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9 톱니바퀴로 만들어진 세상 - 6
이토록 불리한 상황이 되어서도 막시밀리앵은 전의를 불태운다. 물러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는 모습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뭐야 저거. 어딘가의 주인공이냐고. 왜 저리 찬란하게 불태우는 건데.
이룰 거 다 이루었으면서도 멈춰서지 않고 그 너머를 나아가려는 막시밀리앵의 태도에 갈채를 보내고 싶다. 삶이 언젠가 꺼질 불꽃이라면, 모든 것을 태운 그의 자리에는 아무런 색도 안 남아있을 것이다. 지상에는 무채색 잿더미만 두고는 바람이 되어 하늘 어디까지든 날아가겠지. 캬, 덧없지만 찬란해질 삶이여. 일동, 박수.
다만, 그의 목적이 ‘나’라는 걸 떠올리면 손뼉을 치던 손이 애매하게 뒷머리로 향한다. 불구경이 아무리 좋아도 그 불이 나를 태우려고 하면 냅다 도망칠 수밖에 없다. 아니면 짓밟아 끄던가.
막시밀리앵이 마음에 들면서도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그의 바람은 나를 불태울 것이다.
아마 죄악의 왕이라는, 뭔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존재로.
나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싸워야겠어! 리아. 터치 허용 시 패배 룰 기억해?”
너무 옛날에 있던 이야기라 기억 못 할까 봐 물었지만 히스토리아는 술술 대답했다.
“헤에. 네가 나랑 처음 대련할 때 점수 벌려고 억지로 도입했던 룰? 기억하지. 웬 멀대가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길래 어디 한번 해보라고 했더니만, 비겁하게 몸 안쪽만 노렸잖아? 큭큭. 그때는 진짜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약이 올랐었는데.”
“쓸데없는 부분까지 기억하는 걸 보면 괜한 걱정이었네!”
히스토리아가 실실 웃는 와중 갑자기 발밑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막시밀리앵이 연금술로 나와 히스토리아의 발밑을 녹여 놋쇠의 늪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낌새를 눈치챈 내가 도망치려고 할 때였다.
쿵. 히스토리아의 발이 강철 딱정벌레를 크게 내려찍었다. 곤기공, 발밑으로 내뿜은 기력이 지진처럼 퍼진다. 강철 판이 살짝 찌그러지고, 그 충격에 톱니바퀴 몇몇 개가 떨어져 나갔다.
연금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상 물체를 완벽에 가깝게 파악해야 한다. 시도하는 중간에 변형이 일어나면 연금술은 실패하게 된다. 실전에서 연금술을 활용하기 어려운 이유다.
히스토리아가 발을 구른 덕에 연금술은 무효가 되었다. 방향을 잃은 마력이 증발한다.
본능적으로 연금술의 가장 큰 약점을 찌른 히스토리아는 자기가 해낸 일에 별다른 감흥 없이 물었다.
“왜? 그거, 하게?”
“너랑 말고, 과병이랑!”
히스토리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저런 아저씨의 어디를 만지고 싶어서?”
“딱히 만지고 싶지도 않고, 애초에 만지는 게 목적이 아니거든! 나에게는 모종의 수가 있어서 손을 대면 그를 무력화시킬 수 있어!”
“힛, 농담이야. 알아. 아까 봤으니까.”
약을 빨아서 그런지 말이 뇌를 안 거치고 막 튀어나오네. 더 상태가 안 좋아지기 전에 빨리 승부를 봐야하지 않을까.
“알겠지, 리아? 내가 보조하며 빈틈을 노릴게. 부탁해!”
“부탁? 으음, 맨입으로?”
“알겠으니까 일단!”
급한 와중에도 눈으로 웃음을 짓고 있는데, 괜찮을까?
다행스럽게도 내 걱정은 기우였다. 히스토리아는 단숨에 막시밀리앵에게 접근해서 그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쾅, 쾅, 쾅. 주먹과 팔이 맞부딪힐 때마다 강철끼리 충돌하는 소리가 난다. 막시밀리앵의 손이야 강철로 만들어진 의수지만, 히스토리아의 팔다리에서는 왜 그런 소리가 나는지 모르겠다.
히스토리아는 팔과 다리를 시원시원하게 뻗었다. 기공과 연계된 권각이 자연스럽고 물 흐르듯이 이어진다. 발을 내디딜 때 곤기공이 전신을 받치고, 주먹을 내뻗을 때 건기공이 뿜어져나온다 몸과 하나 된 기공은 그녀의 움직임을 몇 배나 더 민첩하고 빠르게 만들었다.
그에 비해, 막시밀리앵의 움직임은 시곗바늘처럼 체계적이었다. 히스토리아가 주먹을 뻗으면 관절톱니가 정확한 속도와 각도로 움직여 막는다. 팔과 다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각도로 움직이면서 히스토리아의 공격을 바깥으로 쳐냈다. 그렇게 수비에 전념하다가, 빈틈이 보이면 노리고 모아놓았던 힘을 일제히 해방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의 팔이 철컥 분리되며 1m 가량 늘어났다. 팔꿈치와 어깨가 관절이 아닌 톱니바퀴이기에 가능한 일. 생각을 읽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을 기습적인 공격이 히스토리아의 몸을 노렸다.
‘예상대로야. 힘을 모으는 것 같더라니.’
그렇지만 굳이 독심술사가 아니라도 심리전 정도는 한다. 히스토리아가 쥐고 있던 총을 빙글 고쳐잡았다. 총열을 움켜잡으니 총은 훌륭한 망치가 되었다. 히스토리아는 손잡이로 막시밀리앵의 팔을 내리찍었다.
까아앙.
군국 최강의 연금술사가 만들어낸 연금강과 군국 최강의 기공을 담은 강철이 충돌했다. 불꽃 튀는 대결 끝에 나온 결과는 무승부. 중량을 압도하는 힘이 부딪힌 끝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튕겨나간다.
그렇지만 히스토리아의 총은 사실 망치가 아니다. 기공을 쏘아내기 위한 포신에 불과하며, 잡고 휘두르는 건 부수적인 용도인 것이다.
역수로 쥔 총에서 기공이 번뜩거렸다. 막시밀리앵의 외눈안경에 푸른 불꽃이 비쳤다.
타앙.
막시밀리앵의 고개가 90도 가까이 홱 젖혀진다. 기공으로 쏘아낸 총탄에 맞은 그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그렇지만 쓰러지진 않았다. 히스토리아가 자세를 낮추며 살폈다.
‘맞았어. 아니, 막아냈어?’
그의 외눈안경이 부러져 덜렁거리고 있다. 얼굴에는 큼직하게 피멍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 살아있다.
스스로 움직이는 외눈안경. 그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한 아티팩트이면서, 그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보호구였다. 총구가 빛나는 것을 감지한 순간 외눈안경을 총알의 궤적에 갖다댔다.
‘기력을 모을 시간이 부족했나. 아쉽네. 허를 잘 찔렀다고 생각했는데.’
히스토리아의 아쉬움이야 어쨌든 근접 격투 자체는 히스토리아가 우위. 격투로는 승산이 없는 막시밀리앵이 뒤로 미끄러지며 손가락으로 강철을 긁었다. 새하얀 빛이 깊게 새겨지고, 철판이 가위로 오린 듯 잘려 뒤집혔다.
갈라진 틈으로 보이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수도 없이 많은 톱니바퀴들. 막시밀리앵은 그것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막시밀리앵의 팔은 자석이 되었다. 그가 손을 가까이 댄 것만으로도 수많은 톱니바퀴가 벌떼처럼 달라붙는다. 그의 팔에 달라붙은 톱니바퀴는 내 제어에서 벗어나고, 막시밀리앵의 팔을 타고 빙글빙글 돌며 제 자리를 찾아갔다. 톱니바퀴가 하나하나가 자기 위치를 기억하고 움직여 재조립된다.
순식간에 막시밀리앵은 매우 커다랗고 기능적인 기계 팔을 손에 넣게 되었다. 주먹이 히스토리아의 몸통만 하다.
‘이상하네…. 팔이 아까보다 더 커진 것 같아. 헛 것이 보이나?’
바보야. 그건 커진 거 맞아.
투쾅, 기계 팔이 그대로 늘어나며 히스토리아의 전면을 강타했다. 아까보다 몇 배는 크고 몇 배는 길다. 총 손잡이로 쳐낼 규모가 아니다. 히스토리아는 양팔을 교차하며 뒤로 뛰었다.
“…아윽.”
아득한 충격에 히스토리아가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날 때였다.
지금이다. 나는 반 박자 빠르게 따라붙으며 외쳤다.
“리아! 8번 동작!”
그러자 히스토리아가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예전, 내가 학교에 있었을 무렵. 나는 탁월한 필기 능력과 처참한 실기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내 진정한 능력이야 어쨌든 군국은 정해진 기준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기회를 박탈한다.
그래서 나는 히스토리아와 짜서 내 능력보다 몇 단계는 수준 높은 대련을 선보이곤 했다.
미리 동작을 정해두고, 번호를 말하면 그에 맞추어 움직이도록 한다. 미리 합을 맞추면 삼류의 연기도 고수의 대련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서로를 의심하거나 경계하는 데 여력을 소비하는 대신, 움직이는 데 온힘을 다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뒤로 물러난 히스토리아는 왼발을 축으로 오른쪽으로 돌았다. 그와 동시에 나도 히스토리아의 등을 향해 뛰어들었다. 머지않아 부딪힐 게 분명한 움직임. 그렇지만 단 한 순간, 둘 다 몸을 비틀어 서로 등을 스친다. 교차하는 찰나 히스토리아가 어깨와 팔로 나를 떠민다.
덕분에 내 몸은 쏘아지듯 앞으로 튕겨 나갔다.
옛날보다 훨씬 빠르지만 상관없다. 좋든 싫든 막시밀리앵은 그의 능력 때문에 팔에 톱니바퀴를 이을 수밖에 없다. 연금술은 어디까지나 물질을 바꾸는 기술. 움직이기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하고, 이미 최적화를 진행한 막시밀리앵에게는 톱니바퀴 이외의 선택지가 없다.
그렇다면 손에 닿은 순간 아까의 재현이다. 그의 고유마도를 역이용, 톱니바퀴를 거슬러 올라 그의 몸속을 부숴버리면 된다.
‘히스토리아 소장보다 경계해야 할 것. 바로 인간의 왕. 그의 능력은, 그 편린만으로도 불합리하다.’
내가 손을 뻗었다. 손끝이 막시밀리앵의 기계 팔에 닿기 직전이다. 닿기만 하면, 비가역적이고 확실하게 부순다. 내 능력은 그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자네는 톱니바퀴를 거슬러 올라 나를 공격하겠지. 내 힘으로 나를 망가뜨려, 저항조차 하지 못해.’
막시밀리앵은 너무나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히스토리아를 상대하곤 있었지만, 외눈안경 너머로는 나만 바라보고 있다. 내가 히스토리아의 등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왔음에도 그는 내쪽에 계속 주의를 기울였다.
‘그렇다면, 닿기 전에 끊어버리겠다네. 그 힘이 나에게 닿지 못하도록.’
칫. 나가리네.
판을 다시 짜야겠는데.
와장창. 막시밀리앵은 기계 팔과 자기 의수를 분리했다. 어찌나 급하게 빼냈는지 채 빠져나가지 못한 톱니바퀴가 쇳소리를 내며 내벽을 긁는다. 상당한 마력과 톱니바퀴를 소모하여 만든 걸 미련조차 가지지 않고 내버린 채 전력으로 이탈한다. 체면도 뭣도 없이 땅을 굴러서라도 나에게서 멀어졌다.
눈앞에서 톱니바퀴가 쏟아졌다. 나는 즉각 외쳤다.
“2번!”
히스토리아가 내 망토를 잽싸게 잡아챘다. 내 몸이 허공에서 우뚝 멈추고 솟아오른 발이 허공을 긁는다. 기계 팔이 내 눈앞에서 와르르 무너졌으나, 히스토리아가 나를 잡아 당겨준 덕분에 부딪히는 일은 피했다.
“켁!”
차라리 부딪히는 게 나은가? 망토가 목과 어깨를 당겨서 숨이 막힌다.
몇 번 기침을 한 나는 나는 자세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이대로 가다간 소모전이 될 거야. 리아, 기력은 어느 정도 남았어?”
“잘 모르겠네에…. 힘내면 계속 쏠 수 있을지도?”
“힘 안 내면?”
“두 발.”
두 발이 끝이라는 뜻이구나.
만전이었다면 소모전을 계속하는 게 정답이다. 막시밀리앵은 기계 팔 한 짝을 만들기 위해 강철 딱정벌레의 등심을 뜯어내어 재료로 쓰고 있다. 내가 아까 도망치면서 만들어둔 ‘함정’도 있으니, 머지않아 그가 쓸 톱니바퀴가 다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우리도 한계에 가까운 상황. 급한 우리 쪽에서 승부수를 내야 한다.
“네 필살기는?”
“힘을 내면 어찌저찌 간신히.”
“한 번도 아슬아슬…. 그거에 걸어야겠네. 좋아, 이번엔 내가 빈틈을 만들어볼게.”
작전이랄 것도 없는 우격다짐. 힘도 선택의 여지가 주어지지 않은 채,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의지만이 있다.
이게 정상이다. 짐승은 원래 다들 이렇게 살아간다. 도망치다 죽고, 싸우다 죽는다. 혹은 잘못 먹고 병에 들어 죽기까지 한다.
원치는 않지만, 그래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주머니에서 카드를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