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205화 (205/384)

EP.205 강처럼 흐르는 땅 - 7

습격 아닌 습격이 계속되었다. 짐승의 왕을 이용한 지치지도 않는 게릴라전에 히스토리아가 난색을 표했다.

“…제기랄.”

총사대. 히스토리아가 직접 이끄는 다용도 원거리 견제 부대.

미리 앞서 지른 그들은 훨씬 앞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총탄을 쏟아부었다.

정찰과 견제를 반복하며, 본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상대방의 발을 잡아끄는 지연전을 벌이는 게 총사대의 목표였다. 보급받은 소금탄을 아낌없이 뿌려가며 적을 뿌리쳤다.

심지어 시조마저도, 잠깐이나마 격퇴할 수 있었으니.

그러나 다음 나타난 존재는 예상외였다.

‘개의 왕?’

차라리 보이지 않는 검을 쓰는 소년이 뛰쳐나오면, 고개를 끄덕이며 히스토리아가 직접 맞서면 된다.

그러나 두꺼운 갑옷을 입은 개의 왕은 상대해서는 안 되었으며 그러기도 곤란했다. 거기에 낭비할 탄환이 없었기에, 히스토리아는 즉각 사격 중지를 명했다.

그렇게 개의 왕은 아무런 방해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총사대 한복판까지 걸어왔다. 총사대는 잔뜩 긴장한 채 개의 왕을 힐끔거렸다. 아무리 해를 끼칠 수 없어도 그렇지, 몸부림만으로 기지를 박살낼 수 있는 괴물이다.

히스토리아가 직접 쫓아내기 위해 접근할 때였다. 병사 중 한 명이 손가락을 들었다.

“소장님! 등에!”

그제서야 히스토리아는 개의 왕 등에는 무언가가 매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저것을 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도중, 그 등에 있던 가방이 급격하게 부풀어 올랐다.

최루탄이었다.

한순간이었지만, 컨테이너를 조준하고 있던 총사대는 고통에 울부짖었다. 히스토리아의 일갈에 와중에도 조준을 계속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와중에 개의 왕도 고통스러운지 땅을 뒹굴거렸으나, 어쨌든. 일격을 맞은 건 이쪽이었다.

‘신경을 갉아 먹히고 있어.’

저쪽을 압박하기 위해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일방적으로 쏘아붙였다. 그러나 저쪽은 긴장하기는커녕 온갖 갖은 수로 그들을 괴롭혔다.

개의 왕이 뛰쳐나와서는 멍멍 짖고 돌아갔다. 총탄이 낭비되었다. 보다 못한 히스토리아가 시조만 사격하라고 명령하자, 때마침 개의 왕이 새까만 양산을 쓰고는 기웃거렸다. 그러면 잔뜩 긴장한 병사들은 반사적으로 특수탄을 쏘았다.

총을 쏘지 말고 일단 관망하라고 말하면, 그제야 진짜 시조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랜덤박스가 열릴 때마다 총사대의 신경줄은 고무줄처럼 수십 번 늘어났다가 줄어들어, 결국 탄력을 잃고 축 늘어진 꼴이 되고야 말았다.

익숙한 수법이었다. 군국이 주로 취하는 교리 중 하나가 아닌가.

‘네 작전이구나, 휴이. 사람의 모임인 군대라면, 사람에게 하는 것과 같은 심리전을 걸 수 있다는 게 네 견해였지.’

군국의 전투 교리는 단순했다. 일반병 혹은 장교가 기공이나 마력을 소모시키면, 육장성을 위시한 장성이 정리한다. 그뿐이다.

어쨌건 일반병은 귀찮지만 놔둬도 무방한 파리떼, 딱 그 취급이었다. 히스토리아가 등장하기 전까진.

기공으로 총을 쏘는 히스토리아는 군국이 찾던 마지막 피스였다. 견제 사격 속에 위협적인 총격이 더해짐으로서, 버림패에 불과했던 일반병이 군국에서 전략적인 운용이 가능해지는 위치까지 올라왔다.

‘그래. 지금 개의 왕처럼.’

히스토리아는 터덜터덜 되돌아가는 개의 왕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개의 왕은 무해하지. 하지만 그 등에 무엇을 실었을지 모르니, 우리도 경계해야 해.’

아마 개의 왕 자신이 사람을 죽이진 않겠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 모르는데. 덕분에 총사대원은 언제나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되었다.

전력 외라고 상정한 개의 왕이 전략적으로 활용되는 동안 이쪽의 전력은 변화가 없다. 자연히 수세에 몰릴 수밖에.

‘흐. 아플 만큼 약점을 찔러 들어오는 건 여전해….’

그녀가 생각을 끝마칠 때쯤이었다.

히스토리아가 가늠쇠 너머로, 다른 컨테이너보다 묘하게 채도가 낮은 컨테이너를 감시하는 중이었다. 보급관 한 명이 짧은 경례를 하곤 다가왔다.

“소장님. 탄이 다 떨어졌습니다….”

“통신병에게 연락해놨다. 다음 포인트에서 보급품을 수령하도록.”

“…준비해놓겠습니다.”

보급품이 곧 도착한다는 사실에도 장교의 걸음에 힘이 돌아오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고갈된 게 탄약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신력과 집중력마저도 소모되는 자원이었으니.

‘…위험하네. 지금 저쪽이 뛰쳐나온다면 곤란하겠어.’

전신을 죄여오는 긴장감에, 히스토리아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싸움을 앞둔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적기다.

총탄의 빈도수가 줄었고, 아지가 등장했을 때 저쪽의 반응이 늦다. 지연된 반응에는 반사신경의 문제도 있겠지만, 총탄을 쓰는 것 자체를 꺼리는 심리도 존재할 터. 분명 탄약이 고갈된 거겠지.

태양도 충분히 떴겠다, 나는 도전적인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슬슬 때가 되었죠. 이제 아지 택배 배송은 잠시 중단합니다. 아지는 충분히 일해주었으니까요.”

말마따나, 우리는 지금 폭탄 배송 강아지로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아지는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 등 뒤에 살상용 폭탄이 매달려 있으면 인간이 없는 쪽으로 뛰어갈 거다.

하지만 최루탄이라면 어떨까? 인간을 죽이진 않으면서 고통스럽게만 하는 폭탄. 덕분에 인간을 공격할 수 없는 아지를, 전략적으로 충분히 활용하게 되었지. 마침 회귀자가 들고 있던 것도 풍탄이었고….

“으르르르르르.”

…대신 아지도 전략적으로 나를 적대한 것 같지만 말이야. 화들짝 놀란 나는 미리 구워놓은 고기를 아지 앞에 내려놓으며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아지야. 너는 최고야! 전투견으로서 이만한 성능이 또 없어!”

“으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어라, 이 정도 칭찬이면 좋아해야 하는데.

재채기를 하도 해서 빨개진 코에서는 콧물이 흐르고 있었다. 눈시울도 붉어져 있었는데, 감수성보다는 역린을 건든 게 분명한 적의에 찬 눈이었다.

나는 물 묻은 손수건으로 아지의 눈과 코를 닦아주면서 말했다.

“자, 고기 먹자! 너의 노고는 잊지 않을게.”

“으르르. 지분.”

“아니, 지분이 도대체 뭔데.”

“으르르르.”

“알았어. 깡패가 다름없네! 자, 지분 줄게. 됐지? 알아서 챙겨가!”

“…멍! 10%야!”

아니, 뭘 했다고 벌써 10%를. 100%가 되면 어떻게 되는데?

내가 확인도 하기 전, 표정을 푼 아지는 곧장 걸터앉아서 고기를 씹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개밥도 나름 맛있게 먹는 아지였는데, 지금 고기를 씹는 얼굴은 꼭 원수를 짓씹는 것 같았다.

당분간은 기분에 맞춰주는 게 좋겠다. 음.

“너, 나중에 모른척하면, 싫어?”

“…알았다, 야. 내가 잘 챙겨줄게. 설마 내가 너를 모른척하겠니.”

“멍!”

기분이 좋아진 것 같긴 한데, 왜 좋은지는 모르겠어서 무섭다. 어쨌건 나름 열심히 일한 건 사실이니 인정해줘야지.

코를 훌쩍이며 고기를 먹는 아지를 내버려 두고, 지금껏 숨죽이고 있던 티르나 회귀자를 향해 손짓했다.

“우리, 다수의 폭력 앞에 너무 수그리고만 있었죠? 슬슬 복수하러 가볼까요?”

티르가 기다렸다는 듯이 양산을 어깨에 걸쳤다. 그녀의 입가에는 은근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러자꾸나. 태양 아래라고 어둠으로부터 안전하리라 믿은 피식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

그동안 힘을 차분히 모으고 있던 회귀자 역시 준비를 끝냈다.

“얼른 돌파하자. 총사를 제압하면 일이 훨씬 수월해질 거야.”

힘은 만전. 소모된 것 없음. 그에 반해, 저쪽은 아지에게 정신적으로 시달린 오합지졸들.

완벽한 기회가 찾아왔다. 이 체스판 위, 카드는 회귀자와 티르까지 둘. 그에 반해 저쪽은 히스토리아 하나.

하하하. 이 전투는 나의 승리다, 히스토리아. 네놈의 전술은 내가 완성시켜줬다는 걸 잊지 않았겠지? 약점 따윈 훤히 꿰고 있다고!

어디, 네가 무시한 1등의 위력을 봐라! 폼은 일시적이지만 등수는 영원하다!

컨테이너의 문이 벌컥 열리고, 새까만 관을 대동한 티르가 홀로 진군했다.

지금껏 아지는 다섯 번 정도 티르의 양산을 들고 뛰쳐나갔다. 그 탓에, 이제 속지 않겠다 다짐한 이들은 어두컴컴한 양산을 보고도 일단 관망했다.

그러나 티르의 등장은 아지와는 시작부터 달랐다. 그녀가 태양 아래 모습을 드러낸 순간, 총사대의 병사들은 눈앞에 안개가 낀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다. 이 땅 위에 존재하는 어둠 그 자체가 걸어나오는 듯한 감각에 평범한 인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티르의 위로 총알이 쏟아졌으나, 지금의 티르는 아까와는 조금 달랐다.

둥둥 뜬 관에서 어둠이 줄기줄기 흘러나온다. 태양 아래라 어둠이 조금 바랬지만, 그마저도 불길하다. 뚜껑이 열린 순간 시곗바늘이 제멋대로 돌아가 저녁이 찾아온 것만 같다.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날아온 총탄은 어둠의 장막을 뚫지 못했다. 간혹 소금탄이 반짝이며 어둠을 헤쳤으나 그뿐. 너무 소모된 탓에 장막을 찢어낼 정도는 아니었다.

티르는 마치 전차라도 된 것처럼 뚜벅뚜벅 걸어갔다. 한손으로 공간을 헤치면, 장막을 뚫지 못한 총알이 일제히 옆으로 쓸려나갔다.

타아앙.

그때 한 줄기 총성이 울렸다. 장막이 소용돌이치며 찢겨나가고는 그 뒤편에 있던 티르의 고개가 팩 돌아갔다.

총사대 중 누군가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소장님의 총탄이다! 맛이 어떠냐, 괴물…!”

그러나 그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티르의 왼쪽 눈썹 위, 회전하는 총알과 보조를 맞추듯 핏물이 자그맣게 소용돌이치며 밀어내고 있었기에.

총사대원이 숨을 들이 삼킬 무렵, 티르가 붉은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괴물, 이라. 너무 자주 들은 말이라 어떠한 감흥도 없구나.”

티르가 고개를 다시 돌렸다. 히스토리아의 총탄은 그녀의 얼굴조차 더 저지하지 못하고는 튕겨 나왔다.

“어디, 쏘아보거라. 마침 태양이 빛나고 있다. 뜨거운 빛이 나를 저주하는 지금이야말로 이 몸을 쇠하게 할 유일한 기회다. 어디.”

잠시 수를 헤아리던 티르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백에 백을 곱한 만큼 쏜다면, 나를 꽤 곤란하게 만들지도 모르겠구나.”

말마따나, 햇빛에 그을린 피는 시커멓게 변색된 상태였다. 이대로 그녀의 모든 혈기가 그을린다면 시조 티르칸쟈카라도 위험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득한 혈해에서 퍼 올린 한 줌에 불과하다.

히스토리아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총구를 내렸다.

‘한 발 쏠 때마다 상당한 기력을 소모하는 총탄으로는 승부를 못 내. 내가 먼저 고갈되겠지. 소금탄이 고갈된 지금은….’

생각을 끝마친 히스토리아가 두 자루의 권총을 치켜들었다. 탄을 미리 잔뜩 쟁여둔 묵직한 권총이 그녀의 손에 잡혔다. 차갑고 무거운 금속의 촉감을 느끼며, 히스토리아가 말했다.

“본대가 오기 전까지 내가 상대하겠다. 진형을 갖추고 뒤로 물러나.”

“소장님, 위험합니다! 시조와는 절대 맞서 싸우지 말라는…!”

“그럼, 저쪽에서 싸우자고 오는데 어쩌라고?”

짜증스럽게 일갈한 히스토리아가 한 걸음 나설 때였다.

그녀가 한 걸음 떼기도 전, 위쪽에서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졌다. 히스토리아가 급히 허공을 겨누고 총알을 쐈다.

탕,  팅. 짧은 간격을 두고 총성과 총알이 튕겨나가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그 직후 누군가가 유성처럼 총사대 한가운데 떨어졌다.

“누구 마음대로! 네 상대는 나야!”

시선이 티르에게 집중되었을 때 하늘로 날아오른 회귀자는, 거대한 폭풍과 함께 땅에 내리 앉았다. 떨어지는 동시에 지잔을 내리찍자, 대지도, 대기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진과 폭풍, 양쪽에서 사람을 흔드는 충격에 모든 이들이 잠시 균형을 잃은 그때.

약속이라도 한듯, 두 전사는 떨어진 순간 바로 상대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로 무기를 휘둘렀다.

챙. 교차된 총이 천앵을 받아냈다. 갈려나간 강철에서 불똥이 튀고, 두 여자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소장님!”

누군가의 부름에, 히스토리아는 돌아보지도 않고 즉각 외쳤다.

“나한테 신경 쓰지 마! 시조를 막아!”

“하, 너 혼자서 되겠어?!”

회귀자는 일갈하며 손목을 뒤틀었다. 권총을 비스듬히 타고 오른 보이지 않는 검이 히스토리아의 얼굴을 향해 쏘아졌다. 일렁이는 검끝을 똑똑히 보며 히스토리아는 피식 웃었다.

“혼자? 내가 할 말인데, 귀염둥이.”

히스토리아가 순간적으로 몸을 눕혔다.

허리를 뒤로 빼고 지면과 평행하게 눕는다. 그 상태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며 반대쪽 다리를 내뻗었다.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중심이 앞으로 쏠린 회귀자는 다급히 무릎을 들어서 발차기를 받아냈다.

뻥, 하는 시원한 소리. 공중으로 날아간 회귀자는 몸을 뒤집으며 벨트 위에 착지했다. 작게 혀를 차는 그녀의 앞으로 총사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너야말로, 시조가 도착하기 전까지 살아남을 수 있겠어?”

그녀의 손에서, 칼날이 달린 두 자루의 권총이 빙글빙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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