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십시오!”
피유우우우웅.
그의 외참과 함께,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길게 늘어져 하늘을 찢는다. 타오르는 빛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모습은 누군가 밤하늘을 가위로 재단하는 듯하다. 그렇게 날아온 불화살, 아니, 길쭉한 로켓이… 저편 천막으로 떨어졌다.
직후,
콰과광.
한 박자 늦게 굉음이 울렸다. 캠프에 시한부 태양이 떠올랐다. 천막에 그림자가 지고, 뜨끈한 열풍이 그림자를 쥐고 흔든다.
그리고 비명. 공포와 혼란이 사람과 함께 퍼진다.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다급히 거리를 내달린다. 자유로운 열국인은 언제나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 그 능력은 십분 발휘되었다.
불빛에 눈을 찌푸린 페루가 물었다.
“…무슨 일?”
“모르겠습니다! 공격입니다. 설마 군국일까요?”
‘…날아오는 포탄이? 아냐. 전술적인 타격을 입히려는 목적이라면, 시끄러운 포탄은 비효율적이야. 혼란을 만들면 승냥이는 흩어져. 이건, 군인이 아니라 사냥꾼의 방식.’
“…아냐. 이 방식은.”
누군가를 떠올린 페루가 그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폭발음이 목소리를 이루고 자기 정체를 고했다.
[로드 로우켓이, 너희에게 고한다.]
신기한 목소리였다. 분명 요소요소는 귀 아프고 시끄러운 폭발음인데 묘하게 연결되어 한 명의 목소리를 취한다.
청각적인 점묘법. 도대체 어떤 기술을 섞었는지, 생각을 읽지 않고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와중에 단장은 그 이름을 알아듣고는 중얼거렸다.
“로우켓? 열폭(熱爆)회주?”
[위대하신 황금경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셨다. 군국을 치라.]
열과 폭발의 회주라니. 각기 따로 들으면 무시무시한데, 붙여 들으면 뭔가 좀 안쓰러운 칭호다. 혹시 얼굴 마주할 일 있다면 의도한 건지 물어보자. 화를 내면 의도한 거다.
열폭회주의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 돼지새끼들은 캠프나 차려서는 옹기종기 서로의 똥구멍이나 핥아주고 있구나. 제 배를 불리는 데만 여념이 없어! 왜 떠나지 않았지? 왜 명령을 받들지 않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불특정 다수를 꾸짖었다. 누군가 ‘가려고 했는데….’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전해질 턱이 없다.
그리고 아마, 상대도 그다지 듣고 싶어하지 않을 거다.
[너희가 먹는 것. 입는 것. 타는 것. 전부 황금경께서 만드셨다. 너희를 이루는 모든 것은 황금경께서 하사하신 거다! 우리의 신은 황금경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신의 명령을 듣고도 무시하는구나!]
와중에 신성모독까지 한 스푼.
[그렇다면, 따르게 해주마! 나, 황금경의 충실한 신하 로드 로우켓이. 지금부터 배교자 사냥을 시작한다!]
외침을 끝으로 수십 줄기의 파공성이 들렸다. 잠시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흘렀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섰던 인간들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이들의 뒤로 로우켓 경의 외침이 흩뿌려졌다.
[살고 싶다면, 떠나라! 약탈하라! 황금경께서 명령하신 대로…! 너희가 가질 수 있는 금은! 약탈이 보장된! 군국의 금뿐이다아아!]
워메. 이게 뭔 난리래. 지금 여기를 약탈하는 거야? 같은 열국인끼리?
왜 열국이 이레만에 군국에게 패배했는지 살짝 알 것 같기도 하다.
그 시각, 천막 주점 앞에는 끔찍한 비극이 일어났다.
동화책 속에서나 뛰쳐나온 것처럼, 현실감 없이 아름다운 백은발 소녀가 나타났다. 새까만 양산을 어깨에 걸친 드레스 차림의 소녀는 낯선 곳에서도 의연하게 걸어 다녔다.
자기가 금국의 왕과 만난 적 있다느니, 황금궁의 위치를 아는 자에게 사례하겠다느니. 현실감 없는 말만 하고 있었지만, 그보다 화자가 현실감이 없었기에 누구도 캐묻지 않았다. 동화에나 나오는 요정처럼, 곧 사라질 환상처럼 보였기에….
그러나 설마,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온 로켓에 직격당하는 방식으로 사라질 줄이야.
팔이 부러지고 몸이 꿰뚫렸다. 새빨간 불꽃 옆으로 검붉은 피가 피어났다. 인간의 몸은 꽃을 닮았구나, 하고 누군가 중얼거릴 즈음, 드디어 무엇을 깨달은 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악!”
“사람이! 사람이 죽었어!”
“사람 맞아?”
“뭐든!”
충격 때문에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한 사람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려는 무렵.
“죽지 않았다.”
로켓에 팔다리가 끊어졌…던 것처럼 보였던 소녀가 입을 열었다. 꿰뚫렸다고 생각한 몸에는 짙은 어둠이 피어올라서 로켓을 집어 삼킨 상태였다. 로켓은 어둠에 반쯤 잠긴 채로 애처롭게 꺼져가는 불길만 낼름거리고 있었다.
소녀는 붉은 눈으로 로켓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 담긴 감정이라곤… 불쾌함, 그뿐이었다.
“하나. 불꽃을 담은 화살이라… 심히 불쾌하구나. 모처럼 나의 방식으로 정보를 얻어 가주려 했건만.”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없었다. 로켓보다 더한 공포에 다들 도망갔기 때문에.
그 시각. 아지는 땅 위를 달리고 있었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긴 힘들겠지만, 그 생각을 감히 짐작해보자면 ‘즐거움’이었다. 지금껏 아지는 날아가는 것을 입으로 낚아채왔고, 그 결과는 대부분 즐거움으로 끝났다. 귀납적인 추론에 의해, 이번에도 똑같은 행동을 하면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또한, 반짝이는 불빛이 묘하게 사냥본능을 자극했다. 저토록 확실하게 타오르는 꼬리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아지는 뛰었다. 로켓이 떨어지는 바로 그 방향으로.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폭발보다 먼저 그 냄새를 맡았다는 점이다. 아지는 본능적으로 방향을 바꾸어 위로 뛰었다.
“깨갱!”
불길이 아지를 휘감았다. 아지는 구슬피 울부짖었다. 그다지 다치지는 않았지만, 폭음과 매연 그리고 불길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다. 아지는 필사적으로 거기로부터 도망쳤다.
너무 놀라버린 아지는 그나마 믿을 만한 사람에게로 달려갔다.
개의 가장 소중한 친구, 인간에게로.
그 시각. 한 명이 눈을 떴다. 폭발음이 들리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나타났네. 오래 기다렸어. 이해의 금을 뿌렸으니 슬슬 나타날 거라 생각했지만….”
그러나 곧이어 들리는 목소리와, 하늘을 수놓는 로켓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끙. 그런데 왜 저거너트가 오는 거지? 그것도 캠프 바깥에서? 효과가 너무 빠르잖아? 어쨌든.”
마침 로켓 하나가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그렇지만 이 정도는 이제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 회귀자는 짧게 손목을 움직였고, 그 궤적으로 로켓은 반으로 갈라져서 폭발했다.
분명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폭발 위험이 있는 두꺼운 쇳덩이. 그녀의 목숨을 위협할만한 무기였고, 수단이었다.
그렇지만 이젠 그녀의 몸에 대응책이 새겨진, 사소한 문제 중 하나였을 뿐이다.
심지어, 저 로켓의 주인조차도.
“캐서 물어보면 되겠지.”
회귀자, 셰이는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렸다.
열과 폭발의 회주. 열폭회주. 대충 들어도 매우 다혈질인 것처럼 보인다. 고유마도가 은근히 성격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툭 건드려도 폭발하지 않을까 싶다.
성격도 성격이지만, 폭탄을 들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다혈질보다 위험한 사람이 다혈질이면서 지 닮은 폭탄을 쓰는 사람. 전자는 자신을 죽이지만 후자는 타인을 죽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죽이는 건 알 바 아니지만 타인을 죽이면 알아야 할 바가 되는 법. 겁을 잔뜩 집어먹은 내가 천막을 닫고 농성하려는 때였다.
단장이 천막을 젖히고 뛰쳐나갔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상대는 열폭회주다!”
길 한복판에 우뚝 선 단장은 도망치는 사람들을 막으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의 직속은 모두 열폭회주의 추진기를 달고 있다! 어차피 도망 못 쳐. 여기서 저항해!”
어쩌면 그의 말은 가장 이성적인 대처였을지도 모른다. 폭발은 위협적이고 시끄럽지만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 폭발은 발산, 화력이 사방으로 퍼진다. 약간의 기공이라도 할 줄 알면 반탄기공의 원리로 파편이나 열풍은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정말 위험한 건 로켓이 아니라… 그걸 타고 돌아다니는 미친놈들이지. 그들 상대로는 따로따로 도망치다가 잡히는 것보다야 뭉쳐서 저항하는 게 몇 배는 유리하다.
그러나 인간은 어설프게 이성적이라.
“웃기지 마! 너나 싸우시지. 나는 갈 테니까!”
모두가 힘을 합쳐 저항한다면 열폭회주 상대로도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들이 저항하는 동안 도망간다면 나는 확실하게 안전하다.
그 딜레마로 인해, 캠프의 승냥이들은 일제히 도주하기를 택했다. 덕분에 캠프의 승냥이들은 싸우기도 전에 패배하고 말았다.
대신 싸워줄 사람이 없어서, 자기 안전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로.
“다들 북문으로!”
“그러는 너는 왜 남문으로 향하는 거냐! 미끼로 삼으려는 거지!”
“시끄러! 가까운 문으로 나가면 되잖아!”
번뜩이는 기지가 오로지 서로를 속이기 위해만 사용된다. 아우성이 함성으로 바뀌어 상대방을 향한다. 와중에도 최대한 자기 물건을 챙겨 달아나는 모습은 일관성 있을 정도다.
노점을 열었던 연금술사들은 그들보다 출발이 늦었다. 뒤늦게 짐을 꾸려 달아나려는 이들을 향해 단장이 외쳤다.
“멍청이들! 가지 마! 여기가 가장 안전해! 여기는…!”
‘여기는 잔녹회주가 있단 말이다! 연금술사의 천적이!!’
피유우우웅.
마침 로켓 하나가 천막을 찢으며 단장의 코앞으로 떨어졌다. 연금술사들이 혼비백산하여 흩어졌다.
단장도 몸을 피할 수는 있지만, 뒤에는 페루가 있다. 일단 몸으로 막아낼 요량으로 그는 천막에 기공을 불어넣고 앞장섰다.
그때.
“…내 앞에선.”
심지에서 타던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불꽃을 만들어내던 점화기도. 놋쇠 원통도. 더는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부스러졌다. 불은 재와 연기가 되고, 강철은 녹슬고 부식되어 흩어진다.
모두가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동안, 페루가 천막을 걷고 거리로 나왔다. 부스러진 강철을 짓밟으며 선 페루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무엇도 빛나지 않아.”
순식간에 부서지고 녹슨 로켓. 그것을 본 연금술사들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잔녹(殘綠)회주?”
페루의 등장 이후, 연금술사 상인들의 표정에 상반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나는 살았다는 안도감, 다른 하나는… 영구적인 상실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건 본능적인 공포보다는 이해 끝에 도달한 두려움. 연금술사들은 주춤거리며 자기 재산을 껴안고 뒤로 물러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잔녹회주, 페루의 힘은 연금술사들이 가진 재산… 귀중한 금속이나 물건을 ‘못 쓰게’ 만들기 때문이다.
열국에서 ‘못 쓴다’는 건 좀 의미가 다르다. 물건을 자유자재로 변환하는 연금술이 있는 이상, 금속은 언제나 그 무게만큼의 가치가 있다. 필요 없어지면 다시 연금하여 쓰면 되니까.
그러나 페루는 무게가 가진 가치조차 소멸시킨다.
어디에도 쓸 수 없는, 잔녹으로 부스러진 잔해만을 남긴 채로.
“사, 살긴 살았…는데….”
“저… 능력은….”
목숨을 지킬 건지, 목숨이나 다름없는 재산을 지킬 건지. 난제 속에서 상회 연금술사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참나. 배가 불렀네. 목숨이랑 돈을 저울에 올려놓고는 고민할 줄이야. 내가 답을 알려주지.
“어이! 거기! 우리를 도왔는데 칭찬을 못 할망정….”
준엄하게 꾸짖고 나를 위한 총알받이로 내몰자. 내가 다음에 할 말을 고를 때였다.