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4 작전타임은 불리한 쪽이 건다
메타컨베이어 벨트 위에 마련된 군국 임시 기지에서는 작전 회의가 한창이었다.
네모난 탁자를 앞에 두고 정돈된 혼란이 몰아쳤다. 장성들이 탁자 하나를 두고 수많은 대책을 강구했지만 이 상황을 타파할 뾰족한 방도가 나오지 않았다.
언급된 내용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들의 발언에 들어있는 공통된 기조는 불안함이었다.
“이쪽은 전력이 준 데 비해, 저쪽은 건재합니다. 더군다나 저쪽이 메타컨베이어 벨트에 간섭할 수 있음이 드러난 이상, 벨트 위에서의 추격이 무의미합니다.”
참패였다. 군국 탄생 이후 이토록 처참하게 패배를 당한 경험이 또 있을까.
변명할 말은 많았다. 상대가 시조 티르칸쟈카라는 전설적인 존재였으며, 거기다 특정 개체의 편을 들지 않아야 할 짐승의 왕이 노골적으로 저쪽의 편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의 기량이, 특히 보이지 않는 검을 쓰는 소년 검사의 힘이 예측을 훨씬 웃돌았다.
파트락시온이 격분해서는 외쳤다.
“그 꼬마! 나랑 싸울 때는 힘을 숨겼어! 내가 만만해? 절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다!”
“…대장님. 어떻게 용서하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단독행동은 하시면 안 됩니다.”
제자인 간드 대령이 조심스레 묻자, 파트락시온은 창대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쥐고는 격하게 대꾸했다.
“어떻게 하기는! 다음에 만나면 전력으로 때려 부순다. 나는 결투하는데 가진 걸 다 안 쓰는 녀석이 싫어!”
“이건 결투가 아닙니다! 작전이라고요!”
“모든 분쟁은 결투의 연속, 혹은 집합이야! 어찌 되었든, 다음에는 확실하게 꼬마의 전력을 끌어내겠어!”
“끌어내지 마시고 전력을 다해 격파해야 합니다! 그래야 히스토리아 소장님을 탈환할 것 아닙니까!”
간드 대령이 히스토리아를 언급하자 회의실 안에 불편한 침묵이 맴돌았다.
이 작전에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이었던 히스토리아. 총사대를 데리고 앞질러가서 지연전을 펼치며 하루 종일 상대방을 붙잡아두었던 그녀다. 심지어 불리한 와중에도 총사대를 지키기 위해 단신으로 그들과 맞섰다.
아무리 이번 임무에 사적인 감정이 있다고 한들, 히스토리아는 최선을 다해 목숨을 걸어 싸웠다. 장성들은 히스토리아를 향해 기특함은 물론 약간의 부채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파트락시온이 진지하게 되물었다.
“히스토리아 소장님? 너 방금 히스토리아 소장님이라고 했냐?”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모두가 파트락시온의 입만 바라보는 도중, 그는 한없이 가볍게 대답했다.
“야, 너 언제는 히스토리아 보고 나이도 어린 게 겉멋 들어서 총이나 쏜다며 건방지다고 했잖아? 그때 대련에서 쥐어 터진 이후에는 꼬박꼬박 존칭을 붙인다?”
“예의를 지키는 겁니다! 대장님께서도 좀 지키십시오! 이곳에는 대장님만 계신 게 아니잖습니까!”
“여기선 내가 제일 직책 높잖아. 지금은 마장 할매도 없고….”
“내가 없다고 태평하게 있을 땐가!”
문이 벌컥 열리고, 정찰과 벨트 보수를 마치고 들어온 마장이 옷깃을 여미며 안쪽으로 들어왔다. 한껏 태평한 자세로 있던 파트락시온은 투덜거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쳇, 호랑이도 제말하면 오는 것 봐. 이젠 내가 대빵이 아니네.”
“허튼소리 말고, 빨리 소장을 구할 생각을 해야 할 거 아닌가! 지금 소장이 적의 손에 붙잡혀 어떤 모진 고초를 겪고 있을지 모르는데!”
만사 제멋대로인 절창을 향해서 거리낌 없이 훈계를 내뱉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 마장 프렐비요르.
왕국 시절, 수가 적고 신비한 능력을 지닌 마법사는 당연하게도 오직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귀족들은 더 뛰어나고 강력한 마법사를 식객으로 두며 ‘신비해질’ 필요가 있는 일에 마법사를 투입하고는 했다. 고유마도를 가진 마법사는 그 뜻에 따라 상상조차 못 할 방식으로 권력을 지탱했다.
그 와중, 공사부터 전쟁까지 온갖 더럽고 힘든 잡일을 도맡아 했던 프렐비요르는 군인으로부터, 시민으로부터 커다란 지지를 받았다. 정작 그녀는 자기 마법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라며 영광을 마다하였지만.
왕국에서는 마법사 주제에 잡일이나 하는 그녀를 향해 반쯤 조롱의 의미로, 반쯤은 혀를 내두르며 그녀를 왕국의 일꾼이라 불렀다.
절창도 외골수인 그녀 앞에선 비교적 말을 가리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비행 연습 좀 하고 다녀! 댁의 바람에 잘못 휘말렸다간 뼈도 못 추려서, 떨어져도 괜찮은 장성 아니면 날아갈 수가 없잖아! 언제까지 연처럼 매달려 날아다닐 건데?”
“시끄럽다!”
어디까지나 비교적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온 프렐비요르는 군국 지도가 그려진 탁자 앞에 서서는, 그 위로 돌돌 말린 마력초를 던지며 말했다.
“짐승의 왕, 그에 대해서 해결책을 전해받았다.”
“뭔데?”
“가능한 상대하지 않는다. 이쪽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면 짐승의 왕도 구태여 공격의지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나, 만일 고양이의 왕이 또 적대한다면, 이 진정용 마력초를 피우라고 하더군.”
마장이 탁자 위에 둔 건 상쾌한 향기가 나는 엽궐련이었다. 파트락시온이 마력초을 들어 냄새를 킁킁 맡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누가 준 거야?”
마장이 대답했다.
“과병, 막시밀리앵이다.”
“그놈은 무기 말고 약도 만들고 다녀? 하긴, 연금술사들이 다 음습한 면이 있지. 그래서 비밀병기는 언제 온대?”
“과병은 대적하기 위한 무기를 제작하는 중이며, 끝나는 즉시 합류하기로 하였다.”
“아직도 다 안 만들었대? 그때쯤이면 이미 공국으로 튀었겠다. 창도 고쳐야 하는데, 맨날 필요할 땐 없어.”
“건방진 것이! 어른 말하는데 초치지 말고, 할 말 없으면 가만히 듣고 있어라!”
윽박지른 마장이 좌중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들어라. 작전이 입안되었다. 다음 전투 장소는 극동 기착지! 아마 저들은 극동 기착지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공국으로 올라갈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결전을 벌여, 그들이 해안도로로 향하는 것을 저지한다!”
극동 기착지는 군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착지이며, 동시에 메타컨베이어 벨트의 보수와 유지를 위해 여러가지 제어 시설을 지닌 공간이기도 하다. 군국에서 메타 컨베이어 벨트가 가장 느리게 흐르는 길목이 다음 전투장소로 낙점되었다.
합리적인 작전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무렵 참모가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저희는 그들의 뒤쪽에 있지 않습니까? 어떤 방식으로 앞질러갑니까?”
“방금 목소리를 높인 네놈! 질문할 때는 손을 들고 질문해라!”
“시, 시정하겠습니다.”
참모가 손을 들고는 다시 물었다. 그제야 프렐비요르는 손을 든 쪽을 향해 몸을 돌리고는 우렁차게 말했다.
“그래! 자기가 누구인지 밝혀야 그쪽을 보고 대답할 것 아닌가! 기억하도록. 신원을 밝히는 것! 이건 보고의 기본이다!”
“상기하겠습니다.”
“시정이 빠르군. 좋은 자세다!”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 프렐비요르는 다시금 설명했다.
“극동 기착지에는 다목적 기갑부대, 베르나르테른이 대기 중이다. 그들이 지연전을 펼칠 것이다.”
프렐비요르의 입에서 나온 건 군국 최정예 군단의 이름이었다. 참모는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베르나르테른? 사령부 직속, 오직 전쟁을 위해 준비하는 5레벨 정예부대가 아닙니까? 그들이 국가 간 전쟁도 아닌 이런 일에…?”
“시조 티르칸쟈카는 일인군단. 충분히 그럴 필요가 있는 적이지. 또한, 어둠을 불러내어 병력으로 삼는 그녀의 능력을 고려할 때 이쪽도 군단으로 부딪히는 편이 훨씬 낫다. 베르나르테른에게 시조와의 전투를 맡기고, 우리는 배후에서 공격한다.”
이른바 망치와 모루였다. 베르나르테른이 저들을 저지하고 메타컨베이어 벨트가 지지부진 움직이는 동안, 마장과 절창을 비롯한 장성들이 습격하여 마무리한다…는 작전.
완벽한 계획이었다. 모든 계획이 그렇듯, 계획대로 된다면.
당연히 참모도 그 점을 지적했다.
“만일 저쪽이 극동 기착지에서의 싸움을 회피한다면 어떻게 합니까?”
“그들이 벨트 위에서 내려와 준다면 우리가 유리해진다. 평지에서는 군단의 힘이 더욱 제대로 발휘될 수 있으니. 기동전을 벌여 마무리하면 그만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저들은 군단급 위력을 갖춘 개인입니다. 만일 어딘가에 숨어서 게릴라전을 펼치면 곤란해질 겁니다.”
“통신병을 필두로 모든 인력이 동원되어 감시중이다. 이 나라를 빠져나갈 수도 없겠지만, 어딘가 숨을 수도 없을 거다.”
“으음….”
잠시 고민하던 참모는 사방을 슬쩍 둘러보다, 총대를 메는 기분으로 마지막 가능성을 제시했다.
“만일… 저들이 히스토리아 소장을 인질로 잡는다면…?”
평소에도 강철과 같은 태도를 보였던 프렐비요르조차도 얼굴을 한층 더 굳혔다.
요술사 란카르트와 총사 히스토리아. 군국의 미래를 이끄리라 믿었던 두 인재 중, 온전하게 남은 건 히스토리아 하나.
히스토리아가 애교 있는 성격은 아니나, 누구에게나 깍듯하면서도 적당히 융통성 있는 태도에 나름 정을 붙이고 있던 프렐비요르였다. 분야가 다르긴 했지만 내심 란카르트보다 히스토리아 쪽을 대견하게 여겼다.
마음 같아서는 어떤 수를 쓰더라도 구하고 싶지만.
“…협상은 없다. 탈환을 노리되, 여차할 때는 포기하라.”
군국에겐 협상이란 없다. 한 번 숙이면 두 번 숙이게 되며, 나아가 국가가 무너지게 하는 도미노이다.
개인을 위해 국가를 위기에 처하게 하지 마라. 군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이자 대전제.
장성들이 참담하게 고개를 끄덕일 무렵, 절창은 혼자 의뭉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악물고 무시하려고 했으나 너무 거슬리는 바람에 결국 마장은 그를 지적하고 말았다.
“파트락시온 대장. 할 말이 있으면 실실 쪼개지 말고 말로 하라!”
“크크. 이쪽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
악동 같은 미소를 짓던 파트락시온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군국의 딸내미, 그 불량한 녀석. 일부러 잡혔어.”
“…뭐라고 했나, 파트락시온?”
“히스토리아 말이야. 그 녀석 상황 불리해져서 도망가야 할 타이밍에도, 일부러 달려들었다고. 잠입한 거야.”
뜻밖의 발언에 모두가 아연실색해졌다. 그 속에서 파트락시온은 홀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법 열심히 싸우는 척했지만 내 눈은 못 속이지. 벨트 밖으로 굴러떨어지면 될걸, 고양이 왕이랑 기어코 일전을 겨룬 다음에 힘 빠진 척 했어.”
“왜, 굳이 그런 위험한 수를?”
“글쎄? 위험한가? 저쪽 녀석들, 기지 몇 개 초토화시키고 수도사령부를 습격해서 난동을 피운 것 말고는 딱히 뭐 한 거 없잖아?”
“충분히 위험하잖습니까! 지선의 팔을 자르고 보급기지 다섯 곳을 불태웠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요!”
“아무런 이유가 없지는 않을걸. 어쨌건,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지는 않는 것 같으니. 잡힌 척 숨어 들어간 게 분명해.”
그러나 일부러 잡히는 건 위험하다. 특히 개인의 힘이 집단을 능가하는 경우에는 더욱 치명적이다. 포로로 잡히는 바람에 힘의 무게추가 기울기 때문이다.
돌발행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하다. 참모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했다.
“혹시, 아예 전향했을 가능성은…?”
그 순간 장성들의 시선이 전부 그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