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1인칭 시점-326화 (326/384)

무질서하게 보였던 선이 어느덧 하나의 도형을 이룬다. 연성진이다. 기공이 파낸 홈으로 마력이 파고든다. 빛이 번쩍이며, 우레바퀴의 홈이 일부 녹아내려… 보다 큰 규격으로 바뀌었다.

잠깐 사이 우레바퀴가 두 배 이상 커졌다. 힘으로 눌러 조잡하게 늘인 것도 아니고, 마구잡이로 덧붙인 것도 아니다. 순수하게 연금술로 가공해낸 것이다.

회귀자가 내심 감탄했다.

“연금술도 할 줄 알아?”

“연금술을 할 줄 모르면 연금술사로 변장할 수 없잖아요? 필요한 만큼은 익혀두었죠.”

연기에 얼마나 진심인 거야. 회귀자가 어이없어서 중얼거렸다.

“변장해야 하니까 기술을 익힌다니, 그렇게 따지면 마법도 부릴 수 있겠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저’, 제식마법은 대부분 익혔어요!”

“뭐?”

힐데는 더 설명하는 대신 우레바퀴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그리고는 눈을 감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마법사. 세상의 이치를 손아귀 안에 재현하는 현자.’

기도가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연금술사였던 힐데는 이제 마법사와 비슷한 존재가 되었다.

세상 모든 게 그렇듯, 사람마다 적성이라는 게 있다. 아무리 원리를 안다고 해도 적성에 맞지 않으면 그다지 성취를 못 얻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따져 볼 때, 나는 모든 기술에 적성이 꽝이다. 독심술 덕분에 어떤 기술이든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결코 일정 성취 이상을 얻을 수가 없다. 기공도, 마력도 평균 수준.

그렇지만 힐데는 조금 다르다. 마력도 기력도 충분한데 가진 바 능력을 완벽하게 활용한다. 모든 재능에 두각을 보이는 건 엄청난 천재라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지만, 힐데는 자기에게 암시를 걸어서 일류의 영역까지 끌어올린다.

“세트, 리. 볼트.”

몸에 흩어진 마력이 벼락의 형태를 취해 우레바퀴로 스며들었다. 힐데에게는 상당한 마력량이 있었고, 그것을 마력으로 구현하는 방식은 일류였다.

우레바퀴에 벼락이 깃들었다. 힐데는 벼락에 싸여 파직거리는 우레바퀴를 자랑스레 내보이며 엔진 쪽으로 다가갔다.

“디지, 지시를.”

[넵! A파트를 구동축에 연결해주십시오! 선택 사항이나, B파트는 교란을 막기 위해 아예 떼어버리는 것을 권장합니다! 그 상태에서 중심부만 맞추면 현 규격에서 C, D파트와 맞물릴 겁니다!]

힐데는 정확히 지시대로 행했다.

전부 다 알지는 못한다. 지시에 대한 최소한의 기반지식만 익혀뒀을 뿐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이해가 통신병의 지시와 더해져 완벽한 결과를 끌어냈다.

힘과 기술이 더해진 정교한 작업이었다.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뜯어내고 더 커진 우레바퀴를 연결부에 맞추었다. 약간의 오차는 간이 연금술로 조정한다.

이게 군국의 육장성 영궤의 본모습인가.

잠시 뒤, 우레바퀴가 돌아가며 캐터프랙트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골렘이 신이 나서 외쳤다.

[기동음… 양호! 출력 양호! 성공했습니다!]

마법도, 연금술도, 하다못해 기계공학도 일류에 다다랐다. 심지어 기공도 이치에 닿았다. 모든 무기를 달인급으로 사용하고, 다른 인간으로 감쪽같이 변장할 수 있는 만능인.

어디에 들어가도 자기 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겠지. 캬. 이러면 이제 내가 할 일이 많이 사라져서 편하겠….

어라?

‘잡다한 기술에 익숙한 것이 꼭 휴와 닮았구나. 휴가 조금만 더 힘을 되찾는다면 저 아이와 비슷해지겠지…. 것 참. 누가 아이이고 누가 아비인지 모르겠구나’

어라? 잠깐만.

이러면 내 상위호환이잖아?

더는 내 자리가 없을 것 같다는 내 불안함도 어쨌든, 옆면과 지붕을 다 덜어낸 캐터프랙트는 상당히 빨랐다. 속도에 굶주린 한 골렘의 운전실력까지 합쳐져 어지간한 짐승도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길을 내달렸다.

거센 바람만 빼면 무난하고 편안한 여행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영궤. 거기 균형 좀 잡아 봐.”

“남을 맨입으로 부려 먹고 있어! 이번만이니까, 앞으로는 더 정중하게 부탁해봐요!”

뚝딱뚝딱. 강철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회귀자는 지잔을 망치 삼아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넓적한 발판이 하나. 그리고 질긴 밧줄로 단단히 묶여있는 T자 모양 손잡이 하나. 흘긋 보면 두 발로 서서 타는 썰매처럼 보인다.

다만 의문이 있다면, 그게 왜 필요하냐는 거다. 우리가 탄 캐터프랙트는 충분히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데.

‘가는 동안 멍하니 있을 수는 없어. 이 시간도 알차게 써야지! 휴즈 녀석을 수련시키는 거야!’

…사실 독심술로 읽어서 안다. 읽은 순간 금단의 진실을 엿보게 해준 독심술을 저주했지만, 알든 알지 못하든 어차피 내게 돌아올 패다. 알고 당하냐 모르고 당하냐의 차이만 있을 뿐.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셰이 씨.”

“응?”

“그건 도대체 뭔가요?”

회귀자는 썰매를 가볍게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마침 잘 물었어. 이건 네 수련을 도와줄 기구야!”

“수련이요?”

“응! 네 수련을 돕기로 했잖아?”

그러니까, 어째서 썰매가 수련도구냐고. 나는 필사적으로 말을 돌렸다.

“손으로 잡고 들어 올리면 되는 건가요? 좀 무거워 보이지만, 운동 삼아 해볼 만한 것 같네요.”

“바보야? 그런 단순한 용도였다면 내가 썰매로 만들 리 없잖아.”

“자기 입으로 썰매라고 했겠다! 그게 더 이상하잖아요! 썰매가 도대체 어떻게 수련 도구가 되는 건데요?”

“간단해. 수련하기 전에, 네 기력을 파악하기 위함이지.”

회귀자는 내 앞에 썰매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기공의 기본인 건곤감리는 알지? 너, 탄탈로스에서 잘난 척 강의까지 해봤잖아.”

“당연히 알죠.”

기공은 기력을 써서 육체를 강화하는 기술.

건은 기력을 세상 만물에 불어넣고, 곤은 기력을 발아래 뻗어 대지와 하나가 되게끔 한다. 감은 신체 그 자체를 강화하고, 리는 이치를 비튼다.

알기야 다 알지. 심지어 리를 제외하면 다 쓸 수 있다. 몸이 못 따라가서 문제지만.

“보통 건곤만 이루어도 쓸만하다는 평가야. 감까지만 잡아도 뛰어난 기공사라고 취급해줘. 군국 장성이 되는 기본 조건도 감기공을 익히는 거였을 정도니까. 거기까지 할 수 있다면 그 이후로는 크기의 문제지. 뭐, 리는 개인차가 워낙 심하니까 논외고.”

“왜 리는 논외에요? 혹시 셰이 씨가 못 익혀서 그러는 거예요?”

“아니거든! 사람마다 도달하는 경지가 달라서 비교할 수 없으니까 그런 거야!”

‘내가 못 익히기도 했지만…! 치잇. 수련도 해보고 견문을 넓혀봐도 리는 도저히 모르겠어!’

하긴, 시간을 거슬러 회귀하는 사람에게 꼭 이루고 싶은 심상을 떠올리라고 하는 것도 웃기지. 다음 회차에 하면 되잖아? 죽음도 극복하는데 굳이 이치가 필요할까 싶다.

“어쨌든. 내가 보았을 때 너는 분명 감까지 잡았었단 말이야? 뭐, 재능이나 교육방침에 따라 감을 먼저 잡는 경우도 있다지만, 군국의 커리큘럼이라면 건곤감리 순서니까. 잠깐이지만 그래서 나는 너를 장성급이라고 생각했었고.”

“하하하.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뭐, 지금도 네가 수련 여하에 따라서 장성급은 충분히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네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니까.”

고개를 홰홰 저은 회귀자는 나에게 손잡이를 떠넘겼다.

“건기공으로 손잡이를 꼭 붙잡고, 곤기공으로 발판에 발을 붙여. 썰매에 올라타서 균형을 잡아. 최대한 버텨봐. 수련이라고 치고.”

아, 그러니까.

이 덜컹거리는 캐터프랙트 뒤에 썰매를 매달고, 나를 거기 태운 다음 잡아 끌겠다는 거지? 거참 아지가 좋아할 만한 장난이네. 하하.

…장난해!

고속으로 움직이는 캐터프랙트. 여기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내 손힘으로 저 밧줄을 잡아당겨야 한다. 손아귀나 팔, 혹은 허리나 다리. 어딘가의 힘이 조금이라도 빠지면 그 순간 나는 즉시 균형을 잃고 땅으로 엎어진다.

내가 어디서 죽었는지 특정하지조차 못할 거다. 땅에다가 몸이 갈갈 갈리다가 수백 m에 걸쳐서 잔해를 흩뿌리며 죽어갈 테니까!

“그게 무슨 수련이에요! 형벌, 아니, 처형이잖아요!”

“힘들고 아프지 않으면 수련이 아니지.”

“안 해요! 요즘 세상이 어느 시대인데 그딴 무식한 방법으로 힘을 키워?”

‘뭐 그 정도 가지고. 나는 짚신만 신고 끌려다닌 적도 있는데? 기공으로 짚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발바닥이 다 까지고 그랬어. 그것보단 낫잖아?’

그게 악습이지! 자기가 당했다고 그대로 시키려고 해? 이 사회가 더 나아지지 않는 건 악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너 같은 사람 때문이야!

“뭐 영약이나 보물을 주는 줄 알았네. 제가 왜 사서 고생해요? 썰매는 아지나 태워주세요!”

“멍?”

“그래, 아지야. 마침 잘 왔다. 얼굴 밖에 내밀고 멍하니 쳐다보는 것보다 이게 더 재밌을걸!”

손잡이를 흔들자, 상체를 밖으로 내민 채 지루한 듯 하품하고 있던 아지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이깟 손잡이, 아지 장난감이나 되라. 손잡이를 아지에게 물린 뒤 밧줄을 잡아당겨 터그 놀이를 해주었다. 말이 터그놀이지 아지가 고개를 비틀 때마다 밧줄을 놓치지 않도록 애쓰는 것에 불과했지만.

“어유, 힘센 거 봐.”

“멍멍! 더 세게!”

“살살 해, 살살. 너는 나보다 몇 배는 힘이 세잖아. 내가 힘을 준다고 해서 뭐 달라지겠니.”

회귀자는 수련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아지와 놀아주는 내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내가 회귀 통틀어서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수련에 부정적인 녀석이네. 더 강해지고 싶어 하는 건 본능 아니야? 고수가 수련을 봐주겠다는데 설마 안 하겠다고 뻗댈 줄은.’

내가 완강하게 거부하는 바람에 회귀자는 약간 태도를 바꾸었다.

“내가 보기에 너는 충분한 잠재력이 있어.”

“군국의 교육관도 저에게 그렇게 말했죠. 이 자식 재능은 있는 거 같은데 노력을 안 하는 게 분명하다고. 그때는 원망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가능성을 믿어줘서 고마운 마음이네요.”

“비꼬는 게 아니고! 실제로 기공도, 마력도, 연금술도 전체적으로 능숙하게 하는 걸 봐서는 재능이 부족한 게 아니야. 단지, 뭐랄까…. 다 뭔가 막혀있는 느낌이지.”

잘 아네. 여기, 이 정도가 나의 한계라고!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나를 무식하게 몰아붙이려고 해?

“죄송하지만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그려보기엔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는걸요. 슬프게도 이게 저의 한계에요.”

“아냐, 달라. 내가 생각해보건대, 너는 신체의 밸런스가 무너진 것 같아.”

“밸런스?”

“응. 나도 한 번 겪었던 일이지만, 마법이나 기공처럼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기술을 같이 익히면 그… 뭐라고 해야 하나. 몸이 한쪽으로 쏠린다고 할까? 균형이 망가지거든. 그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한데….”

웃기시네. 네가 말한 그런 어려움을 겪은 적 없거든.

나는 인간의 왕.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지식과 기술은 내 것처럼 다룰 수 있다. 다만, 마력과 기력의 절대량이 부족해서 재현하지 못할 뿐이지.

그렇다면 마력과 기력을 늘리면 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아무리 해도 어느 정도 이상으로 힘이 모이지 않는다.

이유는 모른다. 아마 인간의 왕이 힘을 잃게 된 ‘그 사건’이 관련되어 있겠지.

그게 무슨 사건이냐면… 나는 모른다. 진짜로.

오히려 내 쪽에서 알고 싶다.

거짓말이 아니다. 아지는 먼 옛날 이루어진 약속을 계승하고 있지만, 그게 뭔지 물어봐도 ‘멍?’하고 되물을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탐정이라도 계약서만 보고 당시 상황을 재연하지는 못한다. 똑같은 이치로 약속은 이어지더라도 기억까지 전해지지는 않는다. 추측하건대 저주나 봉인, 그와 가까운 무언가겠지. 아마, 처음의 성녀와 관련된….

어쨌든, 100% 밸런스 문제는 아니었기에, 나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그걸 한다고 제가 더 강해질까요? 그냥 영약이나 보물을 주시는 게 어떨까요? 잘 써드릴 수 있는데.”

“노력 없이 얻은 힘을 잘 쓸 리 없잖아!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니까? 잘하면 벽을 허물 수 있다구!”

‘기력을 다루는 방식과 마력을 다루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 기력은 내 몸을 움직여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고, 마력은 세상에 일어나는 변화를 내 몸으로 재현하는 힘이야. 안으로부터 밖, 밖으로부터 안. 서로 거스르는 성질이 있다 보니까 둘 다 같이 쓰려고 하면 자꾸 헛돌게 되는데… 으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흥. 밑져야 본전이라고? 노력을 들인 순간 이미 밑진 게 아니야. 내가 하나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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