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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1인칭 시점-320화 (320/384)

진짜 모른다.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라서 섣불리 행동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나는 예언자처럼 모든 가능성을 나열하며 조심하는 타입은 아니니까.

“그래도 확실한 건, 모든 일이 끝나면 군국으로 돌아온다는 거야.”

이건 진실이다. 나에게 평범한 시간이 허락된다면, 군국에서 머물며 천천히 비밀을 찾아다니겠지. 무저갱에 들어가기 전처럼.

히스토리아는 내 말을 몇 번 곱씹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거짓말 같아.”

참나. 내가 그래도 오랜 정으로 진실을 말해줬더니 거짓말 같다고?

“너를 믿을 수가 없어. 군국도, 나도. 쉽게 버렸잖아. 그 무엇도 너의 인질이 될 수는 없잖아….”

당연하지. 나는 인간의 왕. 모든 인간을 인질로 잡지 않는 한,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약속은 지켜.

“자. 리아. 마사지 고마웠어. 아, 맞다. 저번에 통신본부 지하로 내려갔을 때, 다시 올라오면 보답하겠다고 했지? 덕분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손을 내밀었다. 히스토리아는 나를 일으켜주기 위해서 손을 잡아당겼다. 친구 사이에 한 번 해봤을 법한 아주 일상적인 동작이다.

거기에 하나를 섞는다.

“8번.”

서로의 위치를 바꾸는 동작. 히스토리아는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순식간에 나와 히스토리아의 위치가 뒤바뀐다. 내가 아무리 용을 쓰고 힘을 주어도 넘어지지 않을 히스토리아는 내가 속삭인 한 마디에 침대 위로 나동그라졌다.

나는 히스토리아를 내려다보며 소매를 거뒀다.

“너도 근육통 심하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거야.”

“어….”

“보답이야. 마사지해줄게.”

“휴이, 너… 타혈법은….”

“배웠어. 방금.”

나는 못 한다. 하지만 히스토리아는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히스토리아의 생각을 읽는 나도 할 수 있다.

타혈법은 상당히 감각적인 기술이지만, 상관없다. 히스토리아의 감각을 읽으면 되니까.

“0번.”

굳기 전에 새긴 것이 가장 오래 남는다. 그녀가 서툴렀던 시절 미리 약속해둔 지시에 따라, 히스토리아는 숨을 깊게 내쉬며 힘을 뺐다.

히스토리아는 군국에 남기로 결정했다. 연이은 전투로 몸도 많이 상했고, 새로 얻은 깨달음을 갈고 닦을 시간도 필요하다…는 게 일단 표면적인 이유였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군국을, 그리고 군국의 ‘기밀’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통신본부 지하에 묻힌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군국은 터무니없이 쉽게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끄응. 뭐, 딱히 군국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그래. 아군 한 명쯤은 둬도 되겠지.”

회귀자는 약간의 아쉬움을 담아 투덜거리며, 히스토리아에게 세계수의 잎 한 뭉치를 건넸다.

“자. 세계수 잎이야. 귀한 거니까 마력초처럼 막 피우진 말고.”

히스토리아는 세계수 잎을 건네 받으며 중얼거렸다.

“…솔직하지 못하네, 귀염둥이.”

“너 다 쓰라고 준 거 아니거든! 나비에게 쓰라고 준 거야!”

“고양이 왕? 마력초?”

회귀자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래. 이제 막시밀리앵도 없고, 고양이 수인 중장도 없고. 나비도 그다지 호락호락하지는 않으니까 건드릴 사람도 없어. 하지만 가만히 두기에는 불안해. 고양이처럼 애매한 야성으로 인간이랑 미묘하게 친한 짐승은 이용당하기 쉬우니까…. 이왕이면….”

구구절절 이야기가 길어지네. 간략하게 말하면 될걸. 솔직하지 못한 회귀자를 위해 내가 친절하게 요약해줬다.

“나비를 맡기고 싶대. 너라면 믿을 수 있고, 나비도 쓸모는 있으니까 이왕이면 네가 잘 봐줬으면 좋겠대. 마력초는 나비를 컨트롤하기 위한 수단이고, 네가 피워도 되니까 좋겠지…라고 하네.”

완벽한 요약이다. 히스토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엽네.”

“그건 잘 모르겠지만, 솔직하지는 못하지.”

“멋대로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나는 솔직하지 않았던 적도 없거든?”

발끈하는 게 가당찮다. 일단 가면부터 벗고 이야기하지 않을래? 언제까지 남장할 생각이야?

뭐, 대충 이유는 알겠다. 미래를 안다고 하면 일단 성녀로 의심받으니까? 겸사겸사 자기 출신도 좀 속이고. 합리적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너, 솔직하진 않잖아? 그것도 내가 조금만 찌르면 곧장 들통날 정도로.

어디, 내가 너의 모순을 짚어주지.

“마침 잘됐네요. 저도 꼭 묻고 싶지만 입밖으로 내뱉으면 돌이킬 수 없어서 참고 있었던 게 있는데, 그렇게 솔직하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가 뭐?”

“아시다시피 저는 가진 재주라고는 말재주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이니까요. 군국에서야 히스토리아와의 인연도 있고 어릴 때부터 지내왔던 곳이라 어찌어찌 난관을 극복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그게 불가능해요. 특히 열국처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라면 더더욱이요.”

“왜 말을 빙빙 돌리고 그래?”

조금 전 네가 했던 짓이라서, 이것아. 거울치료를 하려고 했는데, 네가 거울 테스트도 통과 못할 줄은 몰랐다.

나는 이번에도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저는 이제 더 벗겨먹을 것도 없는 깡통이에요. 나약한 저는 이곳에 남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요?”

“어?”

“그러니까, 셰이 씨 입장에서도 제가 없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묻는 거예요.”

자신 없는 척, 내 필요성을 인정해달라 어필한다.

무릎 꿇고 부탁하지 않으면 안 따라가겠다…라고 뻗대는 방법도 있지만, 그랬다간 태생이 반골인 회귀자는 진짜 홀로 떠날 수도 있다. 지금의 나에게도, 다음 회차의 나에게도 별로 도움 되지는 않는 행위니까 그건 패스.

지금은 이게 최선.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회귀자도 내 부재를 상상하면 아득함을 느끼겠지.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렇긴 해. 순수하게 무력으로는… 무언가 한 수는 갖고 있지만, 뭔가 신경 안 쓰면 픽 죽어버릴 것 같지. 든든하진 않아.’

어라. 그 부분을 인정하라고 한 말이 아닌데.

‘하지만 그 이외의 부분에서는 달라. 교섭, 설득, 상대의 빈틈을 파고드는 변수… 그런 쪽에서는 상당히 유능해. 하필 나한테 가장 부족한 부분이라. 포기하긴 어려워.’

드디어 알아줬구나, 회귀자. 나의 소중함을 깨달았어. 자, 이제 솔직하게 인정해줘야겠지?

“흠흠. 아니, 뭐. 조금 불안한 마음도 없잖아 있지만. 따라와도 괜찮은데? 어차피 힘 쓰는 사람은 충분하니까.”

“즉, 저는 여러분의 짐만 된다는 뜻이잖아요? 그래서야 어디 가서 자랑할 수 있겠나요. 세계를 구할 용사 파티…의 짐꾼. 아니, 그것도 아니고, 짐덩이잖아요.”

“아니아니! 뭐, 짐덩이도 짐덩이 나름이지!”

“그렇지만 나름의 짐덩이도 짐이라는 카테고리는 변하지 않죠. 그렇다면 저는 여기서 빠지는 게.”

슬쩍 말꼬리를 늘리자 회귀자가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야! 힘이 뭐가 중요하겠어! 그래도 정이 있지!”

“세상을 구하는데 정이 중요할까요.”

“나, 나 말고도! 너와 친한 아지나, 티르칸쟈카도 있잖아! 모티베이션이란 중요한 거야!”

“오히려 인질이 될 위험성이 있죠. 빠져야 할 이유가 하나 늘었네요.”

“그러지 않도록 지켜줄게! 뭐, 조금 번거롭겠지만 그 정도야!”

“원점으로 되돌아왔잖아요. 번거로워질 바에야 안 따라가는 게 낫다니까.”

“앗!”

얘는 자가당착이라는 말을 모르나. 왜 자기 말이 자꾸 자기를 반박하는 거야?

쩔쩔매는 회귀자를 보며 히스토리아는 귀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귀엽긴 하네. 솔직하진 않은데 솔직해. 휴이 네가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를 알겠어.”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괴롭히고 싶은 거지. 둘은 꽤 차이가 있다고.

그냥 내 능력이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면 될 것을, 회귀자는 차마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어물거렸다. 나는 가만히 회귀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자. 내 논리에 빈틈은 없다. 순수하게 내 능력을 인정하고 같이 가달라고 사정사정해라. 어차피 따라가야 하지만, 이왕이면 모셔 가는 편이 좋잖아.

‘힘은 약해. 하지만 유용해. 데려가는 게 맞아. 그렇다면… 어?’

드디어 방도를 떠올렸는지, 회귀자는 손뼉을 딱 치고는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너를 강하게 만들어줄게!”

“…네?”

뭐야, 갑자기. 거기서는 내 소중함을 인정하고 같이 가달라고 부탁해야 하잖아. 그런데 웬 이상한 말을.

“나는 약한 사람이 어떤 단련을 거쳐야 강해지는지 알거든. 내가 직접 해봤으니까. 너도 가능해! 성장은 끝났지만 나이가 엄청 많지도 않고. 수석을 했을 정도면 머리도 좋을 거고!”

아니, 너 지금 나보다 어리다? 회귀했다고 나이를 착각하지 마라?

“그렇다면 내가 틈나는 대로 너를 단련시키면 되잖아! 힘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힘을 갖추면 되는 거 아니야!”

“봐주기는 뭘. 그건 더 번거롭잖아요.”

“괜찮아! 그건 투자니까!”

‘그리고 이번에 어떤 훈련이 더 좋은지 노하우를 익혀 두면 다음 회차에서는 더 빠르게 강해질지도 모르고! 어쩌면 티르칸쟈카 이상의 기연이 될 수도 있어! 재앙의 씨앗을 둘이나 제거하고, 총사를 움직일 연결고리가 될 테니까!’

큰일이다. 결론이 이상한 쪽으로 가고 있다.

내가 힘이 부족해서 못 가겠다, 이러면 나의 장점을 나열하면서 위로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이잖아. 평범한 사회성을 가진 인간이 취해 마땅한 대응이기도 하고.

그런데 힘이 부족하다면 힘을 주겠다니? 너는 악마냐?

“하하하. 무슨 소리를. 제가 여기서 단련한다고 막 각성할 리 없.”

“…진 않아. 그거 괜찮네. 휴이라면 가능성은 있으니까.”

“리아, 그게 또 무슨 말이야?”

히스토리아는 내가 회귀자를 놀렸을 때보다 몇 배나 흥미진진한 얼굴로 말했다.

“좋다고 생각해. 아니, 필수야. 휴이에게 가장 필요했던 거였어.”

아니, 잠깐! 나는 그런 식으로 강해지지 않는다고. 괜히 인간의 왕이 모든 힘을 잃고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 줄 알아?

그게 진짜니까! 내가 강해질 방법을 몰라서 빌빌거리고 있던 게 아니야! 뭐든 평범한 재능으로 그친다니까? 애초에 강하다고 살아남는 세상도 아니고!

‘어디 보자. 훈련메뉴는? 일단 기초 체력이 붙도록 반복 운동부터 시작하는 게 정상적이겠지? 육체 반응을 좀 보고 부하를 점차 올려나가면.’

안 되겠다. 히스토리아도 회귀자의 뜻에 긍정적이다. 여기서 더 머물렀다간 날 죽일 훈련메뉴가 완성될 수도 있다. 도망칠 곳을 찾기 위해 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찾았다. 저 앞에 커다랗고 폐쇄적으로 보이는 자동마차 한 대가 도로를 타고 굴러왔다. 조금 전 통신병의 연락을 받고 힐데와 티르칸쟈카가 공수 받으러 간 그 자동마차다.

정오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세상 만물을 그림자 없이 비추는 곧은 빛도 저 강철 상자에 닿자 형편없이 부서졌다. 두꺼운 장갑으로 뒤덮인 자동마차는 안에 탄 사람을 각종 위협에서 지켜줄 뿐만 아니라 햇빛으로부터의 완벽한 보호를 제공할 것이다. 흡혈귀가 탈 것을 염두에 둔 것 같지는 않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기능이었다.

자동마차 위에 달린 뚜껑에서 누군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힐데다. 힐데가 팔을 좌우로 크게 휘두르며 외쳤다.

“아버님! 지휘용 장갑차량 캐터프랙트를 공수받았습니다! 준비 다 끝났어요! 몸만 타시면 출발합니다!”

나이스 타이밍. 진짜 너 밖에 없다.

“여러분! 준비가 다 끝났답니다. 더 늦기 전에 얼른 출발하죠.”

“…100회. 중간중간 뛰어서 따라오기. 영약 강제로 섭취….”

“가자고!”

끔찍한 소리를 더 못하도록 틀어막은 나는 유난을 떨며 캐터프랙트를 향해 달려갔다. 회귀자도 그제야 걸음을 옮겼다.

캐터프랙트의 뒤쪽이 덜컹거리며 열렸다. 열린 입구는 그대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경사면을 만들어, 그곳으로 물건을 싣고 내릴 수 있는 구조다. 나는 그곳으로 올라타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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