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263화 (263/384)

EP.263 절반의 고백

예언자의 숙명은 불신.

신화, 전설, 동화. 전해지는 그 어디에서도 예언은 지켜지지 않는다. 위험을 피하라고 경고하면 자석처럼 그 위험을 향해 들러붙으며, 계시를 따르라 충고하면 코웃음을 치면서 그것을 짓밟는다.

나를 예언자라 확신한 지크흐룬드는, 내 친구들을 향해 불신을 심었다.

“봐봐. 육장성의 작전도, 변장도 단숨에 간파하는 휴이가 어째서 하멜른의 비극은 막지 않았지? 그의 능력과 지식이라면, 니콜라스의 계획 정도는 사전에 알아차렸을 터인데.”

“궤변은…!”

“애초에. 니콜라스가 금기를 저지르려던 이유? 휴이가 그 자질에 비해 재능이 부족해서지. 니콜라스가 금기를 저지르려는 때 가장 활약한 사람? 너희를 이끌고 니콜라스를 무찌른 휴이지. 심지어 그 결과, 휴이는 히스토리아라는 폭탄을 군국의 최심부에 심어 넣는데 성공했어. 가장 결정적인 순간 개인적인 정 때문에 군국을 배신할 배신자를 육장성으로 만든 셈이지!”

시아티는 이미 해방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시아티는 그를 공격할 생각도 없이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뭔가 표현하고 싶어도 언어로 빚어낼 수 없어서, 감정이 목에 걸린 듯 괴로워하는 얼굴로.

‘먹혀들었군. 아니, 그럴 수밖에. 예언자는 언제나 증오와 박해의 대상이었다. 성황청이 득세하면서 달라진 거지….’

자기 의도가 충분히 먹혀 들어갔다는 것을 확인한 지크흐룬드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 간단한 논리다! 만일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전지나 예지에 가까운 힘이 있다면, 혹은 그에 가까운 직관이 있다면. 그는 하멜른에서 왜 아이들이 죽도록 방치했지? 총교관이 금기를 저지르려는 계획을 미리 깨닫지 못했지? 당연히, 그가 모든 일을 의도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어!”

“아니야!”

히스토리아는 비교적 상황이 나았다.

그녀의 후회는 그때 움직이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향한 것. 내가 원흉이든 뭐든, 그녀의 힘으로 막을 수 있던 비극을 흘려보낸 것에 대한 죄악감이었으니.

그러나 나를 향한 감정이 아까와 똑같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듣지 마! 이건 그의 계략이야! 내부 분열을 일으키려는 거라고!”

“나의 계략보다 먼저 시작되었던 그의 계획. 아니, 운명이라고 하나! 나를 걸고 넘어기지 전에 그부터 추궁해야 하지 않겠어, 히스토리아?!”

히스토리아가 지크흐룬드의 목소리를 가리려는 듯이 크게 외쳤다. 그러나 연기로 다져진 지크흐룬드의 발성은 어디 가지 않았다. 여전히 귀를 파고드는 그의 목소리에 히스토리아는 넌더리를 내며 나를 붙잡았다.

“휴이! 빨리, 말해줘! 너는 휘말렸을 뿐이잖아!”

나를 믿고 싶어 하는 히스토리아조차도, 스멀거리는 의심을 지우지 못한다. 점차 쏟아지는 원망과 불신의 시선. 이대로 입을 다물고 있어도,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의심의 늪.

솔직히, 휘말린 거 맞다. 하지만 피할 기회는 얼마든 있었고, 도망칠 방법은 수두룩했다.

그래도 나는 계속 하멜른에 있었다. 니콜라스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을 알고도 그의 계획에 따랐다.

왜냐면.

“휘말렸지.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어. 나는 니콜라스의 계획을 알고 있었거든.”

“…휴이?”

“그래도 따랐지. 왜냐면 그게 니콜라스의 바람이었으니까.”

히스토리아는 확연히 달라진 내 태도에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나는 히스토리아를 제치고 한 걸음 내디뎠다.

혼란스럽다 못해 공포에 휩싸인 시아티와, 잔뜩 신이 난 지크흐룬드에게.

‘드디어 말할 생각이 들었구나? 그래, 이제는 밝히지 않고 빠져나가기 어려울 거야. 남의 힘만을 이용해서 원하는 바를 이룩해온 네가, 신뢰를 잃는 건 치명적일 테니!’

맞는 말이야. 하지만 다른 게 하나 있어.

지크흐룬드의 추측이야 어쨌든, 실제로 나는 독심술을 조금 할 줄 아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예언처럼 거창한 신비 따위는 몰라.

그러나 꼭 정직할 필요는 없다고. 내가 탄탈로스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아?

“지크흐룬드 씨. 그가 금기를 저지르기 전까지 제가 왜 니콜라스를 가만히 놔뒀을까요? 한번 맞춰보시겠어요?”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겠지.”

“아니요. 그도 그의 바람을 이룰 기회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에요.”

“…바람?”

그래, 바람.

니콜라스는 분명 계산적이며 자기 기준 이하의 인간을 하찮게 취급하는 인간이었지만,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나에게 자상한 교관이었다. 금기를 저지른 것도, 차라리 자기 손을 더럽히고자 억지로 무대를 만들어준 것.

아, 물론 전혀 고맙지 않다. 그는 자기 욕망에 충실했을 뿐이니까.

“군국에 공헌하고 싶었죠. 힘의 크기만 키운다면 육장성, 어쪄면 그 너머를 바라볼 수도 있는 제게 강제로 힘을 안겨주고자 했어요.”

“그러나 너는 받지 않았지. 성황청은 금기의 존재를 배격하니까.”

“아니요. 달라요. 그게 금기라서가 아니라, 그건 나를 변화시킬 일이니까. 자신을 지켜야 할 항상성을 가진 저는 그에 저항해야 했죠. 그래서 같은 목적을 가진 친구들과 힘을 합쳐서 그를 저지했어요.”

니콜라스는 자기 뜻을 관철하기엔 힘이 부족했다. 그래서 패배하고 말았다. 아이들이 교관을 상대로 고무적인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승리했음에도 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잃었죠. 이 나라에 인정받고 싶어서 졸업실습에 참가했지만 그들이 깨닫게 된 건 나라가 그들을 버렸다는 사실뿐. 모두 군국을 원망하고 증오했어요.”

지크흐룬드의 웃음이 서서히 멈췄다.

“…그래서, 그들의 바람대로 군국을 무너뜨리러 왔다?”

“아니요.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바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극히 한정되어 있어요. 나라는 너무 크고 한눈에 보이지 않아서, 당사자도 나라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죠. 상대를 모르는데 어떻게 증오할 수 있겠어요? 왕국이라면 왕을 치면 그만이지만, 심지어 군국은 왕이 없는 나라인데.”

“그렇다면? 그들의 바람은 뭐였지?”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하고, 가장 부담스러운 바람이죠.”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많은 바람이기도 하다. 나는 눈을 내리깐 뒤 중얼거렸다.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그저 자신이 기억되었으면 했어요.”

더 살아갈 의욕도 힘도 없어서 스스로 죽더라도, 이 죽음이 무의미하지 않기를 소망했다. 누군가 자신의 고난과 절망을 이해해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천국도, 지옥도 없죠. 사후세계란 존재하지 않아요. 당연히, 그들 자신을 제외하면 그들을 기억해 줄 이는 없어요.”

죽음은 그 자체로 끝.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죽음은 정지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굴러가던 돌이 무언가에 부딪혀 멈추는 것처럼, 떠다니던 구름이 물방울로 변해 떨어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결과. 아니, 자연 그 자체.

그곳에 억지로 부여한 형이상학적이며 초현실적인 의미는 허상조차도 못 되는 망상.

그런데 나는 그 바람마저 저버릴 수 없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납골당. 잊힌 이들을 추모하는 도서관.”

거쳐 간 이를 전부 기억한다. 그게 바람이었기에.

죽음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죽음을 각오했다는 외침은 허울 좋은 핑곗거리. 누구도 갚을 생각을 않는 공수표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누군가 천천히 그 무책임한 빚을 갚고 있다. 그것이 바람이기 때문에.

“피리를 부는 사나이.”

헤매는 아이들을 이끌고, 강적과 맞서 싸울 방법을 일러주었다. 그리고 죽은 아이들을 기억하며 되뇌인다.

“동방에서 온 박사. 지나가던 선비. 떠돌이 용병. 은둔 현자. 탁발승. 길손. 그런 이름으로 불려왔던.”

금기를 저지르고, 금단을 넘고, 금제를 어겨서라도 이루고자 하는 욕망.

평범한 발상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어낼 방법을 속삭이는. 동화나 연극, 전설 혹은 서사시든 이야기든 하나는 있을 법한 등장인물.

“평범한 사람입니다.”

모든 진실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말한 내용은 전부 진실이다. 아무리 의심하고 파헤쳐도 모순을 찾을 수는 없을 거다.

결국 모순점을 찾아내지 못한 지크흐룬드는 일단 내 말을 진실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비슷한 전승은 몇몇 있다. 악몽을 불러일으키는 궤짝이나,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 등. 하지만, 한 인간이 그런 종류의 신비를 지닐 수 있던가…?’

내 정체성은 독심술사. 나는 인간의 노골적인 바람을 마주하기에, 가능하다면 그 소원을 들어주게 된다. 어디까지나 가능하다면 말이지만.

그러니까 독심술을 숨기고서, 그 점을 부각하면 거짓말은 아니게 되지.

지크흐룬드는 아까까지 그가 주장했던 내용에 약간의 미련을 갖고 나를 떠보았다.

“…성황청이 보낸 예언자가 아니라고?”

“예언자일 리 없잖아요. 처음의 성녀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이후 오직 성녀만이 예언할 수 있게 되었는데. 남자인 제가 무슨 수로 예언하겠어요?”

“그딴 건 꾸며내면 그만이야. 성녀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든가, 아니면 계시를 받고 움직이고 있다든가. 혹은 모종의 수로 성별을 속였다든가. 속일 수단은 많아.”

자기의 역용술 능력 때문인지, 아니면 직업병인지. 꽤 열린 사고를 갖고 있네. 회귀자가 앞에 있었다면 남장 사실이 들통났겠는걸.

“와, 제가 사실 여자, 그것도 성녀라고요? 제 입장에서는 마지막 수단이 가장 매력적이네요! 살면서 한 번쯤 여자의 몸을 경험하고 싶었거든요! 아!”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지크흐룬드를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눈앞에 몸을 바꾼 경험자가 있네요. 조금 전까지는 히스토리아였다가 캐러팔드의 걸로 바꾸었죠? 어때요, 남자가 되었을 때 기분이? 아니, 여자가 되었을 때의 기분을 물어봐야 하나? 지크흐룬드 씨, 당신의 원래 모습은 뭐죠?”

“…본래라면 밝혀서도 안 되지만, 네 앞에서 숨기는 의미는 없겠지. 죽은 친구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예의가 아니기도 하고.”

이게 과연 사람이 할 소리인가 의심스러운 말을 중얼거린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으며 골격을 바꾸었다. 우득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기공이 붙잡고 있던 뼈와 근육이 재배치되었다. 머리카락이 뿌리부터 새까맣게 색을 바꾼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건 변신하는 것보다 몇 배는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평소에도 자기 '원래 모습'을 계속 되뇌고 있기 때문이리라.

모범적일 정도로 말끔한 인상의 사내가 나타났다. 평범하게 생겼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나쁜 의미로 새하얀 도화지 같은 남자. 키도 평균 크기. 체형은 약간 마른 편. 내가 지크흐룬드의 생각을 읽을 때마다 자꾸 아른거리던 '원래 모습'….

“여기까지 와서 속이지 말고. 그게 어떻게 원래 모습이에요?”

이 아니다.

“특색없는 얼굴. 평균적인 키. 적당히 마른 몸. 기공의 달인이 저렇다고? 에이, 그럴 리가. 아무리 봐도 저거, 아키 아바타의 기본 설정값이잖아요?”

지크흐룬드는 즉답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이게 나, 군국 육장성 지크흐룬드의 원래 모습이다.”

“아. 그런 설정?”

인간은 자기의 얼굴을 마음 속으로 그리지 않는다. 왜냐면 자기 얼굴은, 자신의 몸은 언제나 거기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지크흐룬드가 계속 자기 정체를 되뇌이며, 머릿속으로 그 자신의 원래 육체를 잊지 않도록 떠올린 건.

“그러면 육장성이 되기 전에는요? 그 전엔 당신이 어떤 이름이랑 어떤 얼굴로 살았는데요? 아니, 당신이 역용술을 배우기 전에는 어떤 얼굴이었는데요?”

지크흐룬드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백지같은 얼굴이 울컥거리며 언짢다는 감정을 그렸다. 참,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는 딱 맞는 얼굴이다.

그렇기에 진짜일 리 없다.

나는 얼굴에서 미소를 싹 지우며 그를 추궁했다.

“당신, 도대체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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