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137화 (137/384)

EP.137 비스듬한 천장과 웃는 시체들의 산 - 9

지선의 손이 연달아 허공을 움켜쥔다. 나는 손끝을 살짝살짝 움직여 지잔을 낚아채려는 손길을 피해냈다.

‘오른쪽, 왼쪽, 위쪽.’

그렇다면 나는 그 왼쪽, 오른쪽, 아래쪽. 아, 물론 상대 입장에서.

손이 헛되이 허공을 움켜잡거나, 손목에 지잔이 부딪히거나, 아슬아슬하게 지잔을 놓쳤다. 심리전에서 연전연패한 것이다.

아, 좋다. 나만 이기는 싸움. 이게 진짜 심리전이지.

‘그렇다면, 아예 손을…!’

연달아 심리전에 패배한 지선은, 아예 팔을 크게 휘둘러서 내 손 쪽으로 뻗어왔다. 지잔의 변화는 내 손에서 시작되니, 나의 손을 움켜쥐어 지잔을 빼앗을 참이다.

“어허. 반칙이죠.”

지잔은 반동이 없는 검. 슬쩍 옆으로 쳐냈을 뿐인데 지선의 손이 그 두 배의 속도로 팅 밀려난다.

지잔을 잡는 방법은 오직 하나. 적절한 타이밍에 손아귀를 움켜잡는 것. 늦거나 빠르면 손이 튕겨나갈 뿐이다. 힘으로 받아내는 선택지 따윈 없다.

그렇기에 지선도 애를 먹는 것이고.

주먹을 까드득 쥐며, 지선은 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소인이 이에 어울려주는 것은, 휴즈 님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였소이다.”

“저도 알고 있어요.”

“지잔을 들었다고 휴즈 님이 무적이 되는 것은 아니니. 더 다치기 전에 이쯤 하지 않겠소이까.”

그건 맞다. 지금 지선의 머릿속에서는 나를 다짐육으로 만들 계획이 수십 가지가 넘게 있다.

예를 들어 머리 위 콘크리트를 연달아 내리찍거나, 내 발판을 터뜨려버리던가, 아니면 또 공간진 같은 기술로 나를 끌어당기던가.

아니. 애초에 그냥 작정하고 가까이 붙으면 나는 끝장이다.

지금이야 손끝을 까딱까딱이면 지잔이 휙휙 움직이니 어찌저찌 피하고 있는 거지,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내 손보다 빨리 움직이면 그날부로 내 장례식이다.

손에 쥔 게 카드였으면 모를까, 강철 지팡이라 속도를 못 따라가거든.

그러니 어떻게든 규칙이 있는 심리전으로 유도해야 한다. 나는 지잔을 연달아 내밀면서 지선을 약올렸다.

“아, 가져가라니까요. 왜 못 가져가고 그래요? 내가 꽁꽁 숨겼어, 아니면 죽어도 안 주겠대? 능력껏 가져가라니까?”

“…좋소이다. ”

투쟁심이 솟아난 지선은 양 주먹을 쥐었다. 드디어, 양손을 쓰려는 모양인가!

‘손은 눈속임. 기공으로 발아래를 흔든다.’

그러면서 발을 높이 든다. 발판을 흔들어 나를 날려보낼 셈이다.

내가 그 충격으로 지잔을 손에서 놓기만 하면 그 시험을 치르고 들 수 있으니까.

나는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 하나도 특별하지 않다.

지금은 내가 지잔을 들고 있다고 해도, 이 지잔이 나를 기억해서 다른 이에게 힘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없다.

지잔은 유품이고, 도구다. 나는 그냥 들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고.

그러니까, 시험 문제를 다 적기 전까지는 절대 놓아서는 안 된다. 의도를 읽은 나는 손을 피하는 척, 지잔으로 지선의 다리를 걸었다.

‘큭!’

아무리 불도자라고 한들, 대지 자체가 다리를 거는데 버틸 도리가 없다. 지선은 진각을 내지르는 대신 내가 휘두른 지잔을 밟고 뛰었다.

사람 한 명을 칼끝으로 날려 보낸 셈인데, 지잔 위에는 모기가 앉는 듯한 무게감뿐이다. 크, 이게 지잔인가. 힘이 세진 것 같아서 신난다.

“그렇죠. 당신은 넘어지지 않겠죠. 계속, 계속 나아가겠죠. 당신은 쌓아 올리는 자. 무너진 잔해에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자. 죽은 이를 돌보며 그들을 추억하는 건 당신과 어울리지 않아요.”

저 멀리 착지한 지선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나는 지선을 마주하며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무저갱을 없애려고 한 건 명분 챙기기였죠. 나라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다는 금기, 그것을 어길 명분. 군국과 공사하면서 실리는 꽤 챙기셨는데, 정작 무저갱을 없애지 못한 탓에 지모신교를 이끌 명분이 부족하셨잖아요?”

거기에다 이 지잔만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

대종사의 증표이자 땅의 권능 그 자체인 유품이 있는 이상, 대지모신교는 지선의 아래 결집할 것이다.

“그리고 지잔을 들고 성황청에 죄를 물으러 가야죠. 한 끼 줍쇼! 거 지금까지 많이 처먹지 않았습니까! 파이 좀 나눠먹읍시다! 완벽하네요!”

시도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꾹꾹 쌓여왔던 신도들의 울분을 풀고, 성황청과 대등해지니까.

지선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래서, 정녕 방해하겠다는 것이외까?”

“방해 안 해요! 잡으라니까!”

“그렇다면.”

지선의 몸에서 시작된 기공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갔다. 쿵, 한 걸음 내디디는 것으로 땅이 흔들렸다.

축지. 땅에 기운을 뻗고, 순식간에 잡아당겨 돌진하는 기술. 민첩함보다는 저돌성으로 돌진한 지선은 곧장 나를 향해 주먹을 뻗어왔다.

자아, 지잔으로 막으면….

‘막으면, 주먹을 포기한다.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대신 걷어찬다.’

엥.

‘지잔의 길이로는 막지 못하는 양방향. 둘 중 하나는 자기 몸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아, 진짜 싫어. 왜 자꾸 심리전을 몸으로 하려고 하는데? 그러면 나 같은 연약한 독심술사는 어떻게 하고.

이게 야만이지, 뭐가 야만이야. 내가 속으로 투덜거릴 무렵.

“흡!”

내 앞으로 긴 은발과 드레스가 휘날렸다. 아주 잠깐 나에게 원망스러운 시선을 보낸 티르가 양팔을 들어 지선과 주먹을 맞댔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 나는 눈을 감았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쾅.

죽은 시체가 다 들썩이는 거대한 충격파가 퍼졌다.

다시 눈을 뜨자, 지선의 몸을 가득 채웠던 흙빛 기운과, 티르의 새빨간 핏방울이 뒤섞여 원형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흙빛 기운은 그대로 땅에 가라앉고 핏방울은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티르에게로 되돌아왔다.

두 여자는 가까이서 주먹을 맞댄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먼저 입을 연 건 지선이었다.

“…시조여. 공격하지 않겠다 하지 않았소이까.”

티르가 대꾸했다.

“네가 먼저 적대하지 않는다면.”

“소인은 당신께 적의를 표한 적이 없소이다만.”

“그를 향한 적대가 곧 나를 향한 것이다.”

티르는 그게 당연한 사실인 양 말했다. 지선이 나를 흘긋 보고는 대꾸했다.

“…나쁜 남자에게 걸리셨구려.”

“…부정할 수 없구나. 동감이로다.”

그 말과 함께 다시 한번 이어진 주먹질. 티르는 피하지 않았다. 양 눈에 피를 가득 몬 채로 지선의 주먹을 좇고는 그대로 맞받아쳤다.

순수한 힘과 힘의 충돌. 그리고 이어진 충격파. 티르의 몸이 살짝 뒤로 밀려났으나, 곧 다시 자세를 다잡고는 지선에게 몸을 들이댔다. 급소를 전혀 보호하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전투 자체는 나의 우위. 근접전이 익숙하지 않은지, 시조의 힘은 어설프다. 그러나… 불리하다.’

지선은 시선을 티르의 팔에 한 번, 그녀의 몸에 한 번, 발밑에 한 번 시선을 던지고는 계획을 수정했다.

‘손실이 크다. 교환이 성립하지 않아. 상대방에겐 아무런 피해가 없어. 거기다….’

아래는 시체 산, 위는 콘크리트 대지. 지금껏 이 땅은 지선에게 유리한 지형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가 회귀자였을 때. 만일 상대가 티르라면, 아래 있는 시체의 산은 그야말로 흡혈귀를 위한 전장이다.

지금 티르의 혈조술은 자기 몸 근처의 피만 조종할 수 있지만, 지선은 그 사실을 모를뿐더러.

안다고 하더라도 이 땅이 티르에게 유리한 것은 마찬가지.

‘떨쳐내는 게 빠르겠군.’

지선은 주먹을 내지르는 척하다가 그대로 몸을 숙여 달려들었다. 판크라치온이다. 허를 찔린 티르는 어긋난 자세에서도 즉시 발차기를 날렸다. 인간의 골격과 자세와는 관계없이 움직이는 듯한, 기이한 각도로 솟구치는 발차기는 주먹과 별반 다를 바 없이 강맹했다.

그러나 위력이 조금 다를지언정 지선의 계산 안쪽이었다.

핏, 지선의 피부가 찢겨나가며 피가 흐른다. 동시에 지선은 티르의 디딤발과, 그 아래 시체 뭉텅이를 붙잡았다.

그리고 냅다 위로 내던졌다.

“꺄앗!”

땅째로 날려버리는데 버틸 재간이 있을 리 없다.

후웅. 천장으로 날아가는 티르의 모습은 꼭 탄탈로스를 향해 거꾸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쿵, 하고 둔중한 충격음이 들렸다.

그렇게 티르를 날려 보낸 지선은 그 뒤에 있던 나를 향해 성큼 걸어왔다.

“어딜! 멈추어라!”

그때. 뒤에서 선혈의 파도가 그녀의 전신을 두들겼다. 시체와 함께 날아갔던 티르는, 역으로 시체에 있던 피를 쏘아내어 방심한 지선의 등을 노렸다.

콰과광. 어깨와 등, 그리고 다리에 붉은 주먹이 대포처럼 쏟아진다. 혈조술로 쏘아낸 기운. 시체의 산이 펑펑 터져나가며 구덩이가 파였다.

격심한 타격을 받은 지선이 신음을 흘렸다. 지선의 귀걸이가 부르르 흔들리다가, 파직하고 깨졌다.

‘…후방을 비워둔 채 지잔과 대치할 수는 없다! 시간이 더 필요해!’

미리 치른 장례를 이용해 잠깐 기력을 되찾은 지선은 혀를 차고는 몸을 빙글 돌렸다. 그리고 허공에 있는 문을 열어젖히듯 양손을 꽂아 넣고는 벌렸다. 끼긱끼긱, 불길한 소리가 손가락 끄트머리에서 들리는 동시에.

탄탈로스가 열렸다.

쩌억. 양쪽으로 갈라진 탄탈로스가 아가리를 벌리고 티르를 삼켰다. 지선의 의도를 읽은 티르가 급히 양손을 휘저었지만 그보다는 대지술의 속도가 더 빨랐다. 순식간에 티르의 몸은 탄탈로스 저 안쪽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구르르릉. 보이지만 않을 뿐, 안쪽에서 콘크리트를 헤집으며 나오고 있었지만, 아무리 티르라도 땅속을 헤엄치는 건 처음이었기에 시간이 조금 걸릴 듯 싶었다.

티르를 잠깐 무력화시킨 지선이 헐떡이며 나를 보았다. 이제 그녀와 나 사이에는 아무런 방해물도 없었다.

“이제 그대를 지켜 줄 사람은 없소이다.”

그러네? 맞는 말이라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드디어 마지막 시험을 해야겠네요.”

“으아아아!”

그리고 때마침 저 아래에서, 고함소리와 함께 회귀자가 콘크리트 더미를 헤치고 나왔다. 한번 탈진한 뒤 회복한 채라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으나 그 눈빛만큼은 형형했다.

“조금만, 버텨!”

자꾸만 늘어가는 적에 지선의 마음이 급해졌다. 지선이 나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며 말했다.

“소인은 그대의 시험에 응할 시간이 없소이다. 내놓으시오.”

‘이제 죽어도 모른다.’

여차하면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 지선. 그때 티르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었던 랄리온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아지에게 시달리고, 나비에게 시달리고, 거기에다가 다음은 지선까지. 이 가혹한 대진표에 불만을 표할만한데도 랄리온은 두려움 없이 달려들었다.

지선이 랄리온에게 잠깐 붙들린 사이, 나는 도망치는 대신 지잔을 뒤로 크게 당겼다.

“아니요. 시험은 당신이 치르는 게 아니에요.”

지선이 치를 시험은 없다. 그녀는 자기 힘으로 그저 나아갈 뿐이므로.

지금, 시험을 치러야 하는 대상은.

나는 고개를 돌려, 십자가에 박힌 채 무릎을 꿇은 대종사의 시체를 흘긋 보았다. 착각인지 아니면 진짜인지. 무릎 꿇은 시체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떨어졌다.

“자. 미뤄둔 시험을 치를 시간이에요, 대종사.”

시체의 생각은 읽을 수 없다. 저게 눈물인지, 아니면 착시인지는 몰라도.

이 지잔은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지선이 랄리온의 몸통을 깨부쉈다. 흩어지는 핏물 틈으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지잔을 던지기 직전, 지선이 눈을 부릅떴다.

‘설마, 던지려고? 지금?’

정답.

‘어디로?’

지선과 회귀자, 그 사이 어딘가.

‘갑자기, 어째서?’

그야, 미뤄두었던 시험 때문에.

나는 씩 웃으며, 지잔을 저 멀리 내던졌다.

빙글빙글. 지팡이 같기도, 검 같기도 한 새까만 막대기가 허공을 난다. 누가 저 작은 막대기에 태산과 같은 무게가 있다고 예상할 수 있을까. 그런 대단한 물건도 하늘을 날아갈 때에는 평범한 지팡이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궤적을 그렸다.

‘나이스 패스… 치고는 너무 아슬아슬하잖아! 똑바로 던져!’

회귀자가 그걸 보고 착지점을 향해 달렸고, 지선도 곧장 땅을 박찼다.

‘잡아도 시험을 치러야 한다! 바로 쓰지 못할 터! 하지만, 대지술을 다루는 나라면 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아니, 몇 번을 말해.

당신 시험지 아니라니까.

-정녕, 이리하셨어야 했사옵니까….

십자가가 부르르 떤다. 그 끝에서 울린 목소리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래요. 선택해요. 이번에는 쉽죠? 그저 당신의 힘을 쥘 이만 선택하면 돼요.”

-아아…. 결국 죽어서도 도망치지는 못하였던 것이옵니까.

“도망치지 못한 게 아니죠. 당신이 남긴 거니까. 흔적을 남기길 원하지 않았다면 유품을 남기지도 않았겠죠.”

-가혹하십니다. 정말 가혹하십니다….

날아가는 지잔이 부르르 떤다. 그 아래로는 회귀자와 지선이 달려들고 있다. 밑으로 내달리는 지선이 미묘하게 더 가깝다.

이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지선이 손에 넣을 것이다. 지모신교의 부흥을 위해 끝없는 투쟁을 나설 것이다. 그리고 결국 부흥시킬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녀 자신이 죽을지 몰라도.

그에 비해, 회귀자는.

-정녕, 저 소녀가 미래를 보았다고. 죄악의 왕과 맞서려 한다고 하였사옵니까.

“믿든 믿지 않든 그건 자유예요. 당신이 선지자에게 들었던 것처럼 보장되지 않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미래죠.”

결국, 미루었던 선택이 다시 한번 도래했다.

더 나은 것을 꿈꾸는 선지자에게 맡기고 묻을 것이냐.

아니면, 전신에 새빨간 피를 묻혀서라도 앞으로 나아갈 것이냐.

-아아. 참으로 가혹하십니다.

과거의 대종사는 선택 아닌 선택을 했다. 우물쭈물하다가 선지자에게 살해당해, 기회조차 잃고 무저갱 속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정녕 이것이 훗날의 실수라고 하더라도.

그녀는 결국 패왕의 장병을 묻지 못했다. 계속 내몰리기만 했을 뿐이다.

만일 그녀가 자기 의지로 패왕의 10만 장병을 묻어버릴 수 있는 굳은 심지가 있었다면 세상의 역사가 달라졌겠지만.

그럴 이였다면 30만의 죽음을 앞에 두고 가슴 아파하진 않았겠지.

-저는… 죽음이 슬픕니다. 시체가 두렵습니다. 예정된 파멸이 끔찍하게도 싫습니다. 피에 젖은 흙 위에 지어질 찬란한 왕궁보다, 무덤에 핀 작은 꽃 한 송이가 더 좋습니다.

툭. 날아가던 지잔이 궤적을 비틀었다.

지선의 눈도, 회귀자의 눈도 커졌다. 이 작지만 확실한 뜻은, 순전히 지잔의 의지. 그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비상식적인 움직임.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약한 저 자신을 위해서.

그 끝에 지잔이 선택한 쪽은.

회귀자였다.

-저는 죽음을 묻겠사옵니다. 지모신의 품속에.

그 의지를 끝으로, 대종사의 배를 관통한 십자가가 밑동부터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시간을 고정하던 성황청의 보물이 사라진다. 지금껏 팽팽하게 감아둔 시간을 올올히 풀어헤치는 것처럼, 십자가 쐐기의 날카로운 날이 급속도로 녹슬며 시간 앞에 사그라진다.

나는 멀어지는 그녀의 흔적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안녕히 가세요, 초리네. 최초의 대지술사이자 최후의 매장자. 그리고 차마 신이 되지 못한 한 명의 인간이여. 당신의 의지는 죄와 함께 소급되었어요. 지금 당신의 선택 덕분에, 그때의 당신은 미련을 풀고 죄를 되찾았어요.”

그때 못다 푼 한, 내리지 못한 선택은 오늘 이루어졌다. 이제 편히 잠들 수 있으리라.

“당신은 10만 장병의 죽음이 되지는 못했지만, 30만 포로의 넋을 위로한 좋은 매장자였어요. 지모신의 품 안에서 편히 쉬시길.”

-감사합니다….

그렇게 점점 저물어가던 대종사의 의식이 수평선 너머에 잠기고.

못다 끝난 이야기는 시간을 넘어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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