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220화 (220/384)

EP.220 과거의 이야기,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 6

총교관 니콜라스는 그의 최측근 부관만 데리고서는 캠프를 찾았다. 이곳이 위험천만한 숲이라는 사실을 신경도 쓰지 않고 뛰어왔는지 그는 옷과 머리카락에 부러진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잔뜩 붙이고있었다. 겉모습만 보면 마치 학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모범적인 교육자 같았다.

실상은 전혀 달랐지만.

‘만신창이가 된 아이들. 몇 남지 않은 숫자. 저기 죽어있는 짐승의 사체. 성공인가…싶지만. 뭔가 이상하다.’

처참한 캠프의 모습을 본 니콜라스는 다급히 가장 멀쩡해 보이는 교육생에게 다가갔다. 본래라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소녀의 정체는… 구 전투장교 지망생이었던 시아티였다.

“시아티 교육생.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략하게 보고하도록.”

내 말대로 니콜라스가 정말 찾아와서 놀랐던 모양이다. 멍하니 서있던 시아티는 니콜라스에게 형식적인 경례를 하고는, 시선을 땅으로 내리깔며 우물거렸다.

“…표류하는 바람에 이곳에서 캠프를 차렸습니다. 그런데, 이 캠프 아래에 페로몬 미끼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아마 사냥꾼들이 짐승을 잡기 위해 만든 덫이었겠죠. 그것이 열리자… 분노한 짐승들이 저희를 덮쳤습니다.”

연기 더럽게 못 하네. 땅만 보고 우물거리라고 말해서 다행이다. 최소한 대답할 기운도 없는 척은 할 수 있으니까.

‘미끼의 존재를 알고 있다니? 원래 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짐승에게 휩쓸렸어야 했는데. 아니, 그보다. 시간이 아직 안 되었는데 어째서 미끼가 벌써 작동한 거지? 그렇다면?’

니콜라스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핏자국이 가득한 캠프에는 죽음의 흔적만이 가득했다. 특히 나무에 뿌려진 핏자국과 무언가를 묻은 듯 대충 덮은 구덩이는 조금 전에 벌어진 참상을 다 알려주는 듯했다.

그의 계획대로 충분한 피가 뿌려졌지만… 정작 중요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휴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거지? 설마.’

이 모든 게 헛고생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니콜라스는 곧장 시아티를 다그쳤다.

“휴이는. 휴이 교육생은 어디 있지?”

가타부터 말도 없이 나를 찾는 니콜라스의 태도. 이것만으로도 확실해졌다. 이 졸업실습이 누구를 위해 준비되었는지, 누가 준비하였는지를.

연기를 맡은 시아티가 평정을 잃었다. 분노로 머리가 새하얗게 표백된 그녀는 내 조언조차 잊은 채로 니콜라스를 노려보았다.

“…왜, 가장 먼저 그를 부르시는거예요? 지금 없어진 학생들이 몇 명인데, 몇몇이 이 밑이 묻혔는데! 왜 하필 휴이부터 부르시는 거죠?!”

예상치에서 벗어난 격한 대응이었다. 만일 니콜라스가 그 태도에서 위화감을 느끼면 조금 곤란해질 것이다.

그러나 니콜라스 역시도 혼신의 계획이 수포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심리적으로 몰린 상태였다.

“당연한 일 아닌가! 휴이는…!”

그래도 금기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지 않을 만큼의 분별력은 있었기에, 니콜라스는 간신히 이성을 되찾고 말을 가렸다.

“학년 수석으로 사관학교 입학이 확실시된 인재이자, 졸업 실습의 리더다. 내가 원활한 보고를 위해 그를 찾는 게 무슨 문제가 있지?”

“하, 그래요. 우리가 몇 죽어도 상관없다는 거군요…!”

“시아티 교육생! 귀 교육생이 겪은 일에는 유감을 표하나, 귀 교육생은 현재 보고하라는 나의 명령에 불복하는 중이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니콜라스의 호통에 시아티는 자기 입술을 꾹 깨물고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는 미리 준비한 대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휴이는… 저희를 위해 스스로 희생했습니다.”

“…음?”

니콜라스는 설계자. 이 무대를 준비하고 각본을 써 내려가며, 제멋대로 배역을 정해 이야기의 결말을 그렸다.

그러나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했다고 한들, 막이 오른 순간부터 그는 한 명의 관객일 뿐이다. 니콜라스는 이 연극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랄 터이나, 가끔 연극은 설계자의 예상을 배반하고 각본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주곤 한다.

시아티는 무대 안으로 뛰어올라온 그를 향해 미리 말을 맞추어둔 대사를 꺼냈다.

“저희들이 갑작스러운 짐승의 습격에 대응하는 동안, 휴이는 이 상황이 페로몬 미끼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한 발 먼저 깨달았습니다. 이 캠프를 조사하다가 어딘가에서 미끼를 발견한 그는, 그 상자를 끌어안고는 괴성을 외치며 강가를 향해 달렸습니다. 우리를 공격하던 짐승들은… 전부 휴이를 따라가고. 저희는 남아서 생존자를 추슬렀습니다.”

“뭐…?! 휴이 자신이 미끼가 되었다고?”

“그렇습니다.”

시아티는 참담한 표정을 숨기려는 듯 팔을 뒤로 모으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동안 니콜라스는 예상을 벗어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연극은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 현실은 그의 기대를 배반했다. 니콜라스는 커다란 기대를 품고 있었던 만큼 끔찍한 패배감을 느꼈다.

평범하게 찾아오는 실패를 맞이해 니콜라스가 택한 방법은.

부정하는 것이었다.

“말도 안 돼! 휴이는 그럴 녀석이 아니다. 휴이처럼 영악한 녀석이, 너희를 위해 희생할 리 없어!”

“…네?”

“히스토리아와 란카르트. 그 둘 사이에서 수석을 차지하려면 단순히 뛰어나서는 안 돼! 그 둘마저 제 편으로 만들어 이용할 생각마저 해야. 인망을 얻으면서 영악하게 굴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위치! 휴이는 그걸 해냈다. 그런 그가, 고작 너희 따위를 위해 희생할 리가 없어!”

니콜라스는 핏발 선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까지 살아남은 아이들은 몸에 익은 공포감에 감히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총교관 니콜라스가 뿜어내는 기세가 그토록 무서웠기 때문이다.

총교관 니콜라스 대령. 하멜른은 그가 담당하는 곳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서남부 지역의 초중등학교를 총괄하는 총교관.

하멜른에 히스토리아와 란카르트가 동시에 들어온 건 우연이 아니다. 총교관 니콜라스가 초등시민학교에서부터 두각을 보였던 둘을 이곳에 뫘기에 이루어진 것.

상층부에서도 니콜라스 정도의 능력은 되어야 학생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할 만큼, 출중한 능력이 있기에 총교관의 자리에 오른 걸물이다.

지위도, 능력도, 쌓아온 경험도 차원이 다르다. 여기 있는 아이들이 전부 고등사관학교에 진학한다고 하더라도 니콜라스의 발끝만큼도 도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니콜라스의 사나운 기세에 아이들은 기가 죽어서 고개를 숙였다. 그 위로 니콜라스의 격노한 목소리가 내리깔렸다.

“차라리 너희가 희생했어야지! 이왕 누군가 죽을 거라면! 그 대신 너희가 죽었어야 했다! 어째서 너희가 살아남은 거냐!”

생명의 위기를 간신히 견디고 난 이후 찾아온 총교관이다. 몇몇 아이들은 이 모든 게 끔찍한 악몽이라고 믿고 싶어했다. 사실 군국이 그들을 버리지 않았기를, 무언가 오해가 있기를 차라리 희망했다.

그러나 니콜라스가 내뱉은 말은, 그 일말의 희망을 짓밟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희를 다 죽이려고 했습니까! 휴이 그 녀석 하나를 위해?!”

반발심이 솟아난 시아티가 고개를 홱 들었으나, 그녀의 눈에 비친 건 니콜라스가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호라. 그렇군. 너희는…이 시험에 대해서 알아차린 것이로군.”

반쯤 광기에 잠긴 듯한 얼굴. 겁에 질린 시아티가 주춤거리며 물러나자, 니콜라스는 입술과 고개를 기이하게 뒤틀며 대충 묻어놓은 듯한 구덩이를 흘끔거렸다.

“어쩌다 알게 되었지? 죽은 이를 위한 무덤을 파다가 반석이라도 발견했나?”

“마, 말해줄 것 같아…?”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아직 묻지 않았다, 시아티 교육생. 누군가를 속이려면 네가 아는 사실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있도록 하여라….”

그러면서 그는 뒤따르는 부관을 향해 손짓했다. 부관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는 니콜라스의 뒤를 따랐다.

“물론. 더는 그 가르침을 쓸 일이 없겠지만 말이다.”

서늘한 살의가 시아티와 다른 아이들을 향했다. 아이들은 겁먹은 병아리처럼 시아티의 뒤로 옹기종기 모였다. 숫자가 서른이 넘지만 그들의 우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세크릭.”

“네. 총교관님.”

“저들을 전부 묻겠다. 거들어라.”

스릉. 세크릭이라는 이름의 부관이 군도를 꺼냈다. 아이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위해 사용된 군도가 칼날의 방향을 바꾸어 아이들을 가리켰다.

칼날에서 풍기는 살의를 읽은 시아티가 외쳤다.

“이게 무슨…! 설마, 우리를 다 죽일 셈입니까, 총교관!”

“너희들은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 방법만 조금 번거로워졌을 뿐.”

니콜라스도 기다란 장검을 뽑아 들며 서늘하게 대답했다. 칼 손자루에서부터 시작된 어두컴컴한 기공이 불꽃처럼 칼날을 감싸고는 솟아올랐다. 예정에 없는 생존자를 처단하기 위해.

아이들은 점차 물러났으나, 이 뒤쪽은 강이다. 저편으로 도망치려면 강에 뛰어들거나 니콜라스를 넘어서야 했다.

둘 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

“도망쳐봐라. 이 군국에 그럴 장소가 있다면 말이지만.”

주춤주춤 물러나던 아이들을 따라 니콜라스와 그의 부관이 걸어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확고한 살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걸어가던 그는.

함정을 밟았다.

“서프라이즈입니다, 총교관!”

그 발에 무게가 실리기 직전, 내가 무너진 텐트를 박차고 일어섰다. 뜬금없는 등장에 놀란 니콜라스는 함정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 직후, 숨겨져 있던 올가미가 그의 발목을 낚아챘다. 큰뿔사슴조차 쓰러뜨릴 수 있게 만들었던 올가미 덫이 그를 붙잡았다….

다른 게 있다면, 그는 손에 무기를 든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흡!”

기다란 장검은 그 길이에 맞지 않을 정도로 민첩하게 움직였다. 서걱, 하고 발목 높이에 있던 올가미가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여력이 남은 검격이 땅에 길게 새겨졌다.

하지만 함정은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서프라이즈 투.”

그 올가미는 다른 무언가와 연결된 것. 밧줄이 끊어짐과 동시에 제멋대로 걸쳐져 있던 기다란 통나무가 니콜라스의 뒤통수를 노리고 떨어졌다. 후웅,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다만 기공을 익힌 그에게는 너무 느릿한 공격이었다.

“하찮은 수.”

거합. 커다란 통나무가 일격에 잘렸다. 이것으로 함정의 연쇄고리가 끊겼다.

만일 옆이나 아래로 피했다면 서프라이즈 3, 4, 5까지 차례로 겪었을 텐데. 그냥 베어버릴 줄은. 썩어도 대령이라 이건가.

“뭐, 그래도. 한 건은 했으니까요.”

픽, 휘리릭. 내가 단검을 뽑아 들었다. 세크릭이라고 불렸던 그의 부관이 옆구리에서 피를 뿜었다.

“커헉!”

“자자. 잠깐 누워 계세요.”

니콜라스만큼 대응이 민첩하지 못했던 부관은 올가미에 이끌려 내 코앞까지 미끄러졌다. 본능적으로 몸을 보호했지만 나는 그의 방어를 비집고 옆구리에 단검을 박아넣었다.

미약한 기공이어도 기공은 기공. 칼날은 그의 빗장뼈 사이에 틀어박혔다. 단검을 타고 흐르는 피는 흙을 타고 스며들어… 어디론가로 향했다.

“너, 너, 휴이…!”

“쉬잇. 내 몸의 양식. 가만히 있어요.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피가 잘 안 나온단 말이에요.”

아직 죽진 않았으나 서서히 그에 다가가는 부관을 뒤로하고, 나는 단검을 곧추세우며 니콜라스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니콜라스 총교관님?”

“도대체. 어떻게. 아니.”

휙, 휙. 그의 시선이 나와 시아티, 그리고 그의 발아래 있는 함정으로 향했다. 짧은 순간 내 미소에서 무언가를 파악한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 얼굴을 짚었다.

“…그런가, 휴이. 너는 전부, 알고 있었나. 그리고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인가…!”

“어리석은 선택이라뇨? 좀 이상한 말인데요.”

“너는 가만히만 있으면 되었다! 금기는 내가 저질렀고, 너는 모른 척 실패자들의 죽음만 취하면 되었어! 내가 모든 것을 짊어지고 대신했는데…! 어떻게, 그것을 마다할 수가 있지?!”

어떻게 마다하기는. 이렇게.

내가 신호를 보내자, 강둑 아래쪽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올라왔다. 그 숫자는 무려 백사십여 명. 각자 급조한 나뭇가지에 단검을 묶은 창을 들고는, 분노와 두려움으로 몸을 떨면서 이쪽에 가세했다.

“이런 방식으로 마다했죠.”

순식간에 불어난 아이들. 이 대부분이 니콜라스에게 증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니콜라스는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거의 다… 살렸다니.”

“거의 다 살렸다니요. 아까운 목숨이 열일곱이나 죽었어요. 제게 있어서도 큰 손실이라고요.”

니콜라스는 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눈치였다.

“열일곱! 한참 부족하다. 한참! 네 기력이 전혀 늘지 않았잖나!”

“칭찬해주세요. 기력은 얼마 늘지 않았음에도, 큰뿔사슴이랑 부관 한 명은 간단하게 담가버릴 정도니까.”

나는 싱긋 웃으며 칼날을 빙글 돌렸다. 거기에 맺힌 피의 색은, 뿔과 발톱에 당한 아이들이 죽어가며 흘린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탐식의 영향일까? 직접 찌른 탓인지, 무언가가 내 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어둡고 더럽혀진 탁한 기운이 생체 단말을 경유하여 혈관 틈으로 들이닥친다.

그 기운이야, 절대적인 총량으로 따지면 보잘것없지만… 애초에 털끝만큼의 기력과 마력을 가진 나에겐 확연히 느껴질 정도의 크기.

다만.

“퉤. 별로네. 고작 이런 걸 준비해뒀다고 으스대신 거예요? 차라리 마력초를 피우고 말지. 그건 맛이라도 있다.”

니콜라스는 일련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긋난 극본도, 그 아래서 빠져나온 나의 존재 자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째서지, 휴이?”

“어째서일까요, 니콜라스?”

“너는 약하다. 그 기공으론, 그 마력으로는 절대 어느 단계 이상 올라가지 못해. 주어진 능력을 다루는 데에는 탁월하나, 선천적으로 적은 기력과 마력은 두고두고 너를 얽매는 족쇄가 될 것이다! 나는 네 족쇄를 풀어주려고 한 거야!”

놀랍게도, 내가 그의 신뢰를 배신하고 부관을 칼로 찌른 지금마저도… 그는 진심으로 나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나란 인재가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게 아깝다는 듯이.

“누군가를 다루기 위해선 최소한의 자격이 필요하다. 그게 위엄이고, 힘이다. 아무리 뛰어나봤자 힘이 부족하면… 그 무엇도 이룰 수 없어. 너라면, 자기 한계를 누구보다도 통감했던 너라면 이해했을 터!”

“물론, 이해해요. 총교관님. 어떻게 모를까요.”

니콜라스는 진심이었다. 아무리 총교관이라고 한들 금기를 그리 가벼운 마음으로 저지를 수는 없다. 3년 동안 내 능력을 관찰하며, 내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파악한 그는 절실히 내가 더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나를 위해, 군국을 위해.

하지만, 그게…. 아무리 나라를 위한다고 한들. 본질적으로 타인을 향한 바람일 뿐이다. 자기를 다 쌓고 남은 것을 선심쓰듯 건네는 여윳돈이라고나 할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런 여윳돈도 고맙겠지만, 나는 독심술사. 자투리 마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니콜라스. 당신이 마음을 막 포장해서 그런데… 사실, 당신의 진심은, 어디까지나 자기는 안전한 상태에서 등 따숩고 배부른 채 앉아 있어야만 나오는 거잖아요? 마음이 너무 가볍고 치사하지 않아요?”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나는 생각을 읽는다. 마음에는 그 크기를 계량할 단위가 없지만, 그래도 나는 독심술사인만큼 적당히 감정의 크기나 깊이를 비교하곤 했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무대 바깥에 있던 니콜라스의 마음 따위 죽어나간 아이 한 명의 여운보다도 가벼웠다.

하지만 이건 뭐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쩝.

내 말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니콜라스가 당당하게 외쳤다.

“이건 너를 위한 시험이기도 했다! 대국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병사를 희생시켜야 하는 법!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벌였는데, 너는 사사로운 인정 때문에 판단을 그르쳤어!”

“그래요? 그러면 대국적인 승리 문제를 하나 낼게요. 꼭 총교관님만 문제 내라는 법 있나요?”

나는 천천히 걸었다. 덩굴과 나무뿌리가 밟히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 며칠 사람들이 자주 돌아다닌 탓에, 원래와는 너무나 달라진 지형. 부러진 나뭇가지, 밟힌 땅, 이곳저곳 파헤치고, 밧줄로 만든 함정이 가득한 곳.

승산은 충분하다.

“맛도 없는 아이들 대신 저를 위해 죽어주세요, 니콜라스. 저를 위해 피를 바쳐요.그러면 군국은 멸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최소한 공평하게 무대 위로 올라오란 말이야. 그만한 마음으로 나를 움직이라고.

“당신 한 명 어치만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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