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297화 (297/384)

EP.297 톱니바퀴로 만들어진 세상 - 4

드르르륵. 탄환톱니가 거세게 돌며 연달아 홈을 긁었다. 균일하게 난 홈을 따라 순식간에 가속하고는 눈 깜짝할 사이 내 코앞으로 날아든다.

그래도 눈에 보이는 걸 보면 히스토리아의 기공탄만큼 빠르지는 않다. 다만 묵직한 톱니바퀴에 맞으면 그 충격량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어깨.’

하지만 내 능력은 독심술. 노리는 곳을 파악하고 한발 먼저 피했다. 내 어깨가 있던 곳에 톱니바퀴가 돌개바람을 일으키며 스쳐 지나간다.

히스토리아였다면 발사 즉시 적중하니까 절대로 못 피하겠지만…. 발사 무기가 전문도 아닌 막시밀리앵을 상대라면 이 정도는.

‘하나는 피하는군. 괜찮은 기량이야… 그렇다면 백 개는 어떨까?’

어라?

수십 수백 개의 톱니바퀴가 막시밀리앵의 전신을 따라 기어올랐다. 그 광경은 꼭 벌레가 몸을 뒤덮는 것처럼 보인다. 어깨까지 오른 톱니바퀴가 몸의 능선을 따라 내려갔다. 오와 열을 맞추어 손목까지 도착한 톱니바퀴는 차례차례 보우건에 장전되었고, 아까처럼 홈을 따라 가속되었다.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륵.

이제는 노리는 것도 뭣도 없다. 팔을 휘둘러 톱니바퀴를 흩뿌릴 생각이다. 심리전 따위는 없이, 자기 힘에 기댄 무차별 난사. 이러면 독심술도 못 쓴다.

칫. 기술직이면 치열한 심리전과 비장의 한 수로 싸워야지, 이딴 우격다짐을! 나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는 대신 내 충실한 샌드백을 불렀다.

“아지야!”

“멍!”

개의 왕은 나의 부름에 답했다.

아등바등 강철 딱정벌레를 기어오른 아지가 숨 돌릴 틈도 없이 나에게로 뛰어왔다. 내 앞에 도착한 아지의 고개가 휙 움직인다. 날아오던 톱니바퀴가 아지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가듯이 사라진다.

아지가 볼을 우물거릴 때마다 까드득 소리가 났다. 이빨 틈에서 불똥이 튄다. 막시밀리앵이 쓰는 톱니바퀴 하나하나가 최소 4레벨짜리 연금강이지만 아지의 이빨 앞에서는 조금 딱딱한 개껌에 불과하다.

아무리 많이 쏘아봤자 막시밀리앵의 손은 두 개. 아지는 그중에서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귀신같이 골라내어 씹어버렸다.

난사가 끝났다. 마지막 톱니바퀴를 뱉어낸 아지가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길게 울부짖었다.

“아우우우우!”

개의 왕. 인간의 오랜 친구는 여전히 내 편을 들었다. 막시밀리앵을 물어뜯지는 못해도 최소한 내가 죽지 않게끔 지켜주리라.

어떠냐. 이게 인간의 왕이 가진 힘….

“이조차 드러내지 못하는 반쪽짜리.”

작게 중얼거린 막시밀리앵이 양손을 펼쳤다.

두두두두두두. 발밑이 떨린다. 강철 딱정벌레가 거세게 진동한다. 난데없는 지진에 아지가 겁을 집어먹었다.

“왈! 왈왈! 땅, 움직여! 지진!”

“지진이 아니야! 강철 딱정벌레가 흔들리는 거야!”

“멍? 딱정벌레?”

“아니야. 지진 맞아!”

아지의 의문을 대충 풀어준 나는 흔들림의 근원을 찾았다. 강철 딱정벌레는 움직이지 않았다.

순수하게 힘의 크기가 부족한 나에게 거대한 질량병기는 무엇보다도 까다롭다. 지금까지 막시밀리앵이 방심한 탓에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만일 강철 딱정벌레가 나를 향해 돌진하기만 해도 나는 엄청난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강철 딱정벌레 위에 올라타 막시밀리앵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억제하고 있었다.

“분명 막고 있는데, 그런데 어떻게…?”

그건 막시밀리앵이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강철 딱정벌레에는 유사시를 대비하여 여분으로 수많은 톱니바퀴를 보관해둔다네. 거기까지 닿지 않는 자네는 미처 조종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말이네.”

내게 허락된 톱니바퀴는 어디까지나 ‘접촉하고 있는 것’뿐.

두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있다면, 사실 그건 하나의 커다란 톱니바퀴와 다를 게 없다. 작동 원리가 똑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맞물린 톱니바퀴는 나도 조종할 수 있고, 그 성질을 이용해 막시밀리앵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무질서하게 늘어져 있는 것까지는 닿지 않는다. 지금의 나와는 무관하니까.

단, 나처럼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막시밀리앵은 그것을 향해 명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렇게.

“톱니바퀴가 뭐 이딴 식으로 움직여!”

흔들림을 만드는 것의 정체는 곧 드러났다.

강철 딱정벌레의 옆면을 타고 수백 수천 개의 톱니바퀴가 굴러온다. 맞물려서 움직이는 게 아니다. 그냥 평범한 바퀴처럼 ‘돌다가’ 구른다. 별다른 조종도 없이.

수천 마리의 개미 떼가 몰려드는 것 같다. 숫자로 밀어붙이는 폭력.

“과연, 이번에도 개의 왕이 자네를 구할 수 있을까?”

제길. 손에 닿는다면 회전을 멈출 수야 있지만, 한두 개가 아닐뿐더러 굴러오면서 붙은 속도는 그대로 나에게 타격을 준다. 오기 전에 요격해야 하는데.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외쳤다.

“아지야! 다 걷어차!”

“…머엉.”

아지가 세상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불가능한 요구에는 멍 때리는구나. 개의 지능으로는 극복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겠지.

여기서는 인간이 활약하는 수밖에.

카드를 꺼낸다. 클로버. 일회용 마법이 담겨있는 문양. 내가 마지막까지 아끼고 아낀, 내 목숨을 지켜줄 최후의 한 수다.

마법은 불가역. 도구와는 달리 한번 쓴 마력은 회수할 수 없다. 클로버는 쓰면 그걸로 내 재산의 영구적인 손실이 일어난다. 쓰려고 마음먹은 지금도 손이 덜덜 떨릴 정도.

그래도 죽는 것보다야 낫지. 무덤까지 들고 갈 것도 아니고.

마력을 담아 카드를 긁었다. 봉인되었던 마력이 내 마력에 호응하여 빛을 냈다. 푸르스름한 마력광을 내며 두 손가락으로 카드를 집었다.

“세트.”

군국 제식마법은 신체를 매개, 제물로 한 흑마법이 베이스. 내 몸이 피해를 보지만 발동이 쉽고 빠르다. 간단한 영창만으로 체내의 마력을 소모하여 유용한 현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와 반대되는 개념의 백마법이 있다. 이쪽은 마력을 머금은 물건을 매개로, 마법진을 그려 현상을 끌어내는 클래식한 마법이다.

클래식답게 구색은 좋지만 실전에서는 영 써먹긴 힘든데, 다른 무언가로부터 마력을 뽑아 써야 해서 발동이 느리며 고난도의 술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마력을 담은 물건은 비싸기까지 하니, 돈과 시간이 넘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클래식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그러나 세상에는 돈보다 자기 몸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고,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빛이 폭발하기 직전 카드를 던졌다. 던진 카드는 클로버 5.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톱니바퀴 한복판에 떨어진다. 잠깐 동안 카드는 톱니바퀴에 맞서듯 그 자리에서 팽이처럼 돌았다.

그러나 강철과 맞서 싸우기에 얇은 카드 한 장은 너무 연약하다. 숫자 차이가 난다면 더더욱. 빙글빙글 돌던 카드는 이윽고 강철의 파도에 파묻혔다….

지금이다. 나는 손가락을 내밀며 시동어를 외쳤다.

“아쿠스 리터!”

클로버 5에 담긴 건 군국이 애용하는 응결 마법의 강화판이다.

마력에 반응한 대기 중의 물을 포집한다. 평범한 응결 마법은 목을 축일 물이나 모으면 다행이지만, 내 건 특제품이라 다소 강제적이다. 얼마나 강제적인지 대충 설명하자면 수증기조차도 곧장 결정화시킬 정도.

빛이 번쩍인 이후 새하얀 폭풍이 몰아쳤다. 마력이 거미줄처럼 사방팔방으로 뻗고, 붙잡은 물을 그대로 끌어당긴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얼음 결정이 굴러오던 톱니바퀴를 붙잡았다.

인간에게 쓰면 그대로 얼음 조각상으로 만들어버릴 마력이 담겼다. 그걸로 톱니바퀴의 움직임을 제약해놓았으니 꽤 곤란할 것이다.

내 예상대로, 막시밀리앵은 꽤 당황했다.

“마법?! 설마…!”

…방향은 좀 달랐지만.

'고작 그것으로?'

사방팔방에서 얼음 갉아대는 소리가 났다. 얼음에 뒤덮여 있건만 스스로 회전하는 톱니바퀴는 멈추지 않았다. 앞을 막는 얼음은 긁어내고 갉아먹는다. 부서진 얼음조각이 반짝거렸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대부분의 톱니바퀴가 얼음 지대를 돌파했다.

내 마법이 번 시간은 3초 정도. 그마저도 톱니바퀴들이 얼음에 미끄러져 헛구른 덕이 컸다.

막시밀리앵은 실망한 기색을 숨기며 외쳤다.

“그게 자네가 숨긴 비장의 수인가? 고작 마법 따위가? 마법은 고유마도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 텐데!”

누가 몰라서 쓰나? 쓸 게 그거밖에 못 쓰니까 그렇지! 나는 고유마도가 없다고! 인간의 왕에게 고유한 무언가가 있을 리 없잖아!

쓰읍, 역시 육장성 상대로 잔재주는 통하지 않나. 3초의 시간을 번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나는 그동안 냅다 도망쳤다. 뒤는 아지에게 맡기고서.

“아지야, 뒤는 맡긴다!”

“멍! 깨갱! 멍!”

뒤쪽에서 고통받는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잘 모른다. 아지가 쥐 잡듯 톱니바퀴를 낚아채다가 간간이 막시밀리앵이 쏜 톱니바퀴를 맞아 울부짖었지만 나는 보지 못해서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다.

나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건 막시밀리앵이 쏘는 톱니바퀴. 따라서 사선에서 벗어나는 게 최우선이다. 가장자리에 도달한 다음 몸을 던져 옆면에 매달렸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톡탁톡탁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위로 들어보니, 가장자리를 따라 수십 개의 톱니바퀴가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아지, 이 쓸모없는 녀석! 몇 개 놓쳤잖아!

“칫! 진짜 끈질기네!”

톱니바퀴가 나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제 무게에 모든 걸 맡기고 나를 향해 뛰어내릴 뿐이지만, 그것만 해도 나에게는 까다롭다. 아픈 것은 물론이고, 그 충격에 여기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강철 딱정벌레는 다시 막시밀리앵의 제어 아래 놓인다.

그건 막아야 한다. 막시밀리앵이 강철 딱정벌레의 제어권을 되찾는다면 아지로도 대응하지 못할 테니까.

옆면에 난 요철을 밟으며 달렸다. 등 뒤로 톱니바퀴가 쏟아져 내린다. 간신히 피했지만, 몇 개가 망토에 떨어져 감기는 바람에 몸이 뒤로 홱 쏠렸다. 자세가 무너진 틈을 타 그 위를 굴러오는 톱니바퀴.

나는 급히 손을 들어 톱니바퀴를 잡았다.

빠르게 도는 톱니바퀴는 표창이나 마찬가지. 맨손으로 잡으면 회전하는 힘에 의해 손아귀가 다 찢어진다. 실제로도 망토를 다 휘감어버렸고.

톱니가 나를 찢어발기기 전 전에 막시밀리앵의 고유마도로 회전을 없앴다. 망토를 잡아당기며 날뛰던 톱니바퀴가 손에 닿자마자 얌전해져 착, 하고 손에 감긴다.

그러나 회전은 상쇄해도 그 전에 붙은 속도는 상쇄할 수 없다. 팔에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다. 누군가 전력으로 걷어찬 공을 손으로 잡은 느낌이다.

“회전은 마음대로 조종하면서 관성은 어찌 못하다니. 톱니바퀴의 개념만 따르면 나머지는 상관없다는 거야? 뭔가 비합리적이지만….”

비합리적이니까 고유마도지. 쳇. 자기의 룰을 세상에 덮어 씌우는 고유마도에 비하면 독심술은 진짜 아무것도 아닌 거 같아. 누가 더 좋은 능력 안 주나….

잠깐. 룰이라. 이건 써먹을 수 있겠는데.

나는 톱니바퀴를 만지작거렸다. 그냥 버릴까 했지만, 그래 봐야 계속 나를 쫓아올 것이다. 투덜거리며 잡은 톱니바퀴를 벽면 적당한 곳에 꽂아 넣었다. 톱니바퀴는 그렇게 잠잠해졌다. 나는 잇달아 떨어지는 톱니바퀴를 피하거나 받아내며 달아났다.

한참 도망 다니는데 위쪽에서 막시밀리앵의 생각이 전해졌다.

‘개의 왕, 이건 확실히 귀찮군. 나를 공격하려고 들지는 않지만, 톱니바퀴는 하나하나를 공들여 부수고 있으니. 접촉하면 인간의 왕에게 역으로 당한다. 접촉하지 않으면 개의 왕이 막아선다. 까다롭군.’

까다로운 건 나뿐만이 아니구나. 조금 위안이 된다.

‘강철 딱정벌레가 없다면 마땅히 짐승의 왕을 제압할 수가 없는데 정작 인간의 왕이 강철 딱정벌레를 봉인하고 있으니…. 짐승의 왕은 이토록 까다로운 존재였던가… 잠깐, 짐승의 왕?’

어쩌면 이 상황을 타개해줄 유일한 한 조각. 막시밀리앵은 뒤늦게 그 존재를 떠올렸다.

고양이의 왕, 나비를.

“고양이의 왕!”

깨닫는 게 늦네, 막시밀리앵.

나는 처음부터 나비를 잊지 않았는데.

“나비는 오지 않아요.”

뚜벅, 뚜벅.

콘크리트 바닥에서 징 박힌 군홧발 소리가 들렸다. 마른 땅에 철이 부딪히며 살짝 늘어진 박자가 더해졌다.

길게 땋은 새카만 머리카락이 뒤쪽으로 흔들렸다. 나른하고 피곤한 표정을 한 채, 묘하게 힘없는 걸음걸이로 다가온다.

피로와 스트레스에 찌든 듯한 눈.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매우 행복할 것이다.

“후우-.”

입에 마력초 엽궐련 하나가 물려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물건도 아닌, 세계수의 잎으로 만드는 특제가.

길게 연기를 뿜어낸 히스토리아는 몽롱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좋네에…. 팔이 아프지도 않고, 머리가 시원해. 기력이 다시 들어차는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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