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8 축복받은 나라, 저주받은 인간 - 1
천사의 등장은 너무 요란스러웠다.
눈부신 빛과 함께 등장해서, 사람 하나를 가볍게 내던졌다. 평범한 사람도 아니다. 단신으로 전황을 뒤바꾸는 최강자, 육장성 총사 히스토리아다.
그러나 아득한 괴력 앞에서는 히스토리아의 몸도 가죽 공이나 다를 바 없다. 히스토리아의 몸은 창문 없는 모듈 안에서도 세찬 바람을 일으켰다. 서있던 골렘이 일제히 쓰러지고 종이뭉치가 나부끼는 가운데 히스토리아가 데굴데굴 굴러가서는 벽에 부딪혔다.
압도적인 위용을 선보인 에이메데르는 통신병들의 앞에 깃털처럼 부드럽게 내려섰다.
통신병들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서로 일제히 고유마도를 펼치고는 빠르게 의견을 나누었다.
‘에이메데르? 하나, 모듈 아이에서는 에이메데르를 소환하지 않았을 터인데…?’
‘타 모듈의 에이메데르입니까?’
‘반박합니다. 이너서클의 중심부 좌표에 에이메데르를 관제 관측할 수 있는 모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효사거리 밖입니다.’
‘주의하십시오. 저 모습은 에이메데르의 규격이 맞지 않습니다. 불량일 가능성이….’
『감히 옳고 그름을 가늠하다니. 불경하도다.』
명백히 그들의 통신을 읽은 듯한 발언. 그것을 깨달은 통신병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며 통신을 멈추었다.
그동안 에이메데르는 성광을 내뿜는 날개를 하나씩 접으며 그들을 굽어보았다.
『역시, 인간이 빚은 것은 불완전하다. 상자에 넣어 애지중지해도 결국은 바깥을 향해 손을 뻗기 마련이니. 아무리 비슷하게 만들어도 똑같아지지는 않는구나.』
지금까지 등장했던 에이메데르는 통신병다운 단조로운 대화를 했다. 정보를 전달하고 주어진 임무만 완수했지, 거기에 어떤 타의도 보이지 않았다. 천사보다는 사물 혹은 시스템 비슷한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날개 달린 천사는 달랐다. '진짜 에이메데르' 지극히 드높은 천상에서 내려온 사자처럼 엄숙하고 위압적인 어조로 한탄했다.
『안타깝도다, 안타깝도다….』
“통신병? 아니, 다릅니다!”
“군국의 목소리…?”
그 한탄을 들은 통신병들은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아이들처럼 서로 눈치를 보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일제히 에이메데르로부터 멀어지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파로 만들어진 울타리 속에서 나와 에이메데르가 독대하는 꼴이 되었다.
아니, 한 명 더 있었다.
조금 전, IA의 주박에서 풀려나 자유를 찾은 한 에이비 대위는 갓 태어난 것처럼 휘청거렸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이었으나, 에이비 대위는 기어코 홀로 서서는 가쁜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유엘…?”
에이비 대위의 눈동자에는 생기가 돌아왔다. 이제는 온전히 자기 의지로 움직이며 말하고 있다. 하지만 타이밍이 안 좋다.
하필, 자유를 찾은 시점에 심판의 천사가 강림하다니. 운명이 어찌 이토록 가혹할 수가.
『가장 성공에 가까웠던 작품은… 내가, 군국이 유심히 지켜보던 유일한 결과물은, 이제 사정없이 더럽혀졌도다.』
“통신병 유엘. 맞습니까? 어째서 당신이…?”
『귀관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본관은 일개 통신병으로서 존재했으리라. 고독한 방의 주민으로서 귀관들과 같이 살아갔을 것이다. 하나.』
에이메데르는 한탄을 거듭했다.
고작 그것 뿐인데 솜털 하나하나가 곤두선다. 우러나오는 공포가 전신을 잠식한다. 나의 삶과 죽음이 오로지 저쪽의 의지에 매달려 있다. 코끼리 앞의 개미처럼, 차라리 저쪽이 나에게 무관심하기를 바랄 뿐이다.
『배척한 야만이 이 나라를 침범하는 것은, 인류사의 커다란 퇴보. 이는 결코 좌시할 수 없음이니.』
하지만 그렇게 형편 좋을 리 없지. 어떻게든 부딪힐 거야.
『내가, 군국이 친히 모든 것을 바로잡겠노라.』
몸이 무겁다. 호흡도 가쁘다. 빛에는 무게가 없을 텐데, 빛에 닿은 부분이 물에 잠긴 것 같다. 이 정도의 기세는 무저갱에서 티르를 독대했을 때나 느꼈는데.
여기서 더 문제인 건. 나에 대해 무관심했던 티르와는 달리 저 천사는… 100% 내 적이라는 거지.
“뭔가 하나 숨겨둔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야. 강철 상자 안에 진짜 천사를 숨겨두고 있었네.”
나도 말하고 나서야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본능적인 공포가 내 몸을 붙잡고 흔들고 있었다.
절대 싸워서는 안 된다고. 눈앞의 천사는 네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존재라고. 머리로 알아차린 사실을 본능이 보증한다. 본능과 이성의 극적인 의견 일치가 이루어졌다.
진짜 '에이메데르'는, 내가 만났던 그 어떤 상대보다도 강력하며 위험하다.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점에서 특히.
저 천사는 IA의 몸을 빌렸지만, IA의 몸을 도구로 삼아서 말하고 행동할 뿐 본체가 아니다. 따지자면 인간의 몸을 골렘으로 삼아 현현한 셈이다. 이 자리에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헤아릴 수가 없다.
“하아. 산 너머 산이라니. 육장성 대다수를 따돌리고 왔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왜 점점 까다로운 상대가 나타나냐고….”
이 빌어먹을 나라와는 처음 마주칠 때부터 인상이 안 좋았다.
군인은 명령에 따르는 기계나 마찬가지고. 학교도 정해진 커리큘럼과 평가기준에 따라 칼처럼 자르고. 개개인에게 허락된 권한이 적고 범위가 좁아서 독심술사가 파고들 여지가 없었지. 독심술사는 나라의 마음까지는 읽지 못하니까.
독심술사가 활약할 여지가 없는 비인간적인 나라, 군국.
그 와중에도 육장성을 다 제치고 잠입했더니 마지막은 천사야? 진짜 끔찍하네. 마치 나를 저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아. 혹시 그건가.
“아니. 반대로 생각해야 할까요.”
이 나라 자체가 나를 저격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구나…! 고 말할 만큼 자아도취 하지는 않았다. 본질적인 의문점을 깨달았을 뿐이다.
마침 내 앞에는 그 의문을 해결해줄 존재가 있었다.
“이 나라는 철저하게 인간을 배격하고 있어요. 결벽증적으로. 혹시, 당신은 이 나라를 만들 때부터 일부러 인간을 배제했나요?”
에이메데르는 잠깐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생각을 읽을 수 없다.
아니, ‘지금은’ 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는 이 나라의 생각을 읽지 못했다.
군국은 인간이 아니기에.
『군국은 인간이 아니다.』
네가 독심술사냐?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하면 어떻게 해.
“군국이 인간이 아니라면, 당신도 군국은 아니겠네요.”
에이메데르는 내 페이스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저 관객을 애태우는 약장수처럼, 에이메데르는 숨 막힐 듯한 긴장감 속에서도 느릿느릿 뜸을 들이며 말했다.
『나라는 국민보다 중요하다. 법규는 목숨보다 우선한다. 정의는 자의보다 존귀하다. 이상은 현상보다 선재한다.』
“해묵은 군주론인가요? 요즘 천사는 무료로 강의도 해주나 봐요.”
내 비아냥에도 에이메데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신은 인간보다 위대하다. 그것이 왕이라고 하여도.』
“유신론자의 관점이라 이해하기 힘드네요. 무신론자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보시죠?”
대답이 없다. 대신 몸을 짓누르는 중압감이 더해진다.
쩝. 이거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네. 아무래도 광신도 그 이상처럼 보이는데. 슬슬 준비를 해야겠지.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나에게는 IA의 생각이 읽힌다는 점이다.
IA는 조종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맞다. 그녀는 지금 골렘과 다를 바 없는 상태다. 자기 고유마도를 펼친 채 에이메데르에게 제 몸을 내어주고 있다.
그러나 골렘과는 달리, IA는 인간이다. 골렘 전문가가 슬쩍 보고도 귀신같이 고장 난 부분을 알아맞히는 것처럼, 인간의 몸이라면 내가 읽을 수 있다.
요컨대.
공격하기 직전까지는 그 낌새를 알아차릴 수 없지만.
공격을 개시하여 몸이 움직인다면. 그 순간은 읽는다.
『…꺼져라, 야만! 원년에 쫓겨났던 그때처럼!』
지금처럼!
일갈과 함께, 에이메데르가 빛살처럼 쏘아졌다. 거의 동시에 나는 낌새를 읽고 외쳤다.
“삐 대위! 비켜요!”
에이비 대위를 난폭하게 발로 밀어붙이며, 나는 검집에서 검을 뽑듯이 카드뭉치에서 널따란 천을 뽑아냈다.
다이아몬드 퀸, 천의 여왕. 수많은 조명으로부터 티르를 지켰던 두꺼운 천.
뒷면이 밖으로 오도록 펼치면 암막이지만… 그걸 뒤집으면!
“무지개 반사!”
나와 에이메데르 사이에 갑작스럽게 두꺼운 천이 갑작스럽게 펼쳐졌다. 에이메데르에게는 거울이며, 나에게는 암막인. 안과 바깥이 다른 천이다. 시야가 가려지고, 빛으로 만들어진 검이 경면에 충돌한다. 암막으로 가려진 시야 주변부가 벼락이 치듯 번쩍거렸다.
하하. 미리 슬금슬금 연금변환을 해놔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진작 죽었겠구나.
뭐….
지금도 딱히 막아낸 건 아니지만.
『하찮도다.』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암막이 움푹 파인다. 내 쪽에서 보기에, 그건 천의 여왕이 나를 때리러 오는 것처럼 보였다.
천의 여왕 정도 되는 튼튼한 천이라면 나름의 저지력이 있다. 진지하게 화살과 총탄 정도는 다 튕겨낼 수 있다고 자부한다. 실제로 아지가 입에 물고 다 튕겨내기도 했고.
그렇지만 천사의 완력은 화살과 총탄 그 이상. 감히 비교하기도 미안한 종류였다.
암막을 그대로 꿰뚫고 불쑥 튀어나온 손이 내 복부를 가격했다.
가장 먼저 고통을 느낀 건 머리였다. 몸통이 갑자기 뒤로 쑥 밀려난 탓에, 따라가지 못한 머리에서 핑 도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아, 망했네.
벌써 이 정도면… 배는 얼마나 아플까.
빙글빙글 돌아서 그런지 머리가 어지럽다. 몸이 날아간다기보다는 뒤쪽으로 추락하는 기분이다. 이대로 부딪히면 뼈도 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했던 충격은 없었다. 딱딱한 벽 대신 부드러운 무언가가 내 등을 감싸고, 그 뒤 종이로 몇 번 거른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히스토리아가 날아가던 나를 받아내고는 대신 벽에 부딪힌 것이다.
“휴이! 괜찮아?”
후우. 덕분에 살았다. 인간의 공격은 대충 맞는 부분을 예상할 수 있어서 피하거나 흘려내는데, 넘어지거나 벽에 부딪히는 건 어떻게 될지 몰라서 곤란하다는 말야.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끙끙거렸다.
“끄아아아…. 젠장, 엄마한테도 맞아본 적 없는 몸인데….”
“괜찮은 모양이네.”
히스토리아에게는 잘 전해졌다. 히스토리아는 나를 무성의하게 뒤로 떠밀었다.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나는 그대로 뒤로 나뒹굴고 말았다.
그렇지만 무어라 따지기는 어려웠는데, 앞쪽에서는 날개를 펼친 천사가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던 탓이다.
추격한다면 히스토리아가 나를 잡았던 그때가 기회였건만, 에이메데르는 그러지 않았다. 날개를 펼쳐 쫒아오는 대신 히스토리아를 눈에 담으며 한번 더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