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6 살고 싶다고 말해 - 2
대위 말마따나,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소요사태는, 곳곳에서 일어난 저항으로 적절한 대응이 이뤄지고 있으나…. 그림자들은 이 소요 사태의 성공이 아니라, 이 소요사태를 일으키는 것 자체가 목적입니다.”
나도 안다.
결국, 그림자의 목적은 뒷골목의 청소다. 인원을 사방에 쪼개서 보내놓은 것도, 이 불티와 연기를 더 널리 퍼뜨리기 위해.
비록 미리 읽히는 바람에 각개격파당했으나, 그들의 목적 자체는 벌써 이루었다.
“이미, 그들이 가진 군국의 터부는 사방에 흩뿌려졌을 것입니다. 혹여나 군 당국이 터부에 대한 단서를 입수한다면, 소동이 크지 않아도 이 사건을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늦었습니다. 사태를 일으키기 전에 막았어야 했는데….”
전쟁과 분란의 나쁜 점은, 둘이서 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쪽이 일방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대응하든 싸움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군국이 하멜른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면, 관련된 모든 것을 지우려고 나설 것이다.
“그림자는…. 성공했습니다. 본관은 그들을 막지 못했습니다. 만일, 본관이 조금 더 일찍 움직였다면… .”
대위에게서는 절망과 낙담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 속에는 멋대로 일을 저지른 나를 향한 원망도 조금은 들어있을지도.
하지만 나를 탓할 수만도 없다. 대위의 입장에서, 정작 가장 원망스러운 건 대위 자신이었으니까.
‘너무 시간을 많이 끌었습니다. 본관은 제 목숨조차 제때 쓰지 못하였습니다….’
그림자의 작전. 소동을 일으켜서 군국의 시선을 끈 뒤, 터부를 뿌려서 군국으로 하여금 청소하게 하자.
대위는 그에 맞서서 자기 목숨을 써 그들을 막으려고 했다. 가까운 관청에 들러서 통신본부에 경고를 전달하고, 스스로 미끼 삼아 살해당함으로써 헌병대를 불러오려고 했다.
통신병이 의문의 사고를 당했다면, 통신본부에서는 무조건 조사대를 파견하니까.
나름 괜찮은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 혹 작전을 성공시켰다면, 그림자를 일소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군국이 그들을 견제했으리라.
하지만 내 계획은 조금 달랐다.
“괜찮아요! 이럴 때를 위해서 통신병이 있잖아요!”
대위는 영문도 모르고는 눈을 끔뻑였다. 그녀를 향해, 나는 한없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순수하고, 순진한 척.
“대위가 비밀로 하자고 해서 가만히 있었지만, 사실 대위는 통신병이잖아요! 군국 높으신 분에게 직접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부정, 본관은.”
부정의 대답이 나오자 선물을 빼앗긴 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되물었다.
“네? 상층부에 연락도 못 드려요? 통신병인데? 골렘으로 사방팔방에 연락하고 다니는 그 통신병인데?”
뒷사정 따위는 모른다는 듯, 한없이 순진함을 가장한 말. 대위는 당황하면서도 또박또박 진실만을 말했다.
“단순 사실만 발언하자면, 긍정입니다. 본관은 상부에 연락을 취할 수 있습니다. 하나.”
“그럼 됐네요!”
나는 활짝 웃었다.
웃는 낯에는 침을 못 뱉는다고. 대위는 내 순진한 미소에 말문이 막혔다.
“뒷골목에서 저와 며칠 함께 지낸 에이비 대위라면, 이번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상대가 누구이고 무엇을 노리는지, 그리고 터부를 알고 있는 그림자의 실체가 누구인지 다 알 거 아니에요! 에이비 대위가 조금 더 노력해주면, 군국이 필요 없는 ‘오해’ 덕분에 잘못 때릴 일은 없겠죠!”
기대감에 가득 찬 내 말에, 대위는 당황해 가지고는 안절부절못했다.
그야 당연하다. 나에게 정체를 들킨 대위는 통신병으로 복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살아서 본부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으며, 그럴 수도 없었다.
“기다리십시오. 그것은.”
하지만 그것은 기밀, 나는 그것을 모르는 척 다그쳤다.
“네? 설마 못하겠다는 건 아니죠? 여기에는 뒷골목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있는데요?”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되물었다.
“30만, 뒷골목 30만의 인생이 달려있어요. 오늘 이 사건으로 크고 작게 연관된 사람만 30만이에요! 패밀리가 무너지면 수인들 대다수가 몸을 움츠릴 거고, 마켓이 털리면 뒷골목 경제가 마비되어요. 보호소는 말할 것도 없죠. 누군가의 가족이, 친구가, 연인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어요. 만일, 대위가 돕지 않는다면요!”
순간적으로 대위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대위의 뇌리에 마침 떠오른 건, 어느 한 골목에서 굳게 닫혀 있던 을씨년스러운 문이었다.
세상에는 희극만 있지 않다. 사람들의 삶을 사랑하던 대위에게 있어, 닫힌 문에서 흘러나오는 고독한 죽음은 외면하기 힘든 것이었다.
아무리 두들기고 소리쳐도 열리지 않았던 문.
이 거칠고 힘든 뒷골목에서조차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친구 둘과 우연히 목격한 대위 하나만이 간신히 기억하는 싸늘한 죽음.
창문 없는 방을 나선 뒤 대위는 즐거움과 슬픔을 배웠다. 즐거움을 바라고 슬픔을 피하게 되었다.
그래서 뒷골목 사람들을 위해 자기가 나서려고 했다.
“군국은 그들을 손쉽게 저버릴 수 있겠죠. 하지만, 에이비 대위. 제가 같이 지내본 대위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 아니잖아요? 안나의 밥을 맛있어했고,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시민들을 좋아했고, 노동과 그 대가를 만끽하는. 힘들지만 보람찬 삶 자체를 긍정하는 상냥한 사람이잖아요?”
상냥하기에 도리어 겪을 수밖에 없는 주박.
원리와 원칙이라는 족쇄 아래 억눌려있던 과도한 공감능력.
자신을 깎아서는 타인에게 주는, 성자와 성녀의 덕목.
군국이 통신병을 창문 없는 방에 가둘 수밖에 없던 이유가, 지금 대위에게서 나타났다.
“설사 군국이 그들을 버리더라도, 대위는 그들을 저버리지 않을 거죠? 안나도, 스멘도, 혹은 점장 크린이나 파파라치 네루도. 아니면, 보호소에 있는 퇴역군인과 그들이 돌보는 고아들. 모두를 위해서라도 힘내줄 거죠?”
“…본, 관은.”
“네? 안 도와줄 거예요?”
열심히 노력한다면, 어쩌면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통신병에게는 정보를 관제하는 힘이 있으니까. 통신병들의 지위가 높은 건 아니나, 분명 그들은 군국을 움직일 수 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하나.
“…해, 서는. 안 됩니다.”
통신병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정보에 주관이 섞인다면, 의도가 그 안에 배어든다면. 그 독은 군국 전체를 맴돌며 나라를 좀먹을 것이다. 신경을 타고 흐르며 철혈로 이루어진 몸에 기능장애를 일으킬 것이다.
통신병, 그 역시 군국의 터부. 군국이 숨기려고 했던 가장 중대한 비밀 중 하나.
“본관은, 그리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통신병은, 그런 성품을 지니고서도 외로움 속에 자신을 감금해야 했다. 공감 능력을 오직 고유마도를 통해 제한된 곳으로만 발현해야 했다.
“왜요?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거예요?”
“…기밀, 입니다.”
‘본관은 그 정체를 결코 밝혀서는 안 되는… 통신병이기 때문입니다. 정체를 밝혀서 살아남을 바에야, 죽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좋아, 슬슬 때가 되었다.
군국이 만들어낸 원칙을 깨부술 때가.
“에이비 대위. 내가 바보로 보여요?”
‘일부… 긍정.’
이건 좀. 메시지 때문에 메신저를 공격하고 싶진 않은데, 너한테는 듣고 싶지 않아.
“에이비 대위, 우리 처음에 금속 상자에서 만났을 때, 자결용 독단을 깨물었죠?”
“….”
“그 다음에는 결혼할 테니까 사망보상금을 받으라고 하고, 별다른 무력도 없으면서 홀로 거리를 나다니기만 하고. 이상행동도 하나하나가 모이면 필연이라고요. 제가 바보로 보여요? 아니면 알면서 응석을 부리는 거예요?”
대답은 없다. 둘 다 일부 긍정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정말 잡범일 뿐인 바보로… 혹은, 그러기를 기대했다.
만일 내가 영민하고 똑똑하여 통신병을 가지고 기밀 정보를 빼낼 법한 사람이라면, 정체를 들킨 순간부터 군국을 위협한 셈이니까.
“뭐,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자살 지망생이라고 칩시다. 그런데 당신의 자기파괴욕이 뒷골목 사람들의 목숨보다 소중해요? 당신 하나가 죽어서 행복해진다면 그토록 많은 숫자의 불행은 좌시해도 되는 거예요?”
“본관이 어째서 행복해집니까!”
내 근거 없는 음해에 발끈한 대위가 대답했다.
“본관도 죽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본관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러면 살면 되잖아요? 통신병으로 살면서 여기 뒷골목 사람들을 위해 조금 도와주면.”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원칙이기에, 본관은 행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러면 남은 사람들은요? 마켓도, 패밀리도, 보호소도. 그 각양각색의 단체와 관련된 사람들도. 그냥 저버릴 거예요? 그들도 군국의 일원인데?”
대위는 이제 자기에게 직면한 딜레마의 본질을 깨달았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죽어야 한다. 이왕 죽는 김에, 이 뒷골목을 둘러싼 음모를 파헤치려고 했다. 자기 목숨을 써서.
하지만 지금 상황은.
“원칙을 어기지 않으면, 당신이 알던 모든 이들은 곤경에 처하고 말 거예요.”
자신을 위해.
타인을 위해.
이상을 위해.
통신병은 이상에 따랐다. 원칙을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쯤은 쉽게 저버렸다. 그 와중, 이왕 쓸 바에 타인을 위해 쓰기로 결심하기까지 했다.
그 마음은 확인했다.
“통신병. 당신은 살아도 돼요. 아니, 살아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오늘 마주친 모든 사람이 위험해질 테니까.”
자, 알았으니 됐고. 이제 그 다음.
원칙을 위해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는 대위가, 타인을 위해 원칙을 포기할 수 있을까?
“어때요, 에이비 대위? 할 수 있겠어요? 이 모든 이들을 놔두고, 혼자 떠날 수 있겠어요?”
나는 물었고, 대위는 답하지 않았다. 아니, 답하지 못했다.
군국이 만들어낸 가장 유용한 도구는 이럴 때 해야 할 대답을 정해놓았다. 다만, 그 도구는 태생이 불완전하여 자꾸만 오류를 일으켰다.
그 끝에 나온 감정은, 불안의 감정이었다.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어떤 보장?”
좋아, 이제 가면이 조금 벗겨지는 건가.
군국에 들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
깨끗한 죽음보다, 고문과 심문 끝에 도달하는 더 끔찍한 죽음이 준비되어 있을 수도 있지 않느냐.
그에 대한 반박을 준비해두려는 차에, 대위는 고개를 떨구고는 불안한 듯이 말했다.
“의무를 따르지 않은 것이, 더 나으리라는 보장이…. 제가 하는 행동이, 원칙을 어길만한 가치가 있을지… 그러한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대위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그에 반해, 표정은 내가 보았던 그 어느 때보다도 무미건조해서. 꼭 골렘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군국이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성능을 가진 기계가, 인간의 마음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본관은 통신병의 철칙이라 배웠고, 그것을 행했습니다. 통신병은 그만한 의무를 지고 있다고, 통신병에겐 그만한 책임이 요구된다고…. 그러니, 만일 본관의 일탈이 더 큰 참극으로 이루어진다면. 원칙을 어긴 끝에 더욱 끔찍한 결과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가 어떻게 될지보다, 자신이 행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불안감. 혹 자기 욕심 때문에 모든 것을 망치는 게 아닐지,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건 믿음을 갈구하여 신을 찾는 신자의 마음과도 비슷했다.
어쩌면, 통신병에게 있어 그 작은 상자는 신전이며 군국은 신앙이었을지도.
그러면 통신병을 자유롭게 하려는 나는 악마인가.
새삼스레 웃으며, 나는 대위를 향해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