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6 톱니바퀴로 만들어진 세상 - 3
앞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강철의 팔. 압도적인 중량감이 느껴진다. 겁에 질린 몸이 제멋대로 떤다.
‘톱날을 놓거나, 아니면 쥔 채로 받아내거나. 이지선다라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톱날을 놓으면 내 머리를 내리찍을 거고, 계속 붙들고 있으면 강철 팔이 나를 짓뭉갤 거다. 상대가 강요한 이지선다에 정답은 없다.
나는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
톱날 안쪽에 손가락을 걸었다. 바깥쪽은 날카로워도 안쪽은 무디다. 베이지 않게 조심해서 움켜잡고는, 막시밀리앵의 고유마도를 훔쳐 사용했다.
고유마도, 기어 메이든.
톱니바퀴로 만들어진 세상. 하나를 건드리면 이어진 모든 톱니가 동시에 움직인다. 거기에 동력이나 마찰, 톱니의 마모와 같은 ‘불완전한’ 개념은 없다.
톱니의 세상에서는 두 가지뿐이다.
돈다, 돌지 않는다.
막시밀리앵이 자기 팔에 주의를 기울이는 틈을 타 톱날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내 몸이 휙 딸려 올라간다. 과도한 압력에 팔이 부르르 떨린다. 날이 서 있지 않지만 손가락 짓눌리는 감각이 선명하다.
다행히도 약기운 덕분에 아프지는 않다. 고마워, 마약아. 앞으로도 종종 잘 부탁해.
‘능숙하군. 그러나 그 능력은 원래 나의 것.’
막시밀리앵도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가 외눈안경 너머로 나를 노려보는 즉시 톱날이 우뚝 멈춘다. 올라가던 내 몸은 관성을 따라 허공에 붕 떴다.
중력이 사라진 듯한 아찔한 감각. 그렇지만 여기까지 왔으면 충분하다. 품에서 카드 두 장을 꺼냈다.
다이아몬드 2와 8. 다용도 갈고리와 가늘고 긴 모든 것.
갈고리에 와이어를 연결, 강철 딱정벌레를 향해 던진다. 톱니바퀴에 걸린 갈고리를 힘차게 잡아당겼다. 내게 초인적인 힘은 없지만, 떨어지는 방향을 조정할 정도는 된다.
몸이 내려가는 포물선을 그리며 강철 딱정벌레 옆면에 도달한다. 부딪히기 전 양발을 뻗어 톱니바퀴 위를 디뎠다. 발이 닿는 즉시 막시밀리앵의 고유마도로 톱니바퀴를 움직인다. 내가 발을 디딘 톱니만 위로 돌게끔.
톱니바퀴는 제 자리에서 맡은 바를 충실히 이행했다. 거대한 물레방아처럼 생긴 톱니바퀴가 내 체중을 싣고 돈다. 발밑이 몸을 집어 던지는 것 같다. 균형을 잡으며 성큼성큼 뛰어 올라갔다. 온갖 묘기 끝에 나는 강철 딱정벌레의 등에 도달했다.
내 뒤로 막시밀리앵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계가 능숙하군. 톱니바퀴를 돌린다고 한들 쉽게 따라하기 힘든 기예인데. 단순히 고유마도만 훔치는 게 아닌 건가?”
목소리가 들린 직후 거대한 손이 내 옆을 내리찍었다. 충격에 발밑이 흔들린다. 재빨리 물러나서 보니, 잡철과 톱니바퀴를 덧붙여 만든 손이 강철 딱정벌레를 긁고 있었다. 불티가 튀며 요철과 요철끼리 맞물린다. 약간의 마찰 끝에 강철 손은 강철 딱정벌레와 하나가 되었다.
막시밀리앵은 그대로 팔을 잡아당겨 단숨에 뛰어올랐다. 내가 애를 쓰며 기어올라온 높이를 단 1초만에 따라잡혔다. 허무할 정도다.
“그래봤자 당신만 못하는데요, 뭘.”
“나야 한평생 톱니바퀴와 살아오지 않았나. 그에 비해, 자네는 이 능력을 조금 전에 처음 썼지. 그것도 인간의 왕이 가진 능력인가?”
독심술 덕분이긴 하겠지만 굳이 알려주진 말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도구를 쓰는 동물이잖아요.”
“모든 도구를 능숙하게 쓰는 게 인간의 왕이라. 굳이 도구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로군? 연금술도, 기공도. 하나같이 대단히 능숙해.”
그의 시선이 내 카드로 향했다. 연금술사라 그런가, 내 카드에 담긴 연금술의 정수를 단번에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숙련도에 비해서 작품은 아쉽군. 아무런 기능도 없이 연금강으로 형태만 빚었어. 고작 그게 다인가?”
쳇. 연금술로 기능까지 부여하려면 마력이 얼마나 드는지 알고 하는 소린가? 아, 알고 하는 소리겠지. 본인부터가 군국 최강의 연금술사일 테니.
네 마력 보태주면 더 잘 만들어주마. 속으로 투덜거린 나는 다른 카드를 펼치며 물었다.
“다른 것도 보여드려요?”
“보여야 할 걸세. 몸 성히 살아남고 싶다면.”
바란다면 해주지. 자, 다시 마술쇼를 시작….
하려는데, 막시밀리앵은 경고도 없이 팔을 뻗었다. 그의 명령을 따르는 거대한 강철의 손이 나를 움켜잡으려고 한다. 저기에 잡혔다간 분쇄기에 넣어진 다짐육 모습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발을 디디고 선 곳은 강철 딱정벌레 위. 발판은 모두 톱니바퀴다. 아까처럼 발판을 돌려 몸이 움직이도록….
하려고 했는데, 톱니바퀴가 움직이지 않는다. 사고를 따라가지 못한 몸이 비틀거렸다.
‘같은 방식으로 도망가지는 못할걸세. 자네가 그랬듯, 나 역시 자네가 움직이는 톱니바퀴를 멈출 수 있으니.’
상황파악과 대처가 너무 빠르다. 썩어도 육장성.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차근차근 나의 선택지를 줄이며 압박한다.
눈 깜짝할 사이 강철의 손아귀가 시야를 가득 덮었다. 치여도 중상. 잡히면 미래는 없다. 회피해야 하는데, 발판의 제어권을 잃은 나는 당장 비틀거리는 중.
계획이 어긋나니 당황해서 판단이 늦는다. 강자와 싸울 때는 그 짧은 틈마저도 치명적.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기회를 놓치고, 강철의 손이 내 몸을 휩쓸었다….
‘이게 다인가?’
라고 생각하는 지금이 기회.
방심을 유도하고, 시야가 가려진 지금.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뻗었다.
눈앞에 존재하는 수백 개의 톱니바퀴. 단순히 파괴력을 늘리기 위해 덧붙인 게 대다수지만, 기본 골격을 이루는 중요한 톱니바퀴도 있다. 모르고 본다면 도저히 구분할 수 없지만 나는 설계자의 생각을 읽은 덕분에 정확히 안다.
목표를 포착하고 카드를 꺼냈다.
다이아몬드 1, 소매치기용 꼬챙이. 역수로 들고 비스듬히 찔러넣는다. 톱니바퀴 틈새를 노리고 들어갔다가, 강철 팔이 가하는 압력에 낚싯대처럼 휘어지며 팅, 튕겨 나온다. 손아귀가 찢어졌는지 핏물이 보이지만 덕분에 톱니바퀴 하나는 빠졌다. 피부 너머에 골격이 보인다.
소매치기와 다름없다. 껍데기를 벗기고, 가장 중요한 물건에 손을 대야 한다.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그 안으로 손을 뻗었다.
막시밀리앵은 톱니바퀴를 마음껏 돌릴 수 있지만,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공회전만 거듭할 뿐이다. 제대로 힘을 휘두르기 위해서는 받침점이 될 중심이 필요하다.
당연히 받침점은 그의 몸이며, 그걸 위해 막시밀리앵은 몸 구석구석에 톱니바퀴를 박아넣었다.
즉, 저 강철 팔은 그의 몸과 연결되었다는 소리.
달리 말하면, 나는 그와 연결된 톱니바퀴를 통해서도 그의 몸을 부술 수 있다 .
닿아라.
톱니바퀴가 범람한다. 강철의 파도가 내 몸을 휩쓴다. 회전은 멈출 수 있지만 관성마저 없애지는 못한다. 속도가 붙은 강철이 묵직하게 내 몸을 두들겼다.
조금만 더 늦어도 내 전신이 짓이겨질 것이다. 그러기 전에.
내 손끝이 골격에 닿았다.
인간의 몸을 흉내 내 만든 강철의 손. 뼈대를 이루는 골조를 말단에서 중심까지, 그의 능력이 거슬러 향한다. 움직이던 톱니바퀴가 하나씩 멈춘다. 손가락, 손목, 팔꿈치, 어깨… 관절부에서 돌아가던 모든 장치를 차례로 멈추게 했다. 그리고 그가 만든 강철 팔은 거기서 끝났다.
그렇지만 톱니바퀴는 끝나지 않는다.
막시밀리앵은 의수를 부착하기 위해 살을 지지고 어깻죽지에 강철을 박아넣었다. 접합부의 표면에는 의수를 제어하기 위한 톱니바퀴가 있다. 거기서 새로이 시작된, 막시밀리앵의 전신에 뻗은 톱니바퀴의 네트워크를 포착한다.
“찾았다.”
강철에 몸이 짓눌리는 와중에도 나는 손을 꽉 움켜쥐었다.
고유마도, 기어 메이든.
‘무슨 일이지? 감각이…?!’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대상은 나와 이어진 모든 톱니바퀴. 막시밀리앵의 몸 안에 있는 것 포함, 그 모두에게 명령한다. 알기 쉬운 만큼 강력한 명령을.
역방향으로 돌아라. 부서질 때까지.
‘----!!!!’
강철 팔이 폭발했다.
팔을 이루던 부품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제멋대로 회전했다. 어긋남, 비틀림, 기능 이상과 폭주. 기계장치에 생길 법한 온갖 문제가 발생한 강철 팔은 조각조각 나뉘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나를 덮치려던 강철 팔은 수천 개의 톱니바퀴로 나뉘어 부딪쳐왔다. 크기가 작다고 하나 전부 3레벨 이상의 연금강. 고밀도의 금속이 살갗을 찢고 머리를 때린다. 어떤 톱니바퀴는 내 몸을 타고 넘어가기까지 했다.
충격에 몸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바닥에 부딪힌 등이 뻐근하고 팔 곳곳이 짓눌려 아프다. 분명 아까 먹은 마약이 아직 남아있을 텐데. 내 육체가 위기를 느끼고는 비상을 외치는 것 같다.
괜찮다.
그래도 난 아직 살아있으니까.
마지막 순간 강철 팔이 폭발한 게 컸다. 결합력이 약해지는 바람에 충격이 이리저리 분산되었다. 덕분에 압사의 위기가 전신이 욱신거리는 고통 정도로 그쳤다. 아주 긍정적인 결과다.
문제는.
“그래, 그렇군! 이제야 알았다네!”
막시밀리앵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실패했다.
아니, 절반은 성공했다. 막시밀리앵의 의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드러난 그의 좌반신은 새빨갛게 물들어있었다. 몸속에 있는 톱니바퀴가 모조리 폭주하며 일어난 출혈이 피부 바깥에서도 보인다.
그렇지만 죽지는 않았다.
막시밀리앵은 내가 무엇을 시도하는지 정확히 꿰뚫어 보고 빠르게 대응했다. 톱니바퀴가 몸을 갈아버리기 전 결합을 끊어버린 덕분에 간신히 목숨만은 건졌다. 그게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대응이라니. 무슨 괴물 같은.
그가 입을 열었다. 입에서 선명한 핏물이 튀어나오는 걸 보니, 아직 그도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네는, 오직 몸에 닿은 톱니바퀴만 조종할 수 있어. 그렇지?!”
…죽을 뻔한 와중에 내 약점까지 알아차렸네.
힘에는 중심이 필요하다는 아까 말은 그대로 나에게도 적용된다. 내 몸이 그의 고유마도와 ‘접촉’해야 그의 능력을 훔칠 수 있지, 아니면 쓸 수도 없다.
그렇다고 알려주긴 싫으니 발뺌해볼까.
“아닌데요.”
“뻔한 사실을 속이려고 드나! 만일 자네가 몸에 닿지 않는 톱니바퀴도 조종할 수 있었다면! 이미 내 팔다리가 내 목을 졸랐겠지! 자네가 조금 전 시도했던 것처럼!”
칫, 눈치가 빨라. 무엇보다 그 짧은 순간 판단을 내리고 과감하게 대처하는 게 까다로워.
“강철 딱정벌레에 올라온 것도 그 때문이지? 자네가 발을 뗀다면, 거리가 벌어진 강철 딱정벌레는 오직 내 명령에만 따르겠지! 도망치는 척 일부러 전장을 이쪽으로 옮긴 거야! 내 말이 맞나?”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힘으로만 육장성 되신 건 아니네요. 히스토리아와는 다르게.”
“하하! 내가 할 말이네. 인간의 왕, 대부분의 힘을 잃었다고 하나, 절대 만만치 않은 상대로군! 꼭 나 자신과 싸우는 기분일세!”
“저도 비슷한 느낌이에요. 오직 톱니바퀴라는 개념에 한정한다면,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니까.”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는 매 순간 성장하고 있다. 톱니바퀴라는 개념에 한정하면 인간의 극에 다다른 막시밀리앵이다. 더 나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더욱 발전한다.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당신은 인간의 정점. 당신이 나아가는 한 걸음은 누구도 걷지 못한 한 걸음이에요. 당신이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면 그게 곧 인간이 정복한 영역이 될 거고요. 어디까지나 ‘톱니바퀴’ 분야에서 말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다. 과장 없는 진심이기도 했고.
잠깐 멍한 표정으로 듣던 막시밀리앵은 곧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감동적이군! 누군가의 인정을 필요로 한 적 없건만, 내 평생 듣던 그 어떤 찬사보다도 기쁘네! 과연, 이게 인간의 왕인가!”
“뭐, 저도 인간 대표에서 쫓겨난 몸이라 공신력은 없지만요.”
“힘을 되찾으면 되지 않나!”
“아하하. 싫다니까요. 하더라도 당신들이랑은 안 해요. 당신들이 내 몸에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고.”
그게 비록 소원이어도 내 몸을 마음대로 하려는 소원은 들어주지 못한다.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 나 자신을 지키려는 항상성은 지금도 여전하다.
인간의 왕은 왕이기 이전에 짐승이니까.
“그리고 더 말씀드릴 건 있는데… 이건 당신을 죽이기 직전에 말씀드릴게요.”
“그럴 기회는 없을 걸세. 나는 자네의 능력을 파악했네. 접근하지 못하도록 대처하면 그만.”
막시밀리앵은 불편한 자세로 왼팔의 의수를 들었다. 철컥, 철컥. 팔의 형태를 한 의수가 재조립되며, 팔꿈치부터 손등까지 기다란 홈이 파였다. 끄트머리가 벌어지면서 꼭 보우건 같은 형태를 취했다.
아니, 보우건 그 자체였다.
손톱만 한 톱니바퀴 하나가 저절로 굴러들어와 홈에 안착했다. 작은 톱니바퀴는 막시밀리앵이 명령하자 홈에 매달린 채로 공회전했다. 위이잉, 조그만 톱니가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바람 소리가 요란하다. 저게 홈을 따라 가속한다면, 톱니바퀴는 볼트와 비견될 속도로 나에게 날아올 것이다.
막시밀리앵은 급조한 보우건을 나에게 겨누었다.
“반탄기공을 쓸 수 있나? 뭐, 상관없네. 탄환은 충분하니 소모될 때까지 쏘면 그만. 자, 말할 것이 남았다면 다 털어놓으시게.”
애초에 기력이 딸려서 못 쓴다고. 사람에게 총을 겨누면서 협박하다니. 참으로 옳게 된 대화수단이네.
나는 투덜거리며 카드를 겹쳤다. 다이아몬드 한 장에 클로버 열 장. 총 열한 장의 카드로 덱을 만들어 가볍게 셔플했다.
“안 돼요. 마술사의 트릭은 원래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밝히면 안 되거든요. 저는 그래서 입이 무거운 사람 아니면 안 말해드려요. 예를 들면 에본 중장님처럼.”
막시밀리앵도 만물의 영장인 에본 중장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되물었다.
“에본 중장이라. 그리운 이름이로군. 내가 듣기로 그는 무저갱에서….”
그러다가 말을 흐렸다. 정보를 떠올린 막시밀리앵은 이내 가라앉은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자네가 말한 입이 무거운 사람은, 곧 죽을 사람이겠지. 자네가 죽였나?”
“죽인 건 아니고 그때 곁에 있었죠. 혹 제 추도사를 듣고 싶다면 제 손에 죽어주세요. 죽을 때까지 들려드릴게요.”
“…반대로, 자네를 죽기 직전까지 고문한다면 들을 수도 있겠군.”
“괜찮은 마음가짐이네요. 시도해보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가장 위의 카드를 양손으로 쥐어 잡아당겼다.
다이아몬드 퀸. 천의 여왕.
비현실적으로 작게 접힌 이불이 펼쳐지는 듯했다. 나는 천의 여왕을 망토 삼아 둘렀다. 포근한 촉감이 나를 감싼다.
천의 여왕.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질기고, 조금 더 잘 가려주는 최고급 천. 다만, 고작 그게 다가 아니다. 그것뿐만이라면 천의 여왕이라고 추켜세울 이유가 없다.
천의 여왕이 가진 진정한 능력은 마력을 가두는 힘. 설사 그게 빛이라고 해도 마력으로 이루어진 거라면 완벽하게 가둔다. 빛을 질색하는 흡혈귀에게 칠흑과도 같은 어둠을 선사할 만큼.
나는 옷깃을 여미며 선언했다.
“전력을 다해서 저항해보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