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2 내 머리 속의 톱니바퀴
막시밀리앵은 가만히 숨을 골랐다. 정신으로는 내가 한 말은 곱씹고, 육체로는 망가진 몸을 다스렸다. 엉망이 되었던 그의 몸 속 톱니바퀴가 천천히 다시 짜 맞추어진다.
관절이 삐걱거리며 작동을 재개한다. 부족한 피가 머리로 모인다. 안개 낀 듯 흐릿했던 이성이 빛을 되찾으려 깜빡인다.
‘내가 신이 되려고 했다고?’
막시밀리앵은 코웃음을 쳤고, 그 충격으로 두통을 겪었다. 지금 그는 자신의 콧바람에도 타격을 입는 지경이었다.
그토록 처참한 몸 상태에도 그의 사고는 멈추지 않았다. 똑, 딱. 막시밀리앵의 머리 한가운데 있는 톱니가 느릿하게 돌았다.
‘신을 믿은 적 없다. 양팔 없이 태어난 그때부터, 나는 단 한시도 보이지 않는 것에 기대지 않았다. 나를 지탱한 건 의수였고, 나를 이끈 건 연금술이었다. 신은 나를 살핀 적 없다. 오직 나였다.’
아무리 치명적인 위기가 찾아와도 그의 두뇌는 움직인다.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기능의 문제다.
막시밀리앵은 자기 머리에 톱니를 박아넣었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톱니라고 이름 지은 작은 기계장치는, 이름과는 달리 생각을 대신 해주지는 않는다. 따지자면 뇌를 채찍질하는 것에 가깝다.
머리에 강제로 피를 욱여넣고 뇌를 짓누른다. 피로를 호소하는 부분은 차단하고, 감정과 이성을 필요할 때마다 이어 붙인다.
따라서 지쳐도, 배고파도, 고통스럽더라도 그의 뇌는 둔해지지 않는다. 두려움도, 분노도, 혼란도 사고를 방해하지 못한다. 짐승의 왕이 울부짖어도 몸이 움직이며 공주의 권능조차 무시한다. 필요하다면 행한다. 그것이 금기에 가깝더라도.
막시밀리앵은 그것으로 자격을 얻었다.
운명이나 한계와는 관계없이, 오직 자신의 의지로만 움직일 자격을.
‘…틀렸다네, 인간의 왕. 나는 신이 될 필요 없다네.’
“나는, 이미 내 삶의 신이니까!”
막시밀리앵은 얻은 자격을 행했다. 그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골조가 흉측하게 드러난 의수를 뻗었다.
“나는 그저 기회를 주려고 했을 뿐이다! 다른 자격 없는 자들에게!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기회를!”
몸이 만신창이여도 의지만 있다면 고유마도를 쓸 수 있다. 막시밀리앵은 정신을 집중했고, 멈췄던 톱니바퀴가 일제히 돌아갔다.
강철 딱정벌레가 오랜 침묵을 깨고 몸을 비틀었다. 지금껏 내가 억제하고 있었지만, 내가 발을 뗀 이상 강철 딱정벌레를 막을 존재는 없다. 개의 왕조차도 힘으로 압도하는 거대 병기가 못다 한 힘을 쓰기 위해 삐걱거렸다….
그뿐이었다.
“자격이라는 말은 듣기 좋지만, 너무 자기 유리한 대로 말하는 거 아니에요? 요약하자면 당신은 다른 사람의 몸에 톱니바퀴를 박아 넣으려고 한 거잖아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강철 딱정벌레의 기지개는 삐걱거림에서 멈췄다. 기계장치에도 전신마비라는 증상이 있다면 딱 저렇게 될 것이다. 강철 딱정벌레는 그 어마어마한 힘을 쓰지도 못하고 괴롭게 경련했다.
막시밀리앵은 몇 번이고 강철 딱정벌레를 움직이려고 했지만, 시도한 횟수만큼 실패를 겪었다. 강철 딱정벌레를 둘러싸는 외골격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는 그에 대해 평범한 반응을 보인 것뿐이에요. 어떤 인간이 자기 몸에 톱니바퀴를 박아넣겠다는데 가만히 있겠어요? 필사적으로 저항하겠죠. 그게 단지 두려워서는 아닐 거예요.”
막시밀리앵이 잘 볼 수 있도록 강철 딱정벌레를 가리켰다. 외골격을 이루는 거대한 톱니바퀴 사이사이에는 아주 작은 톱니바퀴가 끼워져 있었다.
서로 맞물린 톱니바퀴 두 개는 잘 돌아간다. 그렇다면 잘 돌아가는 두 개의 톱니바퀴와 동시에 맞닿도록 하나를 더 끼워 넣는다면? 세 개가 서로서로 맞물리면 어떻게 될까?
전혀 돌아가지 않는다.
하나의 톱니가 시계방향으로 돈다면, 맞물린 톱니는 반시계방향으로 돌아야 한다. 그게 톱니바퀴의 기본적인 원리다. 그런데 만일, 그 두 개와 모두 맞물린 톱니가 하나 더 있다면, 그 톱니바퀴는 시계방향으로도 돌아야 하며 반시계방향으로도 돌아야 한다.
모순이다.
“강철 딱정벌레를 보세요. 홀수 개의 톱니가 루프를 이루면 저렇게 멈추죠. 이런 간단한 수로도 톱니바퀴는 쓸모가 없어져요. 당신이나 쓰지 다른 사람은 못 써. 아니, 안 써.”
“크윽…!”
“이제 포기해요. 당신에게 남은 수는 없어요.”
아까 전까지는 던질 톱니바퀴라도 있었다. 연금술을 쓸 마력도 있었다. 그의 몸을 방어할 보호장비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히스토리아의 총검총의에 맞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제 그는 의수를 단 산송장에 지나지 않는다.
저항 수단을 상실한 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주변에 떨어진 톱니바퀴가 몇 개 있지만, 고작 이정도 양으로는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 톱니바퀴도 결국 꿰어야 보배인 것이다.
그에게는 나를 막을 수단이 없다. 어지간한 인간이라면 의수만으로도 으깨버릴 수 있지만 하필 상대가 나. 내 손이 그의 몸에 닿기라도 하면, 나는 그의 고유마도를 이용해 그의 몸속에 있는 모든 톱니를 거꾸로 돌릴 것이다. 생각톱니까지 포함해서.
막시밀리앵이 다 포기한 듯 고개를 떨구고 주춤거렸다.
이제 단 두 걸음. 막시밀리앵과 나 사이의 거리는 고작 그 정도. 죽음까지 두 걸음 남았을 때, 막시밀리앵은 왼팔로 자기 오른팔을 움켜쥐었다. 의수가 격렬하게 진동한다. 겉보기에는 두려움에 떠는 듯했다.
“아니! 나는 멈추지 않는다!”
그럴 리 없다. 의수의 진동은 끊어지기 직전의 단말마였다. 콰드득. 오른팔과 어깨의 접합이 풀리고, 왼팔이 기어이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오른팔을 몸에서 뽑아냈다.
기어이 자기 팔마저 무기삼아 쥔 막시밀리앵은 처절하게 외치며 휘둘렀다.
‘모자란다면 채우면 된다. 망가진다면 고치면 된다. 열악하다면 개선하면 된다. 불가능하다면, 가능하게 한다! 나는 멈추지 않아!’
누가 자기 팔을 뽑아서 휘두르리라 생각할까. 의식의 빈틈을 파고든 기습적인 발도술이다. 아무리 다쳤다고 해도 막시밀리앵은 육장성에 도달한 강자. 자기 팔을 축으로 휘두르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의수에 달린 톱니바퀴가 나를 물어뜯으려는 것처럼 딱딱 부딪혔다.
그렇지만 나는 독심술사. 그게 면밀히 계산된 움직임이라면 더욱 빤히 읽는다.
휘둘러지는 왼팔을 피하는 대신 손을 마주 뻗었다. 그의 의수에 비하면 내 손은 한숨이 나올 정도로 느려 터졌지만, 어차피 속도는 상대적인 것. 내 얼굴에 맞기 전에 내 손가락이 먼저 닿는다. 의수와 손이 교차하고, 내 손톱 끝에 톱니바퀴가 걸렸다.
지겹도록 이어진 전투가 거기서 끝났다. 막시밀리앵의 몸이 사진 속에 박제되어버린 것처럼 우뚝 멈췄다.
관성 때문에 의수가 내 뺨에 닿았지만 그게 끝이다. 나는 볼에 닿는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다 거꾸로 돌려서 부수려고 했는데, 용케 그 와중에도 톱니바퀴를 멈췄네요.”
내가 돌아가는 톱니바퀴를 멈출 수 있었던 것처럼, 그 역시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 막시밀리앵은 자기 몸 속의 톱니바퀴가 오작동하는 것을 감지한 순간 그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다. 그랬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지만.
“그래봤자 톱니바퀴가 전신에 퍼져 있는 당신은 움직이지 못할 텐데요. 죽기 전까지 몇 초의 시간을 버는 게 고작인데.”
아니나 다를까. 그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톱니바퀴를 멈추니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무시할 생각은 없다. 아니, 오히려 마지막까지 모든 수를 다 짜내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렇지만 이 손을 놓으면 다시 움직일 테니까 대신 입으로 박수 소리를 냈다.
“짝짝짝. 당신은 정말 대단해요. 기만하거나 비웃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진심으로. 당신은 마지막까지 정말 대단하고 솔직한 사람이었어요.”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지는 게 말이 안 된다.
의수를 찬 것 말고도, 막시밀리앵은 육체를 강화하기 위해 몸 안쪽을 톱니바퀴로 잔뜩 채웠다. 덕분에 그는 어마어마하게 튼튼했으며, 기공을 익힌 장성과도 대등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 부분은 설명하기 귀찮았는지 스스로 건곤감리를 통달한 기공사이며 톱니바퀴를 지배하는 능력은 리(離)라고 둘러댄 모양이지만.
어쨌든 덕분에 나는 손만 대면 승리라는, 비겁할 정도로 유리한 조건을 갖고 시작했다. 아지와 히스토리아라는 강력한 아군은 덤이었다.
아무리 내가 약하고 저쪽이 육장성이라지만, 이 싸움판은 기울어지다 못해 완전히 뒤집혀진 판이었다. 이토록 불리한 싸움을 여기까지 끌고 온 건 전부 막시밀리앵의 기량 때문이었다.
“단지, 방향이 너무 어긋났어요. 마신에 다다른 자는 자연스럽게 다른 인간을 변화시키지, 그들과 투쟁하지 않아요. 그에 비해 당신은 다른 모든 인간을 향해 투쟁하려고 했죠. 저와 대리전을 치르면서까지.”
한 손으로 의수를 잡은 채 다른 손으로 카드를 꺼냈다. 다이아몬드 1, 다용도 꼬챙이. 얼마 남지 않은 마력으로 연금변환한다. 낯익은 촉감이 손바닥에 가득 들어찼다.
나는 꼬챙이를 역수로 쥐고는 막시밀리앵의 머리 높이까지 들었다. 생각마저 거의 멈춘 막시밀리앵이건만, 붉게 충혈된 눈은 무의식적으로 꼬챙이 끝을 쫓았다. 와중에도 생명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안녕히 가세요, 막시밀리앵. 당신의 바람만 긍정할게요. 이루어질 수 없던 꿈을 기억할게요. 소원을 이루어주진 못하더라도, 그런 소원이 있었다는 것만은 납골당 한편에 써서 간직할게요. 인간의 왕이 당신을 인정합니다. 막시밀리앵, 신은 아니었지만, 당신은 비겁하지 않은 전사였어요.”
그를 위해 짧은 조의를 표한 뒤, 나는 손을 움직였다. 꼬챙이가 관자놀이를 파고든다.
턱, 하고 딱딱한 무언가를 파헤치는 촉감이 전해졌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그의 머리를 겨누고 휘둘렀을 꼬챙이가 다른 걸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무가 자라 있었다.
어느새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솟아난 나무 한 그루가 내 꼬챙이를 가로막고 있다. 가지를 부드럽게 흔들면서.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정적이라, 원래부터 그 위치에 나무가 있었으며 내가 그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꼬챙이를 휘두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리 없다.
이곳은 군국이다. 콘크리트로 바닥을 뒤덮고, 장작으로도 쓸데없는 나무 따위는 애저녁에 다 잘라버린 군국의 사령부다. 흙 대신 콘크리트를, 나무 대신 벽돌을 쌓은 이 땅에 나무가 있을 리 없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이토록 두꺼운 콘크리트를 뚫고 자라는 종류는 드물다. 설사 그런 종류라고 해도 몇 초도 걸리지 않아서 사람의 키만큼 자랄 리도 없다!
분명 인위적으로 일어난 현상이다. 누군가 막시밀리앵을 지키기 위해서 나무를 자라게 했다. 그게 가능한가는 둘째 치고!
하지만 누가?
"송구하옵니다, 나의 왕이여."
그 대답은 땅 속에서 들려왔다.
처음에는 새싹이었다. 그 다음은 묘목이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새싹이었던 것은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내 앞에 우뚝 섰다.
세상에서 가장 정적인 폭발이었다. 초록색 연기와 갈색 불꽃을 지닌 자연의 폭발물은 눈 깜짝할 사이 나를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