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146화 (146/384)

EP.146 길은 여행자와 함께 흐른다 - 2

대위는 나를 붙잡고는 외쳤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허위보고를 한 것입니까!”

단숨에 벽에 몰린 나는 양팔을 들어 올리며 변명했다.

“의심을 풀기 위함이었죠. 기밀 작전 중인 사람이 옆에 이상한 사람을 끼고 다닌다고 생각해봐요. 확인하고 싶잖아요. 대령님도 그러셨던 거예요.”

“그렇다고 용의자가 감당 못 할 허위보고를 하다니. 상급자를 향한 허위보고는 그 자체로 군법 위반입니다!”

“기밀 작전 중에도요?”

대위가 못마땅한 듯이 덧붙였다.

“…기밀 작전 중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러면 문제 될 거 없네요.”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물을 탄 듯 맹한 대위를 위해서 사회의 무서움을 알려주기로 했다.

“대령이 장난처럼 보여요? 저분, 그냥 떠본 거예요.”

“떠봤다는…말입니까?”

“네. 제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정말 철없는 오빠였다면 진지하게 꾸짖은 셈이고, 제가 거짓말을 했다면 기밀 작전이라 가짜 신분을 만들었나 보군, 하고 쿵짝을 맞춰주신 거죠. 애초에 자기가 물어봐 놓고 대답하니까 화내는 게 말이 되나요?”

노회한 대령의 테스트였다. 내가 생각을 읽은 덕분에 능구렁이처럼 넘어간 거지, 아니었으면 조금 미심쩍은 시선으로 대위를 바라봤을 거다.

그렇다고 명령서를 어기지는 않겠지만. 감시 정도는 둘 수 있지. 그 정도 재량은 있으니까.

“어째서, 그런 일을?”

“대위가 못마땅했거나, 아니면 기밀작전을 맡았다고 하기엔 너무 맹해 보여서 그런 걸지도.”

“…므읏.”

내 논리에 밀려버린 대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에 덧붙여 나는 안타까움을 담아 중얼거렸다.

“그리고 사실, 거짓말은 안 했잖아요?”

“안 했다니?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기억도 안 나는 모양이네요…. 우리 삐가 내 무릎만 할 때 내가 손수 업어 키웠는데…. 그때 오라버니라고 불렀던 기억이 선하거늘….”

“…! 부정! 그건, 귀하가 본관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까! 본관도 모종의 협박을 받지만 않았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치…! 평생에 다시 없을 수치입니다!’

어라. 분위기를 풀기 위한 농담이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격하다. 뭐지?

나는 한 번 더 톡 건드려봤다.

“강요라니요. 뭐만 하면 어부바해달라고 애원했는데. 기억 안 나요? 양팔을 벌리고 아장아장 걷는 그때는 참 귀여웠죠.”

“…! 그건, 작전 중 위장입니다! 애초에! 귀하가 순순하게 협조했다면!”

‘이깟 남자의 등에 올라타거나, 품에 안기거나, 아기처럼 매달려서 움직이다니! 마음만 같아서는 그때의 기억을 통째로 덜어내고 싶습니다!’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혹시 이 대위. 골렘으로서의 기억이랑 자기 기억이랑 조금 혼동하고 있지 않나?

어. 잠깐만. 이 과몰입.

설마?

“에이비 대위.”

“…또 무슨 일입니까? 이제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골렘 조종할 때 계속 싱크로하고 계신 거예요?”

골렘을 다루는 마법사들은 인형의 섬세한 동작을 위해, 인형과 조종자와 동작을 싱크로했다.

저주를 거는 부두술사들은 상대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기 위해, 인형과 저주 대상의 감각을 싱크로했다.

그 둘의 장점만 절묘하게 조합하여 만든 싱크로 타입 마도 골렘은 조종자의 동작을 따라 하는 동시에, 감각이나 정보마저 전달한다. 그야말로 자기 아바타나 다름없는 인형인 셈.

통신병은 그런 골렘을 수십 개나 다루는 군국 최고의 인형술사들이다.

다만, 만일 내가 읽었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통신병들은 비싼 골렘 수십 기를 자기 재량껏 다루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가 아니라….

‘긍정, 다만, 의문. 어째서 이런 질문을?’

“…기밀입니다.”

아니, 진짜로? 그 와중에도 계속 싱크로를 하고 있었다고?

“그게 뭐가 기밀이야. 아무래도 긍정 같구만. 아니. 두 가지 싱크로 중 하나는 끌 수 있잖아요? 동작 싱크로나, 감각 싱크로나. 평소에는 안 꺼놓고 지내요?”

‘일부 긍정. 하나만 알고 둘은 모릅니다. 완벽하게 싱크로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얻을 수 있는 정보량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본관은 그런 사소한 정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동작과 감각을 언제나 최대로 싱크로합니다. 그리고….’

생각 도중, 씁쓸하게 표정을 흐린 채 대위는 스스로 자조했다.

‘…어차피. 싱크로를 해제해봤자…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방만이 나타날 뿐이니. 싱크로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이 고통이어도, 감각을 느끼는 게 훨씬 나으니까.’

“…기밀, 입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이거, 갑자기 좀 미안해지네. 나는 싱크로하지 말라고 다리를 찢어놓거나 기이한 자세로 묶어놓았는데.

에이, 설마. 바보도 아니고. 그 상황에서도 계속 완전 싱크로 하려고 했겠어? 하하….

하하.

와….

“…의문. 도대체 무슨 시선으로 본관을 보는 겁니까?”

대위가 질린 기색으로 물었다. 나는 슬픈 척, 손수건을 눈에 찍으며 대답했다.

“흑흑. 우리 불쌍한 삐…. 앞으로는 오빠가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해줄게.”

“쓸데없는 소리 마십시오!”

조금, 아니, 많이 미안해진다.

나도 골렘이니까 그리 막 대했지, 사람이 똑같이 느꼈을 줄 알면 그렇게 안 했지. 내가 뭐 공감 능력이 부족한 소시오패스도 아니고 말이야.

생각을 못 읽으니까 나처럼 선량한 시민도 악마가 될 수 있구나.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서 악마를 찾으리….

마침 시계가 오후 10시를 알렸다. 시계를 본 대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무 종료 시각입니다. 앞으로 한 시간 이내, 본관은 세면과 세탁을 끝마치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해야 합니다.”

“밖에 나와 있는데 근무 종료 시각이 어디 있어요? 잘 때 자는 거고 깰 때 깨는 거죠.”

“규칙적인 생활과 단정한 복장은 근무의 기본입니다.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이든, 시간에 맞추어 행동해야 하는 법입니다. 비록 누군가 보고 있지 않더라도.”

“에이. 대위님도 그 골방에서 매일 불편한 장교복 입고 지내진 않았을 것 아니에요.”

“…?”

‘의문. 근무할 때 어떻게 장교복을 입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 아무도 보는 사람 없으면 좀 편하게 지내라고, 좀. 골렘은 아무것도 안 입어도 조종할 수 있잖아. 꽉 막혔긴.

괜히 또 숙연해진다. 나는 코밑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먼저 씻어요. 양보해줄게요.”

“…귀하가 늦게 씻으면 취침시각을 맞추지 못할 거라 예상됩니다. 먼저 씻으십시오. 본관은 미리 방을 정리하고 있겠습니다.”

그렇다면야.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욕실로 향했다.

군국이 만든 숙소다웠다. 침대 세 개를 간신히 둘 수 있는 공간에 짐짓 선심 쓰듯 하나를 빼서 여유를 둔 것 같았다.

침대, 조명, 받침대. 이게 이 방이 가진 가구의 전부.

의복패킷이 있으니 옷장은 필요 없고 식사는 식당에서. 이곳은 오직 자기 위한 공간이다.

그나마 좁디좁은 욕실이라도 딸린 게 사치였다.

“이게 어디냐.”

대령이 편의를 봐줘서 진짜 좋은 방을 준 거다.

단체 숙소의 경우 매트리스 강도가 철제 책상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이층 침대가 촤르륵 늘어져 있으니까.

나는 먼저 욕실로 들어갔다.

물은 잘 나오지만, 오로지 찬물. 나는 손사래를 쳤다. 이 차가움, 슬슬 기억나는군. 역시 이게 군국이지.

제식마법을 쓸 수 있다면 얼마든지 따뜻한 물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그랬다간 내 보잘것없는 마력이 바닥날 게 분명한 일. 어쩔 수 없지.

수도꼭지를 열었다. 나름 좋은 방이라서 그런지, 일일 물 배급 제한이 없는 듯했다. 나는 의복패킷을 벗고는 전신에 찬물을 끼얹었.

“으아아악!”

뼈가 시려! 살려줘! 오히려 물은 무저갱이 더 따뜻한 편이었구나…!

어쩔 수 없이 소극적으로 몸을 씻는 도중이었다. 문 바깥에서 대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까지 씻으실 겁니까?”

“아, 좀만 기다려요! 거의 다 씻었으니까!”

“취침시간이 늦어서는 안 됩니다. 서두르십시오.”

늦잠 자는 게 어때서. 조금 잠을 설칠 수도 있지. 정말 신기한 생물이라니까.

그렇게 한참 흘러나오는 물로 몸을 닦는 도중이었다.

‘나팔꽃… 아니, 쓰면 안 됩니다. 부대로 복귀하기 전까진, 본관에게 통신마법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방 쪽에서 흘러나오는 생각이 들렸다. 나는 들려오는 생각을 배경음악 삼아 몸을 구석구석 닦았다.

‘…사실, 본관이 통신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본관은 그를 살인멸구해야 합니다. 이 비밀을 영원히 가져간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만일, 그가 본관의 정체를 사방에 떠벌리기라도 하면….’

통신병은 오직 골렘으로만 소통한다. 자기 본신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들을 통해 오가는 정보는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전부. 혹여나 통신병을 손에 넣은 이들이 고문이나 심문을 통해 정보를 빼낸다면, 그것만으로도 군국은 휘청거리게 된다.

모든 정보의 경유지인 통신병을 보호하고, 혹은 그들로부터 군국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게 창문 없는 방. 그리고 싱크로 타입 골렘.

‘창문 없는 방이 드러난 것은… 그리고 본관의 정체를 들킨 것은. 너무 뼈아픈 실책이었습니다….’

통신병은 오직 창문 없는 방에서 지내야만 한다. 그들의 삶은 상자 안에서 계속되어야 한다.

언제든 포기할 수 있는 골렘의 기체 말고는 아무것도 밖으로 나와선 안 된다.

내보낼 수 있는 건 오로지 의식뿐.

물론 통신병이 상자 안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기에, 어떤 순간에는 필연적으로 이동해야 한다. 통신병의 장점은 간편한 휴대성이니.

그렇기에, 통신병이 본신으로 나다닐 때는 그 소속과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기밀 작전서가 주어진다. 그게 대령이라도 펼쳐보지 못할 높은 보안레벨을 가진 작전서가.

‘원칙대로라면, 본관은 그를…. 죽여야 합니다….’

“자, 다 씻었다!”

깨끗해진 나는 다시 의복 패킷을 입고는 문을 벌컥 열었다.

어느새 이부자리는 잘 정돈이 되어있었다. 각진 베개와 이불이 나를 반기고, 조명은 조금 어두워진 채로 은은한 빛을 뿌렸다.

침대 위에 가지런히 앉아있던 대위가 나를 보고는 일어섰다.

“이제 본관이 씻겠습니다.”

나는 머리를 탈탈 털며 말했다.

“물 따뜻하던데요? 그냥 뿌리셔도 될 것 같아요.”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대위는 뻣뻣하게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달칵, 하고 문이 닫혔다.

대위는 욕실 문에 등을 기댄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치욕스럽게도, 그는 본관을 구했습니다.’

탄탈로스 근처에서 우연히 발견한 강철 상자 속에는 대위가 있었다. 머리에 피를 흘리던 채로.

탄탈로스가 뒤집혀 지상에 내려앉자, 그 어마어마한 충격이 사방으로 퍼졌다. 근처 지반이 갈라질 만큼 강렬한 충격에, 땅속 상자에 들어있던 대위는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내가 우연하게도 그걸 발견했고, 보물상자인 줄 알고 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안에 든 건 피 흘리는 대위뿐.

군국 대위면 털어먹을 것도 없다. 도리어 내가 털릴 걱정부터 해야 한다.

나는 그냥 머리에 붕대만 감아주고 갈 길을 가려고 했다.

만일 깨어난 대위가 나한테 부탁하지 않았다면.

‘…본관…을, 저곳으로….’

‘이 좁은 공간에서 저곳이 어딘데.’

눈을 게슴츠레하게 떠서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자기를 옮겨달라고 했다. 그냥 무시하고 두고 가려고 했는데.

‘…부탁…드립니다…. 오빠….’

죽은 사람의 소원도 들어준댔는데, 다친 사람 소원 못 들어줄까. 나는 의식이 희미한 대위를 부축해서 책상 앞까지 옮겨주었다.

그렇게 더듬더듬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낸 대위는 그걸 입안으로 넣었다.

자살용 독이었다.

‘아 깜짝이야!’

화들짝 놀라서 배를 무릎으로 찍었더니 독을 토하고 기절한 대위.

덕분에 나만 난감해졌다.

총으로 코끼리를 잡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죽기 직전의 코끼리에게 총을 쏴서 맞추는 것이고,

둘째는 코끼리에게 총을 쏴서 맞추고 죽을 때까지 도망 다니는 것이다.

뭐? 코끼리가 총에 맞으면 죽지 않냐고? 참나. 사람한테도 잘 안 통하는 총이 코끼리한테 통할 리가 없잖아.

차라리 이쑤시개로 잡는다는 게 더 현실적이겠다. 이쑤시개로는 기공이라도 쓰지.

어쨌든 나는 죽기 직전의 대위를 주먹으로 가격했으니, 이대로 가면 왠지 내가 대위를 잡은 셈이 된 것 같아. 깊은 고민 끝에 사람 하나 살리자는 심정으로 데리고 나왔다.

지금은 적당히 만족하는 중이다. 군국은 신분증 하나 없이 다니긴 너무 귀찮은 땅이니까.

“끝났습니다.”

“어? 벌써?”

대위가 욕실에서 튀어나왔다.

딱딱한 제복을 벗은 채 셔츠 바람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는 모습은, 어딜 봐도 전신에 물을 끼얹고 나온 사람 그 자체였다.

뭐지? 설마 그 물을 끼얹었을 리는 없고. 설마 수도꼭지도 장교를 알아보고 따뜻한 물을?

아니, 군국은 장교에게도 찬물을 선물하는 곳인데. 따뜻한 물을 원한다면 제식마법으로 물을 데워야 한다고.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물 온도는 어땠어요?”

“말씀하신 대로 따뜻했습니다.”

그게? 따뜻했다고? 이상하다. 요즘 온도의 상대적 높낮이를 칭하는 수식언이 바뀌었나.

“보급용수 평균보다 수온이 조금 높았습니다. 규모가 큰 시설이라 포집수 온도가 조금 높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머리를 탈탈 터는 대위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다. 도리어 살짝 들뜬 기색까지 느껴졌다.

대위는 오늘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신에 물을 끼얹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천국이군요. 역시 시설은 큰 게 제일입니다….”

이게 대위야 불우이웃이야.

불우대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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