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199화 (199/384)

EP.199 강처럼 흐르는 땅 - 1

아지가 나에게 쏟는 관심만큼, 회귀자도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회귀자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은근히 물었다.

“아지. 나는 어때?”

“멍? 너, 좀 작아!”

아지의 시선이 묘하게 회귀자의 머리 즈음에서 머물렀다. 회귀자는 제 머리 위를 괜히 휘적이며 생각했다.

‘영향력 이야기겠지? 그런 거겠지?’

“만일, 내가 쟤에게 힘을 빌려준다면?”

“그러면 기뻐! 멍! 다다익선이야!”

투자에다가 사자성어까지 나오니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풍월을 읊네, 저 개. 내가 없는 사이 학교라도 다녔나.

“멍, 그래도 작아. 작아 더하기 작아도 작아.”

수학 개념까지? 뭐야, 내가 개를 잘못 알고 있던 건가? 개의 왕이라서 가능한 건가?

입을 딱 벌리고 있는데 회귀자는 홀로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대충 알겠어.”

‘짐승의 왕이 요구하는 자격, 그건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영향력. 지금까지는 권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지의 말을 들어보니 영향력이 꼭 권력만 있지는 않겠어.’

골똘히 생각에 잠긴 회귀자는 큿, 하고 잇소리를 냈다.

‘이런 종류의 영향력이 문제야. 회귀할 때마다 모든 관계가 초기화되는 나는 쉽게 얻지 못하는…. 권력이야 힘으로 어떻게든 잡으면 되지만, 그러면 내 행보가 꼬여. 여러 가지 시도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권력은 너무 무거운 종류라서.’

그 다음 나를 흘긋 보고는, 회귀자는 아지와 비슷한 눈을 했다. 먹잇감을 보듯이 눈을 반짝이며 나를 요모조모 살폈다.

‘그렇다면, 만약 이 녀석을 이용한다면? 어떤 수를 써서 이 녀석의 영향력을 늘리면…!’

생각이 끝났다.

속으로 시커먼 속내를 숨긴 회귀자는 답지 않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제안했다.

“어때. 아지 말처럼 권력을 원해? 원한다면, 너에게 줄 수 있는데.”

“아니, 이 사람이 말하니까 장난이 아닌 것 같아. 권력을 뭐 호주머니에 넣어둔 것처럼 말하네.”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적당한 자리 정도는 소개해줄 수 있으니까.”

회귀자의 다정한 제안은 꽤나 낯설었다. 이대로 가다간 이번 회차는 물론 다음 회차까지 시달릴 판인데.

다음 회차의 나야 나와는 다른 사람이겠지만, 그래도 온 미래에 걸쳐서 회귀자에게 시달린다니 그건 좀 곤란하지 않겠는가. 딱 탄탈로스에서 서로 목숨을 구한 뒤 헤어지면 완벽한 이별일 텐데.

어쩌지, 진짜 같이 다녀야 하나.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리는데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오만하게 팔짱을 끼고는 회귀자를 굽어보았다.

“호오. 조금 전, 저를 돕겠다고 하셨죠? 그러면 셰이 씨는 제 부하가 되는 셈인가요?”

“뭐?”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이 부풀어 올라서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뭐야, 깡패야? 수틀리면 화를 내?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회귀자가 생각했다.

‘만일 자격을 얻는다면, 짐승의 왕과 관련된 교섭은 다 떠맡겨야지…. 뭐, 부하 정도야 해줄 순 있어.’

“협력자에 가깝지만… 그래, 일단 부하라고 해줄게.”

하하. 어디. 과연 내 이런 태도를 보고도 그 소리가 나올까?

건들거리며 발을 불량스럽게 탁탁거렸다. 입장의 우위를 이해하고, 그걸 즉각 써먹는다. 나는 한껏 삐딱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밥이랑 청소 좀 해요. 독박육아, 아니, 독박육견은 이제 질렸거든요?”

“…뭐? 독박?”

어어, 눈 희번덕하게 뜨는 것 봐. 잘하면 사람 하나 담그겠는데.

하지만 이미 나는 아지의 투자금을 받아버렸다.

“내가 독박이라면 독박이지, 감히 말대꾸를 해? 아지야, 나 이거 못 해먹겠다. 다른 투자처 알아보렴.”

“머멍?! 안 돼! 멍!”

그러자 펄쩍 뛴 아지가 큼직한 눈망울로 회귀자에게 매달렸다. 나를 노려보던 회귀자는, 아지의 간절한 태도에 대단히 난처한 기색으로 말을 흐렸다.

“멍, 네가 잠깐 참아! 막 나가면 벼슬이야!”

“큭.”

‘도대체 조금이라도 좋아지려고 치면 별 해괴한 짓을 벌인단 말이야. 약올리는 거야? 진짜, 다음 회차 때는 처음부터 손을 봐줘야 하나?’

호감도 관리를 성공적으로 마치려는 무렵이었다.

거대한 적의가 부풀어 오른다. 그건, 회귀자가 아니라 컨테이너 바깥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감지한 동시에 아지가 움직였다.

아지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귀가 재빠르게 움찔거렸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머리털이 뒤늦게 이어지며 사정없이 아지의 뺨을 때렸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아지는 곧장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멍! 위험!”

아지가 내 옷깃을 물고 잡아당겼다. 동시에 적의를 감지한 나도 곧장 아지를 따라, 그 힘에 저항하지 않고 몸을 던졌다. 어차피 힘 차이 때문에 저항하지도 못했겠지만.

어쨌든, 덕분에 수많은 총격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안전해졌다.

투타타타타타.

무수한 총성이 들렸다. 폭우가 쏟아지는 것처럼, 쏴아아, 하고 이어지는 소리가 귓가를 시끄럽게 메웠다.

비처럼 쏟아지는 총탄이 컨테이너 벽면을 두들겼다. 타악기를 난타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소음이 우리를 괴롭혔다.

습격을 감지한 회귀자가 천앵과 지잔을 꺼내며 몸을 일으켰다.

“습격? 아까 앞에 갔다 왔을 때는 없었는데?”

“앞이 아니에요. 옆!”

“매복이었나? 칫. 앞쪽의 기착지를 살펴보느라 옆을 소홀히 했어.”

혀를 찬 회귀자의 귀로 티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자체가 떨리며 만들어내는 듯한, 관을 거친 둔중한 울림이 컨테이너 안을 메웠다.

[밖이 소란스럽구나. 내가 나서야 하겠느냐?]

“아니, 괜찮아. 저들의 목적은 너를 깨우는 것일 테니까.”

[그렇다면, 잠깐 더 있겠다. 필요할 때 부르거라.]

티르는 목소리를 낮추고 잠들었다. 수면보다는 힘의 축적, 혹은 활동 시간의 보존 같은 행위였지만, 잠 이외에는 인간에게 비슷한 개념을 찾기 힘들 터였다.

어쨌건, 잠든 티르 대신 회귀자가 컨테이너 너머로 귀를 기울였다. 총탄 세례는 컨테이너의 내구성을 시험하는 것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감싸며 아직 여유로운 회귀자를 향해 외쳤다.

“뭐해요! 빨리 가서 처리해요!”

“독박육견은 싫다며. 그렇다면 나도 역할분담을 할 테니 바깥 일도 똑같이 해야지. 안 그러겠어?”

“지금 그렇게 따질 때예요? 알았어요, 제가 잘못했으니까!”

내 사과가 마음에 든 것일까, 회귀자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컨테이너 벽을 툭툭 두들겼다.

“안심해. 이 컨테이너는 티르칸쟈카가 선혈의 낙인으로 강화하고 내가 결계 마법으로 보강한 물건이야. 총탄 따위로는 뚫을 수 없어.”

“그 대사 좀 불길한데.”

“불길하긴. 아까부터 총탄만 쏟아붓고는 올라타지 않고 있잖아. 총을 쓴다는 건 장교가 아닌 일반병. 소모해도 상관없는 일반병을 앞세운 건, 이쪽의 신경을 갉아먹으려는 속셈이야. 신경 쓰는 게 지는 거야.”

회귀자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일회용이나 다름없는 총탄에 고레벨 연금강을 쓸 수는 없다. 수지가 안 맞을뿐더러, 상대가 그것을 노획하여 쓰면 그것만으로도 손해니까.

그에 반해 자기 목숨을 지켜주는 방어구는 전설의 금속이나 고레벨 연금강을 마음껏 때려붓곤 한다. 이유야 설명할 필요도 없다.

꼭 반탄기공의 존재가 아니더라도, 금속의 가치가 갖는 불균형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투사 무기는 명확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기껏해야 견제용, 혹은 버림말.

군국이야말로 꽤 별난 나라라, 만들기 어려운 총을 일반병에게 쥐여주는 전쟁에 미친 행보를 보이지만. 그래도 전투교본만큼은 그 누구보다 합리적이었다….

다만.

‘소리가 들려. 철을 두드리는 총탄의 소리를 되짚어, 내부를 재구성한다.’

내 독심술에는, 조금 다른 생각이 잡히고 있었다.

‘벽면을 보강했고, 안쪽은 꽤 비어있어. 거주 목적이라 그러겠지. 반향이 고르지 않은 것을 보면 벽에다가 구조물을 댄 모양. 그렇다면, 여기서 소리가 이상한 부분은.’

메타컨베이어 벨트의 옆에 난, 몇 안 되는 대로. 그것을 타고 군용 자동마차 세 대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단단하게 포장된 땅 위로 바퀴가 우레와 같은 소리를 일으키며 질주했다. 메타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상회하는, 군용 자동마차가 격렬한 비명을 토하며 흐르는 땅과 경주한다.

거기에 올라탄 일반병들은 장교의 명령에 따라 총을 쏘아냈다. 투두두두. 폭음 속에서 장교의 고함이 묻힌다. 물방울조차 계속되면 바위를 뚫을 수 있다고 하건만, 붉은 낙인이 희미하게 반짝이는 컨테이너는 총탄의 세례에도 멀쩡하다 못해 아예 튕겨나고 있었다.

탄창을 두 번 갈아도 구멍 하나 내지 못하는, 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 그러나 일반병은 그저 묵묵히 명령에 따를 뿐이었다.

모든 것은 한 존재를 위해.

벌떡 일어선 나는 회귀자의 어깨를 붙잡고는 외쳤다.

“저쪽에는 히스토리아가 있다고요!”

히스토리아는 가장 앞에서 달리는 자동마차 위에 올라탄 채로, 사람 키 정도는 될 법한 긴 총을 이쪽에 겨누고 있었다. 거칠게 부는 바람에 땋은 머리가 거세게 흔들린다. 대강 입은 제복이 사정없이 펄럭였다.

바람에 시달리는 듯 보이나, 사실 그것은 바람을 읽는 그녀만의 방법.

머리카락의 무게감도, 옷소매의 펄럭거림조차도 히스토리아에겐 바람을 느끼는 감각기관이다. 철컥, 전신으로 풍향과 풍속을 계산한 히스토리아는 가늠쇠로 컨테이너의 한 부분을 겨누었다.

팔을 당겨 커다란 총탄을 장전한다. 동시에 총신과 총탄에 새파란 기운이 맺혔다.

‘저쪽.’

히스토리아가 노리는 곳이 어딘지, 이 컨테이너 안쪽에서 정확히 어느 위치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높이는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휴이. 맞고 죽지나 말라고.’

겨누는 곳은, 내가 서 있다면 허벅지가 있을 정도의 높이. 확실히 맞으면 어디 하나 날아가더라도 죽지는 않겠지….

안 죽으면 다냐? 이 나쁜 녀석아!!

이 높이라면 회귀자에겐 골반 쪽이다. 빗나갈 가능성이 높지만 확실치 않다.

즉각 회귀자를 껴안은 나는 그녀를 이끌고 땅을 뒹굴었다.

타-앙!

길고 긴 총성이 울렸다. 파도가 부서지는 듯한 수많은 소음 속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거대한 소리가 들리고, 동시에 거대한 무언가가 컨테이너를 두들겼다.

쿠구우웅, 옆구리를 직격당한 컨테이너가 길게 울었다.

끼이익, 덜컹. 어찌나 충격이 컸는지, 아주 잠깐이지만 컨테이너가 살짝 흔들렸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중력이 살짝 흔들렸다가 초심을 되찾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 상태로 회귀자와 데굴데굴 굴렀다. 회귀자는 나를 떨쳐내며 말했다.

“야! 무슨 짓…!”

“위나 보고 이야기해요!”

고개를 들어보니, 딱 머리 위쪽으로 컨테이너 외벽이 형편없이 구겨져 있었다. 컨테이너 안쪽에서 빛나던 선혈의 낙인은 지금 그 빛을 꽤나 잃고는 붉은 흔적만 남겨놓았다.

그 끄트머리에서 빛이 새어나왔다.외부와 내부를 완전히 분리하는 결계조차도 일부 파손시킨 것이다.

히스토리아의 총탄은 선혈의 낙인으로 강화된 강철조차 위협하며, 결계에 구멍을 낼 정도였다!

“총사? 벌써 우리를 따라잡았어?”

“아마 벨트 위를 달렸을 거예요! 올라탄 채 가만히 있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고함을 외치며 땅에 떨어져있던 집기들을 사방팔방으로 내던졌다. 부딪힌 강철이 요란한 소음을 냈다. 찌그러진 컨테이너에서 난반사되는 소리가 들려오자 장전하던 히스토리아도 눈가를 찌푸렸다.

‘…소리가 난잡해졌다. 벽이 찌그러진 탓? 아니면, 벌써 대책을 세웠나?’

하지만 이걸로 번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안쪽에서 반응이 없으면 같은 벽면을 아예 드러낼 수도 있겠지.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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