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202화 (202/384)

EP.202 강처럼 흐르는 땅 - 4

메타컨베이어 벨트는 흐르는 땅. 군국에서 가장 효율적인 운송 수단이다.

가장 빠른 수단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장 효율적인 수단인 건 확실하다. 그저 올라타고만 있으면 며칠 안에 군국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도달하며, 더 빨리 가고자 한다면 그 위에서 양껏 움직이면 된다.

차량이든, 정 안 되면 도보든. 서두르면 서두르는 대로 그 속도가 더해진다. 군국다운 효율성과 답지 않은 유연성까지 가진, 딱딱한 군국조차도 어깨를 으쓱거릴 법한 걸작이었다.

그러나 땅은 공평하다. 대지모신께서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자비를 베푸시니, 강처럼 흐르는 땅이라도 군국만 품지는 않는다. 누구나 그 위를 거닐도록 한다.

군국의 적이든, 아군이든. 모두 대지의 아이들.

덕분에 군국은 흐르는 땅 위를 점거한 적에게 골머리를 앓는 상황이었다.

“…잔소리를 좀 듣겠네.”

메타컨베이어 벨트, 흐르는 땅 특성상 위치를 정확히 언급할 수는 없으나, 그들로부터 10km 뒤쪽에 만들어진 임시 본부.

컨베이어벨트를 거슬러 복귀한 히스토리아는 담배 한 개비를 물고서는 가장 큰 컨테이너 그 안으로 들어왔다.

컨테이너 안쪽에는 장성을 비롯한 고위 장교들이 군국 지도를 앞에 둔 채로 회의를 나누고 있었다. 개중에는 히스토리아보다 지위가 높은 이들이 있었고, 히스토리아는 고개만 까딱하면서 그 안쪽으로 들어가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몇몇 장성이 고개를 살짝 돌리고는 그 인사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석에 앉은, 쾌활한 인상의 중년이 짐짓 미간을 구기며 히스토리아를 불렀다.

“히스토리아 소장. 어디 갔다 왔지?”

“잠깐 툭 건드려보고 왔어.”

“분명 단독 작전은 금지라고 했을 텐데.”

“그래서 총만 쏘고 왔잖아. 직접 싸우지 않고.”

히스토리아는 짤막하게 대꾸하며 제 자리에 앉았다. 지위나 제식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한 거침없는 태도.

그러나 누구도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상대는 육장성, 아직 젊어서 지위는 낮아도 군국 최고전력 중 한 사람이다. 단순히 힘으로만 따지면 군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존재. 단독으로 작전 수행이 가능한 일인군단.

규격 외의 존재를 억지로 욱여넣을 수는 없다. 규격이 박살이 나거나, 그 존재가 참지 못하고 뛰쳐나오거나 둘 중 하나니까.

장성 중 하나가 히스토리아를 비호했다.

“사령관. 소장도 정찰 목적으로 따라간 것입니다. 성과도 있었으니 탓은 이쯤하고.”

“아앙? 야, 중장. 그러다가 육장성 하나 잃었으면 어쩌려고? 작전이 괜히 있는 줄 아나! 다 아군을 위해서 판을 짜 놓은 건데, 그 중핵인 육장성이 멋대로 움직이면 어떻게 하나!”

그리고, 몇몇은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의외로 히스토리아는 착실했다. 나름 부하를 배려하고 다른 장성에게도 대강이나마 예의를 차렸다. 그 탓일까, 장성들도 가끔 지적을 할지언정 딱히 터치하지 않았다.

왜냐면.

“남 말할 때? 아저씨는 북부 사령관이면서 휴가를 내고 혼자 싸우러 갔던 주제에.”

멋대로 휴가신청서를 제출하고 결투를 위해 훌쩍 떠났던 파트락시온에 비하면야, 탐색이랍시고 약간의 마찰을 빚은 뒤 이탈한 소장 정도야 귀여웠기 때문이다.

파트락시온은 뻔뻔하게 대답했다.

“덕분에 이 작전에 참여했잖냐. 북부에 있었으면 제때 못 왔어. 그리고 내가 탐색전을 벌인 덕분에 상대 전력도 대충 알았고.”

히스토리아는 불도 안 붙은 담배를 잘근잘근 씹으며 대답했다.

“통신병에게 전해 들었어. 시조가 겁나서 아무 성과도 없이 그냥 돌아왔다며.”

“겁난 게 아니라, 목숨을 걸고 싸울 이유를 찾지 못한 거다. 말마따나 육장성이 그런 데에서 객사하면 손해 아니냐. 거기다 집에는 토끼 같은 자식과 여우 같은 마누라가 기다리는데.”

“그렇게 깊은 생각이, 왜 찾아가기 전에 들지 않았을까.”

“…이게 따박따박 말대꾸는.”

“푸우…. 아, 불 안 붙였구나.”

“이제는 아예 무시까지 하는구나?”

힘도, 경력도 군국 제일인 파트락시온을 유일하게 편히 대할 수 있는 건 히스토리아뿐. 장성들은 입을 꾹 다문 그들 대신 시원하게 말을 해주는 히스토리아를 대견하게 여기고 있었다.

“짜식… 너는 진짜 내 딸한테 고마워해라. 너만 한 딸 없었으면 애저녁에 손을 봐줬을 텐데.”

파트락시온은 투덜거리면서도 거기서 탓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대신 그는 다시 탁자 위를 향해 시선을 던지며 참모를 불렀다.

“어쨌건, 정찰갔던 장성이 돌아왔으니 회의를 시작하자. 참모장. 설명해 봐.”

“그렇다면, 시작하겠습니다.”

참모는 패킷 하나를 생체 단말에 끼웠다. 마력을 불어넣자 마력으로 만들어진 연금사가 한 장의 천을 짜올리며 그의 팔을 둘둘 감쌌다. 구현이 끝난 뒤, 참모가 천을 둘둘 풀었다.

참모장의 팔을 감싼 천은 패킷으로 만들어낸 군국 전도였다.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림 역시 마찬가지. 패킷 기술은 정보까지 담을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하였고, 군국은 그것을 가장 먼저 차용했다.

참모가 탁자 위에 천을 풀자, 군국 각지의 모습이 전부 드러난 커다란 지도가 말 그대로 펼쳐졌다.

“이곳이 그들의 현 위치, 이곳은 그들의 뒤편에서 대기 중인 아군의 위치입니다.”

두꺼운 국경으로 구분된 군국의 영토에서, 넓적한 타원으로 강조된 메타컨베이어 벨트는 군국의 골격처럼 보였다. 실제 크기보다는 명백히 크게 묘사되어 군국을 한바퀴 두르고 있다.

그 타원의 남동쪽, 한 곳 위로 참모의 지시봉이 드리워졌다. 지시봉은 벨트를 타고는 느릿하게 움직였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극동 기착지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방향을 바꾸어 북서쪽으로 향할 것입니다. 그대로 계속 벨트를 따라간다면 군국을 한 바퀴 돌게 됩니다. 다만, 그들이 추격당하는 와중 계속 군국에 남아있진 않을 것이니. 분명 극동 기착지에 도착하거나 그 직전, 도중에 벨트의 흐름에서 빠져나갈 것입니다.”

지시봉이 극동 기착지에 닿은 순간 벨트를 벗어나서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길을 따라가다가 냅다 빈 땅을 달리는 건 꼭 반칙처럼 보였지만, 참모의 지팡이는 똑같은 속도로 태연하게 지도 위를 달렸다.

그렇게 지시봉이 도로 없는 빈 땅을 내달리다 닿은 곳은.

“아마, 이대로 벗어나 동부 해안도로로 향하리라 예측합니다. 육로든, 수로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북쪽으로 향할 것입니다.”

지도를 빤히 내려다보던 파트락시온은, 조금 꺼림칙한 표정으로 해안도로 위쪽에 존재하는 어두컴컴한 땅을 바라보았다. 지도에서조차 어둡고 탁하게 묘사된, 인간이라면 입에 담는 것조차도 거부감이 느껴지는 나라.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이라면, 공국으로?”

동쪽으로 쭉 향하면 나타나는 해흉의 바다. 미지의 괴물이 날뛰는, 영원히 가라앉기만 하는 심연. 바다와 산맥 사이에는 어두우며, 언제나 안개가 가득한 땅이 있다.

참모는 지팡이로 그곳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조 티르칸쟈카는 흡혈귀의 군주입니다. 오랜 시간 잠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 추격을 받는다면, 우군이 있는 공국 쪽으로 향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 존재는 홀로 국가이나…. 역시 흡혈귀. 누구보다 자기 약점을 잘 아는 그 존재라면 군세를 거느리지 않고 군국의 한가운데에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결론은 하나였다.

적을 죽이려고 하든, 제압하려고 하든. 해안도로에 접근하기 전에 제압해야 한다는 것.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히스토리아가 짓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담배를 입에 물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힘이 잔뜩 들어가서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극동 기착지에 병력을 집결시켜 그들을 공격해야 합니다. 극동 기착지는 반환점, 메타 컨베이어 벨트를 보수하는 거대한 삼각주가 있으니. 그곳에는 충분한 병력으로 그들을 포위할 수 있습니다.”

직책은 참모가 한 계급 더 높았지만, 참모는 히스토리아를 향해 나름의 형식을 갖춰 정중하고 자세하게 설명했다.

“사령부는 사령관님의 판단 하에, 제압이 여의치 않으면 퇴거를 목표로 압박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하지만.”

“대규모 포위 작전은 비합리적이다. 적은 소수고, 강력하며, 여러 입지를 가지고 있다. 공국의 시조를 상대로 포위 작전까지 벌이다가 사살하기라도 하면 군국이 난처해진다. 최소한 공국과는 원만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또한….”

참모는 이런 말 꺼내기 난처한 듯, 여기 모인 장성의 눈치를 보며 조그맣게 덧붙였다.

“애초에, 필승이라 보장할 수조차 없다. 성황청과 정치적으로 대립한 뒤 군국에는 성녀도 주교도 배치되지 않았다. 그에 반해 흡혈귀는 태고의 신비이며 생명 없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존재. 만일, 시간이 끌려서 밤이 찾아온다면. 패배하는 쪽은 우리가 될 수도 있다.”

낙관 따위는 접어 둔, 군국다운 합리적인 판단.

그러나 히스토리아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멜른, 그 저주 받은 강 아래 묻힌 수많은 목숨. 영영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 사건의 진상이 눈앞에 있는데 놓쳐야 한다는 말인가.

만일 군국이 용납하지 않는다면, 혼자서라도.

히스토리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던 순간.

『군국 통신병 피이입니다. 사령부 직속 명령을 하달합니다.』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목소리가 회의장을 울렸다. 회의장을 가득 메운 별들이 소식을 가져온 전령을 향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특히, 히스토리아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납고 간절했다.

수많은 장성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그 아래 위축될 법도 하건만, 통신병은 덤덤하게 보고를 계속했다.

『현 시간부로 기밀 해제. 사령부에서 긴급 파견 명령에 따라, 프렐비요르 대장이 곧 도착합니다.』

그 소식이 전해진 순간 장성들 사이에서도 동요의 빛이 퍼져나갔다. 그 빛은 걱정이나 두려움이 아닌, 무언가 든든한 것이 그들의 등을 받칠 때 느끼는 힘에 가득 찬 떨림이었다.

심지어 히스토리아조차 흥분을 숨기지 못하고 내심 주먹을 콱 쥐었을 정도니.

다만, 상석에서 홀로 앉아있던 파트락시온은 대충 쓴 모자를 꾹 눌러썼다. 표정이 보이지 않도록 얼굴을 덮으며 그는 중얼거렸다.

“정작 수도로 향할 때는 적극적 교전회피를 명령하더니, 저들이 물러나려는 지금 마장 그 할매를 불러…? 이해할 수가 없구만.”

군국 유일의 마기스트. 제식 마법의 창안자.

가장 일반적인 마법사이자, 워 메이지.

은하수.

마장(魔將), 프렐비요르 대장.

“무슨 생각이냐, 사령부는. 고작 셋을 상대로 진짜 전쟁이라도 할 셈인가.”

이곳에는 없는, 그리고 누구도 그 진정한 정체를 모르는.

오직 통신병을 통해서만 명령을 내리는 사령부를 향해, 파트락시온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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