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1 톱니바퀴를 타고 내려온 신
끊어진 도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보였다. 이너서클 각지에 필요한 물을 제공하는 용수로다.
폭이 그리 넓진 않지만, 그 여부와는 하등의 관계없이 자동마차는 점프할 수 없다. 격변한 상황 속에서 회귀자가 외쳤다.
“도로가 갈라졌어! 뭐지? 이상한 낌새는 안 보였는데…!”
“리더! 지시를!”
“이럴 때만 리더라고…! 칫, 기다려 봐!”
회귀자는 지잔을 빙글 돌려 쥐고는 자동마차 바닥을 쿵 찍었다. 차체가 커다랗게 흔들리며, 지잔은 자동마차의 밑바닥을 관통한 채 땅에 닿았다. 까드드득, 하고 땅과 지잔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의도하지 않은 브레이크가 하나 더 생겨나니까 자동마차가 정신을 못 차렸다. 미친듯이 흔들리는 조종간을 꽉 잡으며 외쳤다.
“꺄아악! 차가 박살 나잖아요!”
“급해! 말 걸지 마!”
회귀자가 지잔을 땅에 박은 채로 조그맣게 휘저었다. 작고 동그란 원이 검끝에서 피어난다. 일렁이는 땅,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검이 부드럽게 요동치자 땅도 그에 따라 너울거렸다.
나는 페달을 밟으며 더 크게 외쳤다.
“다들 잡아! 추락한다!!”
“추락 아냐! 상승이야!”
회귀자는 빽 소리치며, 지금까지 잡아끌었던 땅을 단번에 풀어냈다.
지곤류, 땅너울.
흘긋 뒤쪽을 확인해보니, 우리가 지나온 도로가 기이한 모습으로 우그러져 있었다. 비유하자면 푹신한 이불을 기다란 장대로 잡아당길 때 구겨진 모양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회귀자의 지잔을 정점으로 구겨진 땅이, 그녀의 손짓에 한꺼번에 퍼올려졌다.
그 순간, 자동마차 앞좌석. 언제나 함께일 것만 같았던 조수석과 운전석이 영구적인 이별을 겪었다. 회귀자의 지잔이 정확히 그 가운데를 찢어발긴 탓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 뭐라 불평할 수가 없었다. 회귀자가 그렇게 휘두른 덕분에 부러진 다리 위로 임시 가교가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밟아…! 어? 밟고 있네?”
밟으라는 건 진작 말해줬어야지! 내가 생각을 읽지 못했다면 지금쯤 급정거하느라 애쓰고 있었을 거 아니야! 어딜, 너도 두려움을 느껴봐라!
“아차! 이게 가속페달이었지?”
“너는 지금까지 운전 말고 뭐하고 있던 거야?!”
“가속이요! 그건 그렇다고 치고! 아지야아아아아아!”
“머어어엉!”
쿠르르르릉. 한계에 달한 자동마차가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자동마차는 점차 급조된 경사면을 향해, 자동마차의 한계를 시험하며 도약을 준비했다.
다행인 건 회귀자가 앞쪽을 갈라놔서 바퀴가 살짝 떴다는 점.
불행인 건 회귀자가 갈라놓았기 때문에 차의 속도가 느려졌다는 점이다.
투웅. 자동마차는 다시 없을 부유를 겪었다. 순간적으로 중력이 사라진 듯한 감각이 찾아왔다. 세상이 지독하리만치 느리게 흘러가는 착각이 들었다.
체계적이고 튼튼한 도로망이 있다고 전제한 뒤 만들어진 자동마차는, 다른 논리들처럼 전제가 무너지자 형편없이 허물어졌다.
분명 뛰어넘기 전에는 무시무시한 기세였는데, 정작 최고점에서 형편없이 느렸다. 반대편에 도착하기 전에 배수로로 곤두박질칠 게 분명했다.
회귀자가 손해를 감수하고 다른 힘을 쓰기 전, 나도 다른 동력을 목놓아 불렀다.
“아지야!! 밀어! 개썰매다!!”
“멍멍멍!”
내 부름에 따라오던 아지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뻥, 하고 차 짐칸을 세차게 걷어찼다.
자동마차는 달려오는 개를 동력으로 극적인 가속을 이루어냈다. 콰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트럭이 수평방향으로 1m 정도 이동했다. 목과 등허리가 잘못 만들어진 인형처럼 덜컥거린다.
하지만… 분명히, 이 자동마차는 배수로를 뛰어넘었다! 나는 고개만 뒤로 돌려 이 위업을 이뤄낸 아지를 돌아보았다.
“멍?”
자동마차를 미느라 모든 힘을 다한 아지는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다, 발 디딜 곳도 없이 허공에 방치되었다. 하강을 시작하는 아지와 눈이 마주쳤다. 닿지 않는 팔다리를 바둥거리는 꼴이 썩 애처롭다.
“잘 가, 발판….”
“머어어어엉!”
아지는 그대로 배수로에 빠졌다. 그래도 뭐, 얼마 지나지 않아 튀어나오겠지.
지금 그것보다는 우리가 문제다.
“착지합니다!”
나는 그렇게 외치고는 운전석 아래쪽 그림자로 몸을 숨겼다.
충돌 직전에 좁은 곳으로 피하는 건 멍청한 행동이다. 만일 근처에 어둠을 다룰 수 있는 흡혈귀가 없다면 말이다.
햇빛이 닿지 않는 그늘진 곳으로 몸을 밀어넣자, 부드러운 어둠이 몸을 감쌌다.
이건 표현이 아니다. 이 어둠은, 말 그대로 ‘부드러웠다’.
콰직.
착지하는 느낌과 함께 몸이 덜컹거렸다. 그러나 약간의 어지러움만 있을 뿐. 응당 따라야 할 충격은 전혀 없었다.
나를 포근히 감싼 어둠이 귓가에 속삭였다.
[우악스러운 방식이로구나. 휴, 굳이 이리 떨어져야 했느냐.]
“긴 싸움이 예상되는데, 대낮에 어둠을 쓰는 것보다는 낫죠. 짐칸은 멀쩡하죠?”
[염려 말거라. 어둠 속은 나의 공간. 그들은 터럭 하나 다치지 않았다.]
짐칸에 있는 나비와 시아티는 멀쩡한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헌데, 무슨 일이지? 도로가 갑자기 끊기기라도 했느냐?]
“끊겼다기보단, 끊었어요.”
[누가?]
내가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회귀자가 그 대답을 대신 했으니까.
“과병!!”
이곳에서 약 2.4km 떨어 진 거리. 독심술조차 희미하게 느껴지는 공간에, 외눈안경을 쓴 누군가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회귀자의 칠색안에는 똑똑히 보였다.
모든 무기의 제작자, 모든 병기의 설계자. 이해의 괴물. 창조자.
현자의 돌에 가장 가까운 연금술사. 톱니바퀴의 왕.
과병, 막시밀리앵.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그는 입술을 뒤틀어 웃으며, 그를 바라보는 회귀자를 향해 무언으로 말했다.
‘1레벨, 통과.’
회귀자는 그 시험하는 듯한 미소에 격분했다. 그녀는 자동마차 위로 발을 내디디며 외쳤다.
“저 자식…! 함정을!”
“함정이요? 다리를 미리 끊어놨다는 건가요?”
“달라! 저 녀석은…! 저 거리에서, 우리를 보고 끊은 거야!”
저토록 먼 거리에서 어떻게 이곳의 다리를 끊을 수 있는지, 그 대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이쪽 땅에 설치한 톱니바퀴로!”
차라락. 차라락.
인식이 감각에 영향을 주기 때문일까. 회귀자가 그리 말하자,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아니, 울리고 있었다.
단지, 사방이 그러한 소음으로 너무 가득해서… 수천만 마리의 개미가 사각거리는 것만 같아서,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을 뿐.
우리는 어느새 톱니바퀴로 된 땅 위에 도착해있었다.
군국은 내전을 통해 건국된 허약한 나라였다. 갓난아기나 다름없는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쿠데타를 이끈 군국의 영웅, 최고의 장수 군웅(群雄)은 세상 곳곳에서 인재를 끌어모았다.
절창과 마장이야 왕국 시절부터 요인이었고, 총사는 순수한 군국 태생이다. 그 세 육장성은 어쨌든 군국의 땅에서 난 토종.
그에 대비되는, 뒤의 세 육장성은 타국에서 찾아온 외부 인사였다.
과병(戈兵), 막시밀리앵.
영궤(影櫃), 지크흐룬드.
천통(天通), 에이메데르.
누구인지, 왜 왔는지, 어떤 힘을 가졌는지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베일에 싸인 육장성.
그러나 25년 동안 군국에서 지내면서 뜬소문 하나 안 날 리가 없다. 군국에서의 행적으로 유추해보면 그들의 능력을 대강이나마 알게 된다.
과병 막시밀리앵, 그는 군국 무기개발국의 국장이다.
제식마법의 달인이며, 이치를 깨달은 기공사. 그리고 경지에 이른 연금술사.
그가 만든 무기나 장비가 시중에 나다니는 탓에, 군국민이라면 쓰던 도구에서 그의 이름을 한 번쯤 보곤 한다. 그 복잡성에 감탄을 내뱉는다.
만물을 만드는 자. 그의 능력은….
“톱니바퀴! 그는, 톱니바퀴가 부러지지 않는 한, 그것을 돌릴 수 있어! 무조건!!”
“무조건이 뭔데요!”
“말 그대로야! 그 톱니바퀴 반대쪽에 얼마나 커다란 것이 있든, 무조건 맞물려 돌아가! 톱니가 부러지지 않는다면!”
손바닥만 한 작은 톱니바퀴가 있다. 그것을 몇 개 맞물려놓으면, 점차 커지는 톱니를 차곡차곡 끼워두면 작은 톱니바퀴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거인의 팔이 움직이는 것과 같은 커다란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
라는 이야기는, 마찰이 존재하지 않으며 톱니가 가볍고 튼튼하다는 유치한 가정 아래에서만 유효한 것.
그러나 절반 정도이지만 그런 유치한 가정을 이루어내는 존재가 있다.
과병, 막시밀리앵은 톱니가 부러지기 직전까지 그것을 돌릴 수 있다. 따라서 연금레벨이 높은 튼튼한 톱니바퀴일수록 더 강한 힘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과병은 군국 최고의 연금술사다. 톱니바퀴라는 분야에 한정하면 세계 최고일지도 몰랐다.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힘. 동그랗고 요철이 있는 강철제 바퀴를 돌릴 수 있는, 그게 과연 이치인가 할 정도의 애매한 능력.
그러나 그의 연금술사로서의 재능이, 거대한 설계자로서의 이해력이 뒷받침되면.
‘전투에 관련된 능력이라면 모를까…! 톱니바퀴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에, 이번 회차 무슨 형태일지는 나도 몰라!’
톱니바퀴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
끼기긱. 정교하게 설계된 톱니바퀴의 쇳소리에서 힘으로 잡아당기는 듯한 불협화음이 들렸다.
회귀자가 낌새를 알아차렸다. 그와 동시에 나도 불길함을 알아차리고는 조종간을 움직였다.
“조심해!”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내가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그의 톱니바퀴에서 시작된 변화가 몇십 개의 톱니와 강철막대를 거치고 거쳐, 도로 발밑에서 무언가가 솟아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나는 급히 조종간을 꺾었지만, 아까 회귀자가 부순 탓에 움직임이 멀쩡하지 않다.
아니, 내가 대응하면 뭐하나. 자동마차가 못 대응하는데.
콰드득.
아래에서 솟아난 즉석 바리케이드에 앞바퀴가 통째로 짓이겨졌다. 인간에 비유하자면 훌륭한 어퍼컷. 정통으로 한 방 먹은 자동마차가 크게 덜컥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회귀자가 미리 반으로 쪼개놔서 힘이 줄어들었다는 점인가. 걸레짝은 잡아당겨도 찢어질 뿐 몸이 잡아채이진 않는다.
후우, 다행….
“안심하기는 일러, 휴이.”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옆을 돌아보았다. 금방이라도 죽을 지경인 나와는 달리, 셀피를 탄 히스토리아와 공주는 태연하게 우리 옆을 달려갔다.
백마에 타고 있던 히스토리아와 공주는 우리만큼 곤란을 겪진 않았다. 배수로는 강이라 하기에는 폭이 좁았다. 가장자리에 도착한 셀피는 가볍게 폴짝 뛰어서 배수로를 건너가고는, 종종걸음으로 우리를 따라붙었다.
말은 자동마차와 달리 점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말 팔자가 상팔자네! 내가 열심히 조종하는 자동마차는 말 그대로 가시밭길인데, 말은 여유만만하잖아!”
양팔이 묶인 히스토리아는 금방이라도 미끄러질 것처럼 보였지만, 절묘한 균형감각으로 말을 타고 있었다. 경지에 이른 무인에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가.
히스토리아는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말 위에 있으면서도 내 쪽을 더 걱정하는 듯했다.
“…나는 분명히 말했어. 휴이, 군국의 어두운 부분은 이보다 더 음침하고, 강력할 거야.”
“지금 느끼고 있어!”
“과병… 막시밀리앵 국장은 톱니바퀴로 무언가를 짜 맞추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 그의 영역 안에서는 파트락시온 아저씨도 승부를 점치기 어려워. 영역 밖이라고 녹록한 건 아니지만.”
“아니! 다 아는 사실 그만 말하고! 해결책이나 말해 봐!”
‘괜찮아. 아직 괜찮을 거야. 육장성의 자리는 허투루 딴 게 아니야. 이 정도면… 아직 협상의 여지가 있어.’
뭘 혼자 협상의 여지야. 너는 네 처지부터 자각해라. 양팔 꽁꽁 묶인 채 따라오는 주제에. 협상을 하고 싶으면 군국 말고 우리랑 먼저 하라고!
“만일, 중재가 필요하면.”
“당장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나라를 뜰 때 묶인 채 싸우는 의문의 변태 여고수가 사실 너라는 소문을 동네방네 내겠다.”
내 준엄한 경고에 히스토리아의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그것만으로는 히스토리아를 자극하기엔 조금 부족했으나, 마침 가까운 곳에 내 아군이 있었다.
“네에? 벼, 변태? 이봐요! 그 말 취소해요! 총사님은 변태가 아니잖아요! 저희를 위해 싸워줬다고요!”
“양팔이 묶인 채로 다리만 써서 싸우는 건 충분히 변태같은 기행이죠.”
“기행이라뇨! 얼마나 멋있었는데요! 꼿꼿한 자세, 길고 유연한 다리! 놀라운 균형감각! 만약 그쪽도 체술에 대해 조금 안다면 감탄했을걸요!”
“체술은 잘 모르지만 체면은 감탄스럽긴 해요. 저꼴로 저토록 당당하다니. 밧줄이 가면이라도 되나?”
“둘 다 그만해.”
공주가 흥분해서 열변을 토했지만, 원래 악의 없는 말이 가장 깊게 스며드는 법. 몸 안으로 제일 깊숙이 스며드는 액체는 투명하고 맑은 물이다. 히스토리아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항복 선언을 했다.
“…간단해. 쉬운 방법은 톱니바퀴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어려운 방법은 톱니바퀴 자체를 부수는 거야.”
“오!… 가 아니라, 당연한 말 아니야? 튀거나 부숴라? 그딴 게 조언?”
“아무리 막시밀리앵 국장이라도 5레벨 연금강은 쉽게 연성하지 못해. 4레벨도 준비해둔 재료가 있어야 하고, 손끝에서 만들어내는 연금강은 주로 3레벨.”
“3레벨 연금강도 강철이야! 사람 짓누르긴 충분할 정도란 말이야!!”
도움도 별로 안 되는 조언에 시간을 쓰는 동안 종말의 날이 찾아왔다. 털털거리던 자동마차의 우레바퀴가 최후의 단말마를 내질렀다.
군국 7대 발명품 중 하나, 스스로 돌아가는 우레바퀴. 물이 부족한 군국에서 필사적으로, 성황청의 비위를 거스르면서까지 상용화한 물건.
벼락의 힘을 모았다가 스스로 돌아가는 그건, 자동마차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앞바퀴와 뒷바퀴를 동시에 움직인다. 우레바퀴 하나가 자동마차의 동력을 책임지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박살이 나도 어찌저찌 돌아갔던 우레바퀴는, 아래에서 비스듬이 올라오는 충격에 결국 침묵하고야 말았다.
관성으로만 앞으로 나아가는 자동마차. 하지만 자동마차가 점차 느려지고 있다는 건, 셀피가 서서히 나를 앞지르는 모습을 통해 상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히스토리아가 지금 떠올랐다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아, 자동마차도 국장이 만든 거니까. 그가 무슨 짓을 했다면 자동마차가 고장났을 수도.”
“오늘 조언한 거 중 가장 쓸모있는 내용을 가장 쓸데없는 타이밍에 해?! 너 역시 스파이지!”
스파이고 뭐고, 애초에 육장성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