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195화 (195/384)

EP.195 먼 곳의 이야기. 군국에 남은 이들

어지럽히는 건 쉽지만 정리하는 건 어렵다… 는 것은, 놀랍게도 착각에 불과하다.

무언가를 어지럽히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나, 정리는 한순간이다. 단지 귀찮아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뿐, 아무리 오랜 시간 어지럽힌 방도 청소 반나절만 거치면 깨끗해진다는 점에서 무엇이 더 우위인지는 명백하다.

군국은 효율적인 게으름뱅이였다. 방 청소는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다, 안의 모든 쓰레기를 한꺼번에 청소하는.

이만한 소란을 일으키기 위해서 오랜 준비와 결사의 각오가 필요했지만, 군국에 의해 정리되기까지는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히스토리아가 이끌고 온 헌병단은 어지럽혀진 물건을 치우듯 빠르고 간단하게 간단하게 뒷골목을 정리했다. 끝내야 할 때를 모르고 소동을 이어나가던 쓰레기들은 처분당하거나 체포되었으며, 그에 관련된 이들 역시 헌병대로 끌려가 엄중한 조사를 받아야 했다.

관련자들은 겁에 잔뜩 질린 채 조사를 받았다.

군국이 쓰레기를 다루는 방식은 땔감이다. 그렇게 잡아넣은 인간 쓰레기를 때워서 군국이라는 나라를 굴릴 자원으로 쓴다.

그리고 방을 정리하다 보면, 으레 쓸 수 있는 것도 같이 버려지기 마련.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도 안심하지 못했다. 그들은 온갖 험한 꼴을 당할 거라 각오하고 헌병대에 들어갔다.

그리고 사지 멀쩡하게 걸어 나오며 의아해했다. 뜻밖의 행운은 당황함을 점차 기쁨으로 바꾸었다.

진상 따위 알 게 뭔가. 그들은 안전한데.

그렇게 버려지지 않은 것들은 남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일상을 만끽했다.

“…이것까지 계산했냐? 치밀한 새끼.”

히스토리아가 담배갑에서 마력초 담배를 꺼내며 중얼거렸다.

피리 부는 사나이. 군국의 터부인 하멜른의 사건에서도 가장 베일에 싸인 존재. 그가 정체를 드러낸 이상, 고작 군국 뒷골목에서 일어난 소동의 진상을 밝히는 건 뒷전이었다.

오히려 사건을 조사하다가 피리 부는 사나이에 대한 정보가 역으로 노출될 수 있다. 평범한 시민들에게 휴이, 휴즈, 혹은 마술사에 대한 정보를 캐물으면 그 자체로 단서를 노출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군국은 겉으로 드러난 죄인을 처벌하는 선에서 조사를 그만두었다. 대신 피리 부는 사나이를 추적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아니. 애초부터 그 새끼가 진상에 얽혀있겠지. 그놈만 잡으면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어.”

책상 위에 긴 다리를 올려놓은 채 중얼거리던 히스토리아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버릇처럼 끄트머리를 잘근잘근 씹어대는 동시에 권총의 공이를 담배 끝으로 가져다댔다. 그리고 공이를 한껏 당겼다.

따아악.

공이가 부딪치며 커다란 불똥을 만들어냈다. 그대로 담뱃불을 만든 채 숨을 크게 들이쉰 히스토리아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말했다.

“통신병.”

『통신병, 에이비 대위입니다. 부르셨습니까?』

히스토리아 옆에 있던 골렘이 반응했다. 히스토리아는 그쪽을 보지도 않은 채로 한껏 빨아들인 공기를 내쉬었다. 푸우우. 기다란 한숨이 색을 가지고 휘감기며 올라갔다.

바쁜 가운데 짬을 내어 담배를 즐긴 히스토리아는 멍하니 물었다.

“왜 안내를 멈췄지?”

『의문. 어떤 사안에 대해 말씀하시는 겁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잖아. 내가 어둠에 휩싸인 직후 왜 안내를 그만둔 거지?”

자신이 추궁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한 에이비는 팔을 뒤로 모으며 대답했다.

『명령에 불응한 점, 시정하겠습니다. 다만, 본관을 포함한 통신병단이 판단했을 때. 그 이상의 추격은 무리였습니다.』

쾅. 히스토리아가 갑작스레 책상을 내리쳤다. 강철 상판 위로 그녀의 주먹 자국이 생겨났다.

히스토리아는 여전히 무표정이었으나, 담배를 물고 있어서인지 입에서는 악문 소리가 났다.

“그걸 네가 왜 정하는데?”

히스토리아의 서슬 퍼런 기색에도 골렘은 담담했다.

『상대는 짐승의 왕 2체를 제외하고서라도, 육장성급 강자가 둘이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에 비해 소장님께서는 비무장 상태. 이대로 맞서 싸웠다간 큰 손실이 생깁니다.』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소장님께선 군국의 가장 강대한 전력 중 하나입니다. 그런 전력을 아무런 지원도 없이 보낼 수는 없습니다.』

“아주 그냥, 통신병이 상전이지.”

『시정하겠습니다.』

골렘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더 탓할 생각이 사라진 히스토리아는 혀를 차며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이 이상 통신병을 나무라지 않는 건, 히스토리아가 생각하기에도 혼자 힘으로는 그를 추격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쯧. 그 새끼는 어쩌다 탄탈로스에 들어가게 된 거야? 피리 부는 사나이 사건으로 들어가진 않았을 거 아니야.”

『불법도박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불법도박인데 탄탈로스에 갇혔다고?”

『부정. 노역형입니다.』

“똑같은 말이잖아.”

『당시 탄탈로스는 란카르트 대령에 의해 대규모 탈출 사건이 벌어진 직후였습니다. 예상보다 위험한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헹. 위험한 게 중요한가. 다시는 못 올라올 처지인 게 중요하지.”

히스토리아가 투덜거릴 때마다 잿불이 끔벅거렸다. 새빨간 불은 벌개졌다가 새까매지기를 반복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곤 했다.

담배 한 개비를 다 태울 동안 생각을 마친 히스토리아가 중얼거렸다.

“뭔가 의구심이 있었나 본데. 나중에 사건 일지를 봐야겠어.”

『준비할까요?』

“아니. 나중에. 휴이 그놈을 잡으면 다 해결될 문제니까.”

담배를 태워서 쾌락을 얻는 애연가에게, 담배란 증오의 대상일까 애정의 대상일까. 일단 담배가 애연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길이만큼의 봉사를 마치면 인사도 없이 새하얀 연기만 남긴 채 그녀를 떠나버리니까.

어느덧 담배는 매정하게 다 타버렸다. 짧은 만남이 있었으니 긴 이별을 기다릴 차례다.

히스토리아는 재떨이에 담배를 문대며 말했다.

“그래서, 사령부에서는 뭐래.”

연기가 자욱했으나, 호흡하지 않는 골렘은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골렘은 콜록거리거나 숨을 멈추는 일 없이 말했다.

『전달합니다. 소장님의 작전계획을 받아들여, 피리 부는 사나이 외 4인을 추격한다고 결정했습니다.』

“허가가 났어? 의외네.”

『부연. 피리 부는 사나이는 하멜른의 비밀을 쥐고 있는 주요 인물이며, 그는 탄탈로스에서 벌어진 각종 사건에 깊게 관여한 정황이 있고, 시조를 비롯한 이들과 친분을 맺어 위험도가 급등했다. 또한, 이는 5레벨 위험인물 란카르트와의 수법이 유사하여, 군 당국은 그를 체포하는 일에 박차를 가한다. 이것이 사령부의 판단입니다.』

담배는 떠나갔지만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렸다. 히스토리아가 히죽 웃었다.

“괜찮네. 아무리 그래도 이 넓은 땅에서 혼자 찾아다니기는 벅찼을 거야. 통신병들 관제가 있으면 좀 나아지겠지.”

허가가 내려오지 않았다면 자리를 이탈해서라도 직접 찾아갔으리라는 의미를 담은 발언. 에이비는 그 발언을 못 알아들은 척했다. 대신 언제나처럼 명확한 사실만을 전달했다.

『금일 이후 본관은 검증을 위해 자리를 비울 예정입니다. 이 이후에는 통신병 유엘이 소장님을 보좌할 것입니다.』

“자리를 비워? 왜?”

『경고. 이 사실은 기밀입니다. 장성 권한으로 열람하시겠습니까?』

통신병에 관련된 명령사안은 상대가 장성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접근이 제한된다. 만일 히스토리아가 평범한 장교였다면 골렘으로부터 결코 대답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히스토리아는 육장성이었다. 또한 자기 권한을 아끼지 않는 성격이었다.

“들어나 볼게.”

『요청 승인. 그렇다면 설명하겠습니다.』

골렘은 자세를 가다듬고는 말했다.

『본관은 탄탈로스 담당 통신병이었습니다. 무저갱 붕괴 직후 연락 두절되었고 자력으로 복귀하였으며, 아미텐그라드에서 머무는 동안 이번 사건을 목격하였습니다.』

“음.”

『다만, 복귀 과정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와 접촉하였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본관은 그 사실을 부정하였습니다만 피리 부는 사나이의 경우 그 정체도 능력도 불분명한 미지의 존재. 따라서 본관은 사령부로 향해, 정신 오염의 여부를 조사받은 뒤 처우가 결정될 예정입니다.』

제 일이 아닌 것처럼 사실을 전하는 골렘이었으나, 거기까지 들은 히스토리아는 입을 딱 다물었다. 말이 조사받은 뒤 처우 결정이지, 사령부까지 끌려가는 이상 이 통신병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은 분명했다.

최선의 경우라도 사령부에서 하달한 명령을 다른 곳으로 전달하는 교환소 역할을 맡을 것이며, 최악의 경우 그냥 처분될 터.

“그 새끼 능력은 정신 오염 같은 게 아닌데.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나.”

통신병의 진상을 조금이나마 아는 히스토리아는, 조금이지만 에이비를 동정했다.

장교들은 통신병을 경멸한다. 사관학교도 나오지 않은 주제에 타고난 고유마도로 대위 직위를 얻은 물대위. 동시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도 뻣뻣하게 굴기에, 장교들이 통신병을 대할 때는 온갖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

“너도 고생이야. 미움받는 역할을 떠맡아서.”

그러나 통신병은 결국 전령에 불과하다. 그들을 개인으로 보지 않고 사령부의 목소리 혹은 편지로 본다면 그런 경멸은 허무할 정도다.

결국, 장교들은 원치 않는 명령에 대한 불만을 통신병에게 푸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히스토리아는 아주, 아주 약간의 배려를 담아 말했다.

“그 새끼와 마주쳤다고 했지? 그렇다면 이번 추적 작전에서 요긴할 텐데. 내가 너를 동원하는 편이 낫지 않나?”

『불가. 통신병의 정신 오염 여부 검사는 그 무엇보다 우선합니다. 통신에 잡음이 끼이면 전체적인 작전에 영향을 끼치기에. 본관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는 많으니, 그들을 동원하시길 바랍니다.』

“…그래? 뭐, 고생해라.”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히스토리아가 더 무언가를 해줄 의리도 없고,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일이 넘쳐났다. 히스토리아는 에이비에게서 관심을 거두었다.

그래서일까.

『감사합니다. 본관은 힘닿는 데까지, 반드시 살아남을 것입니다.』

골렘의 말 속에서 느껴지는 미미한 열기를, 히스토리아는 눈치채지 못했다.

에이비는 동조를 그만두었다.

통신본부 내부에 있는 한 격리 통신실에서 몸을 일으킨 에이비는 히스토리아와의 대화를 상기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신 오염 여부.

안타깝게도, 그건 사실이었다. 통신병으로서 언제나 담담해야 할 에이비의 정신에 커다란 문제가 생겼으니까.

삶에 대한 열망이 넘쳤다.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릴 때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 들뜬 기분을, 혼자 느끼기 아쉬운 즐거움을 모두에게 알리고, 공유하고 싶었다.

행복했던 시간은 결코 지울 수 없는 자국으로 남아있다. 그랬기에, 에이비는 죽음이 두려웠고 삶에 대한 미련이 가득했다.

이것을 정신 오염 아니면 뭐라고 할까.

분명 이전과는 완벽하게 다른데.

하지만 알게 된 이상 돌아갈 수 없다. 나름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의 한복판에서, 즐거움과 충실함을 느끼며 살아가던 그때. 왁자지껄 떠들던 사람들의 웃음 속에서 행복을 골라 줍던 한때.

그 기억 덕분에 그녀는 변했다.

마음가짐은 물론이고, 고유마도까지….

행복한 시간을 되새김질하며, 에이비는 양손을 가슴에 모았다. 그리고 그녀의 고유마도를 펼쳤다.

고유마도, 나팔꽃.

그녀의 가슴에 뿌리를 내린 나팔꽃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팔과 다리, 가슴과 목을 타고 왼쪽으로 감긴 덩굴에서 잎이 어긋매껴난다. 꼭 가시덩굴에 묶인 것 같다. 전신을 휘감은 나팔꽃 덩굴에서 꽃이 자라난다.

에이비의 마력을 먹고 피어난 보랏빛 꽃에서 동조가 일어났다.

그녀를 옭아맨 의무가 덩굴이며, 해야 하는 역할은 꽃.

그렇기에 에이비의 고유마도는 나팔꽃이었으나.

지금은 조금 달랐다.

목과 얼굴을 타고 올라간 줄기 끝에서, 조그만 곧은 줄기가 새초롬하게 솟아났다. 나팔꽃 덩굴인 척 고개를 빼꼼 내민 그 줄기는 커다란 꽃봉오리를 맺었다.

그리고 그 끝에 피어난… 조그만, 하나의 해바라기.

말간 얼굴을 한쪽으로 향한 채, 따스한 빛을 연모하는 해바라기 한 송이가. 나팔꽃 줄기 위에서 하염없이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이 해바라기가 바라보는 곳 끝에는 그가 있을 것이다. 에이비는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았다.

그렇기에, 에이비는 언제나 행복했다.

아직 태양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에.

해바라기를 가슴에 품은 에이비가, 사령부를 향한 나팔꽃에 대고 말했다.

“사령부, 통신병 에이비 대위입니다. 현 시간부로 사령부를 향해 출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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