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231화 (231/384)

EP.231 레지스탕

회귀자가 왜 조용한가 했더니, 땅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지류를 읽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잔의 힘 덕분인지 회귀자는 본능적으로 기착지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라면 북동부 기착지야. 다들 조용히.”

전신의 감각을 다 써서 집중하던 회귀자가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나는 그대로 말을 전했다.

“셰이 씨 명령이다. 다들 조용히. 걸레질은 소리 안 나니까 계속하고.”

“…너나 조용히 해.”

북동부 기착지는 요란스러웠다. 반대편에서 벌어졌던 추격전의 여파가 여기까지는 도달하지 않은 듯, 업무에 열중하는 노역자들의 분주한 기척이 느껴졌다. 철컹, 철컹. 거대한 크레인이 거친 쇳소리를 내며 컨테이너를 잡아채는 소음은 이 안까지 들어올 정도로 요란했다.

온갖 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아주 미세한 인기척이 이쪽으로 향했다. 회귀자가 가장 먼저 그것을 감지했다.

“잠깐,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어.”

노역자와 기착지에 대해 아주 단편적인 지식만 갖고 있던 티르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곳은 분명 커다란 소포를 전하는 곳이라 들었다. 짐을 챙기러 온 일꾼이 아니겠느냐?”

“아니야. 우리가 있는 컨테이너는 남부를 목적지로 향하는 거라서, 북동부에서는 쳐다도 보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저들은 무엇이냐? 이쪽으로 오고 있지 않느냐?”

“둘 중 하나지. 우리를 검문하러 온 군국이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로 우리를 찾는 레지스탕스거나.”

회귀자가 스산한 태도로 천앵의 손잡이에 손가락을 올렸다. 적이라고 판명될 경우 즉각 제압하기 위해.

자, 상대가 레지스탕스냐 군국이냐, 회귀자가 기다리는 틈에 독심술을 쓰는 나는 한 박자 먼저 그들의 생각을 읽었다.

‘에이 씨, 우리가 왜 여기서 노역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차라리 이 기회에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어야지.’

세상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재미있다는 소리는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승리만이라도 쟁취하려는 애처로운 몸짓에 불과하다.

왜냐면, 생각을 읽는 나는 별로 지루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국을 들쑤시는 탄탈로스 탈옥범들이 왜 여기 있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

‘소문으로는 시조가 포함되어 있다는데. 태고의 흡혈귀가 우리를 도울 리 없잖아? 만일 군국과 싸우고자 한다면 공국의 혈족들을 부르겠지. 혹은, 우리를 다 권속으로 만들어서 써먹든가.’

‘공주님 명령만 아니었어도.’

독심술사인 내가 보장한다. 답을 미리 알고 맞춰가는 것도 충분히 재미있다. 반박하려면 마음을 읽고 오던가.

투덜거리는 마음의 소리가 나에게로 들려왔다. 음, 틀릴 여지가 없이, 아무리 생각해보건대 저쪽은 레지스탕스인 것 같다.

회귀자의 말이 맞았다. 레지스탕스는,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기회를 잡으려고 이곳저곳에 발을 뻗치는 모양이었다. 군국이랑 갈등을 빚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식으로 만나네.

레지스탕스가 다 그렇지만, 야망에 비해 목적의식이 희박한 그들이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였다.

“어이, 거기! 지금은 불심검문을 하는 중이잖냐! 빨리 확인해!”

기착지 저편에서 이들을 다그치는 큰 목소리가 들렸다. 감독관이었다.

검문이라는 말에 회귀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동시에 천앵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검문이야? 칫, 여기서 발각당하면 일이 꼬이는데. 극동 병력이 당장 사령부로 달려가면 중간에서 만날 거야.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나?’

앗, 이런. 위험하다.

사실 이건 우리를 콕 집어서 찾는 검문이 아니다. 준전시상황이 되면 으레 발생하는 상시검문이다. 만일 우리가 메타컨베이어 벨트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노역자가 아니라 관리소장이 직접 나서서 컨테이너를 뒤졌을 것이다.

하지만 밖에 있는 게 관리소장의 명령을 받은 군인들인지, 아니면 노역자로 변장한 레지스탕스인지 회귀자는 모른다. 그래서 저들이 보이는 순간 천앵을 휘두를지도.

“네, 네! 금방 확인하겠습니다요!”

“갑니다!”

컨테이너 밖에서 대답이 들렸다. 지척이었다. 그들은 나에게만 들리도록 내심 투덜거리며 컨테이너로 다가왔다.

‘우리가 레지스탕스인데, 검문은 무슨!’

‘어차피 아무도 없겠지! 누가 컨테이너에 타?’

‘쳇! 궐기만 해봐라. 너희 군국 돼지놈들은 다 쓰겅이야, 쓰겅!’

그 전에 너희가 먼저 쓰겅 당하게 생겼는데. 잔뜩 긴장한 회귀자에게 말이야.

안 되겠다. 내가 먼저 나서야지.

철커덕. 컨테이너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린다. 맞물렸던 쇳덩이가 풀어지며 컨테이너 안쪽에 팽팽한 긴장감이 맴돈다.

천앵을 쥔 채 한 걸음 다가간 회귀자. 그보다 앞서 문에 접근한 나는, 손가락을 들어 조심스럽게 컨테이너 벽을 톡톡 두들겼다.

톡. 토도독토도독. 톡톡.

한 번, 여섯 번, 두 번. 별 의미 없어 보이나, 레지스탕스에게는 비밀 암호가 된 숫자.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저편에서 흠칫거리는 기색이 느껴졌다.

‘어? 누가 신호를?’

‘잠깐, 진짜로…?’

인기척이 느껴지면 도망치거나 감독관에게 보고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그들은 물러나는 대신, 잔뜩 긴장한 채 주위를 살피며 다가왔다. 떨리는 손이 컨테이너 잠금쇠를 풀었다. 그리고 벌컥, 문이 좌우로 열리며 꼬질꼬질하게 생긴 노역자 둘이 나타났다.

분명한 레지스탕스이나… 사실, 그것을 제외하면 평범한 노역자와 다를 바 없는.

그들의 시야에 우리가 비쳤다. 둘은 떨리는 눈동자로 우리들의 면면을 보다가, 저쪽에서 보채는 목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라서 펄쩍 뛰었다.

“검수는 끝났나!”

나가서 맞이해준다는 내 판단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내가 미리 충격을 줄이지 않았다면 저들은 놀라서 비명을 질렀을지도 모른다.

노역자 중 한쪽이 더듬더듬 대답했다.

“아, 여, 여기…. 이상 없습니다!”

“그럼 어서 닫아! 다음 컨테이너가 오고 있지 않은가!”

“예!”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외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이 허둥거리며 품 안에서 곱게 접힌 종이를 내밀었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자, 작게 고개를 까닥인 뒤 극도로 공손하게 컨테이너 문을 닫았다.

닫은 문 너머로 황망한 생각이 들렸다.

‘이게 왜 진짜지?’

‘역시 공주님이야! 이것까지 예견하시다니…! 고귀한 피는 진짜 뭔가 다른가?’

쿵. 철컥. 잠금쇠가 잠기는 소리를 끝으로 기척은 다시 멀어졌다. 컨테이너에는 다시 어둠이 찾아오고, 기착지의 요란스러운 소음 한가운데를 관통하여 지나가기 시작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회귀자가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내 어깨를 찰싹 쳤다. 기분이 좋아서 한 스킨십이었지만 조금 아팠다.

친구 없는 이유를 하나 더 알아간다.

“네가 갑자기 나서는 바람에 깜짝 놀랐잖아! 좀 미리 말하고 행동하라고!”

“급했잖아요. 그보다, 저도 깜짝 놀랐는데 미리 말하고 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어? 말하고 때리는 건 돼?”

“말하는 꼴 보니까 저에겐 가망이 없네요. 살살만 때려주세요.”

“그나저나, 저들이 레지스탕스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

사실 생각을 읽었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사실과는 달랐다.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요? 만일 저 사람들이 우리를 찾으러 온 공안이라고 쳐요. 이미 들킨 거니까 즉각 뛰쳐나가야죠. 레지스탕스면? 일단 접촉할 생각부터 해야죠. 어차피 우리는 바깥에서 온 손님을 정겹게 반겨주는 선택지밖에 없었어요.”

“판단이 제법 빠른데!”

기분이 좋은지 회귀자는 희희낙락해서는 내게서 종이 소포를 건네받았다. 동봉된 내용물을 빼낸 회귀자는 종이에 적힌 글귀를 읽었다.

“나의 기사님에게…. 흐음. 기사님이라. 직접 나섰나? 이런 식으로 접촉하는 것도 오랜만이네….”

‘군국에 반하는 일을 할 때마다 늘 접촉해오더라. 아주… 내키지는 않지만, 이만큼 차려놓은 판이라면 차라리 한 번 엎는 게 나을지도 몰라.’

중얼거린 회귀자는 접힌 종이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천의무봉에서나 취급할 만한 고급스러운 손수건이었다.

과거, 기사들의 나라일 때. 손수건은 레이디와 고위 귀족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생필품이라 군국 누가 들고 다녀도 이상할 게 없다는 점에서 표식으로 삼기에 딱 좋은 도구이기도 했다.

“기착지만 지나면 곧바로 컨테이너 위에 매달게. 이게 있으면 저쪽에서 먼저 찾아올 테니까!”

회귀자가 손수건에 더 메시지가 있나 살피고 있을 때, 히스토리아는 말없이 그 손수건을 살피며 생각에 잠겼다.

‘…이게, 맞을까? 이들이 사령부로 쳐들어가는 것을, 그냥 보고 있는 게…?’

히스토리아에겐 군국을 향한 충성심은 별로 없다. 다만, 그때 막지 못한 비극에 대해 후회할 뿐이다.

만일 우리가 하려는 행동이 비극으로 이어진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막으리라. 그런 각오가 히스토리아에게는 있었다.

‘레지스탕스는 군국을 증오하는 이들의 모임이야. 나는 그들이 얼마나 큰 복수심을 갖고 있는지 알아. 그들이 이만한 힘을 가지고 휘두른다면… 하멜른보다는 덜 기괴할지라도, 더 큰 비극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히스토리아는 곁눈질로 우리 면면을 살폈다. 도무지 정체를 종잡을 수 없는 소년 검사, 흡혈귀의 시조 티르칸쟈카, 짐승의 왕 둘에 나.

그녀의 경계심은 나에게 닿은 순간부터 미친듯이 치솟았다. 나를 향한 의심이 너무 과해서 마음을 읽고 있다는 것도 잊고 항변할 뻔했다.

‘휴이까지 낀 이상,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전혀 예측이 안 돼. 차라리, 지금이라도 뛰쳐나가서 이들의 존재를 알리는 건?’

뭐? 잠깐. 뛰쳐나가?

히스토리아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이어졌다. 판단을 끝낸 히스토리아는 즉각 몸을 일으켜서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그 직전, 나는 먼저 몸을 날려서 히스토리아의 어깨를 잡아챘다. 혹시나 소리라도 지를까 봐, 양손으로 입을 잡아당기듯이 막았다.

“읍!”

아니, 잠깐만. 왜 이렇게 행동이 급해? 생각을 못 읽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히스토리아는 묶인 상태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나를 뿌리칠 수 있다. 다만 소리를 지르는 건 당장은 불가능하다. 어쨌든 소리는 공기의 떨림. 내가 입과 코를 막고 있다면 충분한 소리를 낼 수 없다.

뭐, 업어치기든 뭐든 나를 던져버린 다음 외치면 그만이지만, 이미 늦었다. 회귀자의 관심을 끌어버렸거든.

갑작스런 소란에 회귀자는 이쪽을 보고는 물었다.

“응? 뭐하는 거야?”

“아, 아니. 슬슬 마력초가 고플 시간인 것 같아서, 입에 물려주고 있었죠!”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막았던 손을 떼자, 히스토리아의 입에 동그랗게 만 마력초가 물려있었다. 아하,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회귀자는 그대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꼭 그런 식으로 물려줘야 해?”

“마력초 안 피는 순진한 아이는 모르는, 어른들만의 비밀스러운 세계에요.”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우월감 느끼기는!”

역시 분위기를 바꾸는 데에는 살짝 놀리는 편이 좋아. 회귀자가 인상을 콱 찌푸렸다.

“밀폐된 공간이니까 흡연은 좀 참아! 도대체 얼마나 피워대는 건지.”

“하하. 자제하라고 할게요…. 리아! 때와 장소를 가려야지! 어? 셰이 씨나 티르가 얼마나 네 편의를 봐주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막 나가려고 해!”

저쪽이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멋대로 지레짐작해서 섣부르게 굴지 말라고. 나는 그런 의미를 담아 윽박질렀다.

히스토리아의 몸에서 떨림이 잦아들었다.

‘…여전히, 눈치는 빠르구나. 뛰쳐나가는 기색을 보자마자 나를 막았어. 혹시, 나를 지켜보고 있었나…? 아니면 그저 시야가 넓은 걸까.’

히스토리아는 포기한 듯 눈을 감고는, 입술로 입에 문 마력초를 흔들었다.

“휴이, 불.”

“내가 라이터냐? 칫, 네가 묶여있어서 대신 해주는 줄 알아.”

나는 투덜거리며 손가락 끝에 불을 맺었다. 불꽃이 담배 끄트머리로 스며들며 마지막 불꽃을 지폈다.

마력초는 예전부터 진정제 역할로 이름이 높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미 타고 난 재를 들이마시는데, 거기서 새로운 불꽃이 점화될 리가 없으니까. 타고 남은 건 가라앉을 뿐 다시 불타오르지는 못하는 것이다.

마력초를 한껏 들이마신 히스토리아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너무… 감정적이었어. 사실 지금 와서 뛰쳐나가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레지스탕스에는 그 아이가 있어서… 만날까 봐, 두려웠던 걸지도. 하지만, 외면하기보다는 차라리 마주해야겠지.’

그 아이가 누군지는 알고 있었지만 굳이 되새길 필요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지스탕스와 함께 찾아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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