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6 탄탈로스 향우회
최선을 다해 몸속을 망가뜨려야 할 독이 가능한 한 빨리 퍼질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가장 빨리 퍼지는 수단에 편승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독은 혈관을 통해서 퍼지며, 혈류를 막거나 오염된 피를 빨아내는 건 오랜 시간 동안 가장 유효한 치료법으로 이름이 드높았다.
그러나 독이 이미 혈관을 타고 흘렀다면?
신은 그때를 위해 발명된 것이다. 사람들이 힘들게 만들어두었으니까 열심히 기도하시길 바란다.
“군국. 너희도 우리가 얌전히 배설되기를 기도해라. 우리는 이미 궤도에 올랐으니!”
“너는 도대체 무슨 소리야?”
메타컨베이어 벨트는 군국의 대동맥이며, 우리는 이미 그 위에 올라탔다. 즉 군국의 몸을 흐르고 있다는 뜻.
군국 최대의 물류시설을 무단 사용하는 덕분에, 우리는 편안하고 안락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이야. 제가 입안했지만 아주 기발한 계획 아닙니까! 군국의 대로에 올라타서 도망치다니. 어지간하면 따라잡힐 일도 없는 이 땅 위에서 우리는 앞이랑 뒤만 경계하면 된다고요!”
그 말대로, 메타컨베이어 벨트는 굉장히 안전한 교통수단이었다.
일단 포위될 걱정이 없다. 적이 나타나기 위해선 앞에서 가로막거나 뒤에서 쫓아와야 했는데, 덕분에 경계할 방향이 앞과 뒤밖에 없었다.
뭐, 기착지에 도착하면 군국 병력이 우리 앞을 가로막겠지만 그 전까지는 안전하잖아.
회귀자는 앞쪽과 뒤쪽을 번갈아 보다가 대꾸했다.
“그러네. 잘 됐다. 마침 당장 추격자도 없는 것 같으니, 묵혀둔 일을 끝내야겠어. 여기 앉아.”
“네? 여기 앉으라고요? 학교 선생님이 혼내기 전에나 할 법한 말인데?”
“됐으니까 앉으라고.”
서슬 퍼런 기색에 나는 얌전히 바닥에 앉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메타컨베이어 벨트의 바닥은 차가웠다.
내 앞에서 팔짱을 끼고 선 회귀자는 사뭇 당당한 기세로 말했다.
“자. 슬슬 정보를 공유하지 않겠어,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씨?”
“공유라니, 솔직히 조금 억울한데요.”
하지만, 내 몸은 명령에 따를지언정 마음마저 꺾이진 않는다. 한껏 불량스러운 자세로 귀를 후비적거리며 대꾸했다.
“애초에 정보 공유고 자시고, 저보다 더 비밀스러운 사람이 셰이 씨 아닌가요? 천앵이니 뭐니 전설의 검 한 자루를 들고, 뭘 노리는 건지 스스로 탄탈로스에 떨어지고. 나이도 어린데 힘도 세고 아는 것도 많고. 어디 뭐 전설적인 존재인가, 싶어도 영 짚이는 게 없고.”
…라고 하면서 은근히 추켜세우는 건 내 생존본능이 한 일이다. 어쨌건 아부 아닌 아부를 살짝 건넨 나는 책임을 떠넘겼다.
“그쪽이 공개하지를 않는데 어떻게 공유가 시작돼요?”
네가 먼저 잘못했잖아 화법!
그러나 회귀자는 세상 밖으로 나오니 조금 자신감이 찼는지 뻔뻔하게 대꾸했다.
“흥. 네가 나한테 뭔가 물어본 적도 없으면서. 처음부터 다 안다는 듯 능숙하게 행동했지.”
“잘 아시네요. 서로서로 묻지 않았으니까 쌤쌤이죠.”
“그러니까. 나도 예전 일에 대해서는 별말 하지 않을게. 하지만 군국에 쫓기던 너를 도와줬는데, 대충 무슨 내용인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야? 설마 아무런 설명도 믿음도 없이 너를 도울 수는 없잖아?”
회귀자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살펴보았다.
“특히, 하멜른 사건의 주범이라면 말이야. 우리가 그런 정체도 의도도 알 수 없는 흉악한 사람과 같이 다닐 수 있겠어?”
큭, 정론이다. 살다살다 내가 회귀자에게 정론으로 공격당할 줄이야. 이게 계층역전, 혁명인가?
할 말이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말았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요. 반박할 수가 없어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살아남기 위한 노력은 해야겠죠.”
“잘 아네. 자, 네 정체에 대해서 다 털어놔 봐.”
언제까지나 숨길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미 군국에게도 들킨 몸, 더 숨겨봤자 의심만 늘어나겠지.
내가 결심하던 차, 양산 아래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티르가 문득 말했다.
“휴. 나는 네 정체가 무엇이든, 네가 무엇을 했든 너를 구했을 것이다. 내가 너에게 서운해한 건 말없이 떠난 일뿐이니.”
그러나 내 편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즉각 태도를 바꾸어 소리쳤다.
“하지만 대가 없는 호의도 있다는 말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거친 북풍보다는 따스한 태양입니다! 셰이 씨도 티르를 보고 반성하세요!”
“다만,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다칠까 걱정되는구나. 그럴 걱정 없게 흡혈귀가 되지 않겠느냐?”
“셰이 씨. 제 정체를 다 털어놓을 테니, 아까 한 말은 잊어주세요.”
회귀자는 콧방귀를 끼며 턱짓을 했다. 단칼에 거절당한 티르가 쓸쓸히 중얼거렸다.
“그토록 싫은 것이냐? 엘더의 삶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 터인데….”
흡혈귀와 삶의 동시에 나타나는 것부터 모순이다. 거기다 생명을 되찾아 자기와 세상의 경계가 확실하게 구분 지어진 티르의 권속이 된다면 여러모로 문제가 생길 게 틀림없다.
말을 흐리는 티르를 외면한 채 내가 솔직하게 고백하려는 때였다.
아까부터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던 아지가 눈을 빛내더니, 고기 통조림 하나를 입에 물고 내 앞에 떨어뜨렸다. 아지가 앞발로 통조림을 쭉 내밀며 말했다.
“멍! 밥 먹어!”
“어, 그래. 이따가 먹을게. 고맙다.”
“멍멍!”
아지가, 양보를? 갑자기 무슨 일이지?
어쨌든, 통조림을 받아든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저는 사실 하멜른 출신이에요.”
“그게 끝?”
“몇 번 강조했다시피, 그때 저는 전교 1등이었어요. 그 기수에는 현 육장성인 히스토리아와… 과거, 최연소 마도장교이자. 마장의 후계자라고 불렸던 란카르트가 포함되어 있었죠.”
히스토리아와 란카르트의 이야기가 나오자 회귀자가 잠깐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너. 이전 회차에서 그 둘과 마주친 적 있구나.
아직 모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 읽지 못했지만, 이것저것 복잡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 보면 적도 아군도 아닌 애매한 관계였던 모양이다.
‘육장성 히스토리아와 마신전의 란카르트? 어째 하나같이 거물들의 이름이…. 심지어, 그 둘을 제치고 1등이었다고?’
아무래도 내 동기들은 과거 회귀자와 맞닥뜨렸을 만큼의 거물인 것 같았다. 남은 동기는 셋인데, 그중 1등이었던 내가 잡범이 되어버리다니. 이래서 애들은 커서 뭐가 될지 몰라.
결정했다. 앞으로 동창 모임은 빠지기로 하자.
‘…자초지종은 모르지만 확실한 건, 그 둘은 이미 국가 레벨의 강자야. 그렇다면, 혹시 너도.’
아니아니아니. 과대평가는 하지 말아줘. 곧 군국과 싸울 거잖아? 이제 그런 기대를 받으면 전선에 내몰리다가 죽어버릴 지도.
나는 다급히 말했다.
“히스토리아가 기공과 무투, 란카르트가 마법과 기술이라면. 저는 오직 머리 하나로 1등을 차지했어요. 기공과 무투에서는 히스토리아가, 마법 쪽은 란카르트가 독보적이었다면, 저는 그것을 망라한 대부분의 과목에서 1등 혹은 2등에 준하는 성적을 거두었죠.”
물론 다 독심술 덕분이다. 독심술, 고마워. 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야.
“네가 그랬어?”
“네. 농담이 아니라, 저 진짜로 군국의 촉망받는 인재였어요. 힘이 센 건 아닌데, 뭐든 배우기만 하면 수준급까지는 금방 익힐 수 있었죠. 마법도, 기공도, 연금술도 쉽게 해냈고 전략이나 전술에도 능하고. 무엇보다 이해력이 출중해서 다른 성질의 힘도 쉽게 깨우쳤죠.”
다만 독심술로 뚫을 수 있는 기술은 딱 이용자 수준까지가 한계라서, 2학년 때쯤 밑천이 다 드러났지만.
어쨌건 그 역시 재능은 재능이며, 1등은 1등.
“그래서 저는 하멜른의 만능인, 이라고 불렸어요.”
“…흠.”
‘뭐든지 쉽게 배운다고… 뭔가 갑자기 기분이 팍 나빠지네.’
와아! 세상에. 회귀자가 저보고 뭐라고 합니다! 자기는 회귀를 거듭해서 결국 강자 반열에 올랐으면서!!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더니. 회귀라는 사기 권능을 가지고도 부족했냐! 각성해라!
“어쨌든, 우리 셋은 그렇게 하멜른의 1등, 2등, 3등을 나란히 차지했었죠. 군국은 평등한 교육을 베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있을지도 모르는 원석을 발굴하기 위해서예요. 강자 한 명이 홀로 천 명을 상대하는 세상에서 평등한 교육은 그다지 가치가 있지 않죠.”
한 명에게 하는 투자가 백 명에게 하는 투자보다 더욱 좋은 결과를 낼 때가 많다.
실제로도 그것이 효율적이기에, 하멜른의 교육자원은 거의 상위권 몇 퍼센트를 위해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나이에 영관 급 장교를 대련에서 쓰러뜨린 히스토리아나, 고유마도를 각성하고 심상을 구축해나가는 란카르트는 특별취급을 받으며 일반과와는 다른 커리큘럼을 거쳤어요. 그래서일까, 하멜른의 다른 학생들은….”
“이야기를 이상한 대로 흘리지 말고. 너는?”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나를 상대로 회귀자가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1등이라면, 너에게도 특별한 커리큘럼이 있을 듯한데.”
“아하하. 예리하시네요.”
무저갱 바깥으로 나오니 꽤 날카로워졌네. 나는 어설프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참 애매한 쪽이었어요. 대부분 두루두루 능숙하지만 빼어나다고 할 정도는 아닌데, 그렇다고 내버려 두기엔 재능이 아까웠죠. 그래서인가, 저는 조금 다른 쪽에서 주목했었죠.”
“어딘데. 정보부?”
“비슷한데 조금 달라요. 군국 특무부 직속 신비해체부. 신비해체자는 아니었지만 될 예정이었죠.”
그것으로 꽤 많은 게 설명되었다는 듯, 회귀자는 탄식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와중 대화를 따라가지 못한 티르가 양산을 살짝 치켜들며 끼어들었다.
“잠시만 기다려보거라. 신비 해체자가 무엇이냐?”
그 물음에는 내가 대답했다.
“신비 해체자는 세상에 숨겨져 있는 신비를 파헤치고 그 힘을 이용하려는, 조금 다른 방식의 고고학자들이에요.”
세상에는 수많은 신비가 있다.
구름의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번개의 기수나, 소용돌이치는 표류물의 섬. 정처 없이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무릉도원이나, 온갖 기괴한 생물이 사는 밀림. 코끼리의 무덤과 산군의 산 등등.
그러한 신비나 전승을, 순수하게 실용적인 목적에서 발굴하는 단체. 군국의 신비해체부.
설명을 마친 나는 티르를 위해 맞춤형으로 간략하게 요약했다.
“무저갱에 티르나 아지를 ‘보관’해두자는 작전을 입안한 게 바로 그들이죠. 시조 티르칸쟈카나 개의 왕 강아지의 경우 커다란 위협이지만, 그 아래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면 이득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이름이 불리자 아지가 냉큼 달려와서 외쳤다.
“멍! 나, 불렀어?”
“아직 아니야.”
“멍! 알았어! 이따 불러!”
아지는 다시 몇 걸음 물러난 채 눈을 반짝이며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얘는 나한테 무슨 용건이 있나 본데. 놀아달라는 걸까? 하긴, 티르나 회귀자가 아지와 잘 놀아줄 성격은 아니지.
좋아. 내가 이따가 네 욕구불만을 풀어주마.
어쨌든.
“호오. 그렇다면. 휴, 너는 무저갱에 내려오기 전에도 나에 대해 알고 있었으렷다.”
“알긴 알았죠. 이 경우의 앎이란 지식으로서의 앎과 더 가까웠지만요. 어디까지나 책상놀음으로 익힌 거라, 티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전혀 몰랐어요.”
“그렇구나….”
‘궁금하구나. 군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나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그리 좋은 내용은 아닐 텐데.
지식으로서의 티르칸쟈카는, 객관적으로 보아도 썩 괜찮은 등장인물은 아니었다. 성황청의 입장에서 쓰인 기록을 제하고서라도 이력이 화려했으니까.
수많은 전쟁에 참여했고, 손수 참한 사람의 수만 다섯 자리수는 된다. 전투가 끝나면 시체로부터 피를 취했으니, 흡혈귀들이 휩쓸고 간 전장에는 피도 비명도 빛도 남지 않았다….
나는 그때 티르칸쟈카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만 가득 써놨다. 그런데 막상 만나니 느낌이 좀 다르더라고.
이야기가 조금 샜는데 결국 무슨 말이냐. 나는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거두어내지 못했다.
사람을 상대한다면 몰라도 순수하게 책에서 정보를 끌어내는 건 내 전문이 아니었기에.
“그래서였구나. 네가 탄탈로스나, 그 안에 있는 이들에게 묘하게 익숙해 보였던 건. 특히 아지 말이야.”
“그렇죠. 특히 신비해체자들에게 있어 짐승의 왕이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존재니까요.”
“신비해체자 중에 만물의 영장이 꽤 많을 텐데.”
“낌새가 보이기는 했지만 그들도, 저도 티를 내지 않았죠. 저는 그때 일개 학생이었을 뿐이니까요. 그쪽이 뭐가 아쉬워서 뭣도 모르는 아이에게 손을 뻗겠어요?”
앞뒤가 착착 맞아 떨어져가는 이야기. 회귀자는 내 이야기에 상당 부분 수긍했다.
“그렇다면, 대종사의 무기인 지잔의 봉인을 푼 건? 그것도 신비해체자의 힘이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독심술이 없으면 설명하기 힘들었기에, 모르는 척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네? 풀렸어요?”
“네가 풀어놓고 네가 몰라?”
“어떻게 알겠어요. 유물은 시험을 통과해야 힘을 허락해주는데. 저는 그냥 들고 휘둘렀을 뿐인걸요?”
‘드는 것 자체가 시험을 일부 통과했다는 뜻인데?’
“…너는 그 시험에 무슨 대답을 했는데?”
“시체 주제에 자꾸 시험하지 말고 지선 님 좀 진정시켜보라고 했는데요. 제 말을 잘 들어준 모양이에요. 드니까 들리더라고요?”
“그냥 너한테 화가 난 게 아닐까?”
어쨌든 내 설명은 완벽했고 짜임새도 있었다. 회귀자의 어설픈 배경지식과 마술처럼 맞물리자, 회귀자도 의심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가 버렸다.
“그러는 과정에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었고?”
“그건 진짜 억울한데요. 저는 누명을 썼어요!”
이번 일은 진심으로 항변했다. 회귀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
“그런데 왜 피리 부는 사나이라고 불리며, 군국의 추적을 받는데?”
“누명을 썼으니까 추적당하죠!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제가 뭐 얻을 게 있다고 동기를 싹 다 죽여요? 그 사건 때문에 앞길 창창했던 제가 일개 잡범이 되어버렸는데! 셰이 씨는 제가 가진 거 다 포기하고 사람이나 죽이는 그런 미치광이로 보이세요?”
억울해서 죽을 것처럼 가슴을 쾅쾅 치자, 회귀자는 나를 재보듯 바라보다가 수긍했다.
“미치광이 같긴 한데, 그런 미치광이는 아니지.”
‘애초에 하멜른의 그 사건은 자살이었는걸. 그 사건을 후일 군국을 무너뜨릴 때 요긴하게 써먹었지.’
와. 그래도 허튼 고생이 아니었구나. 군국이 하멜른 덕분에 망하는 세계선도 있네. 갑자기 보람이 느껴진다.
어쨌건, 지금은 내가 무해하다는 사실을 어필했다.
“저도 그 일에 휘말려들었다가 간신히 도망쳐서 잘 몰라요. 하나 확실한 건, 군국이 저한테 누명을 씌웠다는 거죠.”
“군국이 일개 학생한테 누명을 씌웠다고? 의심스러운데.”
“누명을 쓴 사람이 뭘 알겠어요. 군국 아니면 란카르트 그놈이겠지. 저는 죽을 위기에서 간신히 탈출했다니까요. 아니라면 하멜른에서 그 평가를 받고도 범죄자로 살았겠어요?”
그건 맞는 말이다. 내가 잡범이었던 것도 사실, 억울하게 잡혀왔던 것도 사실. 그 속에 숨긴, 내가 독심술사라는 교묘한 진실.
따라서 회귀자는 내 말에서 하나의 이상한 점도 찾지 못했다.
‘하멜른의 마지막 졸업생이라면… 그래. 그럴 수 있어. 행보나 능력을 설명하기도 쉽고. 이제 의구심이 조금 풀리….’
어쩔 수 없다고. 사람은 합리적이면서 감성적이니까. 믿고 싶은 부분에 딱 알맞은 설명이 퍼즐처럼 들어오면 쾌감에 가까운 기분을 느끼거든.
사실, 진실과 크게 먼 이야기도 아니고 말이지.
내가 표정 속에서 그런 감상을 숨기고 있을 무렵.
‘잠깐.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마. 아직 납득할 수 없어.’
또 왜?
너는 정말 사람이 아니니? 의심도 이 정도면 중병이야!
‘말은 돼. 하지만 아직, 아직 뭔가 걸려. 신비 해체자면, 이것저것 수단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뭔가, 뭔가 이대로 넘어가면 안 돼. 내 감이 그렇게 고하고 있어.’
이래서 감이 좋은 녀석은 싫다니까, 정말로.
하지만 신뢰는 한 가지 종류만 있는 게 아니다. 회귀자는 나를 의심하는 것과 별개로, 또 나를 믿었다.
‘그와는 별개로, 티르칸쟈카의 말이 맞아. 적이냐, 아군이냐 따지면… 분명한 아군이니까. 더 추궁하지는 말자.’
마음속 자그만 읊조림이 들려왔다. 내 처우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