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4 강처럼 흐르는 땅 - 6
투사 무기는 무기 같지도 않은 쓰레기 무기이다. 이건 예로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상식이었다.
마력을 머금고 떠다니는 공기는 기본적으로 부딪치는 모든 것에 반발한다. 틈을 비집고 지나가려는 화살조차 그 느릿한 속도에 비해 요란스럽기 짝이 없다. 기감이 좋은 이들은 간단히 감지하며, 반응만 제때 하면 쉽게 튕겨낸다.
총알도 마찬가지. 시끄러운 것으로는 그 무엇에도 뒤지지 않는 그 무기는 언제나 형편없는 살상력을 지적받아왔다. 지근거리에서 발사하지 않으면 일반인조차도 해치울 수 없는, 귀찮게 앵앵거리는 파리떼에 불과한 물건.
그러나 군국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해냈다.
고작 일반병 따위가 절대 강자 근처에서 귀찮게 앵앵거릴 수 있다면, 엄청난 이득이 아닌가 하고.
군국이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던 와중, 혜성처럼 나타난 존재가 총사 히스토리아였다.
탕, 탕.
이쪽이 컨테이너 안에서 몸을 숨기고 있으니, 총탄은 잊을 때쯤 기억을 상기시키듯 간헐적으로 날아왔다.
물론 총탄은 컨테이너 외벽조차 뚫지 못한다. 그러나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딱 마음이 풀릴 때,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폭음과 함께 컨테이너가 움푹 찌그러진다. 히스토리아의 총탄이다.
“귀찮은 파리 떼. 그 안에 숨은 한 마리의 말벌… 이라고 하였지. 흐음. 그리 칭할 만하구나.”
티르가 손을 움켜쥐자, 바닥을 타고 흐르는 어둠이 찌그러진 총탄을 가지고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왔다. 티르는 느긋한 어조로 날아오는 총알을 품평했다.
“비록 태양이 비치고 있다 하나, 내 낙인을 두른 강철을 찌그러뜨리다니. 그것도 저 거리에서.”
“그래. 군국 전술의 완성판이지. 괜히 군국의 딸이라 불리는 게 아니야.”
회귀자가 투덜거리는 동시에 나를 째릿 노려보았다.
“이쯤 되면 하멜른에서 무슨 이상한 일이 있었나 궁금하네. 도대체 무슨 원수를 진 거야? 며칠 전만 해도 그냥 가랍시고 길을 비켜줬는데, 지금은 육장성이 목숨을 걸고 붙드네?”
“개인적인 문제라니까요. 저를 잡고 싶은 사람은 히스토리아 하나일걸요?”
“뭔 짓을 했길래?”
“아, 그게. 설명하자면 긴데. 제가 열여섯 살 무렵입니다. 이팔청춘이 젊음을 깎아 무기로 만드려는, 군국의 중등군사학교에서 저희는….”
나는 자리를 잡고는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티르는 어느새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는 경청할 준비를 했다.
학창 시절 나의 찬란했던 기억.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 하멜른과 그 아래 졸졸 흐르는 강. 그곳에 머물렀던 추억과 꿈….
“결론만 간단히.”
“쳇. 재미없게.”
“재미가 문제야? 지금 적이 코앞까지 와있다고!”
“알았어요, 알았어.”
나는 어깨를 으쓱하곤 설명했다.
“하멜른에서 학생을 약간 탄환처럼 쓰려고 했거든요? 그 탓에 학생들이 화가 잔뜩 나서는, 군국에서 배운 전술이나 전투기술을 군국을 향해 써먹었어요. 조직적으로 습격하고, 기지가 불타고, 농성하고, 그렇게 실습 캠프를 점거한 그들이 본보기로 전교 1등을 처형하려고 했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회귀자는, 그게 내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움찔했다.
‘잠깐. 전교 1등이라면, 쟤잖아? 친구에게 처형당할 뻔한 과거가 있다고?’
그래. 간단히 말할 내용이 아니라니까.
회귀자는 한결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했는데?”
“생각해보니 같은 학생을 죽여봤자 모양이 안 좋죠. 군국을 상대로 한 싸움은 투쟁이지만, 전교 1등을 상대로 한 공격은 그냥 열등감에 찌든 분노잖아요? 메시지가 안 산다는 말이에요. 메시지가. 마지막 순간 그것을 깨달은 동기들은 맞서 싸우는 대신 자결을 선택했어요.”
“….”
“그 와중 저보고 자살에 동참하라네요? 절체절명의 위기. 와, 하지만 마지막 순간 기지를 발휘한 저는 죽은 척하고 빠져나왔죠.”
‘학생 때부터 미친 자식이었네. 하긴, 다른 면면이 그 모양인데 이 녀석만 정상은 아니겠지.’
무슨 서운한 소리를. 억울하지 않냐? 하멜른의 전교 2등이랑 3등은 너무 강해서 감히 건드릴 생각도 못 했다고. 그저 만만한 게 1등이면서 나약한 나였을 뿐이야.
이쯤 되면 내가 피해자 아니야? 약한 게 죄야?
“간신히 살아남아서 돌아가려고 하는데, 이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던 군국이 범인으로 저를 지목하지 뭐예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죠. 재갈 대신 호각을 물고 있던 것뿐인데, 제가 꼭 호각으로 모두를 이끈 것처럼 됐잖아요.”
“대강 알겠어. 어쨌건, 나쁜 건 군국이라는 말이지.”
“기억해두시는 게 좋아요. 뭔가 기묘하게 나쁜 게 있으면 보통 군국이 만든 거니까요.”
다행스럽게도 회귀자는 이 건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전 회차에서 군국을 무너뜨린 경력이 있어서 사소한 사건 따위는 그냥 넘어가는 모양이다.
‘꽤 비극적인 과거네…. 하긴, 사연 없는 사람은 없겠지. 총사나 란카르트에 비하면 차라리 나아. 피해는 잘 안 주니까.’
나를 배려한 것도 조금은 있고.
“어쨌건, 저쪽 의도는 뻔하네.”
“쏘아붙이는 것도 아니고 접근하는 것도 아니죠. 본대와 합류하기 전까지 시간을 끌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네요.”
“돌파하거나, 기다리거나. 둘 중 하나인데.”
잠깐 현대인 둘이 고민하던 차, 전쟁 교리가 수 세기 전에서 멈춘 흡혈귀는 당당하게 제안해왔다.
“돌파하자꾸나. 무릇 전쟁이란 첫째가 힘이요, 둘째가 기세이니. 물러나기만 하면 수세에 몰리기 마련이다.”
괜찮은 방법이다. 그럴 힘이 있다면, 격파와 분쇄는 언제나 옳다.
“뭐,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한데. 한번 해보실래요?”
“조금만 기다리거라. 차가 식기 전에 돌아오겠다.”
오오, 자신감. 내가 우러러보자 티르는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총탄이든, 무엇이든. 그것만으로는 나를 막을 수 없다. 어디, 한번 쏘고 싶은 대로 쏴보거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티르가 몸을 내밀었다. 강처럼 평탄한 땅 위에 그녀가 홀로 노출되었다. 그 순간, 티르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인상을 썼다.
그 위로 총탄이 쏟아졌다. 티르의 신장이 그리 크지 않은데도 일제사격이 흡혈귀의 몸을 두들겼다. 눈을 가리느라 반응하지 못한 티르는 쏟아지는 총탄에 시달렸다.
물론, 총탄 따위는 그녀를 상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티르를 막은 건 총탄이 아니었다.
“…저주받을 태양 같으니.”
몇 분도 지나지 않았다. 양산을 들고 나아가려던 티르는 버티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낙담한 티르를 향해 나는 아직 따뜻한 차를 건넸다.
“확실히, 차는 아직 따뜻해요. 한 입 하실래요?”
찌그러진 총탄 몇 개가 그녀의 몸에 박혀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몸을 두른 어둠에 박혀 있긴 했지만 어쨌든.
눈도 잘 못 뜨는 티르의 몸에서 탄환을 하나씩 떼어내는 동안 티르가 착잡한 듯이 중얼거렸다.
“…하필 저쪽이 동쪽이라, 햇빛이 강하구나. 저주받을 태양 같으니.”
“맨날 성실하게 동쪽에서 출근하시는 분한테 저주는 너무하지 않나요.”
“감히 이 내 앞에서 태양을 편드는 것이냐?”
‘저 태양만 아니었어도 나는 벌써 네가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주었을 것이다. 이깟 방해따위 다 뿌리칠 수 있었단 말이다!’
그러게?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태양이 조금 괘씸한데? 어이, 아저씨. 하루쯤 결근할 수도 있잖아? 잠깐 잠들어 있으라고.
잠깐, 진정해라. 태양이 없으면 죽는다. 인간은 물론이고 이 땅을 돌보는 게 저 태양빛이라는 말이다.
휴우. 뱀파이어 덮어쓰기 당할 뻔했네. 진정하자.
“어둠 틈으로 스며드는 햇빛만 아니었어도, 저딴 철쪼가리 따위는 가렵지도 않았을 것이다.”
“네? 그럼 지금은 가려워요?”
불쾌감에 분개하던 티르는, 마침 자기 몸 곳곳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고통이 되기에는 한없이 작고 약한 자극, 그러나 존재하기에 신경이 쓰여서 어쩔 수 없는 미세한 감각.
아아, 그건 가렵다는 것이다. 티르가 생소한 느낌에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묘하게 가렵구나. 기이하다. 나에게는 그러한 감각이 존재하지 않을진대.”
“티르에게 가렵다는 건 권능에 영향을 주고 있단 뜻인데. 평범한 탄이 아닌가? 잠깐만요.”
나는 티르의 몸에서 떼어낸 총탄을 유심히 살폈다. 찌그러진 탄두에는 새하얀 결정이 어렴풋한 빛을 받아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는데, 나는 맛보지 않고도 그 정겨운 백색 가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맛보는 편이 낫겠지. 나는 혀를 대어 총알을 입에 갖다 댔다. 희석되지 않은 짭짜름한 맛이 곧바로 느껴졌다.
티르가 기겁해서는 물었다.
“휴?! 남사스럽게 무슨 짓이더냐?”
“엣퉤퉤. 역시 소금탄이었네요…. 네? 그보다 탄을 확인하는데 뭔 남사스러움?”
“아니, 아니다.”
‘남의 몸에 닿았던 것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입에 담다니…. 요새 인간들은 대담하구나.’
독심술이 있어도 흡혈귀의 마음가짐을 잘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인생의 낙이 흡혈밖에 없으신 분들이라 그런지 가슴(뼈)을 까는 것보다 입에 닿는 걸 더 신경 쓰네.
어쨌건. 흰빛을 내는 소금은 예로부터 삿된 것을 몰아내는 용도로 사용했다. 소금을 흡혈귀에게 던져봤더니 흡혈귀가 싫어하더라, 하는 민간요법이 있는 것도 당연.
사실 흡혈귀뿐만 아니라 인간도 소금을 맞으면 싫어하겠지만 뭐.
“이 짧은 시간에 소금탄같은 특수탄환을 만들고 보급하다니. 과연 군국이라 해야 할까.”
“…괜찮다. 태양이 조금만 더 위로 솟아난다면, 저들을 상대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상대방도 그걸 노렸겠죠. 심지어 저들은 우리 앞쪽으로 돌아가, 바람과 태양을 등지고 서 있어요. 총알을 손으로 던져도 이쪽까지 도달할 것 같은데, 아예 쏴버리니 원.”
어둠을 두르지 않은 티르의 진군 속도는 잘해봐야 보병 수준이다. 군국 총사대 입장에서는 좋은 과녁일뿐.
절대 부서지지 않으면서도 심리적 압박감은 엄청난, 실전용 허수아비.
앞으로 두세 시간 정도는 티르로 일점돌파라는 사기 전술을 쓸 수 없다.
“그럼, 내 차례인가?”
피부 위에 칼날을 세운 듯, 서늘한 예기를 담은 목소리가 들렸다. 회귀자는 전신을 뻣뻣하게 긴장시킨 채로 저 너머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들에게 경계심을 안겨줘야겠어. 총사를 쓰러뜨릴 수 있으면 쓰러뜨리고, 안 되더라도 피해는 입히고 올게. 그래야 이후에 있을 추격에서도 별동대나 정찰병 같은 같잖은 짓을 안 하겠지.”
회귀자가 기분 나빠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별동대와 정찰병이란, 전력을 나누더라도 각개격파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만 운용하는 병력이니까.
마음은 이해가 갔지만, 나는 곧장 고개를 내저었다.
“굳이?”
“뭔 굳이야.”
“아니, 불리한 상황에서 저들을 억지로 돌파할만한 이유가 없죠? 전술적 이점도 없고, 저쪽은 딱 봐도 시간 끌려고 소금탄까지 준비했고.”
“그러면 뭐, 여기서 그냥 맞아주고 있자고? 저쪽 본대가 합류할 때까지?”
“아뇨.”
그럴 리가.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잘 맞아줘야죠.”
저쪽은 길 건너편, 일제사격으로 이쪽의 신경을 갉아 먹을 셈이다. 당분간은 그렇다면 역으로 이용한다.
누군가 고개를 빼꼼 내밀면 쏜다고? 그래, 쏴봐라.
보람을 찾을 수 있다면 말이야!
“나와라. 뚱아지!”
“멍!”
마침 드러난 우리 팀의 비밀병기, 천갑옷을 겹쳐 입어서 통통하게 보이는 아지가 울부짖었다. 내가 팔을 크게 휘두르자 아지는 그에 따라 몸을 한 바퀴 돌렸다.
우아한 턴보다는 개의 구르기와 비슷한 모양새였으나, 겹겹이 껴입은 천갑옷 덕분에 존재감은 엄청났다. 단모종이 장모종이 되어 털을 부풀린 모양새라고나 할까. 이대로 굴리면 땅끝까지 굴러갈 것 같다.
“요즘은 개도 옷을 입는 시대. 그렇다면 견갑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
“멍! 답답해!”
“참아. 이게 있어야, 저쪽을 난장판으로 만들면서도 네가 덜 아파!”
“멍, 참을게! 지분을 위해!”
“지분? 뭔 지분?”
똘망똘망한 눈을 한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지는, 독심술로도 동작으로도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어쨌든, 대충 알았지? 네 소란스러움을 만천하에 알릴 때야!”
“아우우우우!”
아지가 쏜살같이 뛰었다. 그 직후, 그 방향엘 총탄이 쏘아지기 시작했다. 빗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리며 뒤쪽으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맨몸이어도 총탄 따위는 피하거나 버텨내는 아지다. 총탄은 아지의 발자국조차도 맞추지 못한다. 가끔 맞는 것도 갑옷에 튕겨나갈 뿐. 아지는 종횡무진으로 뛰며 저쪽으로 향해 다가갔다.
비명과 고함이 울려퍼졌다. 일단 소란스럽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요란스럽구나. 확실히, 괴롭히기엔 비할 바 없으나… 휴, 그래 보았자 개의 왕은 인간을 해칠 수 없지 않느냐.”
“그렇죠. 머지않아 사격을 중지할 거예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총성이 잦아들었다. 미묘한 고요함이 느껴졌다. 아지도 할 일이 없어졌는지 멀뚱거리고, 저쪽도 억지로 아지를 무시하고 있다. 서로 공격할 의지 없는 두 집단이 기묘하게 대치했다.
“…그러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지 않느냐?”
“그렇죠. 아지는 공격 못하니까요…. 아지는, 말이죠.”
내 말에서 불길함을 느낀 탓일까. 회귀자가 흠칫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무언가 불길함을 느끼고는 내 멱살을 잡았다.
“…잠깐, 야. 어제 너 나한테 폭탄 비슷한 거 달라고 하지 않았어?”
“네.”
“그거 어디 있어?”
“아지 등 뒤요.”
저쪽도 무언가를 깨달은 듯, 쫓아내듯 총탄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늦었다. 아지는 이미 지척이다.
퍼어어엉.
앞서간 땅에서 굉음이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