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나, 잘했어?”
“그래! 한 건 했으니 오늘은 고기 반찬이다!”
“아우우우우! 좋아! 좋아!”
“거기 가만히 있어! 내가 갈 때까지…!”
재빨리 밧줄을 묶어서 올가미를 만들었다. 이대로 목에 걸고 당기자. 아, 내가 줄을 잡아당기면 질질 끌려가서 능지처참을 당할 테니 아지 보고 끌라고 해야지.
올가미를 머리 위로 빙글빙글 돌리며 꼼짝 못 하는 말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말은 수상한 인간의 등장에 겁을 먹었는지 더욱 주인에게로 붙었다.
어라, 주인?
‘…승냥이가, 대낮부터 당당하게 말을 도둑질하려고 해? …아무리 그래도 캠프 근처인데. 얕보였나….’
말 그림자에 가려진 누군가로부터 생각이 전해져 온다. 다시 보니, 말은 도망치지 못한 게 아니라 도착한 거였다. 주인이 곁으로.
‘…거기다, 수인을 노예로 길러… 구제불능의 악당이네.’
쳇. 내가 아무리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강도질은 선호하지 않는데. 강도질은 강력범죄잖아.
강력범죄의 뜻은 강력한 사람만 저지를 수 있는 범죄란 뜻이다. 나는 약자니까 강력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고 잡범으로 남을 수 있다. 물론, 상대가 나보다 약하다면 상대적인 강함으로 강력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지만….
‘…녹여버릴까.’
안 되겠네. 나는 빙글빙글 돌리던 올가미를 냅다 던졌다.
말이 아니라, 아지에게.
“멍?”
아지는 날아오는 올가미를 입으로 낚아챘다. 그러면서도 왜 이게 자기에게 날아오는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빤히 보았다.
작게 헛기침한 나는 냅다 아지를 꾸짖었다.
“네 이놈, 아지! 남의 말을 괴롭히면 어떻게 하냐!”
“뭉뭉?”
“말은 인간의 친구이자 탈것이자 재산이야! 소중히 다루고 괴롭히지 말아야지! 왜 무섭게 굴어! 내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니!”
아직 몰라? 나, 너 혼내고 있는 거야. 너는 야단 맞는 중이라고.
아지는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하다가, 장난인 줄 알았는지 갑자기 고개를 휘저었다.
“뭉!”
“으아악! 잡아당기지 마! 넘어져!”
몸이 퉁 뛰어오른 뒤 땅에 내팽개쳐진다. 고통보다 먼저 수치와 서러움이 밀려온다. 낚싯대에 딸려 올라가는 민물고기가 이런 심정일까.
축 늘어진 내 위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말의 주인이었다.
녹이 슨 듯한 희붉은 머리카락을 꽁지머리로 묶고 있다. 느슨한 멜빵바지에는 새카만 기름때와 녹아 붙은 철이 들러 붙어있다. 차분한 인상이었지만, 얼굴 곳곳에 붙은 반창고 때문인지 표정을 짓기 어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연금술사와 공병단, 그 사이의 무언가로 보이는 여자가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댁이, 주인?”
“주인이었으면 오죽이나 좋겠습니다. 세상 어떤 주인이 먹이고 입히고 놀아줍니까? 오히려 쟤가 제 주인이겠죠.”
“멍! 멍멍! 나, 주인 아냐! 대주주!”
아직 대주주까진 아니지 않냐? 무엇보다 당사자가 이렇게 확고하게 살아있는데 무슨 대주주라고.
아지를 흘긋 본 여자는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말, 훔치려 했지.”
“아니요? 혹여나 아지가 말을 해칠까 봐 막으려고 했어요. 남의 말을 다치게 했다간 민폐니까요.”
“…올가미는.”
“아지를 잡으려고 던진 거죠. 말을 해치기 전에 막아야 하니까.”
“…고기 반찬 이야기는?”
“아지가 말을 잡아먹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고기반찬으로 일단 시선을 돌리고 봐야죠. 안전을 위한 대책이었다고요.”
어떠냐. 내 논리적인 변명이.
완벽한 논리를 갖춘 주장에 여자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굳게 다문 입가에서 의지가 전해져온다.
‘…변명이라도 하는 시점에서, 승냥이 상위 10%네.’
열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길래 변명했다고 상위 10%에 드는 걸까.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여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되돌아갔다.
“…좋아. 넘어가 줄게.”
“뭘 넘어가요? 따지면 방목지에서 탈출한 말이 잘못한 거지. 탈것 관리 똑바로 안 해요? 그토록 귀중한 말을 도둑맞으면 어쩌려고?”
여자는 내 헛소리에도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말은 무시해버리는구나. 빈틈 만들기 어려운 타입이네. 그렇다면 조금 다른 수를.
여자는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아우레아는 나를 도우러 왔어.”
“아우레아?”
“…내 말, 이름.”
“아, 그래요? 서로 애완동물 소개하는 시간이었나 봐요. 저도 할게요. 얘는 아지입니다. 달려가는 걸 보면 냅다 쫓아가는 못된 버릇이 있죠.”
‘…수인을 애완동물… 평가를 수정해야 하나. 승냥이 중 하위 1%도 이 정도로 인성이 파탄나지는 않았는데.’
열국의 기준을 도저히 모르겠다. 개를 보고 개라고 부르는데 상위 10%에서 하위 1%까지 떨어지다니. 이 낙차 뭐야.
와중에 아지는 내 발치를 탁탁 두드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멍멍! 얘, 인간! 거짓말 잘 해!”
“야. 설명할 필요 없어. 여기 있는 모든 인간이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알거든?”
“소개 끝!”
“너 설마 애완동물 소개하는 시간이라고 해서 나를 소개한 거냐?!”
‘…푸훗. 재미있는 관계. 사이 좋네.’
여자는 속으로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말을 데리고 간 그녀는 땅에 떨어진 강철 주괴를 하나 집어 들었다. 터진 소매 사이로 팔꿈치에서부터 내려오는 검붉은 문신이 보인다. 새하얀 빛이 문신을 타고 내려오더니 그대로 주괴에 스며들었다. 강철 주괴에 기하학적인 세로선이 새겨진다.
여자가 마력을 집중했다. 빛이 번쩍인다. 눈 깜짝할 사이, 강철 주괴는 튼튼한 쟁기로 바뀌어 있었다.
마력으로 물질을 바꾸는 힘. 연금술이다. 그것도 상당히 수준이 높은.
“쟁기? 농사 지을 때나 쓰는 물건인데요?”
“…응.”
“이상하네요. 열국에는 밭이 없다고 들었는데 웬 쟁기.”
말에 쟁기를 매던 여자는 나를 힐긋 보며 짧게 물었다.
“…떠돌이?”
“아, 네. 최근에 들어왔어요.”
“…밭, 있어. 황금경께서는 전능하시니.”
황금경을 언급하자 여자의 말이 길어졌다. 여자는 변호사라도 된 것처럼 상당히 열정적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황금경께서는 밭을 자주 만드셔. 경께서 지나가시면 넓은 농작물이 가득해. 규모가 커서, 황금궁에는 작물을 수확하는 저거너트가 따로 있어….”
호오. 하긴, 열국의 주수입이 약탈이라지만 그것 만으로 식량이 자급자족될 리 없다. 분명 어디서는 식량이 공급되고 있다곤 하는데…. 그게 황금궁이었구나.
열국의 모든 건 황금경이 연금해낸 것. 그렇지만 홀로 장성도 쌓는 황금경이 더 필요한 논밭을 만들지 않을 리가 없….
잠깐. 생각을 이어 나가던 나는 무언가를 깨닫고 되물었다.
“잠깐만요. 황금경이 만든 ‘밭’에서 작물을 기르는 게 아니라…. 황금경이 ‘밭에 난 작물’을 만든다고요?”
“…응.”
어라, 잠시만.
이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논밭이 있고, 거기서 찔끔찔끔 농작물을 공급한다. 이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애초에 ‘작물’을 마음껏 만들 수 있다면? 연금술로 곡식을 영글게 한다면…?
“어라라. 그거, 사기잖아요. 식량을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다면 보급이고 뭐고 필요 없어지는데.”
“…그래.”
“대단하긴 한데, 왜 그 사실을 저에게?”
와중에 여자는 쟁기를 말에 매기 위해 낑낑거렸다. 연금술로 쟁기를 만드는 일은 순식간에 끝마쳤는데, 정작 쟁기를 매는 단순한 작업에는 그보다 곱절의 시간이 걸렸다. 여자가 멜빵으로 구슬땀을 닦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알아둬, 군국인.”
흠칫했다.
어떻게 내가 군국인이라는 걸 알았는지, 순간 경계하는 기색을 보이자 여자는 짧게 내 손목에 시선을 보냈다.
군국의 발명품 중 하나인 생체 단말. 인간의 생체정보를 응축하여 달아 놓은 군국의 신분증. 설마 이걸 알아차리다니.
‘…황금경이 얼마나 대단하신 존재인지, 군국이 무엇에게 싸움을 걸었는지를. 고작 막시밀리앵 따위를 육장성이라 떠받드는 너희는 그 편린조차도 알지 못하겠지만.’
당황한 척 황급히 소매를 수습했다. 내 다급한 움직임을 본 여자는.
‘…지금 가려봐야, 이미 엎질러진 물. 어리석었어, 군국인.’
라고 생각하겠지.
좋아. 자연스럽게 정체를 드러냈다. 이제 좀 공평하네.
나도 네 정체를 알았으니까.
정주할 땅이 없는 열국에는 영주와 같은 지배계급이 없다. 그렇지만 그게 계급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승냥이는 약탈하는 자들. 그렇지만 약탈만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법. 누군가는 절실히 필요한 무언가를 생산해내야 한다.
황금경의 부산물이 사방에 널린 이곳에서, 그것을 땔감으로 삼아 하루를 버틸 작은 모닥불을 피우려면 연금술을 익혀야 한다. 따라서 열국민 대부분이 상당한 연금술을 익히고 있다. 농부가 농사일을 배우고, 사냥꾼이 사냥법을 익히듯, 열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연금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출 난 몇 명이 있다.
황금경의 특별한 부산물. 힘으로도, 마력으로도 분해되지 않는 불가해한 물질을 가공할 수 있는 선택 받은 연금술사.
눈앞의 여자는 연금술이라는 분야에서는 막시밀리앵조차도 내려다보는, 열국 최강의 연금술사 중 한 명이다. 비록 지금은 여기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요란해. 첩자 주제에.”
새로운 대화를 위해서는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지. 평범한 승냥이가 황금궁이 어디 있는지, 황금경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그렇잖아.
그렇지만 내가 군국 출신이라는 걸 밝히면 이제 할 수 있다.
“왠지 이곳 땅만 뭔가 부드럽고 풀이 자라있더라니. 과거 이 땅은 황금경이 만든 논밭이었군요.”
“….”
“도시 말고, 이곳에 캠프를 차린 이유도 그 때문인가요? 과연, 아무리 연금술이 대단한 기술이어도 식량은 중요하니까.”
“….”
“그런데 궁금하네요. 황금경께서는 곡식을 만들 수 있는데… 왜 이 밭에는 곡식이 자라지 않죠?”
밭을 발로 톡톡 건드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처에 수원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밭을 적시는 건 자그마한 물뿌리개에 담긴 물이 전부다. 주변에 작은 철조망을 쳐 두긴 했지만 밭을 노리는 무언가를 막기에는 너무 낮고 연약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