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198화 (198/384)

EP.198 도박묵시록 강아지

“아이고. 바깥양반 돌아오셨네.”

“누가 바깥양반이야?”

정찰을 나갔다가 돌아온 회귀자도 강풍의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이보다 높은 상공에서 정찰한 탓에 꼭 먼지털이라도 당한 꼴이 되어 돌아왔다.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던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 셰이 씨. 어서 와요. 뭐부터 하실래요? 식사? 목욕? 아니면 수면?”

“착실한 척 말하는 거 조금 열 받네.”

회귀자는 흘긋 컨테이너 안쪽을 보았다. 안에 담겨있던 화물을 들어내고 쉼터로 개조한 안쪽. 바람막이로 가려진 램프 위에서는 구운 고기가 내는 고소한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으며 침낭과 천으로 만든 간이 침대가 품을 활짝 열고 있었다.

회귀자가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와중에 착실한 것도 좀 열 받아.”

“화를 억누르세요. 머리에 열이 많으면 머리카락 빠져요.”

“쓸데없는 걱정이야!”

회귀자는 사납게 외치면서 못마땅한 듯 나를 흘겨보았다. 그 눈은,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식충이를 보는 것과 꼭 닮아있었다.

“방금 무슨 말 했어? 학교 이야기가 들린 것 같던데.”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지에게 제 찬란하던 학창생활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죠.”

천연덕스럽게 발뺌하자 회귀자는 별다른 의심 없이 넘어갔다.

“찬란하긴. 군국 터부에 연관되었으면서.”

‘하멜른의 관계자였다지. 벌써 군국이랑 적대할 생각은 없었는데. 계속 같이 다니다간 군국에 발도 못 대겠어.’

어젯밤, 나는 회귀자로부터 대충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는 죄악의 왕을 막기 위해서 여행을 다니는 중이며, 원한다면 어디 안전한 곳까지는 데려다주겠다고.

이미 군국에 찍혀버린 이상 내 평범한 일상은 물 건너간 셈이다. 나는 같이 다니고 싶다는 의견을 전했고, 회귀자도 받아 들여줬다.

‘아지나 티르칸쟈카도 같이 다니길 바라는 기색이었으니, 일단 승낙하긴 했는데.’

그러나 그때부터 회귀자는 나를 곤란한 군식구 취급하지 않는가. 덕분에 내 삶은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군국은 꽤 잘 조직된 나라야. 무너뜨리지 않을 거라면 최소한 교섭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 녀석이 껴있으면 그게 될까 모르겠네.’

개랑 고양이도 같이 다니는데 인간이 유기당해서야 쓰겠냐. 나는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온갖 잡일을 도맡아 했다. 요리나 청소, 아지 돌보기도 그 일환이었다.

내 부단한 노력 덕분에, 회귀자의 인식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돌려놓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래. 티르칸쟈카나 아지를 위해서라도 같이 다니는 편이 나아. 둘 모두 이 녀석에게 정을 느끼고 있으니.’

후우. 어찌어찌 오늘은 또 넘겼다.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이자, 언제 해고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비정규직.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식충이의 심정을 과연 누가 알까.

마음속으로 안도한 나는 회귀자를 반기며 물었다.

“정찰은 어떻게 되었어요?”

코트를 벗어 던진 회귀자는 간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별로 무겁지 않은 무게임에도 의자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다음 기착지를 미리 보고 왔는데 싹 비어있었어. 오늘은 조용히 넘어갈 모양이야.”

“곧 해가 질 테니까요.”

“그래. 저들이 미쳤다고 밤에 습격하지 않겠지.”

회귀자는 저 안쪽 깊숙이 있는 어둠을 가리켰다. 그 안에는 어두운 기운을 풍기고 있는 새까만 목관과 그 안에서 조용히 잠든 티르가 있었다.

밤에는 만능에 가까울 정도로 강력한 티르이나,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낮에는 티르가 다루는 혈조술과 어둠에 여러 가지 제약이 생긴다. 과거 그토록 강력했던 흡혈귀의 군대가 성황청에게 몇 번이나 가로막힌 것도, 하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낮 때문이었다.

그래서 티르는 낮 동안에는 힘을 비축하고 있었다. 태양 아래 어둠을 허투루 사용하면, 위험한 순간에 힘이 다할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낮인데. 저쪽도 분명히 낮에 찾아올 거란 말이지.”

“괜찮아요. 지금의 티르는 낮에도 별반 다를 바 없으니까요. 단, 낮에도 어둠을 다루기 위해선 최대한 힘을 모아놔야 하기에 지금 잠깐 쉬고 있는 거죠.”

“그래. 티르칸쟈카는 심장을 되찾았으니까.”

‘심장을 되찾았다는 건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확고히 구분했다는 뜻. 아마도 햇빛 때문에 몸이 상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야. 다만.’

나와 티르를 번갈아 바라본 회귀자는 턱에 손을 괴고 홀로 생각했다.

‘어쨌건 시조 티르칸쟈카에게 심장을 되찾아 준 건 크나큰 성과야. 훗날 공국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 테니까. 그래, 휴즈가 한 일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좋아, 같이 다니자. 군국의 추적을 받는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괜찮은 동료니까….’

내가 누구? 회귀자의 동료로 인정받은 사나이.

히스토리아, 란카르트. 보고 있냐? 너희 동기는 이만큼 출세했다. 세상을 구하는 파티의 잡일꾼으로 취직했다고….

결국, 범죄자 모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놀 거면 큰 물에서 놀아야지.

“멍!”

막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아지가 다가와서 내 소매를 톡톡 건드렸다. 내가 돌아보자 아지는 다친 왼팔을 가리키며 말했다.

“멍! 아픈 곳 대!”

“벌써 그럴 때인가.”

중얼거리며 소매를 걷어서 찢긴 상처를 보여줬다. 울펜과 싸우다가 입은 큼직한 상처는, 짐승의 왕이 가진 힘에 의해 어느새 희미한 자국밖에 남지 않았다. 아지는 앞발로 내 팔을 잡고는 정성스레 상처를 핥았다.

따끔함은 간지러움으로, 간지러움은 이내 편안한 촉감으로 바뀌었다. 상처가 나아간다는 기분에 개가 팔을 핥는다는 행위도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다.

꼼꼼하게 상처를 핥아준 아지는 내 팔을 톡톡 두드리며 외쳤다.

“멍! 건강해! 건강!”

“고맙다, 아지야. 고기 먹을래?”

“너 먹어! 멍! 아플 땐 많이 먹어!”

아지가 격려하듯 내 어깨를 톡톡 두들기고는 배를 깔고 앉았다. 푸근하게 나를 바라보는 눈길은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로 따스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인간을 공격하지만 않을 뿐 거의 걸어 다니는 장난감 거치대로 보던 아지가 이렇게 기특해지다니? 세상에 나쁜 사람은 있어도 나쁜 개는 없다는 게 정말이었나?

아니야, 속지 말자. 이건 평소 미운 짓 하다가 한 번 착한 짓을 했다고 예쁘게 보이는 것뿐이야.

죽었다가 깨어나도 개는 어디까지나 개. 네 본성을 시험해주마.

나는 원반을 하나 꺼내서 흔들었다.

“아지야. 원반던지기 할까?”

꼬리가 먼저 흔들렸다. 반가운 제안에 아지가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멍! 할래, 할래!”

“아야야. 그런데 방금 치료받아서 그런지 팔이 아프네.”

“멍? 그럼, 다음에 하자!”

조금의 아쉬움도 없이 반쯤 일어난 몸을 다시 내려놓는다. 진짜다. 아지에게 배려심이란 게 생겨나 버렸다.

원래도 인간에게 호의적이었던 아지다. 그러다 못해 고차원적인 배려까지 하다니… 이게 진정한 개인가? 개의 왕이라고 천사견의 특성을 개화해버린 거야?

인간이란 이리 작은 변화에 감동하는 존재였던가. 내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닦을 때였다.

“아지가 평소랑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너, 뭔가 했어?”

회귀자가 이쪽을 향해 고개를 주억거렸다. 호기심을 보이는 회귀자를 향해 나는 어깨를 으쓱하곤 대답했다.

“제가 딱히 뭔가 한 건 없어요. 아지가 저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것 같은데요.”

“뭘 기대해?”

“뭐라더라. 나비가 말하길, 약속의 이행을 저에게 바라고 있다던가.”

인간이 짐승의 울음소리를 듣더라도 그게 무슨 뜻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비와 아지의 생각은 읽을 수 없다. 그래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 참, 개랑 고양이가 한 이야기를 전하다니. 내가 뭐 통역사도 아니고.

“저보고 어딘가에 높은 사람이냐고 하네요. 갈 곳 없어서 도망친 잡범에게. 어이가 없는 일이죠?”

농담을 들은 것처럼 웃음을 지어서 말했다. 별로 심각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어깨를 으쓱이며 멋쩍게 웃는데, 갑자기 회귀자의 표정이 달라졌다. 반가운 손님이라도 찾아온 것처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회귀자는 곧장 나에게 다가와서 외쳤다.

“너, 혹시 멸망한 왕국의 왕자야?! 레지스탕스가 비밀리에 찾고 있는 왕의 후손이라든가!”

“무슨 큰일 날 소리를! 아니거든요? 제가 왕자면 이따위로 살겠어요?”

‘음, 그건 좀 비약이긴 해. 쌍둥이도 아니고 그럴 수는 없지.’

잠깐 시선을 돌린 회귀자는 다시금 다그쳤다.

“그러면? 나는 모르는 어떤 비밀조직의 수장이라든가?”

“나만의 비밀조직이 있으면 벌써 썼죠. 제가 뒷골목에서 아득바득 살다가 쫓겨나듯 도망쳤겠어요?”

“너는 도대체 뭔데?”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찰과 같은 철학적인 질문이 아니라면 저는 그냥 저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는데요. 아지가 뭐 착각한 거 아닐까요?”

반쯤 농담 삼아 대답했는데 회귀자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몇 번이고 다그쳐서 확인한 그녀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로 중얼거렸다.

“아니야. 짐승의 왕은 대언자야. 한 인간이 아닌, 인간 전체에 말을 전하는 존재.”

“저도 대충 알아요.”

“그러니까, 저 많은 이에게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짐승의 왕은 한 인간의 영향력을 볼 수 있어. 일종의 자격을 시험한다고 해야 하나.”

“자격이고 뭐고, 뒷골목 잡범에 불과한 저한테 뭘 원하는지. 어이가 없어서 그래요.”

“잡범, 맞지?”

“맞다니까 그러네!”

평소라면 어떻게든 얼버무렸겠지만, 지금 내 포지션은 식충이. 여차하면 가장 먼저 쳐내지는 존재다. 회귀자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서 나는 대강 알려줬다.

나비가 어떤 말을 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주 간략하게.

“그러니까, 뒷골목 시민과 두루두루 알고 지내는 친절한 이웃이었죠. 온갖 잡일을 해결해주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성심성의껏 도움을 줬어요. 진짜 그게 다였다니까요.”

“하멜른과 아미텐그라드 말고는 다닌 적도 없고?”

“네. 중등학교는 전원 기숙사제니까, 그때를 제외하곤 거의 아미텐그라드에서 산 셈이죠. 아주아주 잘 쳐줘야 아미텐그라드 뒷골목 촌장 정도?”

‘하긴. 진짜 거물이라면 아슬아슬하다는 표현을 쓸 리가 없지. 어쨌든 자격이 달하지 못했단 뜻이니. 하지만! 어쩌면…!’

아, 슬슬 불길해진다. 식충이가 모종의 일로 번데기를 거쳐서 날아오를 준비를 해야 하는, 그 기묘한 상황.

눈치나 보면서 사는 삶은 늘 불안했지만 몸만은 안락했다.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그렇게 살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내 스스로 고통과 시련을 넘어서 다른 존재로 거듭나야 하는 두려움은 또 다른 종류라, 당당해질 기회가 찾아왔음에도 반갑지가 않았다.

회귀자가 드디어 쓰임새를 발견한 도구를 보듯 나를 살폈다.

“아슬아슬하다고 그랬지. 뭔가, 부족한 부분을 조금만 메우면 자격이 되려나?”

“안 돼요! 봐봐요, 저 같은 다 타버린 실패자에게 무슨 자격이 있겠어요! 아지야, 나에게 자격이 있니?”

가만히 꼬리를 휘두르고 있던 아지는 자기 이야기가 들리자 귀를 쫑긋거리며 일어섰다. 나를 유심히 살피더니, 냉큼 고개를 저었다.

“없어!”

“봐봐요. 헌병대에게 쫓기는 몸이 무슨 자격이야. 수배범 자격이나 있겠지.”

“아직은!”

“여지를 주지 마! 나에게 뭘 더 기대하려고!”

“멍! 더 큰 사람이 되렴!”

“이 멍멍이가!”

저 희망에 찬 눈빛은 온전한 믿음이나 신뢰가 아니었다. 나를 하나의 먹음직스러운 작물처럼 보고는, 잘 자라도록 물과 비료를 주는 농부의 눈과 똑같았던 것이다.

제기랄! 인간이었으면 진작 알아차렸을 불순한 의도를, 개라서 미처 읽지 못하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는 개의 왕이 멀쩡하게 나왔어! 어쩌면, 이게 다음 종말의 조각을 막을 열쇠가 될지도 몰라! 수인들과의 반목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개의 왕이 참전하지 않으면…!’

회귀자가 아지와 비슷하게 눈을 반짝거렸다. 나한테 무언가, 막중한 기대를 떠안으려는 얼굴.

아아, 큰일이다. 나는 정녕 알을 깨고 두려운 세상 밖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싫어. 저항하겠다. 알의 껍질은 단단하기 그지없으니, 너희가 섣불리 파각하지 못하도록 내가 저항해주겠다!

“아지 너, 나 이용할 생각이냐?”

“멍? 이용, 아냐! 이건, 투자!”

“투자?”

개에게서 들려선 안 될 이야기가 나온 거 같은데.

“낮은 가능성, 높은 성과!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야! 나, 멍! 너 돌봐줄래!”

“너는 사람을 뭐로 보는 거냐! 나는 도박판 위의 카드가 아니라고! 거기다, 뭐? 도망 다니는 범죄자에게 투자? 페어도 아닌 카드에 그리 지르는 바보가 어딨냐! 바보도 그렇게 투자하지는 않을 거다!”

“나, 바보 아냐! 그래서 투자해!”

“그 문맥을 이해하지 못한 시점에서 네가 바보란 건 사실이야!”

벌을 줄 겸 아지의 귀를 잡고 잡아당겼는데 아지는 살짝 힘을 주는 것으로 버텨냈다. 귀 쫑긋거리는 힘이 내 전력을 다한 팔 힘보다 위라니, 진짜 어떻게 된 일인지. 이게 격의 차이인가? 인간의 삶은 유린당할 상황인 거야?

그때 회귀자가 말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