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0 아군이 된 적
군국 시민의 수도가 아미텐그라드라면, 군국 군인의 수도는 이너서클 사령부이다.
구 왕국의 수도에 만들어진 아미텐그라드는 거주도시의 역할을 수행했다. 거주지, 일자리, 농경지까지. 평범한 도시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춘 채로 인구를 품었다.
그에 반해, 사령부는 도시라 부르기엔 결격사유가 많았다. 인구분포는 편중되어 있고, 자원을 끊임없이 집어삼키기만 할 뿐 다른 곳에 나누지 않는다. 오직 전쟁만을 위해 준비된 도시.
그 덕분에 군국은 규모에 비해 커다란 군대를 유지했다.
사령부에는 제철소, 군수공장, 사관학교 등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온갖 군사시설이 밀집해 있다. 군인의 관리 감독 아래 노역자들은 노동을 계속하고, 노동이 빚어낸 무기와 자재가 점차 쌓여간다.
이 모아둔 힘을 언젠가 필요한 때가 오면, 타국을 향해 쏟아내기 위해.
군국의 한가운데 있기에, 따라서 언제나 침략으로부터 안전했던 이너서클 사령부 초소.
그곳에서 한 장교는 내심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군국이 명확한 답변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장교쯤 되면 이것저것 이야기가 많이 들려온다.
무저갱이 무너졌으며, 그곳에서 사상 최악의 존재들이 풀려나고, 그들을 가두어놨던 이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사령부로 다가오는 중이다.
그의 임무는 사령부로 쳐들어오는 그들을 저지하는 것.
그에게 전해진 내용은 딱 그 정도였다.
즉, 아무것도 몰랐다는 소리다.
“두려운가, 소위?”
그의 뒤쪽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직접 들은 적은 손에 꼽지만 잊을 수 없는, 아니, 잊어서는 안 되는 목소리였다.
군기가 바짝 든 소위는 빠릿하게 몸을 돌리며 그를 향해 경례했다.
“충성!”
그곳에는 장교복을 입은 장성이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힘이 곧 지위인 군국에서는 장성의 나이대가 고른 편이다. 하지만 기공이라는 것이 익히기 꽤 까다로운 것인 만큼, 장성 중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하는 그도 벌써 서른 중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갓 임관한 한참 어린 장교를 향해 다독이듯 말했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힘을 풀어라. 쏘지 않은 총이 가장 위협적이고, 휘둘러지지 않은 칼이 가장 날카로운 법. 벌써 잔뜩 힘을 주고 있다간 정작 써야 할 때 힘이 빠지게 된다.”
“시정하겠습니다!”
“다시 묻지, 소위. 두려운가?”
그제야 소위는 아직도 첫 번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경을 칠 일이다. 소위는 급한 마음에 대답했다.
“조금밖에 두렵지 않습니다!”
“호오. 군국의 군인이 두려움을 느끼는가?”
“시, 시정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나도 역시 두렵기 때문이다.”
소위의 어깨를 두드린 장성은 뒷짐을 지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뜻밖의 대답에 소위가 당황하는 사이, 장성은 어둠 저 너머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싸우기 전부터 승패를 점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죽을지, 살지는 대강 감이 오지. 상대는 강력하고, 그에 비해 외곽 수비 부대는 부족하다. 아무리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일반적인 3레벨 수준의 부대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누가 보더라도 우리는… 버림말이다.”
냉담한 진실에 소위는 크게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게 진실이어도 동료들끼리 자조적으로 농담하는 것과 그만한 권위자가 단언하는 것은 무게가 다르다. 소위가 떨리는 목소리로 복창했다.
“버, 버림말…입니까.”
“그래. 자네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이곳을 지키고 있지만, 만일 교전이 발생해도 지원이 오리라 기대하지는 않는 편이 좋다. 옥쇄를 각오하고 싸우도록.”
버림받은 말의 심정을 알고 싶다면 딱 소위의 마음을 읽으면 될 것이다. 참담하게 고개를 숙인 그의 위로 장성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대신, 이것 하나만 약속하지. 나는 귀관의 지휘관이며, 이곳의 책임자이니. 이 초소에서 귀관과 같은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살든, 죽든.”
참담하게 떨어졌던 마음만큼 감동시키기 쉬운 게 또 있을까. 소위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장성을 바라보았다. 그는 오랜만에 진심에서 우러난 경례를 표했다.
그러기를 기대했던 장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바깥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장성은 지휘관이다.
톱니바퀴에 빗대면, 그는 톱니바퀴의 축에 해당되는 중대한 역할을 떠안고 있다. 그의 지휘 아래 수많은 톱니가 몸을 던지고 살을 문댄다. 축은 그 힘과 무게를 견디고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기에, 군국에서도 특별하게 대한다.
그렇더라도, 결국 적과 처음 맞부딪히는 부분은 최전방에서 병력을 지휘하는 소위다. 톱니바퀴의 축이 중요하다고 해도 톱니가 망가진다면 헛돌 뿐.
따라서 장성은 그들의 사기를 올려주기 위해 친히 최전방에 나타났다.
‘소위든, 장성이든. 어차피 부품인 것은 똑같지 않은가. 수가 적냐 많냐의 차이일 뿐.’
장성은 자조적으로 읊조렸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자기 처지에 대한 담담한 평가일뿐, 그에 딱히 불만을 품진 않았다.
장성쯤 되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자기가 장기말에 불과하다는 것조차도 그 일부였다. 어쩌면 그것을 아는 것조차 축복일 수 있다. 대다수 군인들은 자기가 어떤 부품인지도 모른 채 주어진 일만 하니까.
높이 올라가본 사람만이 자기가 얼마나 하찮은지 깨닫는다. 장성 정도는 되어야, 톱니의 축이 되어 중앙과 연결되어 있어야 자기 위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왕국보다는 낫지 않은가. 매 순간 호시탐탐 상대를 노리며, 약해지면 결투를 벌이려고 혈안이 된 그 끔찍한 나라보다는.’
하지만, 이라는 문구와 함께 장성은 문득 생각했다.
막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한 소위는 젊다. 그가 왕국에 살았던 시간은 태어나고 몇 년 남짓. 그야말로 왕국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던 ‘좋을 세대’다.
하지만 왕국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군국은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나야 알 수 없지. 마음을 읽지 못하는 한.’
중얼거린 장성이 시선을 바깥으로 던질 때였다.
좌우로 흔들리던 탐조등이 무언가를 포착했다. 이쪽에서 뻗어나간 다섯 줄기 광선이 어둠 저편을 비춘다. 탐조등이 무언가 움직이는 형상을 포착한 것이 틀림없었다.
장성이 손을 들었다.
“온다.”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은 잔뜩 긴장한 채 앞으로 각자의 무기를 겨누었다. 대포와 기총도 어둠 저편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명색이 군국의 군인, 두려움 앞에서 도망치는 자는 없다.
바싹 마른 입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다름 아닌 그의 몸에서 나온 소리였다. 장성은 헛웃음을 지었다.
‘장성의 위치까지 올랐지만, 그래도 격상의 상대를 앞두고 긴장하는 것인가. 훗. 위관이나, 장성이나 다를 게 없군.’
장성은 코웃음을 치며 무기 패킷을 생체 단말에 끼웠다. 그 순간 전신을 얇은 연금강이 둘둘 감쌌다. 단검을 주로 쓰는 그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방어용 장성기, 철린갑이었다.
무기의 리치가 짧을수록 한 번의 목숨을 구할 방어구를 필요로 하는 법. 그는 약간 답답한 갑옷이 주는 안정감을 느끼며 송곳니와 같은 날카로운 단검을 치켜들었다.
털털거리는 소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어둠을 두르고 있기 때문인지 아직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탐조등이 훑는 범위를 보건대, 그들이 꽤나 가까이 온 것이 틀림없었다.
‘잠깐. 어둠? 분명 전달받기로는, 탐조등으로 간파할 수 없으니 주의하라고….’
통신병으로부터 전해들은 사항을 떠올린 그가 고개를 팍 들었을 때.
털털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앞으로 당도한 건…. 어딘가에서 다섯 바퀴쯤 구르고 온 듯한 몰골의 자동마차였다.
박살 난 차체도 차체지만, 내부에 비하면 겉모습은 그나마 멀쩡한 편이었다. 안쪽은 누가 한손으로 움켜쥐고 비틀었는지 부서지고 어긋난 모양새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자동마차의 안쪽이 텅 비어 있었다.
조사를 끝마친 장성은 손을 들어올리며 외쳤다.
“위장이다! 적은 이미 야음을 틈타 숨어들었다! 이 사실을 통신병에게 전달하도록!”
“넵!”
통신용 골렘을 향해 재빨리 뛰쳐나가는 소위의 모습을 보며, 장성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안도의 한숨이라는 것을 그는 한참 뒤에 깨달았다.
살다 보면 한 번쯤 나라를 부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없는 데에서는 나랏님도 욕한다지만, 군국에는 왕이 없기에 내 투덜거림은 군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향할 수밖에 없다.
욕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원망을 쏟아붓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일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거고.
모범시민이었던 나는 나도 뭔가 일이 잘 안 풀린다 싶으면 군국따위 망해버리라고 저주하면서 우울한 마음을 달래고는 했다.
당연히 농담이다. 평범한 개인은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없으며, 절대 이룰 수 없는 일은 농담이 될 요소를 가진다. 나에게 있어 군국이 망해버리라는 악담은 어디까지나 농담의 영역에서 머무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군국을 정말 멸망시킬 수 있는 존재와 함께 있었다.
사령부 인근에 위치한 자동마차 조립 공장.
“군국의 전투 방식은 기동전. 통신병, 자동마차, 명령체계. 세 가지로 명령 수행 속도가 명령 하달 속도를 따라잡지. 자동마차의 존재는 그에 필수.”
불타 쓰러지는 설비 공정을 배경으로 한 채, 그곳에서 걸어나온 히스토리아는 손을 내뻗었다. 이글거리는 불길이 그녀의 손에 달린 마력초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얼굴에 음영을 드리운 채 마력초를 문 그녀는 담담히 설명했다.
“이 조립 설비는 쉽게 복구할 수 없어. 부품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 조립공정을 거치지 않으면 쇳덩어리일 뿐. 조립 공정 자체를 부수면 공장이 마비되지. 막시밀리앵 국장 정도 되는 자가 있다면 모를까, 복구하려면 공병 다섯 대대가 붙어야 할걸.”
마침 그녀의 눈에 완성되기 직전의 자동마차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자동마차를 옆으로 뻥 걷어찼다. 군홧발이 새겨진 문짝이 되튕겨나오고, 삐거덕거리며 옆으로 주르륵 밀려난 자동마차는 벽에 부딪히고는 와장창 부서졌다.
“여기가 없다면 사령부의 병력운용에 차질이 생기겠지.”
마지막 하나까지 치운 히스토리아가 군홧발을 또각거리며 걸어갔다.
군국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으면서, 누구보다도 군국에 대해 해박한 히스토리아가 그 힘과 지식으로 직접 파괴 행위를 자행하니 연약한 강철 기계장치는 버티지 못했다. 히스토리아의 체계적인 폭력 앞에서 무른 연금강은 부러지고 짓이겨졌다. 연금술(물리) 앞에서 아무것도 원형을 유지하지 못했다.
거대한 횃불이 되어 밤을 밝히는 공장을 뒤로한 채, 히스토리아가 문으로 걸어나왔다.
그녀의 곁에서 파괴 행위를 도왔던 회귀자는 뚱한 얼굴로 대꾸했다.
“이거 아무런 의미가 없다니까? 진짜 발목잡기 수준이야. 자동마차 따위, 통신병들이 다른 곳에서 아득바득 긁어올 거라는 말이지. 통신병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통신병을 어떻게 할 수는 없어. 육장성인 나도 통신병이 어디서 일하는지 모르니. 아마 당사자를 제외하면 군국의 그 누구도 모르지 않을까.”
히스토리아는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에도 별로 유감스럽지 않다는 태도였다. 회귀자가 떠보듯 물었다.
“모르는 것치고 통신병을 묘하게 신경 쓰는 눈치던데? 너야말로 무언가를 아는 거 아냐?”
“…몰라. 그러니까, 신경 쓰는 거지.”
히스토리아는 담배연기를 후, 내뿜으며 중얼거렸다.
“분명 존재하는데, 내 눈에는 보인 적 없다. 이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그걸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더라. 대위라고 해봤자 더 나을 것도 없는 처지인데 말이야.”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어디 숨어있거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로 지내고 있다는 뜻.
창문 없는 방에서 오직 골렘을 통해 대화한다는 사실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히스토리아는 그와 비슷하게 추측했다.
“물론, 네 말대로 통신본부를 공격하면 차질이 생기긴 하겠지. 통신본부가 무너지면 송신할 수 있는 정보량이 급감하니까.”
“그래! 거기부터 쳐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 과정은 필요해. 주요 시설을 전부 잃고 전쟁을 벌일 수는 없어. 필시, 군국은 사령부에서 정예병력을 파견할 거야…. 그러면 그때, 텅 빈 사령부를 습격하면 돼.”
얼핏 보면 합당한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회귀자도 나름 산전수전을 다 겪은 위인이다. 그녀는 히스토리아의 제안 속에 숨은 의도를 파악했다.
“전투를 벌이지 않으려고 유인책을 펼치는 거지?”
방향을 돌려 자동마차 조립 공장을 습격한 것부터, 일부러 설비만 집요하게 노리는 것까지. 히스토리아는 노골적으로 전투를 피하고 있었다.
“흥. 대단한 평화주의자시네.”
“전쟁을 막겠다는 꼬마가 같이 있으니, 거기 옮았나 보지.”
대꾸할 말이 없던 회귀자가 매섭게 시선을 돌렸다. 히스토리아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둘은 잠깐 서로를 노려보았고, 각자 못마땅한 듯 고개를 홱 돌렸다. 회귀자가 물었다.
“그 녀석은?”
“휴이를 말하는 거라면, 그는 노역자들을 모으러 갔어.”
“왜?”
다 타들어간 마력초 꽁초를 툭 뱉으며 히스토리아는 고개를 중얼거렸다.
“또 무슨 속임수를 쓰려는 거겠지.”
군국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군국의 공장에는 오직 톱니바퀴뿐이라고.
당연히 공장에는 노동자가 필요하다. 아무리 정교한 톱니바퀴라도 유연성은 갖고 있지 않다. 온갖 상황에 적합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곳에는 인간을 쓰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왜 톱니바퀴뿐이냐고?
그야, 인간이 톱니바퀴의 일부가 되어 일하기 때문이지.
톱니바퀴가 삐걱거리고 조립되다 만 자동마차가 벨트를 따라 흘러오는 좁은 공간, 기지개를 피다간 팔다리가 잘려나갈지도 모르는 톱니바퀴 틈으로 들어간다. 인간의 심박은 제각각이나 공장의 심박은 만인에게 일정하다. 똑딱똑딱, 사방이 똑같은 박자로 맞물리는 어둠 속. 노역자는 주어진 자리에 눕거나 쭈그려 앉아서, 톱니바퀴를 따라 전달되는 부품을 제 시간에 끼워넣어야 했다.
놓치면 벌점이다. 모두가 똑같은 박자에 맞추어 일하기에, 한 명의 사소한 실수도 전체의 지연으로 이어진다. 감독관이 노성을 지르며 다그치고, 다음 차례의 노역자가 차게 식은 눈으로 보는 가운데 실수를 정정해야 한다.
이토록 가혹한 일이기에, 군국은 죄를 지은 죄인만 이너서클 노역장으로 보내며.
이토록 가혹하게 일을 시키기에, 이너서클 노역장은 최고의 생산량을 자랑했다.
살아남은 사람을 모으던 나는 저쪽 구석에서 느껴지는 생각을 읽고는 다가갔다. 설비 한구석에 사람들이 숨어있었다. 나는 발소리를 크게 내며 다가가 그들의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히익!”
“자자! 어서 나오세요! 다 나오랬더니 왜 입을 꾹 다물고 계셔!”
내가 재촉하자 노역자들은 울먹거리면서도 밖으로 나왔다. 군국의 지시에 그대로 따르기를 수년. 그들에겐 반항심의 싹조차 없는 상태였다.
기어나오는 사람들을 한구석으로 몰았다. 이 밤에도 공장을 굴리고 있던 야간조 이백여 명. 나는 잔뜩 겁먹은 채 웅크린 사람들을 향해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자, 다들 아직 이해를 못 하신 모양인데.”
홱. 양손을 뻗어 격납고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직 반출되지 않은 자동마차 200대가 주인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여러분 모두에게 자동마차 한 대씩을 그냥 드린다니까요? 아무런 조건 없이! 와, 여러분들이 죽을 때까지 일한 다음 흡혈귀로 되살아나 30년 정도 더 일해야만 온전히 손에 넣을 수 있는 자동마차를 손에 쥘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노역자 몇몇은 솔깃해했고 몇몇은 내 저의를 의심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잔뜩 겁을 집어먹고 귀를 닫은 채 내가 떠나기만을 기다렸다.
“우리를 내버려 둬….”
이너서클의 노역자는 대부분 범죄자다.
범죄자라고 다 나쁜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엄격한 규칙이 지배하는 군국에서, 범죄자란 모범시민까진 아닌 사람을 총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물건을 훔친 사람, 이웃을 때렸던 사람, 사기로 돈을 긁어모은 사람, 과실로 사람을 죽인 사람, 밀수업에 종사한 사람, 군국에 반감을 갖고 레지스탕스에 가입하려다 함정에 빠지고 만 사람.
한때는 법조차 무시할 정도로 용감했으나, 지금은 순순한 노역자가 된 범죄자들이 잔뜩 움츠린 채 수동적으로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그 모든 것을 벗어던질 기회를 드리고 있어요! 당신들 눈앞에는 자동마차가 있고, 당신들을 억압하고 가두던 병력은 전부 도망쳤어요! 자, 잃은 것은 쇠사슬이고, 얻은 것은 이 세상을 누빌 자유! 자동마차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아요!”
“…도망치다가 잡히면?”
누군가가 최악의 가정을 중얼거린다. 누가 한번 시작하자, 봇물이 터지듯 노역자들의 중얼거림이 쏟아진다.
“더 안쪽으로 끌려갈 거야. 다, 다 죽을 거라고.”
“재료가 되어 사라질지도 몰라…. 아, 안돼. 안쪽은.”
“이건 불합리해. 공격한 건 너흰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건 너희 때문인데.”
이제는 원망을 우리쪽을 향해 쏟아낸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과거를 미화한다.
우리끼리 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찾아와서는. 너희만 없었어도 내일은 어제와 똑같았을 텐데.
이들은 죄를 지어서 이곳으로 끌려왔다. 반항하다가 더욱 끔찍한 처지에 처해진 이들을 보고 두려움에 떨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군국에 복종했다.
범죄자를 계도하는 군국 교육대가 만들어낸 가장 모범적인 성공작. 교육대 갱생 프로젝트의 진정한 성공 사례.
존엄을 짓밟아가며 만들어낸 살아있는 톱니바퀴.
하지만 이들을 여기 남겨두면 안 된다. 히스토리아나 회귀자는 설비만 부수었지만, 사실 이들이야말로 이 공장의 핵심 부품. 이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공장 복구 속도도 빨라지겠지.
자, 진짜 완벽하게 부수기 위해선.
나는 작게 헛기침을 시작하고는, 그들을 설득할 말을 꺼냈다.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