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168화 (168/384)

EP.168 가짜 뉴스

나는 약하다.

마력도, 기공도, 다른 기술도. 기껏해야 존재만 할 뿐.

텁텁하고 쓴 나무껍질이 맛있지는 않겠지만, 맛이 있냐 없냐 유무를 묻는다면 당연히 존재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쓰고 텁텁한 맛 역시 맛이기에.

내가 가진 힘이 딱 그 경우이다.

있으나, 맛있지는 않은.

아득바득 긁어모아도 조금 연습한 평범한 인간 수준을 결코 넘지 못하는, 그저 그런 재능.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고.

“네루. 그렇게 정보가 급해?”

그리고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는.

내가 그 누구보다도 강한 척하는 것이다.

숨겨둔 한 수가 있는 척, 뭔가 대단한 존재인 척. 잔뜩 허세를 부리면서 정작 하는 일은 독심술을 이용한 이간질과 부추김.

정작 내 손은 쓰지 않고, 내 힘은 드러내지 않은 채로. 타인을 움직여 원하는 바를 이룬다. 그게 뒷골목에서 독심술사가 살아남는 방법이다.

“미리 경고할게. 감당할 수 있겠어?”

네루가 씩 웃으며 내 말을 받았다.

“감당이라. 자기, 이건 자기가 그 터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

“짐작이 가는 게 딱 하나 있거든.”

수인은 귀와 꼬리가 덧붙여져 있어, 청각과 균형감각이 남들보다 배는 뛰어나다. 이게 무슨 의미냐.

살금살금 숨어들어서 몰래 엿듣기에 최적화되었다는 거다.

그래서인가. 당당하게 독심술로 정보를 얻어내는 나는 그들의 음습함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겠어?”

“흐음? 괜찮지 않을 이유라도?”

네루는 시도 때도 없이 숨어들어 비밀을 캐내는 귀찮은 파파라치다. 거기에 사설 잡지의 편집장이라니, 소개만 들어보면 군국과는 상극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 알아두어야 할 것. 호기심이 과한 고양이는 벌써 다 죽었다. 사설잡지 검은고양이는 이런저런 가십을 들추면서도 군국만은 절대 거스르지 않았다. 오히려 비리나 스캔들을 폭로하는 방식으로 군국에게 협조했다.

폭로당한 이가 보복? 그럴 일은 없다.

잊지 말자. 이곳은 군국이다. 비리 의혹이 사실로 판명되면 장성급이 아닌 이상 모가지가 날아간다. 물리적으로.

검은고양이가 문다고 죽는 건 아니나, 그 위로 군법의 철퇴가 떨어지면 형체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 그야말로 죽음을 불러오는 검은고양이.

군인이 되었다고 군림할 수 없는 이유.

“이 사실을 알면 너도, 네 잡지도 그 순간부터 위험해질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법의 철퇴가 자기 머리 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태연할 수 있을까?

“마술사가 말하는 위험이라. 어머, 무섭네.”

“장난으로 여기지 않는 게 좋아. 들으면 놀라 까무러칠 수도 있거든. 너는 크나큰 고뇌에 빠져야 할걸. 잡지에 이걸 써도 될지, 누군가 화를 입는 게 아닐지. 한 글자 한 글자를 적어내려갈 때마다 두려움에 털을 곤두세울 거야. 펜이 칼보다 강한지는 몰라도, 칼보다 무겁게 휘둘러야 할 건 분명해.”

흠칫. 흔들거리던 꼬리가 잠시 멈췄다. 내 으름장에 조금 겁을 집어먹은 탓이다.

‘허세? 아니면, 진짜 그만한 일…? 마술사, 그림자. 둘은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허세다.

터부? 군국을 좌지우지할 터부를 알고 있으면 벌써 내가 썼지. 왜 남을 줘?

‘마술사는 나에게 그 정보를 알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야. 혹 군국이 나를 붙잡고 고문한다면, 나는 당연히 마술사를 밀고할 거고 군국의 경계망은 그대로 마술사에게 향할 테니까….’

고문에 굴하지 않고 비밀을 지키겠다는 생각은 하나도 없구나.

앞으로 너희에게 정보를 주나 봐라.

‘하지만, 우리도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어. 멕켈린 아저씨가 죽고 샤토가 의식불명이야. 가족의 복수를, 아니, 더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들의 계획을 알아야 해.’

네루는 이를 악물며 억지로 웃음을 끌어냈다.

무차별적인 폭력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건 그만한 약자들이다. 특히, 인식이 좋지 않은 수인은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범죄에 취약했다.

그것을 막기 위한 패밀리이나, 하필 상대는 구 왕국에서부터 내려왔던 비밀조직. 무력 싸움에서 패배하여 밀려난 패밀리는 다른 조직보다도 먼저 그들을 대비했다.

‘우리는 살아남을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루는 정보상이며, 정보상에겐 그만의 싸움법이 있다. 굳게 다짐한 네루는 거짓된 눈웃음을 지었다.

“자기, 오늘따라 꽤 협조적이네?”

“나는 언제나 협조적이었어.”

“흐응. 거짓말. 내가 대위를 언급하기 전에는 조의금조차 아깝다고 했으면서?”

‘대위, 소속은 모르지만 마술사가 꽤 싸고도는 모양이야. 자기 거처에도 들일 정도면. 후후. 이건 요긴히 써먹을 수 있겠어.’

지금껏 검은고양이는 나에게 정보를 잘 가공해서 입까지 갖다 주는 성능 좋은 빨대였다.

그런데 슬슬 급해져서 그런지, 먼 선조에게서 받은 본능이 막 튀어나오는 모양이다. 조금 신경을 쓰는 티를 냈다고 앞발로 톡톡 건드리네.

인간이 잘못했지, 인간이 잘못했어. 지상의 지배종만 안 되었어도 수인이 태어날 일은 없었을 텐데.

하아. 어떻게, 정말 건드리면 터지는 기밀 정보를 흘려버려야 하나.

내가 고민하는 사이였다.

저편에서 제복을 입은 실루엣이 보였다. 대위였다. 콘크리트로 각진 골목에, 대위는 반듯한 동작으로 한복판을 걸어오고 있었다.

네루도 대위를 알아보고는 은근히 말을 흘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대?”

“잠깐만.”

그러게. 어떻게 알았지? 아무리 우리가 노상 테이블에 앉아있긴 하지만, 이곳은 지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는 한적한 골목인데.

생각이나 읽어볼까.

‘목표를 발견했습니다. 접속 해제.’

자아, 그러니까.

군국 도처에 깔린 골렘에 동조해서, 하나하나 뒤진 끝에 나를 찾아냈다고?

…이게 통신병의 힘?

뭐야? 나는 언제부터 감시당하고 있던 거야? 일개 개인이, 나한테 감지되지 않고 나를 찾아낼 수 있다고? 그것도 저 먼 거리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내 상위호환인데?

독심술사의 존재의의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사이, 대위는 곧장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나와 네루를 번갈아 본 뒤 곧장 나에게 다가왔다.

“귀하에게 협조를 요청합니다.”

갑자기 끼어든 쪽은 에이비 대위 쪽이지만, 그래도 대위는 대위다. 뒷공작이면 몰라도 겉으로는 반기를 들 수 없다. 네루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고는 대위에게 말했다.

“어머, 대위님처럼 귀하신 분이 이토록 누추한 곳에!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빨리 이야기를 끝내고 양보해드릴게요.”

정보상의 미덕은 유연함. 대위의 등장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온화하게 말했으나.

안타깝게도 이 대위는 물대위면서 누구보다도 딱딱한 FM을 지키는 군인이었다.

“공무 중입니다. 실례합니다만, 귀하의 용건은 잠시 미뤄두기를 바랍니다.”

딱딱함은 충돌을 빚기 마련. 네루가 미간을 찌푸렸다.

“잠깐만요, 대위님. 순서는 지키셔야지. 먼저 선약이 있었거든요?”

“공무는 무엇보다 우선입니다.”

“공무? 무슨 일인데요?”

“기밀입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독심술로 생각을 읽어서 별 탈 없었는데, 지금 다시 들으니 의외로 화를 북돋기 딱 좋은 화법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네루가 신경질을 냈기 때문이다.

“장난해요?”

“본관은 장난치지 않습니다.”

평소라면 그냥 물러나 후일을 기약했을 네루지만, 지금 그녀는 뒤숭숭한 시국에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였다.

아, 절대 시각장애인을 모욕한 건 아니다. 수인에게 시각장애를 욕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오히려 칭찬이지.

“그는 저에게 정보를 팔기로 했어요. 그게 끝날 때까지만 기다려주시죠.”

“정보?”

이번에는 대위가 반응했다.

“그에게 정보를 산다는 말입니까?”

“그래요. 왜, 문제 있어요?”

“부정. 정보의 상업성에 관련한 법규는 없습니다. 사치품이 아닌 거래는 자유로우니. 다만….”

통신병은 그 자체로 극비. 자기 존재가 기밀 정보인 대위는 나를 힐끔거렸다.

‘혹, 본관이 통신병이라는 정보를 팔지는 않겠지요. 본관은 귀하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하나, 그렇다고 감시를 소홀히 할 수 없는 노릇.’

대위는 옆자리로 다가가, 그곳 테이블에 정자세로 앉았다. 몸을 이쪽으로 하고 귀도 기울인 채로 말했다.

“그렇다면, 본관은 이곳에서 거래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겠습니다. 거래를 계속하십시오.”

“무슨 말이야. 자기, 저 여자 이상해.”

이상하긴 해. 하지만 왠지 통쾌하니까 우리 편.

“어허. 오매불망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대위님에게 이상하다니! 떽! 파파라치 따위가, 양심이 없으면 부끄러움이라도 있어야지!”

“본관의 앞에서 내뱉지 못할 만큼 떳떳하지 못한 정보라면, 매매 이전에 정보 자체가 위법의 여지가 있다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위에게는 권위로, 나에게는 상식으로 치인 네루는 약이 오른 듯이 눈을 치켜떴다.

“둘이 손발 짝짝 맞는 거 봐. 사귀기라도 하는 거야?”

“부정! 근거 없는 모함은 그만하고 속히 용무를 마치십시오!”

흐음. 대위야 어쨌든, 지금 네루는 이래저래 몰린 상태다. 그에 상응하는 정보가 없으면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거다.

하지만 말마따나 대위 앞에서는 말하기 힘든 내용인데. 일단 대위를 집으로 보내고 이야기를 끝내야겠다.

“따돌리려는 생각은 마십시오. 본관은 귀하의 이야기가 끝나기 전까지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완고한 대위를 어떻게 하면 집으로 보낼 수 있을까.

아, 그래. 네루가 방금 뭐라고 말했지? 그 방법을 써볼까?

“안 되겠다. 삐. 이제 말할게.”

“…? 어째서 본관의 동의를 구하는 것입니까?”

‘혹시 본관이 통신병이라는 사실을 말하려고…? 허용할 수 없습니다. 그 순간, 본관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골렘을 사용해서라도 목격자를 제거해야 합니다.’

무서워라. 만일 그러기로 마음 먹으면 나는 생각도 못 읽어서 대응도 못하잖아.

그거 아니니까 걱정 마시고.

나는 대위에게 손짓했다. 대위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뚜벅뚜벅 내 곁으로 다가왔다.

대위가 내 옆에 서자, 나는 그 상태로 대위를 잡아당겼다. 아차 하는 사이 대위는 내 무릎 위에 앉게 되었다.

‘…? 의문. 무슨 행동입니까?’

의문에 가득 찬 대위를 무릎에 앉힌 채, 나는 난감한 듯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맞아, 네루. 나는 사실 삐랑 진지하게 교제 중이야.”

“……?!?!”

‘금시초문입니다만?!’

당연하지. 오늘 처음 말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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