서 바라본 세상은 그토록 아름다웠으매, 가까이서 바라본 땅은 추악하고 참혹했다.

30만에 달하는 인간이 죽거나, 죽어가거나, 혹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명과 절규가 구덩이 안을 가득 메아리쳤다. 그보다 많은 신음과 단말마가 절규를 가렸다.

대부분은 패왕을 저주했으나, 악에 받친 몇몇은 세상 만물을 향해 원망을 내질렀다. 당연히 그 원망에는 이 구덩이와 구덩이를 만든 대종사, 그리고 그 주인인 지모신을 향해 있었다.

모시는 지모신이 욕보였음에도, 대종사에겐 분노조차 일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의 분노가 합당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게 참담한 시선을 보내던 대종사의 곁으로, 위풍당당한 풍채를 지닌 쾌남이 다가왔다.

“하하하! 대단한 힘이야! 혼자서 이만한 크기의 구덩이를 파다니!”

패왕.

멋들어진 수염을 기르고, 태산조차 부술 거력을 지닌. 이 시대의 패자.

갑옷을 차려입은 그는 크게 기꺼워하며 대종사에게 제안했다.

“이봐, 대종사! 우리 군에 종군할 생각은 없나!”

지금, 이 참상을 만들어놓고.

자신을 보고 종군하라고?

경멸과 혐오, 그리고 분노가 솟구친다. 그러나 높은 수양을 겪은 대종사는 그러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절제력은 있었다.

대종사가 대꾸했다.

“…지모신을 모시는 제가 어찌 살생에 관여하오리까.”

“누가 이걸로 적을 무찌르라고 했나? 그건 기대도 안 해! 그리고 적을 무찌르는 데 땅 파는 힘 같은 건 쓸모도 없고!”

적을 무찌르는 데 잡다한 힘은 도리어 방해될 뿐이라고, 이 시대 최강의 사나이는 자신만만하게 손을 내저었다.

“내가 매장자라고 거들먹거리는 놈들을 싫어했던 건, 그놈들이 시체 치울 때마다 떽떽 시끄럽게 굴어서였지! 그 때문에 나와 내 귀중한 장병이 땅을 파느라 시간을 끌어야 했다고! 덕분에 미처 쫓지 못한 패잔병이나 놓친 승리가 한둘이 아니야!”

패왕에게서는 한 점의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게 느껴지는 것은 순수함.

세계 일통과, 그것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나가는 순수한 열망만이 가득했다. 그 발굽에 짓밟힌 이들에겐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하지만, 대종사가 있다면야 땅 파고 시체들 장례 치러주는 건 한결 쉬워지겠지! 그러면 우리도 굳이 매장자들을 욕보일 필요 없고! 대종사도 명예를 지켜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닌가!”

누이 좋고, 매부가 좋다면.

그렇다면, 그에게 죽어갈 이들은?

그녀가 아껴준 시간 동안 패왕의 추격에 죽을 짓밟힐 민초들은?

애초에.

“애초에, 죽이지 않았으면 묻을 일 없지 않았겠습니까.”

“뭘? 반란군을 죽이지 말라고?”

“그러하옵니다. 혹 패왕께서 살생을 멈춘다면….”

“대종사도 시시한 소리를 하는군. 좀 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얼굴을 찡그린 패왕은 더 듣기 싫다는 투로 대꾸했다.

“반란을 일으킨 자는 본보기로 처형한다. 이건 상식 아닌가! 죽기 싫다면 처음부터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 이걸 모두에게 알려야지! 대종사는 전쟁과 군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군!”

어떻게 모른다고 할 수가 있을까.

이 전쟁 동안 그녀가 묻은 시체가 몇인데. 수습할 여력도 없는 전쟁터에서, 산적에게 습격당한 마을에서, 군벌이 학살하고 지나간 땅에서.

얼마나 많은 죽음을 묻었는데.

“일단, 아직 일하는 중이니까 더 묻지 않겠네! 다 끝나거든 고민해보게!”

고민할 것이다.

지모신께 받은 이 힘. 산을 기울게 하고 땅을 가르는 힘으로.

패왕과 그의 군대를 무저갱 밑바닥에 빠뜨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장면이 멈추었다. 내 앞에는 새까만 지팡이가 놓였다. 땅의 검, 지잔이었다.

선택해야 했다.

여기서 이 지팡이를 쥐어, 매장자로서 그저 사자의 넋을 기릴 것인지.

아니면 검으로 뽑아 들어, 지모신의 대행자로서 패왕을 벌할 것인지.

“참나.”

역사의 한순간. 그 속에서.

“나를 시험하지 마라, 도망자.”

나는 페이지를 넘겼다.

멈춘 세상이 다시 움직인다. 숨기려던 과거를 억지로 비집고 읽는다. 의도하지 못한 상황에 심상이 당황한 듯 삐걱거렸다.

그 이후 있었던 일.

눈치 없는 짐승조차도 입을 다문 어둑한 밤.

자신이 만들어낸 참상을 다시 되새기고, 마저 장례를 치르기 위해 대종사는 다시 구덩이 앞에 섰다. 구덩이는 이전보다는 잠잠해져 있었다.

하지만 어두워서일까. 귀를 교란하는 다른 감각이나 소음이 없어서일까. 신음과 비명은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들려왔다.

고민은 길었다. 정말로 길었다.

반나절이 지나도록 대종사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그리하여 먼저 해야 할 일을 하러 왔다. 구덩이를 덮고 죽은 이의 넋을 기리는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단, 문제가 있었다.

떨어진 이들이 죽지 않았다.

패왕은 칼을 닦을 기름조차도 아까워했고, 따라서 그들을 산 채로 밀어 넣었다. 30만 명을 다 던져넣은 뒤에 대종사에게 이제 그들을 묻으라고 명령했다.

매장자는 죽은 이들을 묻는 자다.

하지만 죽지 않은 이는 묻지 못한다.

다 묻은 지 반나절이 지난 지금, 거의 다 죽어가고는 있으나.

아직 죽지 않은 이들도 많았다.

‘어차피 거기 빠진 순간부터 시체나 다름없어! 그냥 묻게! 그게 더 편하겠지! 대종사에게도, 포로에게도 말이야!’

패왕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여전히 귓가를 맴돌았다. 그는 연회 도중이었다.

대종사는 이를 악물고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고민은 길었다. 너무나 길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대종사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아직 살아있는 포로를 묻을 것인가, 아니면 연회를 벌이는 패왕을 죽일 것인가.

패왕은 이 시대 최강의 전사.

그녀의 힘이 천지를 뒤집고 땅을 가르는 힘이라도, 패왕을 죽이기 위해서는 이 땅 전체를 뒤집어야 한다.

필시 패왕만 죽지 않으리라. 그 휘하 장병 대다수가 휘말리겠지.

그렇다면 죽음을 또다른 죽음으로 뒤덮는 것은, 과연 옳은가.

결론이 나지 않았다. 대종사는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기도했다.

아아. 지모신이시여. 왜 저를 시험에 들게 하나이까.

차라리, 더 고민할 수 없게 된다면.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버린다면-.

“죄송합니다.”

푸욱.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대종사의 시간은, 이것으로 멈추어버렸기에.

“당신의 죄를 빼앗아가겠습니다.”

등을 꿰뚫고 배를 통해 나온 건, 송곳처럼 날카로운 쐐기.

헛숨과 함께 피를 토해내는 대종사의 뒤로, 슬프게 침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죽음은 타산지석이 되어야 합니다. 패왕의 죄는 그를 몰락시켜야 합니다. 사람은 승왕의 승리를 추앙하며, 그의 덕을 칭송하고, 죄악을 구분해야 합니다.”

고통과는 별개로 머리가 맑아졌다. 선명한 정신이 상대의 의중을 정확히 짚었다.

이것은 변명이었다.

그녀의 등을 찌른 이는, 죄책감에 휩싸여 변명하는 중이었다.

“하나, 대종사께서는 마신(魔神)이 되었으니. 그 누구도 마을을 휩쓴 폭풍의 죄를 묻지 않듯, 집과 생명을 삼킨 화마의 죄를 묻지 못하듯. 인간은 당신 앞에서 그저 두려움에 떨 것입니다.”

거기까지 듣고서야, 대종사는 자신의 등을 찌른 이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선…지자….”

천신의 사도들.

신이 너무 멀리 있기에 성세를 누리지는 못하였으나, 선지자를 중심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던 자들. 최근에는 승왕과 패왕 사이를 오가며 교세를 넓히려고 한다던….

어쩌면 그들의 음모일지도 모른다. 대종사는 분노와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어째서 이다지도 기쁠까.

이 선택의 순간에서, 어쩔 수 없이 죽음에 다다른다는 게.

곧 죽는 덕분에, 대종사에게는 한 가지 길밖에 남지 않았다.

“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대종사가 끊어지듯 말했다. 선지자가 당혹스럽게 대꾸했다.

“저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부탁…입니다. 저를… 이대로… 저 아래… 묻을 수 있게.”

못다 한 일을 해야 한다.

아직 죽지 않은 이를 위로하고, 죽은 이를 매장해야 했다.

죽음의 직전, 그녀는 대종사도, 지모신의 대행자도 아닌 한 명의 매장자였기에.

“당신을 찌른 건 우리의 상징이며, 보물입니다. 이것을 빼내면 당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것이며, 빼내지 않으면 우리의 흔적이 드러나게 됩니다.”

“…제발… 안 되겠습니까…?”

선지자가 당혹해서 말했으나, 죽음을 목전에 둔 이의 부탁은 백 마디 말보다 더 무거웠다. 선지자조차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우물쭈물거렸다.

“아아. 안 되는데. 정말, 안 되는데….”

선지자가 고민할 무렵이었다. 저쪽에서 횃불을 든 누군가가 걸어왔다. 혹여나 기어 올라오는 이를 막기 위해 배치된 경비병이었다.

연회에 참여하지 못해 잔뜩 성이 난 경비병은 침입자를 용서치 않으리라.

시간이 없었다. 선지자는 결단을 내렸다.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저를 축복하신 처음의 성녀시여. 못난 저는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고 맙니다….”

짧은 기도와 함께, 선지자는 그렇게 대종사를 구덩이 안쪽으로 밀었다.

시체 한복판에 떨어졌으나, 이상하게도 죽음의 한복판에서 그녀의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살인보다는 죽음이 그녀에겐 편했다.

비척거리며 일어난 그녀의 앞에 수만 개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분노한 듯, 혹은 체념한 듯, 꺼져가는 생명의 흔적만이 남아있는 눈동자.

그들을 살릴 수 없다.

울분을 풀어줄 수 없다.

복수를 대신할 수도 없다.

매장자로 돌아온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들을 지모신의 가슴 속에 묻는 것뿐.

“대지모시여. 저 또한 당신의 가슴 속에 묻히나이다. 부디, 바라옵건대. 우리를….”

대종사는 양손을 모으고 그녀의 권능을 발휘했다.

세상에서 가장 처음, 지모신의 본모습을 보고, 그 안까지 알아내었던 대종사.

그녀는 최후의 마법을 발했다.

고유마도. 가이아 에고.

“…당신의 품에 품어주소서.”

지모신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았다. 한 명의 마법이 그녀에게 닿기 전에는.

이제, 지모신은 인간을 총애하게 되었다.

그날, 세상에는 무저갱이 생겼고.

인간은 대지술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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