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181화 (181/384)

EP.181 퍼지 데이

군국 전역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왕국 시절부터 내려오던 유서 깊은 수인 혐오는 군국으로 바뀌어도 계속되었다. 다만, 사람들에게 수인 혐오를 실행할 여유가 없어졌을 뿐이다. 군국은 수인이든 인간이든 똑같이 이용했으니까.

그나마 여유가 있던 몇몇도, 패밀리의 존재 때문에 수인들에게 섣불리 손대지 못했다. 조직적인 반격을 받으면 당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기사라도 있었지, 지금 습격이라도 했다간 사이좋게 노역장 행이다.

욕구가 쌓여있던 차별주의 집단 JJJ.

패밀리에서 무력을 담당하던 행동대장이 그림자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JJJ는 저쪽 구역에서 폭발음이 들리자 곧장 행동으로 옮겼다.

사냥의 시간이었다.

고아 중에는 보호소에 억하심정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있었다.

퇴역 군인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보호소. 그곳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군대식 제식교육에 익숙해져, 초등시민학교에서부터 두각을 보였다.

높이 솟은 것은 그림자를 드리우기 마련이다. 평범한 고아원의 아이들은 보호소에 열등감을 가진 채로 자랐다. 시민학교만 졸업하고 하루하루 노역만 하며 살아가는 그들, 가끔 모여서 불만만 토해내는 게 작은 위안인 그들에게 그림자의 유혹은 너무나 달콤했다.

아직 어리나, 그렇기에 더욱 위험한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군국의 밤을 걸었다.

결행일을 착각했다, 라고 하기에는 상황은 편승하지 않으면 바보가 될 만큼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덧붙여 13구역에서 시작된 불꽃놀이가 너무 소란스러워서 도리어 결행일이 내일이라는 정보가 도리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혼돈은 배우자 없이도 혼돈을 낳는다. 놀란 시민이 경관에게 신고했으나, 군정 아래에서 꼭두각시가 된 경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눈덩이든, 불길이든. 처음에 진압하지 못하면 점차 몸을 불리기 마련이다. 현재 군국의 상태가 딱 그랬다.

군국 곳곳에서 때 이른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그러나, 그림자가 어중이떠중이들을 잔뜩 모았다고 그 본체가 어중이떠중이 집단으로 바뀌는 건 아니다. 어둠 속에서 사태를 지켜보던 전령이 급히 움직였고, 이 모든 사실은 비교적 빠르게 그림자 측에 전해졌다.

예정에 없던 일이 생겼다는 보고에 울펜은 그림자들을 소집했다.

옆 사람 얼굴이나 간신히 보일 법한 어둠 속에 그림자들이 모였다. 정확히 누가 있는지, 몇 명이 같이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 칠흑. 힘껏 억누른 숨소리만이 들리는 그곳에서.

울펜의 목소리가 그림자를 타고 들렸다.

“…계획이 어그러졌다.”

그의 목소리는 바로 곁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했으며, 저 멀리서 메아리처럼 울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거리감을 잴 수 없는 기이한 감각에 그림자들은 몸을 떨었다.

하나 확실한 건, 울펜의 목소리가 모든 사람에게 들리고 있다는 점.

“그러나, 관계없다. 우리를 방해한 이는 진정한 계획을 모르고 있으니.”

스르르.

희미한 달빛이 비치는 단상 위에 울펜이 연기처럼 내려앉았다. 기척조차 없어서, 모든 그림자들이 그의 등장을 눈치채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울펜의 곁으로 여섯 명의 반그림자가 차례로 나타났다.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싼 채, 칼날과 같은 기세를 풍기는 그들은 존재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했다.

그림자를 이끄는 수장과, 그 간부들. 하나하나가 장성까지도 죽일 수 있는 암살자.

심지어 그 수장인 울펜이라면, 군국이 자랑하는 육장성마저 암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림자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울펜의 은신술과 기공은 뛰어났기에.

울펜이 입을 열었다.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혼돈을 흩뿌리는 것, 군국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 그리고, 그들의 손을 빌려 쓰레기들을 치워내는 것.”

그랬다. 일자가 하루 어긋났다고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지금 바깥에서 싸우는 것들은 잡졸에 불과하다. 터져야 할 화약이 하루 일찍 터진 건 그다지 대수로운 문제도 아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우리의 손발을 어긋나게 하려고 획책한 것 같으나… 좋다. 누군가 억지로 손을 당긴다면, 우리가 그에 보조를 맞추어주지.”

눈 깜짝할 사이 울펜이 사라졌다. 분명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가 있어야 할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은신술은 들키면 무용지물이며, 경신술은 그냥 멀리 뛰는 방법일 뿐이다. 그러나 그 둘을 극성으로 익힌 울펜의 움직임은 마치 허깨비를 보는 것과 같았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자. 그림자의 수장, 울펜 펜슈타인.

다시금 그림자에 녹아든 그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은 이에 선언하니, 결행을 앞당긴다. 그림자는 혼란을 부추겨라. 반그림자는 독을 퍼뜨려라. 오늘부로, 우리가 다시 어둠을 손에 넣으리라.”

새카만 어둠 속에서, 수많은 그림자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

죄의식과 부끄러움은 얼굴에서 나온다. 달리 말해, 얼굴만 가리면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얻게 된다.

까만 복면을 덮어쓴 수인 차별주의자 JJJ 조직원들은 어두운 거리를 당당하게 걸었다.

평소에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지냈지만 오늘만은 다르다. 뜻이 맞는 이들끼리 뭉치니 겁낼 게 없었다.

목표는 검은 고양이 잡지사.

수인에게 일자리와 평화를 제공하는 더러운 파파라치들이 가득한 곳이자, 남의 뒤나 캐면서 돈을 버는 걸 버젓이 직업이라 칭하는 도둑고양이놈들.

평소라면 패밀리의 보복이나 군국의 감시 때문에 감히 실행하지도 못했을 일이나, 오늘만은 달랐다.

그림자가 일을 벌여주었지 않는가.

고깔모자를 쓴 복면인이 외쳤다.

“마음껏 날뛰어라. 어차피 오늘 밤은 누구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다. 군국이 자랑하는 치안조차 오늘만은 무력하다.”

그림자가 날뛰는 날, 사회 곳곳에 혼란이 몰아치는 때.

잔뜩 억눌려왔던 그들의 삶이 해방되는 순간이다. 가면을 쓰고 군홧발 아래 짓눌린 위험한 본성이, 수인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억눌러왔던 증오를 해방하자. 제 주인도 못 알아보고 감히 인간의 자리를 탐하는 짐승 놈들에게 한 방 먹여주는 거다. 우움!”

“우움!”

자기네들이 만든 구호를 외치며 길거리를 나아가는 조직원들.

그들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다섯 번째 반그림자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흐음. 딱히 수상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군. 정말 가짜 정보에 속아넘어갔을 뿐인가.’

결행일보다 하루 먼저 움직였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JJJ는 정확히 그림자가 기대한 대로 움직이고 있다. 다섯 번째는 의심을 거두었다.

그들은 길을 가다가 수인과 마주치면 바로 덮쳤다. 몇몇은 도망치는 데 성공했으나, 모두 그들만큼 감이 날카롭지는 않았다. 어리거나 어수룩하거나 나이가 많은 수인들은 잡혀서 호되게 맞은 뒤, 밧줄에 묶인 채로 그들의 포로가 되어 끌려다녔다.

귀와 꼬리의 털이 불꽃에 그을린 채로 끌려가는 수인들. 다섯 번째는 그 광경을 보고 아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흥. 군국이 집권해도 진리는 바뀌지 않는군. 짐승 놈들 따위는 목줄을 차는 게 어울리지.’

뼛속까지 수인 혐오자였던 다섯 번째다. 어찌나 증오가 깊었는지, 본그림자가 일곱 번째 반그림자로 수인을 지명했을 때 진지하게 조직 탈퇴를 고민할 정도였다.

일곱 번째가 울펜의 손에 죽었을 때 그가 얼마나 기뻐했는지는 누구도 모를 것이다.

‘배신을 일삼으며 남들에게 꼬리치는 걸로 연명해온 민족들… 너희들은 인간의 발밑에 있는 게 어울린다.’

그가 자청해서 이쪽 구역을 맡겠다고 한 것에는 밑바닥에 끈적끈적하게 눌어붙은 증오도 한몫했다.

자기 손으로 수인을 죽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어디, 짐승처럼 울부짖어봐라.’

수인에게는 흉성이 있다지만, 그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권능 같은 게 아니다.

그냥 죽기 직전에 내뿜는 발악일 뿐.

‘발악하는 짐승의 목에 칼날을 박아넣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또 없지….’

황홀했던 첫 살인. 날뛰는 수인의 뒷목에 칼을 꽃아넣은 그 순간, 다섯 번째는 암살자가 자신의 천직임을 확신했다.

아직까지 손맛을 잊지 못한 다섯 번째가 머지않아 다가올 쾌락을 기대할 때였다.

“잡아라!”

또 한 명의 희생자를 발견한 모양이다. 조직원들이 냅다 달렸다.

저 멀리 있던 사람 그림자는 그들을 피해 훌쩍 뛰었으나, 조직원들의 집요한 추적 끝에 결국 막다른 벽에 몰리고 말았다.

“도망치지 마라!”

“냐? 도망? 냐가 도망친다고 말했다냐?”

수인이 인상을 팍 쓰며 몸을 돌렸다.

눈에 띄게 아름다운 수인 소녀였다. 정돈된 흰색과 검은색 머리털이 허리까지 내려오고, 기다란 꼬리가 부드럽게 살랑거렸다. 체구는 자그마했지만 고양이 귀와 꼬리가 유독 돋보였다.

짐승의 피를 짙게 물려받은 듯한 수인 소녀는 불쾌한 듯 인상을 팍 썼다.

“냐는 도망치지 않는다냐, 인간. 너희가 귀찮아서 피한 것뿐이다냐.”

“큭큭. 자존심만 세서는…. 어디, 너도 이들처럼 만들어줄까?”

복면을 두른 조직원이 드러난 입가로 씨익 웃었다. 그가 몸을 비키자, 밧줄에 묶인 수인 포로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피와 그을린 털로 범벅된 수인이 흐느끼며 그들의 동료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목줄은 개만 차는 줄 알았는데, 인간끼리도 서로 목줄도 찬다냐. 역시, 인간이나 개나 거기서 거기다냐….”

고양이의 입으로 개와 비교되는 차별주의자의 심정은 어떨까.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복면을 쓴 무리가 웃음을 뚝 그치고는 흉흉한 기운을 내뿜었다.

“감히 우리를 개에 빗대? 걱정하지 마라. 너도 같은 꼴이 될 거다.”

복면인이 밧줄을 세게 당기자 피범벅이 된 수인이 땅 위로 넘어졌다. 피부가 쓸리며 핏방울이 떨어진다.

결국, 인간은 소녀에게 피와 재의 냄새를 들이미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소녀는 전신의 털을 곤두세우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냐아아… 피 냄새….”

“하하. 이제 알겠냐? 이제 네가 이 꼴이 될 차례다.”

“냐아-. 냐아--.”

애처로우면서도 소름끼치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골목을, 구역을 가득 메웠다. 듣기만 해도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불길한 울음이었다.

잠깐 멈칫한 조직원들은, 자기들이 겁을 먹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횃불을 든 조직원이 외쳤다.

“잡아!”

그 말을 필두로, 조직원들은 밧줄을 단단히 움켜쥔 채 소녀에게 다가갔다….

다섯 번째는 그 광경을 보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불길하다.’

무엇일까. 겉보기에는 평범한 소녀일 뿐인데.

수인에 대한 혐오감 이전에, 밑바닥부터 끓어오르는 생존 본능이 그에게 경고를 울렸다. 다섯 번째는 들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말리고자 손을 뻗었다.

“캬하아아악-!”

늦었다. 밧줄을 들고 손을 내민 이들은, 그대로 팔이 세 갈래로 찢겼다.

세로로.

주인의 몸에서 쫓겨난 피가 콘크리트 벽에 그 궤적을 새겼다. 소녀의 손에 돋아난 날카로운 손톱이 서늘한 빛을 발했다.

날카로운 손톱과 걸레짝이 된 팔 한 짝.

바보라도 그 인과관계를 유추할 수 있을 터였다. 복면인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아악!”

“사, 살인이야! 경찰 불러!”

“뭐, 뭔데? 무슨 일인데?”

혼란의 도가니였다.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몇몇 바보같은 조직원이 덤볐으나, 몸 한구석에 깊은 장애를 입고는 튕겨 나갔다.

무리를 짓는 방식으로 우위를 점한 이들은, 진정한 포식자를 맞이하여 상황이 역전되었다.

피보라가 몇 번 일자, 상대의 격을 파악한 조직원들은 잔뜩 겁을 먹은 채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수인을 붙잡고 있던 복면인은 자기 손에 들린 밧줄을 급히 내던지며 뒤로 달아났다.

그 광경을 본 다른 복면인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다.

“바보 자식아! 인질로 잡아야지!”

“아차!”

그러거나 말거나.

나비는 스트레스로 가득 찬 상태였고, 눈앞에는 겁먹은 짐승이 우글거렸다. 세로로 된 동공이 더욱 좁아졌다.

꼬리를 빳빳이 세운 나비가 눈앞의 인간들을 당장이라도 도륙 내려는 때였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나비는 살기를 죽이고는 호주머니를 더듬었다.

“냐-. 인간 대신, 공물….”

인간을 죽이고 싶을 때, 살의를 참는 대신에 쓰라고 건네받은 마력초.

합법적으로 마력초를 피울 기회다. 영악한 나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력초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그 순간 나비의 얼굴이 잔뜩 풀어졌다.

행복하고 개운한 향기가 피와 연기의 냄새를 가리고 나비의 코를 가득 메웠다. 눈앞의 인간도, 피와 연기 냄새도. 더는 나비를 괴롭히지 않았다.

나비는 이 순간 행복 속에 있었다.

“냐하…!”

기분이 좋아진 나비는 마력초의 끄트머리를 앞에 두고 손톱끼리 부딪쳤다. 스파크가 일며 마력초 끝부분에 불이 붙었다.

세계수를 태우며 얻은 그 배덕적인 향기는 금방 고양이의 왕을 행복하게 했다.

다만, 언제나 인간이 말썽이었다.

눈을 감은 채 행복을 만끽하던 나비의 귓가로 인간들의 신음이 들려왔다. 즐거운 시간을 방해받은 나비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방해다냐!”

그러고는 훌쩍 뛰어서, 누구도 방해받지 않는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 사람을 실컷 찢어발기고서는, 갑자기 마력초를 꺼내 들고 피우다가 냅다 달아나다니.

변덕스럽고, 의도를 알 수가 없다. 왜 나타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섯 번째는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마침 옥상으로 올라온 나비와 마주쳤기 때문이다.

“냐아? 여기도 인간이 있다냐.”

“큭…!”

누구보다도 수인다운 존재를 마주한 다섯 번째가 느낀 건, 혐오보다는 공포였다. 혐오감이 생존본능을 이기지 못하는 탓이다.

다섯 번째는 나비를 맹수라도 된 것처럼 경계하며, 눈을 마주친 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갈 거면 빨리 가라냐!”

다만, 나비의 인내심은 시시각각 타 들어가는 마력초보다 짧았다. 나비가 냅다 달려와서 앞발로 다섯 번째를 ‘치워’ 버렸다.

막거나 피할 새도 없이. 퉁, 다섯 번째의 신형이 건물 끄트머리로 날아갔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았을 때. 그의 몸은 옥상에서 한참 떨어진 허공에 있었다.

“크억!”

그대로, 다섯 번째는 대지모신의 부름을 받아 땅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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