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211화 (211/384)

EP.211 날아오르라 주작이여

우선 평화로운 협상을 위해 히스토리아에게 서로의 처지를 확인시켜주었다.

“나를 추궁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공안청에 끌고 가겠다, 알아들었어. 음음, 확실히 무언가를 강요하기 위해선 유리한 입장을 차지해야 하지.”

지금의 나처럼 말이야. 봐봐. 유리해지니까 너에게 직접 말도 건네잖아.

“하지만 처지가 뒤바뀌었잖아? 솔직히 내 힘 덕분은 아니지만, 동료들이 너무 강한 탓에 오히려 이쪽이 압도하기 시작했어. 지금은 내가 유리하지, 그렇지?”

“…빨리 본론을 말해.”

“성격도 급해.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처지가 뒤바뀌었으니, 나를 잡겠다는 네 계획도 뒤바꾸는 게 어때?”

‘…무슨 말이지? 설마.’

역시, 한때 동기여서일까. 히스토리아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금방 깨달았다.

반응이 늦은 건, 그게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기 때문.

“대충 짐작한 모양이네. 맞아. 꼭 내가 잡히는 것만이 방법일까? 어쩌면 그건 네 고정관념이 아닐까? 상황이 바뀐 지금 좀 유연하게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굳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내가 잡힐 필요 없잖아.

사고방식을 뒤집어! 반전시켜!

내가 아니라, 네가 나한테 잡혀서 포로가 되면 그만이야!

‘…내가, 잡히라고? 그쪽에?’

“그래! 나쁜 이야기는 아닐 거야. 포로가 있으니 우리도 안심할 수 있고. 군국도 더 손해를 보고 싶지 않을 테니 무의미한 추격을 중단하겠지. 또, 추격을 뿌리친 덕에 한결 마음이 편해진 내가 온갖 이야기를 떠들어대겠지. 그러면 네가 원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어! 어때?”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발상의 전환. 이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안전도 확보되고, 동시에 군국의 추격도 뿌리칠 수 있다. 군국도 힘 낭비 안해서 좋다.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해낸 내가 자랑스러울 정도다. 역발상, 말은 쉽지. 실제로는 어려우니 감탄하는 거다.

그런데도 히스토리아는 만성적인 의심을 보였다.

“…내가 포로로 잡힌다고 한들, 네가 진실을 말한다는 보장이 없잖아.”

“아, 그 점이 문제였어?”

별문제도 아닌 것 가지고. 나는 히스토리아의 의심을 가볍게 웃어넘겼다.

“하하하. 리아. 뭔가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네. 내가 공안청에 가서 고문 비슷한 걸 받는다고, 진실을 말할 것 같아?”

“…너.”

“아니. 그토록 많은 이해관계자 속에서 내가 설사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너는 믿을 수 있겠어?”

‘…솔직히, 못 믿어. 이 자식은 입에 재갈을 물고도 사람을 속여넘기는 녀석이니까.’

냉큼 부정하는 것에서 내 계획대로 되었다고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내 신용이 바닥이라 슬퍼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가장 믿음을 줄 수 있는 부분은,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이라는 것뿐인가.

“그래도 약속할게. 어차피 내 동료들도 그때 있었던 사건을 꽤 궁금해할 것 같거든. 만일 네가 잡혀주면, 내가 동료에게 전하는 말을 엿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 설마 내가 내 목숨을 구해준 새 동료에게도 거짓말하리라 생각해?”

‘응.’

히스토리아는 마음속으로 단언하면서도, 그 말을 섣불리 내지 않았다.

‘하지만… 한 마디도 믿지 못해서야. 그날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 결국, 어느 정도는 타협해야 해….’

결심이 선 모양이군. 좋아, 잘 됐다. 히스토리아가 군국처럼 합리적인 사람이라서 다행이야.

나는 히스토리아의 기세가 누그러진 것을 느끼며 천천히 다가갔다.

“좋아. 이제 적당히 합을 맞춰줘. 대련에서 연습했던 거 기억나지? 3번 동작으로 가자.”

히스토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양팔을 들어올렸을 뿐.

갑옷을 입은 이유 두 번째. 입으면 강해 보이니까. 내 동작이 둔중하고 느려도 저 멀리에서는 잘 알아차리지 못하겠지.

자, 사기극의 시작이다.

장성기. 삼절창. 파트락시온의 절기를 위하여 만들어진, 삼절곤의 양 끝에 창날을 매단 무기였다.

기공을 불어넣으면 이음매가 맞물리기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장창이 되기도, 편곤이 되기도, 삼절곤이 되기도 하는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었다.

그 위에 군장까지 착용한 채로, 파트락시온은 완전 무장을 하고는 시조 티르칸쟈카에게 맞섰다.

“흡!”

휘어진 창대가 시조의 머리를 세게 강타했다. 퍼어엉. 편곤 형태의 삼절창이 티르의 방어를 비집고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티르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상대가 곰이어도 치명적이었을 일격이다. 그러나 시조는 곰은 '따위'로 취급할 수 있는 존재였다.

살짝 찢긴 관자놀이에서는 피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제법이구나. 너만 한 기사는 역사에 찾아봐도 몇 없었다.”

애써 만든 상처는 아물었고 돌아간 고개는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공격하기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상황. 비합리적인 교환에 파트락시온은 허탈하게 웃었다.

“하, 내 자랑은 아닌데, 나도 역사서에는 실린 몸이라서…. 나름 유명하다는 말이지.”

말하다 말고 파트락시온은 앞으로 뛰었다. 돌진하는 기세 그대로 땅을 미끄러지며 절기를 뿜어냈다. 굳게 잡은 창대가 수많은 곡선을 하나로 더하여 깨끗한 궤적을 그렸다.

절기, 절창.

직선에 가까운 한 줄기 곡선이 공간을 꿰뚫었다.

왕국을 꿰뚫었던 창, 한 시대를 장식한 절기가 파트락시온의 손끝에서 펼쳐졌다.

그 공격은 티르의 피, 뼈, 근육, 살을 찢고는, 쇄골을 부수며 그 등 뒤까지 튀어나왔다. 분명, 인간이었으면 복구 불가능할 심대한 타격이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인간이었다면.

파트락시온이 중얼거렸다.

“니미럴. 쓰지 말걸.”

티르가 양손의 손바닥으로 자기 몸을 꿰뚫은 삼절창을 빗겨 쳤다.

본래 몸에 꽂힌 창을 그따위로 부러뜨려서는 안 된다. 창대가 몸 안을 헤집을 것이며, 한 명의 육신을 꿰뚫은 창의 위업을 폄훼하는 짓이다.

하지만 무슨 소용인가. 상대는 흡혈귀의 시조인데.

아무리 단단해도 이음매는 필연적으로 힘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음매가 끊어지며 삼절창의 마지막 마디가 떨어져 나갔다.

이제는 이절창이 된 자루를 다잡은 파트락시온은 여기 없는 이를 욕했다.

“과병 이 새끼…. 내가 말했지. 무기는 그냥 튼튼한 게 제일이라고.”

“그는 억울하겠구나. 부러진 건 무기 탓이 아닐진대.”

티르는 몸에 박혀 있던 한 마디 창대를 빼냈다. 방금 뽑아냈음에도 창대에는 피가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았다.

대신 티르는 창날 끝으로 자기 팔을 긋고는, 거기에 핏방울을 매단 채 크게 휘둘렀다.

그녀의 피는 그녀의 육신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지만, 상처가 났을 때 몸으로 스며들기 전 잠시나마 제어할 수 있다.

창을 털어 묻은 피를 쏘아낸다. 붉은 참격이 폭주하며 방사형으로 퍼져나갔다.

직감적으로 위협을 느낀 파트락시온이 창대를 단단히 쥐고는 폭발하는 피를 눈에 담았다.

‘위력적이다. 피하거나, 막아야 해!’

판단은 한순간이었다.

뒤로 훌쩍 물러나며, 반탄기공으로 떨치고, 장창을 휘둘러 기세를 죽이고 갑옷에 의지해 막는다. 쏟아지는 혈기를 받아내고도 절창은 무사했다.

‘동작이 크고, 기세가 사납다! 알기 쉬워! 다만…!’

하나, 이것으로 무사했다, 고 말할 수 있을까? 기력을 꽤나 소모한 채 거리 바깥으로 물러났는데?

가슴팍에 느껴지는 얼얼한 고통을 느끼며, 파트락시온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불합리하군. 거, 진짜. 한 나라와 싸우는 기분이야.”

“해본 적 있는 듯이 말하는구나.”

“그게… 에라이, 쩝. 그쪽 앞에서 자랑해서 뭐하나.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지.”

파트락시온은 곁눈질로 뒤쪽을 살폈다.

파트락시온과 장성들은 바람을 가르는 철새와 같았다. 파트락시온이 시조와 맞서며 전선을 밀면, 그 뒤를 따라서 장성들이 어둠으로 빚어낸 바다를 돌파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격으로 파트락시온은 물론, 장성들까지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동안 나아간 것도 무색하게.

“…후우. 여기서 짬의 차이를 느끼네. 찔려도 안 죽어, 때려도 꼼짝을 안 해. 그거, 사기 아니야?”

“천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다. 너 하나가 찔러서 죽는다면, 그것만큼 허무한 일이 또 어디있겠느냐.”

“크하하하하!”

호탕하게 웃던 파트락시온이 배를 잡고는 허리를 숙였다. 갑옷 안쪽에서 울리던 웃음소리가 점차 멎었다.

간헐적으로 끊기는 떨림은 웃음일까, 혹은 두려움일까.

“큭. 그것도 그래. 재밌어, 아주 재밌어…. 피가 끓는 기분이야.”

그러나 파트락시온은 더욱 투지를 불태웠다. 그의 몸에서 기력이 다시금 용솟음쳤다.

한때 왕국과 결투했던 그는 나라 그 자체인 시조를 상대로도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절창의 창날을 옆에 있던 컨테이너에 대고 긁었다.

키기긱. 창날에서 불똥이 튄다. 그에 맺힌 기운이 불똥을 부싯돌 삼아 맹렬하게 타올랐다.

자기 기력에 불을 붙인 파트락시온이 거칠게 창을 휘둘렀다. 화염을 머금은 창날이 허공에 글자를 그렸다.

“백 번? 천 번? 다 피하고, 다 맞추면 돼. 홀로 나라라고? 하, 이미 한 번 해봤어. 나라와 하는 결투는.”

절창이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창날을 티르에게 내밀었다.

“결투다. 시조 티르칸쟈카. 너에게 도전하겠다. 승자만이 정의…도 필요 없어. 나와 싸워, 자웅을 겨루자!”

“기세만은 땅을 뒤덮겠구나. 하나, 표현이 과하다.”

그에 맞서서 티르도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을 파고든 손톱이 흘러나오는 피로 새빨갛게 물들었다.

“인간, 네 피는 끓지 않는다. 피가 끓어오르는 건, 오직 피의 주인인 내가 허락했을 때만 가능한 일.”

심장을 되찾은 뒤 자꾸만 몸속으로 숨어들려는 혈기에 골머리를 썩였다. 그러나 티르는 피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1200년 경력의 전문가. 거듭된 전투에서 요령을 되찾았다.

몸 밖이되 몸과 가까운 손톱 안쪽, 그곳만은 충분히 혈기를 머금을 수 있다.

그것을 깨달은 티르는 손톱에 피를 잔뜩 먹이고는 손톱을 늘였다. 붉게 빛나는 혈기는 꼭 불꽃처럼 보였다.

그렇게 절창과 티르가 다시 한번 전투를 재개하려는 그때였다.

“하하하! 고작 이정도냐!”

갑주를 입은 나는 현란하게 히스토리아를 몰아붙이고는, 쇠사슬로 그녀를 팔을 묶어서 제압했다. 바닥에 쓰러진 히스토리아의 등 위에 발을 올려놓고는 가면 안쪽에서 카드를 꺼냈다.

클로버 4, 파동과 흔들림, 프리퀀스 웨이브.

클로버 5, 아주 많은 공기, 헥토 파스칼.

둘 모두 일부만 개방한다. 만들어내는 건 소리. 내 목소리를 증폭하는 바람을 만들어내는 것.

두 장의 카드를 동그랗게 말아 입에 댄 채로, 나는 메타컨베이어 벨트가 떠나가라 외쳤다.

“군국의 딸을 생포했다! 어이, 군국!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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