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218화 (218/384)

EP.218 과거의 이야기,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 4

졸업 실습이란, 시험이나 대련으로는 짚어내기 어려운 재능을 발굴하는 실전 평가다.

달리 말해서, 사관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마지막 기회다.

절박한 아이들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위험한 실습에 자원했다.

실습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졸업 실습은 종합평가로, 오직 학생끼리 힘을 모아 뗏목을 만들고 강을 따라 내려가, 하류 주둔지에서 교관에게 평가를 받고 보급 물자까지 수령하여 복귀하는 것이 목표였다.

연금술, 제작술, 완력, 체력, 독도법, 조직력, 교섭력 등. 다양한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준비된 실습이었다. 여러 가지 위기가 찾아왔지만 학생들은 적재적소에 제 재능을 발휘하여 극복해냈다.

“첸토. 너 탄도학 공부를 하면서 기상학도 좀 했었잖아? 조금 분야가 다르긴 하지만 어때. 돛을 다는 게 나을까?”

첸토라 불린 소년은 무언가에 찔린 듯 잇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쳇.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중간에 접었는데.”

“그래도 여기서 너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잖아.”

“하. 지금 나를 놀리는 거야? 너 있잖아. 휴이. 전교 수석.”

“나는 책상놀음일 뿐이야. 직접 무언가를 던져보고, 쏘아보고, 관찰한 너와는 경험치가 다르지.”

“…흥. 어린애 장난질이었을 뿐이야. 그냥, 누구나 할 수 있는.”

첸토는 투덜거리면서도 바람의 방향이나 돛대의 재질을 살피고는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다. 바람이 불자 뗏목은 조금은 더 손쉽게 나아갔다. 미묘하나 확실하게.

“도움은 되네.”

“…그닥.”

첸토는 참담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무언가를 이루어낸 사람이 보일 법한 태도는 아니었으나, 그의 사정을 이해한 나는 구태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포기한 것을 빛난다고 추켜세워봐야 아쉬움만 커지니까.

뗏목 선단은 천천히 나아갔다. 남부로 뻗어가는 하멜른 강은 그리 크진 않지만 구불구불하고 유속이 느려, 온갖 부유물들이 떠다니고 그 위를 노리는 새나 짐승들도 많았다. 강을 따라가는 시커먼 그림자가 통나무 밑바닥을 긁을 때면 모두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나아가는 도중이었다. 평가를 위해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던 교관 한 명이 다음 포인트를 향해 이동하려고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긴급 상황이 일어났다.

수면에 가득한 표류물 때문에 강이 막혔다. 가뜩이나 느린 유속에 나무토막이나 이파리들이 강을 가득 메우고 있으니 뗏목 타고는 전혀 나아갈 수가 없었다.

난데없는 장애물에 아이들은 혼란에 빠졌다.

“유속이 느려지는 지점이라, 표류물이 쌓여서 강을 막았나 봐.”

“어쩌지…? 이대로 가다간 밤이 찾아와! 오늘 안에는 하류에 도착해야 하는데.”

그리고 자연스레 시선이 나에게로 몰린다.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주기를 바라며 나에게 기대한다.

학년 초, 모든 아이들이 백지상태로 중등군사학교에 들어왔을 때. 아이들은 각자 꿈과 희망을 품고서 부푼 마음을 안았다.

아이들은 대부분 멋들어진 제복을 입은 자기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3레벨. 평범한 군국민과는 다른, 진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특별한 위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한 걸음.

그러나 특별함은 그 숫자의 구애를 받는다. 숫자가 적기에 특별하며, 특별하기에 모두가 바란다.

모두가 그것을 손에 넣을 수는 없다.

나는 한때 마도장교 지망생이었던 이를 불렀다.

“케러팔드. 마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까?”

“우리 마력량이라면, 제식 마법으로는 한 세월이 걸려도 무리일 거야. 란카르트였다면… 또 모르지만.”

떨떠름한 대답이었으나 그것은 분명한 사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아티. 저거 배 위에서 치우는 건 무리겠지?”

“…발판이 이래서야, 하루 종일 걸려. 치워서 둘 곳도 없고.”

시아티가 발을 쾅쾅 구르자 근처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나름 촉망받는 무투파였으나 성장이 멈춰버린 시아티에겐 신체의 한계를 극복할 만큼의 재능이 없었다. 벼랑 끝에 몰린 그녀는 이 졸업실습에서 평가를 반전시키고자 했다.

발을 구르던 시아티는 고개를 홱 돌려 나에게 쏘아붙였다.

“그나저나, 네가 명령을 내려야 하는 거 아니야, 휴이?”

“나? 왜?”

“왜긴. 이 졸업실습, 사실 너를 위해 마련된 거잖아.”

탐식에 대해 아는 건 아니었다. 만일 시아티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고작 발구르기 하나로 끝나지는 않았을 테니.

시아티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나를 떠보았다.

“총교관은 네 지휘능력을 평가하고 싶었던 거겠지. 그러니까, 학년 수석인 네가 굳이 실습에 참가하게 된 거고.”

안타깝지만, 그건 표면적인 이유다. 니콜라스는 교관들과 일부 학생에게 그런 소문을 퍼뜨려, 내가 참가해야만 할 이유를 불어넣었다.

억지로 거부하기에는 힘들 정도로 타당한 이유라,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와서 표착한 것이다.

아마, 나를 위해 준비되었을 표류물에.

“…지시를 내려 봐, 장군. 명령을 기다릴게.”

시아티가 비꼬며 말했다.

동시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쓸쓸함마저도 배어 나온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녀 역시도 수긍하고 있었기에.

명령을 기다리는 그녀를 위해 명령을 내려주었다.

“배를 강변에 대고, 육지에서 표류물을 치우자. 땅에서 치우는 게 훨씬 안전할 거야.”

“그러면 숲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배는 땟목이잖아. 우리가 짐짝처럼 실려서 그렇지 벌써 과적이야. 일단 움직이자. 여차하면 되돌아오면 그만이니까.”

결국, 우리는 근처에 배를 대고는 임시 캠프를 차렸다. 위험이 도사리는 숲 안쪽까지 들어가는 건 악수였기에 그다지 멀지 않은 공터에 모닥불을 피우고 옹기종기 모였다.

표류물을 치우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물을 잔뜩 머금은 유목과 그물망처럼 얽히고설킨 나무덩굴, 각종 잔해까지 가득한 그것을 건져내는 건 혈기왕성한 아이들 백여 명이 있더라도 힘겨웠다.

조금 걷어냈나 싶었을 때. 하늘을 보던 아이들이 중얼거렸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이대로면 밤이 되어버려.”

“사실 밤은 이미 왔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해가 질 거야.”

“밤은 위험한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그들은 이 상황이 누군가의 음모로 인해 생겨났을 가능성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숲을 조금 헤치자 공터가 나타났다. 누군가가 머물렀던 흔적이 보이는 공터라 훌륭한 캠프를 세울 수 있겠다며 아이들은 한층 기뻐했지만, 그 아래 있는 불길한 운명을 느낀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밤이 찾아왔다. 짐승의 시간이다. 어둠 속에서 인간은 겁에 질린 채 조그만 모닥불로 자기를 위안했다.

애초에 이런 곳에서 묵을 계획은 없었다. 식수, 식량, 의복 모든 게 부족했다. 저편에 텐트나 모포, 장작 등이 남아있었기에 망정이지 없었으면 흔들리는 배 위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을지도 모른다.

“캠프가 있어서 다행이야. 하마터면 꼼짝없이….”

이 모든 게 시나리오 안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아이들은 이 불행 중 다행인 상황에 기뻐했다.

군데군데 모닥불을 피운 채로 옹기종기 모였다. 시간이 남자 마음속에서 불안이 싹텄다. 말간 불이 서로의 홍안을 비추는 가운데 아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쩌지. 이제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안 되나? 불을 크게 피워서 교관님을 부르자. 이대로 밤을 지내는 건 위험….”

불을 크게 피우는 건 포기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교관이 찾아오기야 하겠지만 부정적인 평가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안전해지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고 몇몇은 생각했다.

그때 첸토가 벌떡 일어서서 외쳤다.

“교관님을 불러선 안 돼!”

첸토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아이들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티 역시 그에 동조했다.

“졸업실습은 아주 중요해! 이건 예상 외의 상황이지만, 이것을 잘 극복해내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야! 애초에,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왔는데! 3레벨이 되기 위해서잖아!”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평생 2레벨이야. 노역으로 하루 일하고 하루 풀칠해가면서 쳇바퀴처럼 똑같은 일상을 살 거라고! 그래도 괜찮아?”

2레벨을 할 바에야 0레벨로 산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중등군사학교를 졸업한 2레벨 시민은 중등 교육 수준이 필요한 군사 시설에서 노역을 하게 된다. 말이 노역이지, 사실상 복무다.

당연히 타 노역에 비해 위험성이 크며 번거롭다. 일반 노역보다야 보수가 높지만, 어차피 물려줄 수 없는 재산.

“나는 3레벨이 되어야 해. 아니면 의미가 없어! 너희도 그렇잖아!”

더 높은 레벨이라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 저열한 우월감 하나. 심지어 그마저도 어디까지나 감정적인 부분에서 멈춘다. 2레벨이라고 1레벨, 혹은 0레벨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거나 사적인 명령을 내렸다간 즉각 노역장에 끌려가기 마련이니.

다른 레벨을 차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군국뿐. 2레벨이나 0레벨이나, 이 군국의 노예이기는 마찬가지.

달라지는 건 3레벨부터.

그 사실을 상기한 아이들은 또 다른 고양감에 휩싸였다.

“그래! 이건 오히려 기회야!”

“이 상황을 헤쳐나가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불침번 정해! 아, 암구호도!”

시아티의 연설 덕분일까. 아이들끼리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들뜬 감정은 모닥불처럼 떠올라 춤추다가 사그라들었다.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캐러팔드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휴이. 이리 와봐.”

독심술은 모든 것을 읽는다. 캐러팔드의 용건을 단숨에 읽어낸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마도장교를 꿈꿨던 그는 란카르트를 신처럼 떠받드는 추종자였다. 그런 그가 어제 란카르트의 부름을 받았다. 란카르트는 평소에 자기를 따르는 그를 불러서 은근히 말했다.

이번 시험에는, 함정이 하나 숨어있다고.

그래서, 그는 가장 먼저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고는 나에게 다가온 것이었다.

“내가 발견한 건데.”

캐러팔드는 이 밤중에 나를 강가로 데려갔다. 배가 매여 있는 곳 가까이 다가간 수면에 대고 제식 마법으로 빛을 뿜었다. 그가 빛나는 손가락으로 비춘 강 아래에는… 길고 튼튼한 밧줄이 수면 아래 묶여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광량이 부족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달그림자에 비친 수면에는… 이 밧줄이 이어진 직선 위로, 표류물의 선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캐러팔드가 자랑스레 말했다.

“그물이야. 이 표류물들, 그물에 걸려서 멈춰있었어.”

“그러게.”

예상대로네.

이 지점이 유속이 느려지며 표류물이 쌓이는 지역이긴 하지만, 이토록 시기적절하게 쌓이려면… 역시, 이런 인위적인 조작을 했겠지.

“너도 대충 알고 있었나 보네. 크크. 그래. 애초에 이 미리 준비된 듯한 캠프의 존재부터 이상했어. 표면적인 시험은 하류로 내려가는 거지만 진짜 시험은…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것. 조난 상황에서 슬기롭게 대처하여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이 시험의 진짜 목적이지. 안 그래?”

아니다. 슬기롭지 못하게 대처하여 다 죽는 게 이 시험의 진짜 목적이다. 이것이 함정이라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하도록.

그런 의미에서 캐러팔드는 란카르트가 보낸 독촉장이었다.

무언가를 파내기 좋아하는 성격. 써먹는 것보다는 지식 그 자체를 알아내며 쾌감을 느끼는 인물. 앞으로도 계속 시험에 숨겨진 진의를 파악하려고 돌아다니겠지. 가만히 놔뒀다간 이 캠프에 숨겨진 비밀, 금기개진까지 파헤칠지 모른다. 아니, 파헤칠 것이다.

캐러팔드, 그는 란카르트로부터 넌지시 금기 비슷한 것까지 전해 들은… 그야말로 시한폭탄.

내가 아이들을 전부 집어삼키기 위해 죽음으로 가장 먼저 내몰아야 하는 존재이고. 그렇게 설계된 인물이나.

란카르트.

너는 지금 여기에 없어. 지금 나에게 들려오는 바람은 오직 캐러팔드의 것이야.

그렇기에 나는 네 뜻을 들어줄 수 없어. 아니, 이런 방식으로는 나를 바꾸지 못해.

나는 도리어 미소를 지었다.

“정답이야, 캐러팔드. 벌써 이것을 알아차리다니. 너 좀 하는구나?”

캐러팔드의 눈이 충족된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역시, 수석! 나도 네가 알고 있을 줄 알았어!”

‘썩어도 수석…. 나는 란카르트가 힌트를 줘서 알았는데.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곳에서는 내가 2등이야!’

바람이 불어온다.

삶을 향한 열망. 자기가 익힌 지식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냈다는 기쁨. 동료애와 전우애. 혹은 찾아온 희망.

내가 한 줌의 마력이나 기력을 얻기 위해 그것을 짓밟을 수는 없지.

오히려.

“캐러팔드. 네 예상이 맞아. 이 캠프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게 분명해.”

“어떤 비밀?”

“나도 다 알지는 못해. 이제부터 찾아야지. 그러니까 캐러팔드, 네가 해주지 않겠어?”

군국은 너희를 버렸다. 어쩌면 나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워낙 탐식 최적화 인재라서 니콜라스가 강행해버렸어.

그러나 그걸 내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지. 군국이, 혹은 니콜라스나 란카르트가 획책한 일이니까. 나는 너희를 죽이고 싶지 않아.

이런 말하기는 뭣하지만, 이미 충분히 내 마음의 양식이 되고 있다고.

니콜라스도, 란카르트도. 나를 바꾸고자 하지만 고작 그뿐이다. 그들의 감정은 잔잔하다. 아쉬움과 회한은 고요하게 가라앉는 수면처럼 바닥에 깔릴 뿐.

자기 아쉬울 것 없이 타인만 휘두르려는 차가운 감정에는 흥미가 없다.

오히려….

“나는 할 일이 많으니까, 네가 팀을 꾸려서 조사해줬으면 좋겠어.”

“정말? 내가 한다? 나중에 똑바로 보고해줘야 해?”

“물론이지. 내가 뭐가 아쉬워서 네가 한 일을 누락시킬까.”

계획이 들통났을 때, 이 문제가 그대로 되돌아와 너희를 덮칠 때 너희가 어떻게 반응할지. 어떤 감정을 보일지. 그게 더 궁금할 뿐이다.

너희도 목을 걸어야지. 그래야 공평하잖아?

“이 사실을 가장 먼저 눈치챈 너만이 그럴 자격이 있어. 캐러팔드. 일단 캠프의 지도를 그리는 것부터 먼저 해볼래?”

“알았어!”

지도를 그리다 보면 알게 될 거야. 이 캠프가 어떤 형태를 이루고 있는지. 아래 깔린 게 무엇인지.

만일 피가 흐른다면, 어떤 모양을 그릴지 말이야.

‘봐봐! 나는 벌써 이 시험의 본질을 파악했어. 이걸로 다른 녀석들보다 몇 걸음은 앞서 나갈 거야!’

그 끝에서 얻어낸 진실은 절대 웃으며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나도 가서 준비를 해야겠다. 아이들이 조금 더 분명한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슬금슬금 정보를 풀고 떡밥을 뿌려야지.

아주 피상적인 지식만 있더라도 이것이 금기임을 알 수 있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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