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8 무지개다리
전투는 끝났지만, 적을 성공적으로 격퇴한 것과 별개로 얻은 전과는 미미했다.
과병에게 상처는 입혔지만 제압하진 못했고, 천통은 소멸시켰으나 애초에 본체가 아니고. 정작 천통을 보고 격분한 티르가 어둠을 너무 많이 소모해버렸다.
애써 아낀 어둠이 아까웠지만, 티르는 그 점에 있어서 무덤덤했다.
[불가항력이었다. 천사를 사냥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화병이 나서 쓰러졌을 테니.]
“화병은 뭔 화병이에요. 그냥 머리에 피를 안 보내면 절로 가라앉잖아요.”
내 푸념과는 별개로 성황청은 티르의 발작버튼이다. 고양이가 쥐를 쫓듯, 티르는 성황청을 보면 이성을 잃을 정도로 격노한다.
그거야 이해하니까 나도 더 뭐라 하지 않는 거지만. 나는 이제 의미가 퇴색되어버린 페달을 밟으며 운전대를 돌렸다.
“어쨌든 손해가 커요. 저쪽도 육장성, 개개인이 국가적인 전력인 만큼, 기습이라도 가하면 피해가 없을 수 없어요.”
강자 한 명이 천 명과 겨룰 힘을 지닌 세상에서, 한 나라의 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존재는 무엇일까.
당연히, 그것은 게릴라다.
강한 힘을 지닌 한 명이 기동력을 흩뿌리며, 국토를 돌아다니면서 파괴행위를 저지른다. 그와 비등한 강자가 아니라면 대적할 수조차 없다. 몸 안에 든 기생충처럼, 그는 전국을 착실하게 좀먹으며 막대한 피해를 끼친다.
물론 그만한 강자를 타국에 보내 죽게 하는 건 손해지만, 역사적으로 망국의 위기에 적국에 침투해서 시간을 끈 위인들의 이야기는 대대로 전해져온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거지만, 그건 적도 마찬가지.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다간 약한 쪽부터 사냥당하기 마련이다.
나는 힐끔 이번 공격 최대 피해자를 살폈다.
“셀피….”
공주는 짐칸 한편에서 무릎을 감싸고 앉아, 애마의 죽음에 슬퍼하고 있었다.
협소한 짐칸에 말의 시체까지 싣고 다닐 수는 없어서 회귀자는 지잔의 권능을 써 셀피를 위한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공주는 무덤 앞에서 짧은 추모를 마치고, 붉어진 눈시울로 뒤를 힐끔거리면서 자동마차에 올랐다.
셀피가 죽기 전 셀피는 다 셀피 안에 있었으나, 셀피가 죽은 뒤엔 셀피의 대부분이 공주의 안쪽으로 옮겨간 것 같았다.
공주는 자동마차의 진동을 느끼면서 셀피의 위를 되새겼고,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셀피를 떠올렸으며, 무언가를 먹을 때 본능적으로 셀피의 먹이를 챙기다가 우울해했다.
“멍. 멍멍.”
아지는 말없이 공주의 곁을 지켰다. 공주의 감정을 느끼고는 위로해주기 위함이었다.
회귀자도 그쪽을 힐끔거렸다.
이전 회차의 동료를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의 이야기. 단락된 경험을 가진 회귀자는 마음과는 별개로 공주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말주변이 없어서? 그것도 있다. 성격이 그래서? 그것도 맞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질감이었다.
‘…말투나 생김새는 그때와 비슷하지만, 내가 알던 공주랑은 확실히 다르네. 그때는 동료가 죽어도 눈물을 밖으로 내보일 만큼 약하진 않았는데.’
회귀자는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다. 안타까움이나 아쉬움은 느끼지만 그에 슬퍼할 여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
마음이 닳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보다 어떤 비극이 닥치든 회귀하면 그만인 게 크다.
‘하긴, 이 시점은 아직 이르니까. 공주도 아직 여릴 수 있지.’
이러한 상처가 쌓이고 쌓여서 그때의 공주가 된 거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회귀자가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는 회귀자에게 제안했다.
“셰이 씨, 지금이 기회에요. 가서 위로라도 한마디 해줘요.”
“위로를 어떻게 해? 위로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회귀해야 달라지지. 하지만, 나는 고작 말 한 마리를 위해 회귀할 수는 없어. 애초에, 여기까지 왔다면 공주가 죽더라도 회귀하지는 않을 거야.’
“마음이 편해지잖아요, 마음이.”
“마음이 편해지면 뭐해. 그래도 셀피는 돌아오지 않는 걸.”
‘나에겐 공주의 슬픔을 없앨 능력이, 셀피를 돌아오게 할 능력이 있지만… 하지 않고 있어. 이 모든 걸 돌이킬 능력이 있으면서 입 다물고 위로만 하는 건 위선에 불과하잖아. 그러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겐 위로할 자격이 없지.’
거 참, 부정적이네.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야 있다. 아니, 애초에 나는 독심술을 갖고 있으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지.
통신병처럼 골렘 너머로 대화하던가, 막시밀리앵처럼 자기 머리에 톱니바퀴를 박아놓고는 필요할 때만 연결해서 쓰면 이해를 못 하지만… 회귀자는 기억이나 경험을 내가 볼 수 없는 곳에 두었을 뿐 생각 자체는 읽히니까.
그러니까 더 답답하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인기가 없지.”
“뭐? 죽을래?”
이런 귀는 또 밝아. 나는 은근슬쩍 목소리를 높이며 화제를 돌렸다.
“셰이 씨, 아무리 봐도 공주는 전투에 적합하지 않잖아요. 굳이 공주를 이 싸움에 데려갈 필요가 있었을까요?”
“여기까지 왔는데 돌려보낼 수는 없잖아?”
“그것도 그렇지만, 애초에 공주가 따라오겠다고 했을 때 거절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군국 내부에 침투한 첩자는 시아티만 있어도 충분히 접촉할 수 있잖아요.”
“…확실히 그 말대로긴 한데.”
‘왜 하필 말이 죽은 이 타이밍에 묻는 거야? 잠깐, 혹시? 말이 죽어서?’
회귀자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너, 혹시 말이 죽은 거로 공주의 쓸모가 다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어? 셰이 씨, 독심술 익혔어요?”
“너한테는 피도 눈물도 없어?!”
“설마요. 저도 피가 나고 눈물을 흘리는 평범한 사람이라고요. 단지, 짐승을 위해 흘려줄 건 없을 뿐.”
“진짜 너무하네! 이런 자식이 마음이 편해진다 운운했던 거야?!”
‘아지한테도 그렇고, 나비한테도 그렇고. 이 녀석은 짐승한텐 진짜 가혹하네! 만물의 영장도 이정도까지 막 대하진 않아!’
막 대하기는. 짐승에게 짐승 대접만 하면 됐지 뭘 더 바라.
회귀자는 나를 나무라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아직 너에게 제대로 설명하지는 않았지? 공주의 핏줄, 그란디오모르 왕가에 내려지는 힘이 뭔지.”
“뭐, 대강은 알고 있지만요.”
“알면 설명하기 편하겠어. 그란디오모르 왕가, 그 핏줄에 내려오는 힘… 적의를 사지 않는 능력이라고 간단하게 설명된 그 힘의 본질은, 평화야.”
회귀자는 그녀가 알고 있는 지식을 찬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서로가 서로를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약속. 사회를 이루는 힘. 우리에게는 그 힘이 필요해.”
“왜요? 혹시 평화롭게 모든 걸 끝내기 위해서?”
“정답이야. 내 목적은… 전쟁을 막는 거지,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는 게 아니니까.”
회귀자의 힘은 강대하다. 천앵과 지잔을 양손에 쥔 지금, 실제로 회귀자는 홀로 어마어마한 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
애초에 지잔은 단신으로 무저갱을 만들어낸 대종사가 남긴 유물. 거기에 천앵과 더불어 일신의 전투력을 갖춘 회귀자는, 무저갱보다 덜 신비할지언정 더욱 커다란 인명피해를 만들 능력을 지녔다.
그렇지만 하지 않는다.
그녀의 목적은 살인으론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라서.
“통신본부를 무너뜨리고 전쟁 수행능력만 분쇄하면, 통신에 장애를 겪은 군국은 커다란 혼란에 빠질 거야. 어차피 우리는 적당한 때 싸움을 멈추고 이탈해야 해. 그 상황에서 공주가 가진 평화의 힘이 빛날 거야.”
‘조금 억지스럽지만, 짐승의 왕도 확보하고 티르칸쟈카도 함께 있는 지금. 그리고… 총사까지 합류한 지금은 힘이 충분해. 할 수 있어.’
호오. 회귀자도 다 계획이 있었구나. 새삼 인생 다시 쓸 수 있어서 무계획으로 산 게 아닐까 생각했던 내가 다 미안해진다.
내친김에 궁금했던 걸 다 물었다.
“하지만 결국 왕가를 상대로 쿠데타가 일어났잖아요?”
“오죽 못했어야지. 심지어 왕가는 자기 핏줄의 힘을 대강 알면서도 시민들 앞에 얼굴을 내보이지도 않았어. 능력을 쓸 기회가 없는데 어떻게 평화로워지겠어?”
“육장성 막시밀리앵은 공주님을 대놓고 죽이려 들었는데요?”
막시밀리앵 이야기가 나오자 회귀자는 대단히 싫은 표정을 했다.
“그놈은 별개야. 그놈은… 신비에 대항하기 위한 계책으로 자기의 인지를 건드렸어.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도 안심해.”
회귀자는 천앵과 지잔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대단히 믿음직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다음에 만날 때는, 결코 도망칠 수 없을 테니까. 공주 쪽에 눈 돌릴 틈도 없을걸.”
어디까지나 전략적인 발언이었지만, 회귀자는 이야기에 몰입하느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했다.
앞좌석과 뒤쪽 짐칸이 구분되어 있다고 해서, 그 목소리가 공주에게 안 들릴 리 없다는 것을.
상실의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은 추모하는 게 아닌, 그것을 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계속 앞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백약이라고 여겨지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입술을 꾹 물고, 주먹을 꽉 쥔 공주가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공주 이야기를 하고 있던 회귀자는 흠칫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어? 들렸나? 뭐, 내가 못할 말을 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회귀자, 너는 아직 잘 모르고 있다. 네가 어떤 꼴로 어떻게 비치는지를.
공주는 좁은 짐칸에서 움직여 앞좌석 가까이 다가왔다. 앞좌석 가까이 붙은 공주는 양손을 가슴께로 모은 다음 입을 열었다.
“…공.”
“어? 나?”
회귀자가 자기 자신을 가리키자, 공주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드려요. 비록 제 힘은 미력하고, 저조차도 어떻게 쓰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저도 제 능력을 총동원해서 공을 도와드릴게요. 저를 위해, 그리고… 공을 위해.”
“어, 어? 고마워.”
‘…?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때 공주를 구한 건 내가 아니라 얘인데…?’
그러게. 최근에는 내가 공주를 도왔는데, 왜 네가 감사의 인사를 받냐.
하지만 여전히 전방주시 중이라 식은 시선을 보낼 수가 없다. 그동안 회귀자는 내가 부린 재주의 대가를 수금했다.
“그리고, 만일… 이 모든 일이 끝나면.”
뭔가를 생각하던 공주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을 주워 담았다.
“아직 그에 대해 논하는 건 이르겠죠. 일단, 저는 내통자와 연락할 준비를 하고 있을게요.”
“어? 어.”
공주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났다.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지 못한 회귀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의욕적이네? 말이 죽어서 의기소침할 줄 알았는데.”
“그랬나 보죠. 조금 전까지는.”
“기운을 차렸으면 좀 낫네.”
너도 참 순수하긴 하다. 아니, 사실 회귀자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처음일 테니까 순수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너 오히려 남자일 때 더 인기를 끄는 편이었구나?
아니, 여자였을 때도 나름 괜찮았을지도. 되도 않는 남장만 안했다면.
내 뒷좌석 그늘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티르는 참다 못해 한마디 했다.
[…휴. 수완이 너무 뛰어나지 않느냐?]
“수완이라뇨?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요.”
[발뺌은. 내가 셰이처럼 둔감하리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짧은 순간 공주를 다독이고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넌지시 제시하다니. 여간내기가 아니구나. 왕년에 계집 여럿 울린 솜씨렷다.’
억울하네. 나는 마술사다. 사람들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게 한 적은 있어도 울린 적은 없거든.
몇몇은 빼고.
“으윽….”
그때, 흑마술과 부상의 여파로 잠들어 있던 시아티가 깨어났다. 멍든 가슴팍을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킨 그녀가 흠칫 놀라 주위를 살필 때였다.
지금껏 조용히 있던 히스토리아가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천잠사라는 귀중한 밧줄이 그녀를 얽매고 있었지만 히스토리아는 지금까지 그랬든 한 점의 불편함도 없어 보였다.
그에 비해 어떤가. 시아티는 묶여있지 않았지만 히스토리아보다 훨씬 작아 보였다.
“…읏, 뭐야. 볼일이라도… 있어?”
부상당한 인간이 흔히 보여주듯, 시아티는 본능적으로 히스토리아를 경계했다. 히스토리아여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 기색을 충분할 정도로 인지한 히스토리아는, 결심을 되새기고는… 반론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당당하게 선언했다.
“시아티. 너는 여기서 빠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