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1 과거의 이야기,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 7
백 명과 한 명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승패를 가늠하긴 어렵지 않다. 한 명 쪽이 유리하다.
베기에 특화된 니콜라스의 기다란 장검은 길이가 길고 커버하는 각도 넓다. 약한 다수를 상대할 때 특화된 무기, 그러한 종류의 기공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총교관 답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 숲에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두꺼운 나무가 많다. 가끔 나무째 베어버리며 나아가곤 하지만 그의 힘은 착실히 소모되고 있다.
거기다.
삑!
“리! 럭스!”
“파스칼!”
나의 지시에 따라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아이들은 니콜라스의 생각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상대였다.
호각을 불면 제식마법이 일제히 니콜라스를 두들긴다. 빛과 바람. 군국이 자기 방식대로 재단해내어 더는 신비가 아니게 된 신비가 니콜라스에게 쏘아졌다.
“이것들이!”
니콜라스가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디며 거합을 내질렀다. 오랜 시간과 노고를 들여 뻗어난 복잡한 덩굴이 한순간에 끊어진다.
후두둑, 동시에 통나무를 들고 니콜라스를 가로막던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일제히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니콜라스의 표정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본래 방패삼아 든 통나무부터 일렬로 선 아이들까지 전부 일격에 갈라버렸어야 했는데, 칼날에 끈적한 무언가가 들러붙어 예기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때요? 아까 저희가 날린 통나무, 담쟁이덩굴을 끓인 송진에 담그고는 그걸로 칭칭 감싸놓았거든요. 송진은 생기에 더욱 들러붙는 성질이 있으니, 기공으로도 쉽게 벗겨내지 못할 거예요.”
사소한 함정이다. 혹여나 통나무 째로 베어버릴 때를 대비해 준비한 것.
원래는 전신을 송진으로 뒤덮어서 약화시킬 생각이었는데 칼날에 그쳤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니콜라스가 쓰러진 나머지를 처리하려는 때 내가 끼어들었다. 단검이 그를 노리는 그 순간 송진이 엉겨붙인 장검이 빛을 발했다.
나를 향해.
“하하! 역시, 자기가 죽을 생각은 없죠? 그거야 당연한 일!”
그의 생각에서 궤적이 그려진다. 나의 허리를 동강 내려는 일격이다. 막을 수는 없지만, 처음부터 가까이 다가갈 생각도 없었다. 싱긋 웃으면서 들어가려는 척 내디딘 다리를 회수해서 멀찍이 멀어졌다.
칼끝이 아슬아슬하게 내 허리춤 앞을 스쳐 지나갔다.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두려움은 없다.
잠깐의 대치. 그동안 위기에 처했던 아이들이 재빨리 달아났다. 상황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제법이구나, 휴이. 볼수록 아까워. 어째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공격을 피해내는 나를 보고 니콜라스는 혀를 내둘렀다. 그의 한탄에는 일부 진심이 섞여 있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끊고 들어와서 니콜라스의 맥을 끊는 그 능력은, 니콜라스가 보기에 전투를 이해한 자만이 할 수 있는 기예였기에.
정작 나는 생각을 읽고는 빈틈을 계속 계속 노렸을 뿐인데 말이야.
뭐, 어쨌든. 저쪽이 나를 위협으로 생각해준다면야 좋지.
“아하하! 알잖아요! 나는 뭐든지 잘 배우지만, 그 이상을 나아가지는 못한다고! 달리 말하면, 저는 벌써 제 인생 최고점을 찍은 셈이네요!”
“그래! 네가 이 기회를 놓치면, 너는 영원히 그 단계에서 멈춘다! 나 처럼 장성이 되지 못한 대령에게도 도망쳐다녀야 하는 신세가 돼!”
별을 못 단 군인은 병에 걸린다고들 한다. 물론 자기 위치에 충실하게 일하는 사람도 많지만, 누구보다 빨리 재능의 한계를 체감한 니콜라스는 더욱 재능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가 보기에 나는 뛰어난 재능을 갖췄으면서도 기회를 저버리는 바보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받아들여라! 너만 수긍한다면 모든 게 해결돼! 우리 둘이 입을 다문다면, 이 금기도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있다!”
실제로도 그랬다. 여기 있는 백사십 명 중 가장 강한 사람은 나. 만일 내가 없다면, 지금도 아슬아슬 버티고 있는 이 아이들은 오합지졸처럼 부서지리라.
실제로 몇몇은 내가 배신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고.
하지만.
“니콜라스. 이왕 할 거면 도전해봐요! 왜, 언제나 시험하는 쪽은 당신이죠? 고난을 발행하는 쪽이죠? 목숨을 걸고 불가능한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건, 왜 언제나 이쪽의 몫이죠?”
장검은 길이가 길고 반경이 넓지만 그탓에 오히려 궤적이 한정된다. 예기를 아무리 두른다고 한들, 난폭한 짐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온 나무는 쉽게 자기 나이테를 보여주지 않는다. 나무에 걸리면 붙잡히기는 그의 장검도 마찬가지다.
장검이 날 노릴까 봐, 그가 가장 곤란해하는 위치로 피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저들처럼 대적할 수 없는 시련에 맞서 싸워요! 그게 진짜지, 목숨도 걸지 않고 난관을 극복하지도 않은 채 무언가 시키기만 하는 건! 그냥 꼰대질에 불과하잖아요?”
“끝까지 어리석어지다니!”
니콜라스가 나를 뿌리치고 다른 학생들이 가득한 쪽으로 달렸다. 미리 계획해둔 대로 몇몇이 재빨리 달아났지만, 반응이 늦은 두 명의 몸이 찢겨나갔다.
예리한 날에 베인 것도 아니다. 우악스러운 참격에 몸이 찢겼다. 칼날에 묻은 송진이 식물의 몸속에서 태어나 인간의 몸속을 보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곁에 있던 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친구의 죽음을 그냥 넘기기에는 아직 어렸다.
니콜라스가 이어서 비명을 지르는 목을 베어버리려는 찰나. 내가 그의 등으로 달려들었다.
“내가 약속할게요, 니콜라스! 정녕 나에게 저들을 다 먹이고 싶다면! 내 방해를 뿌리치고, 나 말고 다른 모두를 죽여서, 그 피를 취하게 해요! 당신이 난관을 극복하고 그만한 위업을 성공시킨다면, 저도 조금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할지도 모르겠네요!”
나를 더욱 대단한 인재를 만들기 위해, 그 모든 고난을 뛰어넘고 나에게 피를 먹인다면. 변함없는 의지를 가지고 나를 그렇게 만든다면야 뭐 그때부터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하지만 니콜라스는 기다렸다는 듯 냉큼 나를 향해서 칼을 뻗었다. 목을 노리는 칼날에는 분명한 살의가 담겨있었다.
의미하는 바는 하나.
“하하하! 그럼 그렇지! 정작 자기 자신은 난관을 극복하고 싶진 않다는 거죠!”
광소하면서 칼날을 쳐냈다. 묵직하다.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렸다.
니콜라스는 혀를 차며 대답했다.
“…반동분자와는 협상하지 않겠다.”
“변명이 궁색하네요. 시도하기도 전에 못할 것 같으면 선을 긋는 주제에. 당신의 한계는 거기까진가요?”
무너질 뻔한 자세를 다잡은 나는, 머리카락을 이마 위로 쓸어올리며 중얼거렸다.
“아아. 이제 알았네요. 당신도 말로만 군국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할 뿐. 결국, 자기가 무언가를 이뤄내려는 의지나 열정은 없었어요. 그냥 위에 앉아서 아랫사람들에게 기대에 부응하기만을 강요하죠.”
칼을 맞대고 싸우며 그의 마음은 충분히 들었다.
기대가 크고, 포기가 빠르다. 효율적으로 코스트 관리를 시도한다. 군국이 바라는 교육자의 상이다. 누구 하나 희생시키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정작, 그는 목숨을 걸 용기가 없다. 스스로를 고난에 빠뜨릴 자신이 없다.
“아아, 재미없어라. 161명의 목숨을 쓸 각오는 있어도, 자기 목숨을 걸고 그것을 행할 각오는 없다니.”
“…이 내가, 그런 도발에 넘어갈 것 같나.”
“도발 아니라 객관적인 평가에요. 휴, 맞서 싸우길 잘했어. 재미없는 이야기에는 반전을 넣어줘야지, 암.”
빠직, 재미없다는 말이 니콜라스의 역린을 건드렸다. 그의 혈관이 끊어질 듯이 불거졌다.
격노한 니콜라스는 장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나에게 달려왔다.
“너는, 내 뜻을 받아들여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언제는 군국을 빛낼 인재라더니. 도발에 홀랑 넘어갔구만, 뭐.”
나는 다시 호각을 입에 물고는 지시를 내렸다.
장검이 나를 노린다. 나무를 방패로 빙글 돈다. 창처럼 내질러진 장검이 나무껍질을 부수고 사각에서 튀어나왔으나, 미리 생각을 읽어 간단히 고개를 트는 것으로 피한다.
생각을 읽는 나는 잡기 어렵다. 니콜라스는 회심의 공격을 연달아 피하는 나에게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다.
나를 상대하는 니콜라스의 등 뒤로 마법이나 창, 돌과 올가미가 쏟아진다.
인간에게 용기를 주는 가장 큰 방법은 바로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철창살이 사이에 있다면 짐승에게 다가갈 용기를 얻고, 방패가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
올가미, 마법, 로프, 통나무 그리고 창. 거리로 무장한 그들은 계속 닿지 않을 거리에서 니콜라스를 압박했다. 특히 한때 무투파였던 시아티나, 마도장교 지망생이었던 캐러팔드가 톡톡히 한 역할을 했다.
“이, 이것들이…!”
장검을 휘두르기엔 불편한 공간. 그러나 함부로 무기를 버릴 수는 없다. 아직 기공으로 전신을 완전히 둘러쌀 수 없는 이상, 그도 칼날에 찔리면 몸이 상한다. 다들 나름 중등군사학교에서 기공의 기초는 익힌 아이들이니까 달려들어 칼날로 내리찍으면 니콜라스라도 위험하다.
아차 하는 사이, 송진 가득 담긴 구덩이에 니콜라스의 발이 빠졌다. 균형을 잃은 그의 위로 올가미가 날아들었다. 니콜라스는 미친 듯이 날뛰었지만, 인간의 사냥은 점점 집요하고 끈질겨졌다.
그래, 마치 큰뿔사슴을 사냥할 때처럼.
“이것들이!”
결국, 그는 잡을 수 없는 나 대신 거슬리는 방해꾼들부터 처리하기로 마음을 바꾸고는, 나무를 발로 박차고 냅다 뛰려고 했다. 그 생각을 읽은 순간 단검 두 자루를 거꾸로 들어서 발목을 냅다 그었다. 살갗에 닿지 않았음에도 칼날이 아주 잠깐 검붉게 물들었다.
피가 튀었다. 바짓소매가 찢어지고 피가 흘러나왔다.
양이 안 되어서 오래 쓰진 못하지만 아주 잠깐이라면, 나도 기공 정도는 불어넣을 수 있으니.
“으으윽! 휴이, 네가…!”
여기서 자세를 뒤바꾸는 건 너무 큰 손해. 그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가장 거슬리는 존재, 시아티가 이끄는 창병들에게 도약했다.
가장 건강하고 용감하며, 조금이나마 기공을 다룰 수 있어서 위협적인 아이들이었다. 나름의 훈련을 받은 이들이 그에 대응했다.
그러나 대령 앞에서는 하룻강아지다. 니콜라스가 다가오면 냅다 땅을 구르라는 지시를 잊은 한 소년이 급조한 나무 창대를 들어막으려고 했다. 거대한 참격이 창대 위로 떨어졌다.
“멍청아! 위험해!”
누구보다 빨리 몸을 피했던 시아티는 깜짝 놀라서 그를 냅다 밀쳤다.
그러나 늦었다. 아니, 늦기보다도 무의미한 데다 더욱 큰 손해를 몰고 왔다.
그의 몸과 함께, 시아티의 오른팔 역시 잘렸으니까.
장검의 궤적에 걸린 그녀의 오른팔이 부러져서 하늘로 솟아올랐다. 몸과 분리되는 팔 너머로, 어깻죽지부터 갈라진 소년의 눈동자가 천천히 빛을 잃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친구의 죽음 때문인지, 오른팔의 고통 때문인지 모를 비명이 울려 퍼졌다. 팔꿈치 아래 사라진 오른팔을 붙잡고 시아티는 무릎을 꿇었다.
당장 시아티를 끝장낼 수 있음에도 니콜라스는 칼을 휘두르는 대신, 언제든 뒤로 뻗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학생 하나를 죽였으면서도 여전히 나만 경계하고 있던 것이다.
즉, 지금 이 상황은 나를 꾀어내기 위한 미끼.
일부러 소리 내어 천천히 다가갔다. 니콜라스가 미간을 움찔했다.
‘…냉정하군. 역시, 다른 녀석들과는 차원이 달라. 그렇게 신중하게 다가온다면, 다른 녀석들을 노리는 게.’
“아, 그래요?”
이미 니콜라스에게 나를 살려둘 의지가 없는 건 확인했지. 이제 저 학생들과 나는 운명공동체인 셈이다. 다름 아닌 니콜라스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 기대대로 해주지. 나는 시아티의 이름을 부르며, 방금까지의 냉정함은 사실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뛰쳐나갔다.
“너도, 결국…. 어리구나.”
니콜라스의 생각을 읽는다. 나에 대한 안타까움은 싸움을 거치며 점차 희석된 상태. 꽤 지치고 시달린 속에서 느껴지는 건 오직 피로와 짜증, 그리고 나를 향한 울분뿐.
자신의 말을 들었으면 너도 죽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그리 생각하며. 니콜라스는 머릿속으로 궤적을 하나 그렸다.
그의 칼 손잡이에서 시작되는, 거무튀튀한 빛으로 그려진 참격.
궤적의 끝에는 내가 걸려있다. 등 뒤로 쏘아지는 기습적인 일격이다.
그런데, 이거. 나를 너무 우습게 본 거 아닌가. 이렇게 대놓고 휘두르겠다고?
“나, 나름 수석인데!”
한순간 전신의 기공을 끌어올린다. 탐식의 영향인지 평소보다 탁하지만 거친 빛이 단검에 맴돈다. 죽음으로 얻은 힘이기 때문일까, 미약하게 검붉은 빛이 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내 몸안에 들어온 이상 내 힘. 일단 뿜어냈다. 두 손에 들린 단검이 내 몸을 쪼개려고 드는 거대한 장검을 잡아챘다.
테애앵. 묵직한 소음.
팔이 후들거리고 단검 축이 비틀어진다. 전신의 뼈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그래도 송진을 발라두길 잘했다. 덕분에 칼날이 미끄러지지 않아, 몸이 갈라지는 일은 피했으니까.
삐걱거리는 팔을 다잡으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히스토리아도, 란카르트도 제 아래인데. 총교관님 걔네 둘한테 벽을 느꼈잖아요? 그런데, 저는 뭐 쉬운 줄 알았어요? 나름 저 필기도, 실습도 다 상위권이라고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니콜라스는 허리에 힘을 잔뜩 준 채로 팔을 더욱 거세게 휘둘렀다.
“가장 중요한, 힘이 부족한데!”
느껴지는 것은 순수한 힘. 나의 방어를 부수기 위해 힘으로 찍어누를 셈이다. 풍차의 끄트머리가 나를 밀어젖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축이 어긋난 단검이 거센 비명을 지른다.
버티기엔 너무 강력한 힘이다.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나는 또다른 수단을 꺼냈다.
“세트, 리. 피렌하이트.”
손톱으로 송진을 긁는다. 마른 풀로 뒤덮인 접착제를 타고 불꽃이 솟구쳤다. 장검이 불꽃에 휩싸였다. 커다랗고 기다란 횃불은 위협적이었으나, 실상 나보다는 니콜라스에게 불리한 상황.
불꽃이 그의 시야를 방해하고, 녹아내린 송진이 장검에 들러붙는다. 이제 예리함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 참에, 단검으로 불타는 송진을 긁어서 그대로 튕겼다. 니콜라스의 눈을 향해.
“잡기술!”
숙련된 군인답게 니콜라스는 눈을 감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불타는 송진이 자꾸 날아오는 건 그에게도 조금 부담스럽다.
피하는 김에 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 니콜라스는 장검을 회수하며 뒤로 물러났다.
내가 크게 외쳤다.
“놓치지 않아아아! 싸워라, 니콜라스으으으으!”
나는 그의 시야 한구석을 계속 차지하며 그를 따라붙는다. 소리를 지르며 그의 고막을 계속 두드린다. 축이 무너진 왼손의 단검은 내친김에 던져버린다. 대신 왼손으로 마력을 끌어올려 마법을 연달아 쏘아냈다.
내가 모든 것을 쥐어짜서 공격하자, 니콜라스는 기세에 밀렸다. 잠깐 물러난 한 걸음이 두 걸음이 되고, 두 걸음이 내친 김에 세 걸음이 된다.
단, 그 이상은 물러나지 않았다.
“하나하나, 잡기술이 아닌 게 없군…! 그게 네 한계다! 네가 장래에 무엇을 마주하더라도, 그 한계에 금방 봉착할 것이다…! 너에게, 이제 장래는 없겠지만!”
휘두르는 단검도, 쏘아지는 마법도 하찮기 그지없다. 기껏해야 짜낸 기공으로 단검을 찌르는 것 정도가 위험할 뿐.
집중해서 내 공격을 파악한 그는, 내가 쓰는 그 무엇도 위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다시 자세를 다잡고는 순수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때였다.
그러나.
“뒤로 너무 물러났어요, 니콜라스.”
푸욱.
세 자루의 창이 그의 등을, 오금을, 허리를 찔렀다. 이어 뗏목을 만들 때 썼던 밧줄이 그의 팔다리를 휘감았다. 순식간에 그를 구속하는 힘들.
그 사이로 끊어질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죽어….”
날카로운 단검이 니콜라스의 어깨에 꽂혔다. 시아티였다. 한 팔을 잃은 채로도, 광분에 휩싸여 단검을 들고는 달려든 것이다.
다들, 나름 군사 교육을 받은 아이들. 기회가 오면 냉큼 잡아챈다. 그럴 재능도, 기량도 있다.
“이, 패배자들이! 감히!!”
밧줄이 팔다리를 묶고 칼날이 몸을 헤집는 와중에도 니콜라스는 아득바득 버텨냈다. 한 손으로 밧줄을 붙잡고 기공으로 땅에 발을 붙이며, 그 모든 구속을 단번에 뿌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꼼짝도 하지 않는다.
학생의 숫자는 백 명이 넘는다. 그러나 한 번에 싸울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기에,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이들은 전부 멀찍이 떨어져 로프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다 함정이나 올가미 조가 니콜라스를 묶는 데 성공하면 스무 명 씩 모여서 온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줄다리기는 결국 숫자와 무게의 싸움. 얹은 무게만큼 힘이 더해지는 정직한 대결. 건곤으로 땅을 잡아당기고 몸을 비튼다고 한들 이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다.
“크윽…!”
방법은 하나. 불에 그을려 녹은 송진이 엉겨 붙는, 날이 상한 장검으로 하나하나 잘라내야 했다.
와중에도 칼날은 시시각각 그의 몸을 파고드는데, 그것을 참고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상 불가능. 그 생각이 지나가자, 니콜라스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잠깐. 내가, 죽는다…고?’
드디어. 오래도 걸렸다. 니콜라스는 죽음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생명의 위기에서 그는 쫓기듯 자기 처지를 상기해냈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 닥치기 전에는 자기에겐 절대 오지 않으리라 믿었던 위기에 그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안녕히 가세요, 니콜라스 총교관님. 배운 거 잘 써먹었습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자처해서 교보재가 되실 줄은.”
“휴, 휴이! 기다려라! 여기서 나를 죽이면!”
말하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고, 그의 앞에서 가만히 중얼거렸다.
“당신보다 뛰어난 사람은 우러러보면서, 부족한 사람은 경멸했죠. 그런 당신의 허영심을 채워줄 곳이 바로 하멜른. 자기보다 뛰어난 학생을 지도한다는 입장에 취해, 총교관의 자리를 너무나 사랑했던 니콜라스 당신에게. 당신이 경멸했던 버려진 재능이 한데 모여서 위업을 이뤄내는 광경은 어땠으려나요. 딱 당신에게 어울리는 최후일지도 모르겠네요.”
“나를 죽이면 하극상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금기를 둘러싸고 입을 다물기는커녕, 도리어 나를 공격한 일은…! 군 당국이 묻으려고 할 거다! 너희는 나를 죽이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거야!”
그 말은 강을 건너기 전에 했어야지. 너무 허무해서, 창으로 너를 찌른 아이들조차도 동요하고 있지 않잖아.
어쨌건.
“하지만, 당신의 바람은 이루어줄게요. 탐식, 하죠.”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몰랐던 니콜라스는 내가 생체 단말을 들이밀자 크게 눈을 떴다.
아키 아바타는 몸을 따라가는 일종의 본. 몸 위에 무언가를 형상화할 수 있다. 보통 의복 패킷을 위해 쓰지만… 그가 나에게 건넸던 건, 패킷 타입의 문신이었지.
지금껏 벌어진 전투로 흐른 피가 그 문신과 감응했다. 땅 곳곳에서 시작된 핏물이 내 발을 타고 올라와서는, 내 생체 단말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참, 군국도 신기한 짓을 한다는 말이야.
“당신이 선물한 것으로. 당신의 기억을, 기력을, 경험을 전부 삼켜드리죠. 당신이 바라마지 않았던 대로.”
“아, 안 돼! 나는 아직 할 일이…!”
“누구는 할 일이 먹히는 것밖에 없어서 먹힐까요. 그냥, 그렇게 되는 거지.”
그래. 이건 결과일 뿐이다. 자기가 결과를 강요했다면, 나타나는 결과에 수긍할 정도는 되어야지.
“안…!”
추해지지 않도록, 나는 저항하지 못하는 그의 목에 마침표를 박아넣었다.
마지막 순간, 어차피 죽을 거라면 탐식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그의 생각을 끊어내듯.
생각이 끊겼다. 목에 찍힌 칼자국은 그의 말도, 생각도, 생명도, 삶마저도 마무리를 짓는 마침표였다. 총교관 니콜라스는 이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반평생 교육에 종사했던 그가 남긴 것은.
증오에 찬 백여 명의 아이들과.
그리고 티끌만큼 더 늘어난 내 기력.
그게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