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169화 (169/384)

EP.169 가짜 뉴스라고!

폭탄선언.

하늘도 모르고, 땅도 모르고, 당사자인 대위도 모르며 심지어 나도 10초 전까지는 몰랐던 거짓 뉴스에 대위는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되어 아무런 말도 못했다. 입을 뻐끔거리고 어깨를 흠칫거리며 자기도 모르는 충격 소식에 몸을 떨었다.

대위가 당황한 그 짧은 틈을 타 나는 적당히 이야기를 꾸며냈다.

“내가 삐와 운명적인 만남을 한 건 역설적이게도 수명이 깎여나가는 혹독한 노역장에서야. 와, 노역형이 빡세다 말은 들었는데, 진짜 몇 번 죽을 뻔했지 뭐야. 지치고 힘든 와중에도 거기서 나를 꼬박꼬박 오빠라고 불러주는 거 있지. 네루 너는 잘 모르는 모양인데, 남자는 오빠라는 말에 껌뻑 죽는다.”

“나도 충분히 알아, 자기.”

“자기라는 호칭은 좀 낡아 보여. 뭐, 너도 알고 있으니 일부러 하는 거겠지만.”

“뭐?”

와중에도 쌍심지를 켜는 네루를 두고, 나는 내 위에서 뻣뻣하게 굳은 대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주먹 쥔 손을 제 무릎 위에 올리고 반듯이 앉아있던 대위는 그 손길에 폴짝거렸다.

“어쨌건 그러다 보니까 뭔가… 그렇게 되었다고 할까.”

내가 생각해도 정말 대충 지어냈구나.

삐걱거리는 대위와 눈이 마주쳤다. 한껏 커진 대위의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것 같았다.

‘부정! 협박의 결과이잖습니까! 도대체 언제까지 우려먹을 작정입니까!’

그래도 대위는 내 가짜뉴스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기 전, 그 말이 그녀의 정체를 드러낼 가능성이 있는 기밀에 해당하는지 아닌지 판단해야 하기에.

진실은 하나지만 거짓과 선동, 날조는 무한하다. 나는 그 무한한 거짓 중 가장 달콤한 것을 고르면 되니.

선동과 날조는 한순간이지만, 그것을 정정하는 데에는 한참이 걸리기 마련.

“노역을 끝내고 아미텐그라드로 같이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때 강도와 만난 것을 계기로 급속도로 친해졌어.”

눈치 없이 끼어드는 로맨스 스토리에 네루가 팍 인상을 썼다.

‘뭐? 지금 무슨 뚱딴지같은. 군국의 터부에 대해 말하려던 참이 아니었어?’

그래. 이상하지?

정보상인인 너라면 알아차리겠지, 네루. 이게 얼마나 가당찮은 이야기인지.

일단 쿵짝을 맞춰. 대위를 부끄럽게 만들어서 보내버리고 이야기를 이어나가자고.

‘…하지만 좋은 기삿거리야! 마술사와 장교의 스캔들이라면 시크릿 멤버에게 팔아넘길 수도 있어!’

아니, 진심으로 취재하려고 하지 말라고. 우리 방금 전까지 군국의 터부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잖아. 직업병이야?

그나저나 시크릿 멤버? 또 뭐야 그건. 이 기사가 왜 팔리는데?

에잇, 몰라. 일단 대위를 보내고 해명하자. 부정을 용납지 않는 대위가 남아있으면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힘드니까.

“서로 같은 집에서 살고, 내 침대에서 자고, 같이 쇼핑도 하고 노역도 했지.”

“노역까지 같이 했으면 변명의 여지도 없네. 교제가 확실하구나.”

네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에 대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본관은 본관도 모르는 사이 교제하고 있던 겁니까…?!’

네가 헷갈리면 어떻게 하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가짜 뉴스라고 알아야지.

와중 직업병에 걸린 네루는 빨대를 가지고 글씨 쓰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대위와 진지하게 교제 중이라니… 설마, 이게 자기가 나에게 말하고 싶었던 정보야?”

“그래. 좋은 일은 널리 알려야 하잖아.”

“무슨. 하객이 필요한 거겠지.”

“하객 같은 거 와서 뭐해. 축의금만 줘.”

톡, 소리를 내며 빨대가 떨어졌다. 감탄한 네루는 고양이처럼 손을 말고는 자기 입가에 가져다 댔다.

고양이 수인은 그래도 인간이라 손과 발에 털이 없지만, 자세 하나는 어지간한 고양이 못지 않았다.

“…호오.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 하긴, 벌써 동거 중이니.”

‘동거?! 결혼?! 본관은, 본관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마음의 준비는 무슨 준비? 이상한 준비하지 말고 빨리 반박하라는 말이야.

-부정! 귀하의 발언은 거짓 증언이며, 동시에 본관을 향한 희롱입니다!

이렇게 외치면서 불쾌한 티를 팍팍 내며 당장 자리를 박차고 떠날 거라 생각했는데, 왜 뻣뻣한 자세로 가만히 있는 거야? 네가 부정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까 가짜 뉴스가 진짜 같잖아!

“…흐응. 둘이 정말 사귀는 거 맞아? 서로 익숙지 않아 보이는데.”

드디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구나.

후, 다행이다. 그래. 너라도 제정신이면 가짜 뉴스 사태를 돌이킬 수는 있겠….

‘훗, 이렇게 보니 대위도 좀 귀엽네. 군대에 있어서 그런지, 이성이 어색한가 봐? 더 좋은 기사를 위해서라도 내가 살짝 등을 떠밀어줘야겠어.’

절벽에 아슬아슬 걸친 물건 떠미는 건 네 조상에게서 배웠냐, 이 1/8 고양아? 어쩌면 하는 짓이 이리 밉상이지?

“둘이 같이 살았으니, 서로 몸에 있는 점 개수 정도는 알겠지?”

“…점?!”

대위는 부끄러움이 과했는지 대답다운 대답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위의 몸에서 램프라도 되는 듯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군국 이 자식들, 인간을 기계 취급하니까 정말 기계가 되어버렸잖아. 뜨거우니 고장이 났다고.

아, 몰라. 아무튼 군국이 나빠.

네루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한쪽 눈으로 나에게 윙크를 했다.

‘후후. 이렇게 등을 떠밀어주면, 오늘 밤 서로 점 개수가 신경 쓰여서 못 견디겠지. 어때? 도움이 됐지, 마술사?’

웃기지 마라, 자식아. 내가 왜 점 개수를 신경 쓰는데. 이미 알고 있단 말이다.

나는 잠깐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필요 없어. 이미 알거든. 다섯 개야.”

“?! 부정! 아니, 긍정, 도덕적 부정! 귀하가 그 정보를 어떻게 안다는 말입니까!”

앗 차.

“흐음. 이미 볼 장 다 본 사이네.”

“부부, 부정! 그리고 본관의 점 개수는 넷입니다!”

“어깨 뒤쪽에도 하나 있던데. 그건 셌어요?”

“그럼 다섯이 맞… 그 정보를 귀하가 어떻게 아는 겁니까!”

“앗, 기밀이에요.”

“부, 부정(不正)! 귀하의 행동거지는 바르지 못합니다!”

몸을 홱 돌리며 나에게 따지려던 대위는, 자기가 내 무릎 위에 있다는 사실도 잊고야 너무 큼직하게 움직이고 말았다. 그대로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대위와 나는 몸을 포갠 모양이 되었다.

데친 풀잎 향이 이럴까. 새빨개진 얼굴과 뜨거운 몸이 딱 달라붙는다. 딱딱한 제복 위로도 느껴지는 온도가 몸을 덥힌다.

이야, 겨울에도 이거 하나 있으면 따뜻하겠네.

…흠. 살짝 위험한데.

“어머. 보기 좋아라. 둘은… 대낮에도 거리낌 없이 스킨십을 할 정도로….”

“정지! 지우십시오!”

건수를 잡은 네루는 어느새 메모지를 꺼내서 기사를 써내려갔다. 대위의 명령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점의… 개수는… 다섯…. 서로의… 몸을… 짚어가며… 별자리를… 그려주는… 관계.”

“짚은 적도, 그린 적도 없습니다! 잊으십시오! 기밀입니다!”

“대위의 몸… 점의… 개수는… 군사기밀….”

“부정! 기밀은 아니고, 비밀입니다! 사생활입니다! 당장…!”

부끄러움에 머리까지 과열되었는지, 팔을 허우적거리던 대위는 그대로 땅에 고꾸라질 뻔했다. 나는 급히 대위의 어깨를 붙잡아 당겼다. 대위의 얼굴이 내 가슴팍에 부딪혔다.

그대로 끌어안긴 모양새가 되자, 대위의 입에서는 짓눌린 소리가 났다.

“아, 우, 아.”

진짜 고장 났나 봐. 어쩌지.

여기서 신이 난 사람은 네루밖에 없었다. 숙련된 파파라치답게 한 점 부끄러움도 없이 우리를 관찰한 그녀는, 기사 초안이 완성되자 메모장을 찍 찢어서 허벅지 벨트에 숨겼다.

“좋아. 취재는 끝났어. 협조 고마워, 자기.”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미안, 사죄의 의미로 이 음료는 내가 살게.”

아니, 터부 듣겠다며. 이야기 안 끝났잖아.

수인들의 연합인 만큼, 패밀리는 가장 조직력과 정보력이 강한 단체다. 이들에게 적당한 정보를 흘리면서 필요할 때 내 뜻대로 움직이려고 했는데.

“걱정하지 마, 자기. 자기가 이런 말 한 이유를 알겠으니까.”

그래. 알아주는구나.

하긴, 중간부터는 대위의 반응을 보며 즐기고 있더라고. 다 내 속뜻을 알아챘으니, 나중에 다시 만날 약속을 잡겠….

‘자기에게도 지켜야 할 소중한 사람이 생겼으니, 이 일에 대해 더 묻지 말고 믿고 맡기라는 뜻이겠지. 후후, 천하의 마술사도 꽤나 로맨티스트잖아?’

왜 네 머리는 가식과 가십으로만 가득 차 있니? 남의 연애 이야기(날조)에 왜 그리 흥분하는 거야? 3인칭 관찰자적 발정기가 오기라도 했어?

‘어쨌건 자기 여자까지 내보였으니, 우리도 성의를 보여야겠지. 그래. 뭘 계획하는지는 몰라도, 네 꼭두각시놀음에 놀아나 줄게, 마술사. 집단 소매치기 축제 날처럼.’

더 묻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한다는 건 고무적인데, 오해도 이런 오해가….

후, 됐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가 좋으니 됐어. 나에게 있어서 최선의 결과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네루는 문득 물었다.

“…아, 자기. 대위님 소속이나 신분은 알리면 안 되지?”

대위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에게 안겨있던  대위는 그 말을 듣고는 더욱 나의 안쪽으로 파고들어갔다. 정체를 숨기고 싶어하는 듯이.

어차피 대답은 정해져있던 터라, 나는 냉큼 고개를 저었다.

“뒷조사도 하지 마. 지금 이것만으로도 기삿거리는 충분하잖아?”

“만일 우리가 살짝 건드린다면?”

끝까지 툭툭 건드리는 거 보게. 나는 상쾌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거야.”

담백한 진실이었다. 원칙상으로 대위가 통신병이라는 것을 안 순간, 대위나 너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테니까.

그러자 네루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자기. 대위님 신분은 꼭 감춰줄게.”

‘정말 건드리면 안 되겠네. 마술사가 이 정도로 단언한다면, 건드렸다간 성하게 안 끝날 거야….’

어? 아니, 나 말고. 너희 둘. 너랑 대위.

둘 중 하나가 죽는다니까? 그 목숨의 시소에 왜 나를 끼워 넣어?

‘잠깐. 그러면 우리는 마술사의 그녀를 두고 간을 본 셈이네…. 으음, 당분간 패밀리에게 마술사가 주는 건 받아먹지 말라고 전해야겠어. 저게 눈 돌아가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이제 알았니.

말 나온 김에. 나는 지갑을 꺼내는 네루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내 이름 본명으로 쓸 건 아니지?”

“물론이야. 훌륭한 기삿거리는 아껴서 써야 하니까… 원하는 옵션이라도?”

“중등학교 전교 1등을 연달아 독차지한, 두뇌명석한 휴이라고 적어줘.”

“접수. 오케이, 고마워, 자기.”

네루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멀어졌다. 나에게도 약점이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 탓일까, 그녀의 발걸음은 경쾌하기 그지없었다.

완전한 오해지만, 굳이 정정할 필요는 없다. 상대방의 오해를 유발하는 것도 좋은 빌드업이거든.

그나저나.

“….”

내 옷깃을 잡은 채 가만히 숨죽이고 있는 대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부끄럽게 만들긴 했는데, 집이 아니라 이상한 곳으로 보내버린 것 같아.

…일단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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