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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1인칭 시점-318화 (318/384)

회귀자는 기막혀했으나, 하필 옆에서 티르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기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잠깐! 지금 잘 시간이 있어?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게….”

후후, 회귀자. 쉰다는 건 시간을 정해두고 하는 일이 아니야. 그냥 몸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거지.

아, 슬슬 한계인가. 오래도 버텼다, 내 평범한 몸.

회귀자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멀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나는 그대로 현관에 엎어져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세상이 캄캄했다.

밤이라서 앞이 안 보이나? 아니, 이곳은 군국이다. 밤과 어둠이 일을 시키지 못할 이유가 되지 않는 미친 나라다. 거리에는 언제나 마력등이 켜져 있기에, 커튼으로 꽁꽁 싸매지 않는 한 새어 나오는 빛에 물건의 윤곽은 보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내 손조차 보이지 않는다.

혹시 저승인가… 같은 멍청한 소리는 농담으로만 하자. 이 가혹한 세상이 뒤진 짐승 따위를 위해 공간을 마련해줄 리 없으니까.

자, 그렇다면 나를 뒤덮은 이 어둠이 무엇일까. 추리하기는 어렵지 않다. 아무리 내 손조차 보이지 않는 이 질감. 마치 검은 재와도 같은 이 어둠의 정체는… 시조 티르칸쟈카의 어둠.

그렇다면 뭐, 어둠을 벗어나는 건 간단하다. 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외쳤다.

“정답은, 티르가 나를 어둠으로 감싼 거다!”

뭐, 곁에서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 때문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몸을 일으켜 보니, 창밖으로 환한 하늘이 보였다. 날씨가 맑은 것에 비해 방 안은 어두컴컴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옆에서 찾을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옆에는 티르가 관 위에 앉은 채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티르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양산을 살짝 까딱여 보였다.

“휴. 일어났구나.”

“밖이 밝은 걸 보니 제가 얼마 안 잤나 보네요.”

“그럼. 고작 하루밖에 자지 않았다.”

“아, 네. 고작 하루…가 아니라, 꼬박 하루를요?”

흡혈귀 관점에서는 하루도 ‘고작’에 불과한 것 같았다. 흠. 그렇게 피로가 많이 쌓여 있었나? 왠지 몸이 뻐근하더니. 나는 기지개를 켜기 위해서 양손을 붙잡고 머리 위로 쭉….

“끄아아아악! 팔이! 근육이!”

“왜, 왜 그러느냐, 휴?”

자느라 그대로 근육이 굳어서 몰랐는데, 움직이고 보니 전신에 엄청난 근육통이 엄습한다.

나는 인간의 왕이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힘을 잃었다. 이 육신은 지극히 평범한 편이다. 그런데 이 구진 몸뚱이로 어제 마약빨과 독심술빨로 종일 걸어 다니고 사다리도 오르내리고 톱니바퀴 사이를 뛰어다니고 전투까지 치르다 보니, 혹사당한 몸이 뇌를 향한 파격적인 파업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끙끙거리며 외쳤다.

“빨, 빨리 마약을! 마약이 없으면 의사라도!”

“순서가 뒤바뀌지 않았느냐! 오냐, 어쨌든 의사를….”

‘기다려 보거라. 비록 천여 년 전의 일이나, 나는 의원의 일을 했었다…. 어찌 보면.’

“음, 휴. 나에게는 뭉친 피를 풀어주는 기술이 있는데 말이다.”

“죄송한데, 혹시 제 몸속에 피를 넣어서 뭘 하실 거면 그건 거절할게요. 제가 죽기 직전까지는 하지 말아주세요.”

“차갑구나….”

당연한 거지. 내 혈관을 직접 주무르겠다는데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내가 아무리 개차반처럼 산다고 해도 다른 사람 피까지 혈관에 넣어가면서 연명하진 않는다.

만일 그게 만인의 상식이 된다면 또 모르지만, 말도 안 되지. 도대체 세상이 얼마나 뒤집어져야 그렇게 될까.

“끙. 이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셰이 씨한테 마력초나 달라고 해야 하나.”

마침 회귀자라면 한쪽 구석에 벽을 등지고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뻐근한 몸을 일으켜 회귀자에게로 다가갔다.

“저기, 셰이 씨. 대낮부터 졸고 있는 겁니까. 그만 자고 제 몸에 잘 듣는 약 좀….”

내 손이 회귀자의 몸에 닿기 직전.

보이지 않는 칼날이 내 목으로 향했다. 날카로운 바람이 내 목에 살짝 부딪혔다가 흩어졌다. 섬뜩한 감각에 나는 그 자리에서 멈췄다. 만일, 내가 조금만 더 움직인다면 움직인 거리만큼 목이 베일 것이다.

…잠깐. 이게 뭐야.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어.

아니, 그보다! 아직 잠들어 있잖아!

회귀자가 천반경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인다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그땐 기공을 사용한다는 의식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회귀자는 아예 잠들어 있는데.

“…하암. 뭐야. 왜?”

자고 있을 때도 반응을 해? 도대체 몸에다가 뭘 새긴 거냐. 나는 슬쩍 턱을 들어 말했다.

“일단 이것부터 치워주시죠.”

“어? 아. 음.”

회귀자는 늘어지게 하품하면서 천앵을 회수했다. 작게 하품을 한 회귀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다음에 내가 잘 때는 함부로 건들지 마. 지금은 비교적 안전한 상태라서 목에 대고 끝났지만, 심하게 다쳤거나 정신적으로 피곤한 상태라면 나도 모르게 목을 베어버릴 수도 있어.”

“대낮부터 푸욱 자는 사람을 깨웠다고 공격받을 줄 누가 알았나요. 잠투정이 과한 거 아니에요?”

“흥. 남 말하네. 너도 어제 온종일 잔 주제에.”

“저는 공적이 있잖아요. 리아와 함께 막시밀리앵을 쓰러뜨렸단 말이에요.”

“막시밀리앵 정도는 나도 쓰러뜨릴 수 있거든! 고작 그거 가지고!”

‘그러게. 용케 쓰러뜨렸네. 지잔이 없던 시절의 나는 막시밀리앵이 강철 뭐시기벌레와 떨어져 있는 틈을 노려서야 겨우 쓰러뜨릴 수 있었는데. 총사에게 총검총의가 있더라도 좀 힘들긴 했을 거야.’

속마음은 은근히 친절하네. 이왕이면 반대로 해보는 게 어떠니.

“그나저나 약 없어요? 가능하면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마약 같은 걸로.”

“나는 마약 같은 거 안 한다니까. 그딴 건 한번 하면 계속 의존하고 싶어진다고.”

“왜요. 의존하는 게 나쁜 건가요?”

“뭔가 얽매이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잖아.”

마약을 안 하는 이유가 단순히 기분 나빠서라니. 역시 회귀자라고 할까.

이 사람 묘하다. 생각이 그리 깊지도 않고, 존재에 대한 복잡한 고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세계를 구하는 일도 사명감보다는 생존본능에 가까운 행동이다.

마력초도 마찬가지. 외부의 약물로 몸을 다스리는데 거부감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거니까.

어쩌면 여기서 가장 인간다울지도 모르겠다.

“하긴. 아직 세상의 쓴맛을 덜 본 어린애였다고 했죠.”

“웃기지 마! 너보다는 몇 배나 더 많이 겪었거든?!”

‘한 열세 배 정도!’

“그리고 내 기공, 천반경은 언제나 신경을 날카롭게 유지해야 해. 마약 같은 것을 썼다간 그만큼 약해진단 말이야!”

사실 아예 안 쓰는 게 가장 좋긴 하지. 나야 독심술 때문에 부작용이 거의 없는 특이한 케이스니까… 옆에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역시 멍청해지지만 말이야.

“아야야. 그러면 이 고통을 그냥 버텨야 하나….”

“그러시면 안 되죠, 아버님!”

문이 벌컥 열리고, 히스토리아와 ‘히스토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얼굴, 같은 체형, 같은 목소리다. 심지어 의복패킷으로 만들어낸 옷까지 완전히 똑같은 모델이라, 지금 저 사이에 거울이 놓여있나 헷갈릴 정도였다.

얼마나 똑 닮았는지, 둘을 본 회귀자의 눈동자가 차례로 일곱 색을 거쳤음에도 누가 진짜 히스토리아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둘이 완전히 같진 않아. 문제는, 뭐가 진짜인지는 모르겠다는 거야. 아무리 봐도 저건 이능이나 신비와는 달리, 오로지 기공으로 이루어낸 자기 본연의 기술. 어쩌면 이치에 닿았을지도…. 칫, 저러니까 이전 회차에서도 정체를 몰랐지!’

이전 회차, 회귀자는 군국의 핵심에 접근했지만 그 비밀까지는 파악하지는 못했다. 그건 군국의 기밀이 너무 예상 밖이었던 탓도 있고, 회귀자 입장에서 군국은 어디까지나 지나쳐야 할 대상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건 새로이 알게 된 사실에 들뜬 회귀자는 은근히 기대하듯 나를 보았다.

‘그래도 나만 모르는 건 아닐 테니까. 어디, 너도 맞춰봐!’

눈길이 초롱초롱해서 부담스럽다.

“…셰이 씨. 뭘 갑자기 쳐다보는 거예요.”

“아아, 그냥. 너는 어때? 너라면 구분할 수 있겠어?”

“네? 저를 뭘로 보고. 카드 뒷면에 미세하게 낸 흠집도 구분하던 접니다. 당연히 구분할 수 있죠. 그러는 셰이 씨는요?”

“나? 나도 진심을 다하면 구분할 수 있지.”

“그러면 해보세요.”

내가 요구하자 회귀자는 조금 난처한 듯이 턱을 긁었다.

“…그런데 구분하려면 운명안을 개안해야 해. 내가 수명을 아끼는 편은 아니지만, 고작 이런 일에 쓰기는 좀.”

“제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한 인간의 운명을 보는 사기 기술을 써야만 알 수 있다면 그건 그냥 모르는 거 아닐까요?”

“시, 시끄러! 그렇게 자신 있으면 알아맞히기나 해!”

쯧쯧. 독심술 쓰면 그냥 알 수 있는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히스토리아의 마음을 읽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저건 완전히 나와 똑같아. 외형도, 목소리도, 심지어 내 기공, 폭사경을 익힌 자들이 갖는 특유의 발걸음까지도…. 휴이라도 이건.’

아니, 못 맞출 거라고 생각하면서 왜 물어보는 거야. 차라리 몰래 신호라도 보내든가. 너도 상당한 악질 아니냐?

나는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나저나 왜 대낮부터 퀴즈를 내고 그래?”

“…별로. 공안부장이 제멋대로 변하고 따라왔을 뿐이야.”

‘히스토리아’의 말투는 히스토리아와 완전히 똑같았지만, 애초에 인간을 마음으로 인식하는 나에게는 하등 소용이 없다. 말투나 외모가 똑같으면 뭐 해. 생각이 다른데.

나는 방금 말한 '히스토리아'를 쳐다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러면 힐데가 제멋대로 낸 거니까, 상품은 힐데가 주겠네요.”

“글쎄. 준비했을까 모르겠네.”

“자기가 모르면 어떻게 해요. 설마 상품 준비 안 해놓고 발뺌하는 건 아니죠?”

내가 분명하게 지적하자 ‘히스토리아’가 동작을 멈췄다. 굳은 얼굴로 나를 지그시 쳐다보던 ‘히스토리아’는, 곧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펼쳤다.

“정답! 대단해요, 아버님! 어떻게 알았어요? ‘제’ 혼신의 힘을 담은 연기였는데! 심지어 의복패킷마저도 완벽하게 똑같았다고요!”

“비밀이랍니다. 마술사에게 트릭이란 죽기 직전까지 밝히면 안 되는 거거든요.”

“에엣! 치사해! 혹시 ‘제’가 안 보는 사이 둘이 신호를 정해둔 건 아니죠?”

“저야 관객과 짜고 치기도 하는 삼류 마술사지만, 리아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안 그럴걸요.”

“정말, 그렇게 말하면 ‘제’ 자존심은 뭐가 되나요!”

‘히스토리아’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도로 어린아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씩씩거렸다.

말할 필요도 없이 저쪽이 힐데다. 이제 더 속일 생각도 없는 그녀를 향해 심드렁하게 물었다.

“됐고, 그래서 상품은 뭔데요?”

“상품이요? 그건 바로 ‘저’!”

“그건 상품이 아니고 그냥 물건이잖아요. 상을 달라고요.”

“너무해요! ‘저’를 가지시면 마사지해드릴 수 있는데!”

마사지라. 그러고 보니, 힐데는 신성력도 쓰고 타혈법도 쓴다고 했던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신성력은 믿음이 신실하면서 성사(聖事)를 꿰뚫고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그 ‘믿음이 신실’하다는 조건이 꽤 빡빡해서, 다른 믿음이 있다면 불가능할 정도라…. 괜히 마법사가 신성력을 쓸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지.

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자기 자신조차 속일 수 있는 변신술사라면 또 모르지만.

“끙. 그럼 부탁드리겠는데… 그것 때문에 찾아오신 건 아니죠?”

“네! 우리 총사님께서 아버님께 긴히 할 말이 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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